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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로 간 어린이철학] 완벽한 인간

공립 대안중학교, 울산고운중학교의 철학수업 이야기

더에듀 | 공교육은 입시와 경쟁, 시험, 서열 등으로 아이들의 생각과 삶을 단단하게 고정해 놓고, 삶 자체를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라는 정해진 트랙 위에서 움직이게끔 한다. 이 트랙을 성실하게 달리는 사람에겐 모범 학생이라는 훈장을 준다. 그런데, 울산 최초의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넘어 저항적이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철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과 삶에 대한 사색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에 <더에듀>는 아이들이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데 도움을 주는 박상욱 철학교사의 수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교육이 경쟁과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더에듀 영화 ‘가타카(Gattaca)’는 유전자 기술이 극도로 발전한 미래 사회를 그리고 있다. 1997년에 개봉한 SF 영화지만, 지금 봐도 그 소재가 전혀 촌스럽지 않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유전자 선별과 조작을 통해 태어난다. 태어나기 전에 미리 유전적 질병과 문제를 예측하여, 능력과 지능이 최적화된 아이를 선택하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이런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더 평등하고 행복할 것 같다. 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사람의 가치는 개인의 노력보다 타고난 DNA에 의해 결정된다. 개인이 가진 유전 정보는 취업, 교육,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유전적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회는 새로운 불평등과 차별을 낳는다. 영화 ‘가타카(Gattaca)’는 우리에게 또 다른 디스토피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일까? 프랜시스 골턴(Sir Francis Galton, 1822~1911)은 본래 통계학자이자 인류학자로 여러 학문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지만, 그중 가장 잘 알려진 동시에 가장 논쟁적인 업적은 ‘우생학(Eugenics)’이라는 학문을 창시한 것이다.

 

 

우생학은 다윈의 진화론을 바탕으로 우수한 유전적 특성을 가진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 전체도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곧 강제적인 불임 수술이나 인종차별 정책의 이론적 근거로 악용되었다.

 

이를 악용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히틀러이다. 골턴과 히틀러 사이에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히틀러가 추진한 인종차별 정책은 게르만 민족과 유대 민족을 극단적으로 차별하는 우생학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수십만 명에게 강제로 불임수술을 시켰으며, 장애인들을 조직적으로 살해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오늘 수업 시간에는 아이들과 마이클 샌델의 ‘완벽에 대한 반론’ 일부를 함께 소리 내어 읽었다. 아이들은 제목부터 굉장히 호기심을 보였다. 이후 책을 읽은 소감을 나누고, 각자 만든 질문을 발표했다.

 

주윤: 인간 복제는 윤리적인가?

준이: 부모가 자식의 모습을 결정해도 되는가?

지성: 죽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수진: 우리 각자는 고유한 존재인가? 아니면 신의 일부인가?

예성: 인간에게 영혼이 존재하는가?

아름: 동물복제와 인간복제의 차이는 무엇인가?

민성: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는가?

 

언제나 그렇듯 아이들의 질문들은 교재의 내용을 넘어 수업의 시공간 곳곳을 탈주하며 균열과 생성을 일으켰다. 하나의 질문은 새로운 질문을 낳고, 그 사이에서 아이들의 사유는 ‘리좀’적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특히 ‘부모가 자식의 모습을 결정해도 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잠시 머물며 극명한 의견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한 아이가 자식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면 부모의 간섭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자, 주윤이는 누구도 미래를 단정 지어 예측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뒤이어 민성이는 부모가 생각하는 좋은 삶이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삶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덧붙였다.

 

논의가 이쯤 진행되자 아이들의 관심은 ‘더 나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판단하는 문제로 이어졌고, ‘완벽한 인간이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최종 질문으로 결정되었다. 이렇듯 철학적 토론에서 사고의 흐름은 질문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이 만들어 내는 고유한 맥락 속에서 결정된다. 즉 수업의 상황을 떠난 좋은 질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성: 완벽한 인간은 존재할까요?

