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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THE교육] 학교 생존기를 통한 우리 교육 톺아보기

 

더에듀 |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산다는 것은 매일 아침 ‘서바이벌 게임’의 로그인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다. 우리는 흔히 요즘 아이들을 보며 “라떼는 말이야, 보릿고개도 넘겼는데 배가 불렀다”라며 혀를 차곤 한다. 하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무지의 소치다. 왜 그럴까?

 

이 글에서는 무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챗GPT AI에게 물어 초등학교 4학년, 중학교 2학년,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대한민국 교육의 학교급별 ‘핵심 존재’의 날 것 그대로의 고백을 통해, 지금 우리 학교가 마주한 약간의 희극을 포함한 비극을 살펴보고자 한다.

 

 

초등학교 4학년 김민준(가명) : “스케줄러가 검찰청 부장검사급이에요”

 

"인생 11년 차, 제 삶은 이미 대기업 임원 뺨칩니다. 제발 학교에서만이라도 멍때리게 해 주세요.” 한마디로 요약된 그의 삶의 고백을 들어 보자. “안녕하세요, ○○초등학교 4학년 김민준입니다. 어른들은 늘 초등학생이 뭐가 힘드냐고 하죠? ‘공부도 별로 안 하면서 맨날 놀고먹는 축복받은 세대’라고요. 하지만 제 하루를 보시면 그런 말이 쏙 들어갈 겁니다.

 

제 가방 무게는 대략 5kg입니다. 제 몸무게의 7분의 1이죠. 특전사 군장도 아니고 매일 이걸 메고 등교합니다. 학교가 끝나면 진짜 게임이 시작돼요. 영어학원, 수학학원, 논술학원, 그리고 ‘체력 키워야 한다’며 등 떠밀려 가는 태권도까지 말이지요. 제 스마트폰 구글 캘린더는 빽빽하다 못해 터지기 직전입니다. 거의 검찰청 부장검사님 스케줄이에요.

 

제가 학교생활에서 가장 힘든 건 역설적이게도 ‘학교에서조차 쉴 틈이 없다’는 겁니다. 쉬는 시간 10분요? 다음 수업 교과서 꺼내고 화장실 한 번 다녀오면 끝납니다. 점심시간에는 급식을 빛의 속도로 흡입하고 나면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축구 한 판 할 시간도 부족해요.

 

​선생님들은 늘 "민준아, 집중해야지!"라고 하시지만, 제 뇌는 이미 오전 11시에 ‘배터리 10%’ 경고등이 켜집니다. 저에게 학교는 배움의 터전이 아니라, 학원이라는 ‘본게임’을 가기 전 거쳐 가는 ‘대기실’ 같아요. 전 그냥 하루에 딱 30분만, 아무 생각 없이 개미를 관찰하거나 먼 산을 바라보며 ‘합법적으로 멍때릴 자유’를 원합니다."

 

 

중학교 2학년 이서윤(가명) : “단톡방이라는 감옥, 그리고 단절”

 

​반갑습니다. 전국의 모든 어른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고 북한의 김정은도 두려워한다는 ‘중2’, 이서윤입니다. 저의 삶은 한마디로 ‘중2병’이 아니라 ‘생존 본능’입니다. 친구 관계라는 살얼음판 위에서 매일 줄타기를 해요. 어른들은 저희가 이유 없이 반항하고 짜증을 낸다고 생각하시죠? 그건 저희 마음속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불안’을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제가 학교에서 가장 힘들고 괴로운 건 ‘단톡방(단체 카카오톡 대화방)과 소외에 대한 공포’입니다. 요즘 중학교 생활은 교실 안에서만 이뤄지지 않아요. 진짜 학교는 스마트폰 속 24시간 열려 있는 단톡방에 있습니다. ​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나만 빼고 자기들끼리 다른 단톡방을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의 그 서늘함, 경험해 보지 않은 분은 모릅니다. 내가 보낸 메시지에 10분 동안 아무도 답장하지 않으면(‘읽씹’당하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학교 마크가 찍힌 체육복을 입고 같이 급식을 먹지만, 서로 눈은 스마트폰을 향해 있습니다.

 

교실은 온통 ‘눈치 게임’의 장입니다. 누구 라인에 서야 할지, 어떤 유행어를 써야 소외당하지 않을지 매 순간 에너지를 써야 해요. 교과서에 나오는 수학 공식이나 역사적 사건보다, ‘지금 내 옆의 친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고차방정식을 푸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입니다.

 

중2병’은 허세가 아니라, 이 숨 막히는 인간관계의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보호색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 박서준(가명) : “인간이 아닌 ‘등급’으로 존재하는 시간”

 

"안녕하세요? 저는 ​고3, 박서준입니다. 제 고백은 아주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저는 지금 ‘내 존재가 숫자로만 치환되는 현상’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습니다. ​아침 7시 30분에 등교해서 밤 10시 야간자율학습(이름만 ‘자율’인 타율학습)이 끝날 때까지, 제가 듣는 말의 99%는 숫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너 이번 모의고사 몇 등급이니?’, ‘내신 평점이 어떻게 되니?’, ‘그 성적으로는 ‘서성한’은 커녕 수도권 대학의 예비 번호도 못 받는다.’

