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대한민국은 현 정부가 들어선 후 ‘AI 3대 강국’을 국가적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대통령조차 “하루가 늦으면 한 세대가 늦춰진다”고 강조하며, 정부 부처와 기업들도 한목소리로 인공지능 경쟁력을 말한다. 반도체와 플랫폼, 데이터센터와 GPU 확보 전략도 쏟아진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은 던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누가 AI를 만들고, 누가 AI 시대를 이끌 것인가?’
일선 학교 현장은 AI를 가르칠 교사가 부족하여 상치교사로 운영되고 한 학교 소속의 정보 교사는 여러 학교를 순회하며 가르치는 형국이다. 이로써 우리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을 키우는 곳은 대학임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대학은 미래로 가려는 발목을 여전히 과거의 교육제도가 붙잡고 있다. 교육부는 이에 앞장서 낡은 제도의 혁파에 무능의 소치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서울대가 자유전공학부에 100명 규모의 ‘융합AI광역’ 모집 단위를 신설하려 했지만 교육부가 반려했다는 소식은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대한민국 고등교육이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서울대의 구상은 매우 시대적이었다. 학생들을 특정 학과에 가두지 않고 먼저 선발한 뒤 AI를 기반으로 인문학·사회과학·공학·의학·예술 등을 넘나드는 융합교육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AI를 이해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각 분야를 AI로 혁신할 사람’을 길러내겠다는 시도였다.
그런데 교육부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정원 체계와 모집 단위 기준, 기존 학사 구조 등 현실적 규정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바로 그 ‘규정’이 문제다. AI 시대는 이미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데, 우리의 교육행정은 여전히 학과 칸막이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구시대적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미래는 융합으로 가는데 제도는 분절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오늘날 AI 경쟁은 단순한 코딩 경쟁이 아니다. 미국이 강한 이유는 컴퓨터공학 인재만 많아서가 아니다. 스탠퍼드와 MIT, 카네기멜런 같은 대학에서는 의학과 AI, 법학과 AI, 철학과 AI, 디자인과 AI가 자유롭게 연결된다. 학생은 학과보다 문제 중심으로 움직인다.
중국 역시 베이징대와 칭화대를 중심으로 AI 단과대학과 융합연구소를 공격적으로 확대하며 국가 차원의 인재 양성에 나서고 있다. 그들 AI 2강은 이름에 걸맞게 이미 ‘AI는 모든 분야의 언어’라는 사실을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반면 한국 대학은 아직도 ‘어느 학과 정원을 몇 명 늘릴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갇혀 있다. 대학은 산업 변화보다 교육부 승인 절차를 먼저 걱정해야 하고, 학과 간 협업보다 정원 배분과 예산 구조를 먼저 따져야 한다.
대학 총장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미래 설계가 아니라 규제 대응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온다. 대학이 이럴진 데 과연 ‘AI 3대 강국’의 가능성은 있는 것인가?
주지하는 것처럼 AI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단순 기술자가 아니다. 의료 데이터를 읽을 줄 아는 의사,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법률가, AI 윤리를 설계하는 철학자, AI 기반 콘텐츠를 창조하는 예술가 등등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한 우물형 인재’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양한 영역을 연결하고 새로운 문제를 정의할 수 있는 융합형 인재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알고도 태평스럽게 직무 유기를 하는 것인가?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학생들에게 너무 이른 시기에 전공을 강요한다. 고등학교의 고교학점제가 완전히 정착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이유도 그렇다. 십 대 후반, 스무 살 정도의 청년에게 평생의 학문 방향을 결정하게 하고, 한번 들어간 학과의 벽은 넘을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전과와 복수전공은 어렵고, 학문 간 이동은 복잡하다.
AI 시대에는 이런 구조가 오히려 창의성을 억누른다. 이제 대학은 학과 중심 체제에서 문제해결 중심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학과 출신인가’가 아니라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여야 한다.
교육부 역시 시대에 맞게 역할을 과감하게 재정립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통제기관이 아니라 지원기관으로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대학을 일률적으로 관리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대학이 스스로 실험하고 혁신할 수 있도록 폭넓은 자율성을 주어야 한다.
특히 AI 융합교육만큼은 정원 규제와 학사 규제를 과감히 완화할 필요가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교육 혁신이 가능해야 세계 수준의 인재가 나올 것 아닌가?
여기서 한 가지 오해를 분명히 바로잡자. 대학 자율화가 곧 방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는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 대학은 창의적 모델로 경쟁해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안 된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모든 변화를 기존 규정의 틀로 재단한다면 한국의 AI 경쟁력은 결국 입에 침을 바르고 보기 좋으라고 선언한 것 밖에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 역사적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산업혁명 시대에는 공장을 많이 가진 나라가 강국이었고, 정보화 시대에는 인터넷 플랫폼을 선점한 나라가 강했다. 그렇다면 AI 시대에는 어떤가? 결국 사람을 가장 잘 키우는 나라가 승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대학의 자유와 융합교육이라 할 것이다.
AI는 이미 세상의 언어를 바꾸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제도만 과거의 문법에 묶여 있다면 대한민국은 결코 ‘AI 3대 강국’이 될 수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의 AI 인재를 키우겠다’면서 정작 대학의 융합교육 실험을 막는 현실은 지극히 모순이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대학을 얼마나 통제할 것인가”가 아니라, “대학이 미래를 얼마나 빨리 창조할 수 있게 할 것인가”로 말이다. 대한민국의 AI 경쟁력은 GPU 수입량이 아니라, 캠퍼스와 교실 안에서 얼마나 자유로운 융합이 가능한가에 달려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