 

배경 설명: 사람들은 유전 기술을 활용해 더 완벽한 인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외모, 지능, 신체 등에서 완벽하지 않은 것은 미리 없애려고 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부모들도 더 완벽한 인간을 만들기 위해 유전자 조작 같은 것을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정말 우리가 바라는 ‘완벽한 인간’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성이의 질문에 대해 아이들은 곧바로 논의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질문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미 충분한 토론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교사가 토론 주제를 먼저 정해서 토론을 진행하면 아이들이 주제에 충분히 빠져들 시간이 없어진다. 토론의 맥락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토론을 시작하기 전, 토론 주제를 제안한 배경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유진: 그런 게 어떻게 존재해요? 다 단점도 있고 문제도 있는 거죠.

지성: 언젠가는 존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유진: 지금까지 그런 사람들을 본 적 있어?

지성: 없지.

승우: 아니야.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고 해서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는 장담하지 못해.

아름: 맞아.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는 있을 수도 있지.

민성: 착하고, 잘 생기고, 능력 있는 그런 사람?

주윤: 그것만 있으면 완벽한 거야?

 

유진이는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경험상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진이의 추리에는 오류가 있다. 귀납적으로 제시된 경험적 근거는 100%의 확실성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지점을 승우가 정확히 지적했다.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종종 교실에서 경험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한 논의는 자칫 수레바퀴처럼 맴돌기 쉽다. 내가 이런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주윤이가 돌파구를 제안했다.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완벽'의 의미에 대해 질문한 것이다.

 

교사: ‘완벽하다’와 ‘완벽하지 않다’를 나누는 기준이 있을까?

유진: 그냥 모든 것에서 다 뛰어난 거죠.

예성: 비난할 게 없는 사람이요.

수진: 가장 인간다운 사람이요.

교사: 그게 어떤 의미지?

수진: 인간이 완벽하다는 거잖아요. 그럼 가장 인간다운 것이 완벽한 것 아닌가요?

교사: 그럼 인간다운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주윤: 인간은 완벽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항상 실수하는 존재이니까요.

예성: 맞아요.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고......

유진: 그럼 이상한 거 아냐? 인간 자체가 불완전한 존재인데...... 어떻게 완벽한 인간이 존재할 수 있지?

 

논리 오류 중에 ‘형용모순’이라는 것이 있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을 결합하는 데서 생기는 오류이다. 예를 들어 ‘둥근 사각형’, ‘뜨거운 얼음’ 같은 것이 있다. 둥글다와 사각형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둥근 사각형이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

 

아이들의 논의는 완벽함이라는 개념과 인간이라는 개념이 양립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완벽함은 실수나 비난, 오류가 없다는 뜻인데, 인간은 본질적으로 실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인 이유에 대해서는 굳이 탐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함께 생각을 나누고 공동의 탐구를 지향하는 이유는, 개개인이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닌가? 이것은 교실에서 탐구공동체를 만들어 가려는 대전제에 해당한다. 이러한 전제를 1년 가까이 함께 철학적 토론을 해온 아이들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교사: 결국 완벽한 인간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구나.

주윤: 맞아요. 그리고 완벽함의 기준도 사람마다 다양하잖아요.

아름: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인간과 예성이가 생각하는 완벽한 인간은 다를 거예요.

예성: 그렇지. 손흥민 정도는 돼야 완벽한 인간이지.

아름: 봐요. 다르잖아요.

주윤: 완벽하다는 것은 그냥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거예요.

교사: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뜻인 거지?

주윤: 맞아요. 머릿속에만 있는 거예요.

교사: 현실에 없는데 어떻게 머릿속에 존재할 수 있는 거야?

지성: 그렇네요. 어떻게 존재하지?

준이: 머릿속에 있는 것 중에 현실에 없는 것도 많아요. 드래곤도 있고, 고질라도 있고...... 외 계인도 있고......