 

학교 복도를 걸어 다닐 때면, 마치 제 이마에 바코드가 찍혀 있는 기분이 듭니다. ‘3.2등급 짜리 상품’. 선생님들의 따뜻한 눈빛도, 친구들과의 끈끈한 우정도 전부 이 등급이라는 필터를 거쳐서 필터링됩니다.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진 날에는 교무실에 가기가 무섭습니다.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숙여야 하니까요.

 

가장 슬픈 건, 제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생각할 시간조차 사치라는 점입니다. 철학자가 되고 싶다고 하면 ‘돈 안 된다’고 까이고, 음악을 하고 싶다고 하면 ‘지금 그게 눈에 들어오냐’며 혼이 납니다. 대한민국 고3에게 학교는 학문을 탐구하는 곳이 아니라, 수능이라는 거대한 단판 승부를 위해 경주마처럼 눈을 가리고 앞만 보고 뛰어야 하는 트랙일 뿐입니다."

 

​세 아이의 눈물겨운 고백을 들으며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초등학생은 ‘시간’이 없고, 중학생은 ‘마음의 안식’이 없으며, 고등학생은 ‘자아(自我)’가 없다. 참으로 완벽하고 슬픈 삼위일체이다.

 

​이제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조금만 더 버텨라, 대학 가면 다 해결된다”는 과거의 희망 고문을 멈춰야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요즘은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난이라는 더 큰 보스가 기다리고 있다. 대신, 이제는 학교라는 공간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 어땋게 말인가? 여기 간략하게 몇 가지로 압축해 본다.

 

첫째, 초등학교에는 ‘공식 멍때림 시간(Blank Time)’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하루 20분 만이라도 알림장도, 숙제도, 학원 생각도 안 하고 교실 바닥에 누워 뒹굴 수 있는 시간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뇌가 쉬어야 창의성도 자라나지 않겠는가? 우리는 어려서부터 아이들은 너무 바쁜 일정에 혹사당하고 있다. 그러니 공부라는 말에 벌써 소위 ‘경끼’를 하고 있다.

 

둘째, 중학교에는 ‘디지털 디톡스’와 ‘진짜 대화’의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단톡방의 사이버 세상에서 벗어나 서로의 눈을 보고 감정을 표현하는 법, 상처받지 않고 거절하는 법을 교과서보다 먼저 가르쳐야 교실 내의 보이지 않는 폭력이 사라질 것이다.

 

몇 해 전 서울 아현동 KT지국 화재 사건은 화제로 멈춘 일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디지털 붕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참극을 보여주었지 않은가?

 

​셋째, 고등학교는 ‘등급 평가제’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학생을 1등급부터 9등급(5등급)이라는 고기 등급 매기듯 분류하는 시스템을 멈추지 않는 한, 고3 교실의 비극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숫자가 아닌 ‘이름’과 ‘꿈’으로 불릴 수 있도록 절대평가와 진로 중심 교육으로의 완전한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경쟁력과 변별력을 말하기 이전에 인간을 입시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을 시키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이 무엇인가? “모든 것이 한때다. 참고 견뎌야 한다”는 말은 지나친 구실이자 삶을 황폐화한다. 인생 100세 시대 ‘평생학습’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으로 공부의 희생양만을 만들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흔히들 ​대한민국의 미래가 교실에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교실은 미래가 아니라, 과부하로 폭발하기 직전의 발전소와 같다. 이제는 전압을 낮추고, 아이들의 숨통을 틔워주어야 할 때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행복하게 웃을 수 없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결코 밝을 수 없다. 세계는 지금 학교 교육의 혁신을 이루어 배움이 즐겁고 행복한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지옥과 같은 입시와 학벌의 숭상만을 고집할 것인가?

 

이제 우리 교육은 분명히 전환점에 서 있다. 변화해야 한다. “고등학교 시절, 하루하루가 축제와 같았다”는 독일 출신 한 재한 외국인의 고백은 결코 지나친 과장이 아니다. 전 세계 선진국의 초중고가 보편적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상식 수준으로 널리 공개하고 드러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필자는 삿포로에서 북해도 전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축제를 관람하고 있다. 낮부터 오후 8시까지 펼쳐지는 축제에 고교생은 물론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단결된 모습으로, 열정적으로 축제를 즐기는 중이다. 선진국 일본에서 학생들이 인간으로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오감이 즐겁기 짝이 없다.

 

이는 학생들이 공부에만 매달려 학원과 독서실에 저당 잡힌 삶을 사는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역사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유발 하라리 교수가 말한, 우리가 추구해야 할 행복한 교육을 향한 ‘미래의 상수(常數)’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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