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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칼럼] "어린이날이 달갑지 않다"는 어느 교장의 고백

 

더에듀 | 제104주년을 맞이한 어린이날입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비전이 있고, 더 희망이 있는 존재”라며 이 땅의 아이들에게 존엄과 행복을 선물한 지 벌써 한 세기가 넘었습니다.

 

하지만 학교 현장을 지키는 한 명의 교육자로서, 그리고 교육계의 흐름을 지켜보는 한 사람으로서 저는 오늘 무거운 고백을 하나 하려 합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최근 언론을 통해 들려오는 교육계의 소식들을 접하며 맞이하는 어린이날은 마냥 축하하기엔 너무도 ‘서글픈 역설’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소음 측정기를 든 이웃, 사라져가는 아이들의 함성


제가 교직에 처음 몸담았던 시절, 어린이날 전후의 학교는 온 동네가 잔칫집이었습니다. 만국기가 하늘거리고 아이들의 응원 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지나가던 어른들도 잠시 멈춰 서서 흐뭇하게 웃으시곤 했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이 세상을 향해 내지르는 건강한 생명력의 신호였고, 공동체가 함께 아이를 키운다는 무언의 약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보도되는 일선 학교들의 풍경은 너무나 차갑기만 합니다. 학교 인근 주민들에게 아이들의 활기찬 함성은 더 이상 ‘희망의 소리’가 아닌, 층간소음보다 무서운 ‘생활 민원’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운동회 연습 소리에 행정실 전화기가 마비되고, 심지어 소음 측정기를 들고 교문 앞까지 찾아와 항의하는 이웃들 때문에 많은 학교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주민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아이들의 입을 막고, 운동회를 강당 안으로 밀어 넣어야만 하는 동료 교육자들의 현실은 시퍼런 멍으로 남습니다. 일 년에 단 하루, 마음껏 소리 지르고 뛰어놀 권리조차 어른들의 ‘정숙할 권리’ 뒤로 밀려나는 현실이 선배 교육자로서 너무도 미안할 뿐입니다.


‘독이 든 성배’가 되어버린 현장체험학습의 비극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소풍, 즉 현장체험학습도 이제 교육 현장에서는 ‘독이 든 성배’라 불립니다. 교실 밖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선생님들의 열정이 사고에 대한 ‘공포’에 압도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동 중의 작은 사고나 체험장의 예기치 못한 안전사고조차 이제는 오롯이 인솔 교사 개인이 감당해야 할 법적 굴레가 되어버린 탓입니다.

 

최근 언론을 통해 전해진 체험학습 관련 판결들을 보며 현장의 선생님들은 깊은 무력감에 빠져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나갔다가 내 인생이 끝날 수도 있다”는 공포가 학교 현장을 지배하면서, 결국 많은 학교가 눈물을 머금고 체험학습을 취소하거나 교내 행사로 돌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교사가 사고의 책임이 무서워 아이들을 교실 안에 가두는 것이 ‘가장 안전한 교육’이 되어버린 이 서글픈 현실. 아이들의 경험치는 줄어들고 선생님들의 눈빛은 방어적으로 변해갑니다.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는 선생님들의 심정을 우리 사회는 얼마나 헤아리고 있을까요.


스승의 눈 맞춤을 앗아간 ‘아동학대’의 늪


가장 뼈아픈 것은 교사와 제자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교권 추락의 이면에는 ‘정서적 아동학대’라는 이름의 무분별한 고소와 고발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최근 보도된 사례들을 보면 참으로 참담합니다.

 

잠자는 아이를 깨우고, 다른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를 제지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활지도조차 이제는 법적 분쟁의 사유가 된다고 합니다. 칭찬 스티커를 주지 않았다고 차별이라 하고, 교육적 훈육을 정서적 학대라 몰아붙이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눈을 맞추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스승의 따뜻한 꾸지람이 사라진 자리에는 법적 매뉴얼과 차가운 행정 절차만이 남았습니다. 선생님이 고소당할까 봐 몸을 사려야 하는 환경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교권이 무너진 교실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우리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밤잠을 설칠 정도로 가슴이 아픕니다.

 


어린이날, 다시 ‘아이들의 진정한 웃음’을 꿈꾸며


오늘 아이들은 빨간 글씨의 휴일을 즐거워하겠지만, 전국 각지에서 들려오는 아픈 소식들을 접하는 교사들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기만 합니다. 연휴 끝에 기다릴 민원과 책임의 무게가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심을 다해 축하해 주고 싶어도, 그럴 마음의 여유조차 소진되어 버린 것이 지금 우리 교육계의 안타까운 자화상입니다.

 

진정으로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을 원하신다면, 이제는 우리 어른들이 답해야 합니다. 학교를 민원의 대상이 아닌 아이들의 소중한 보금자리로 바라봐 주시고, 선생님들이 안심하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울타리를 만들어 주십시오.

 

내년 어린이날에는 다산고등학교 교장으로서, 그리고 이 땅의 한 명의 어른으로서 부끄러움 없이 아이들을 마주하고 싶습니다. 민원 걱정 없이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학교 담장을 넘고, 책임의 공포 없이 아이들과 손잡고 넓은 세상을 누비며, 서로를 향한 굳건한 신뢰 위에서 진정한 가르침이 일어나는 그런 학교를 꿈꿉니다.

 

어린이날은 아이들만 쉬는 날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되돌아보는 날이어야 합니다. 내년 5월 5일에는 대한민국 모든 선생님과 아이들이 서로를 향해 활짝 웃을 수 있는 그런 '진짜 어린이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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