교사: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근대 과학혁명을 이끈 경험론자들은 우리가 가진 모든 관념의 원천은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경험보다 관념과 사유의 우위를 이야기했던 합리론자들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경험론자들에게 본유관념, 즉 경험과 무관하게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관념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윤이는 ‘완벽’이라는 관념이 현실이나 경험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관념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나는 경험론자의 입장에서 반론을 제기해 보았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우리 생각 속에 존재하는 것일까?”

 

그러자 준이의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이미 우리 머릿속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드래곤이나 고질라 같은 예시를 들었다. 아주 간단한 예시였지만, 이것만으로 근대 경험론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을 훑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준이의 말은 흡사 로크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성: 그냥 머릿속에서 조합하고 상상하는 거예요. 현실에 비슷한 것들이 있으니까...... 그걸로 상상을 하는 거죠.

교사: 완벽한 인간도 일종의 상상의 산물이라는 건가?

주윤: 그렇지 않을까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교사: 사람들은 그런 것을 왜 상상했을까?

승우: 음...... 재미있으니까요.

아름: 필요해서 상상한 거 아닐까요?

교사: 완벽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나?

주윤: 동기부여죠. 더 열심히 노력할 수 있게 하니까요.

지성: 맞아요. 우리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어요.

유진: 각자가 생각하는 완벽한 인간을 위해 노력하는 거죠.

 

 

존 로크는 인간의 마음은 원래 빈 공간과 같다고 말했다. 살아가면서 경험을 통해 그 빈 공간을 채워 넣는 것이다. 그렇다면 준이의 말처럼 드래곤이나 고질라 같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관념이 어떻게 가능할까?

 

로크에 의하면 이는 일종의 종합이다. 현실에서 받아들인 관념을 마음속에서 연결하고 조합하는 것이다. 유니콘이 말과 뿔이라는 경험적 관념을 합쳐 만들어진 것처럼 말이다. 결국 우리의 관념은 경험과 현실을 넘어설 수 없다는 의미이다.

 

지성이가 말한 조합과 상상은 로크의 이러한 생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가 완벽한 인간이라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관념을 만들어 낸 이유는 무엇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아름: 저는 생각이 달라요. 맞춤형 아기 같은 것도 완벽함을 추구해서 생긴 거잖아요. 완벽함 때문에 사람들 간의 차별과 불평등이 생기는 것 같아요.

주윤: 내가 생각하기에 굉장히 중요한 지적인 것 같아.

승우: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이 비장애인이 더 완벽함에 가까워서 아닐까요?

유진: 그럼 완벽함이라는 말을 상상한 것도 사실 차별하기 위해서라는 뜻인 거야?

준이: 그럼 우리 머릿속에서 완벽한 인간이라는 생각을 지우면 되지.

교사: 그게 가능할까?

민성: 그건 불가능해요. 이미 사회 곳곳에 존재하니까요.

아름: 그럼 어떡하지?

수진: 그냥 생각해야지. 항상.

주윤: 경계해야 할 것 같아요. 완벽함이라는 말을 내가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말이에요.

 

비트겐슈타인은 우리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라고 말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한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는 너무나 중요한 사고의 도구이다. 그렇기에 잘못된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 잘못된 사고와 실천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완벽한 인간이라는 잘못된 관념과 언어로 인해 차별과 불평등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는 완벽함을 추구하도록 부추기는 온갖 유혹이 존재한다. 화려한 외모, 성적, 직업, 돈 등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TV 광고와 드라마 등이 대표적이다. 이 지점에서 아름이가 실존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어떡해야 하지?”

 

아름이의 질문 앞에서 나 역시 답을 생각해 낼 재간이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여기에 명확한 답을 줄 것 같지 않았다. 그때 수진이가 조용히 말했다. “그냥 생각해야지.”

 

수진이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맞다.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말하고 사유하는지 말이다. 나는 수진이의 이 말에서 소크라테스가 죽음으로 증명하려 했던 성찰하는 삶, 즉 ‘철학함’의 절실함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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