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정은수 객원기자 | 우리나라 민주시민 교육이나 교사의 정치적 중립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정치적 논쟁을 허용하는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원칙(Beutelsbacher Konsens)이다. 그런데 그동안 이상화된 것과 달리 현재 독일 학교에서는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거세다.
로베르트 보슈 재단(Robert Bosch Stiftung)은 23일 이런 상황을 반영한 ‘학교 바로미터(Deutsches Schulbarometer)’의 ‘교사 설문 조사(Befragung Lehrkräfte)’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독일 교직 사회의 주요 현안에 관해 설문했는데 ▲민주시민교육과 정치적 중립성 ▲학생 문제행동 ▲인공지능 ▲학생인구 다변화와 포용 등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독일 교사도 공무원법상 정치적 중립성 원칙 적용
민주시민교육을 현안으로 다룬 것은 최근 수년간 ‘독일을 위한 대안(Alternative für Deutschland)’ 정당 등에서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 위반 신고 포털을 운영하면서 ‘중립성’에 대한 부담이 독일 교직 사회에서는 꾸준히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작센안할트주에서 한 교사가 자신이 ‘독일을 위한 대안’에 투표하지 않는 이유를 수업 시간에 말해 서면 경고를 받자, 이에 행정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에 관한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이런 논란이 가능한 것은 보이텔스바흐 협약이 정치적 토론을 격려한다고 해도 학생에게 교사의 정치적 의견을 주입하면 안 된다는 점을 첫째 원칙으로 하고 있는 데다 독일도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공무원의 중립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연방 공무원법은 ‘정치적 중립성 의무’ 명목의 조항은 없어도 공무원이 헌법 가치와 인권을 옹호하도록 요구하고, 특정 정파에 유리한 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정당 가입은 허용해도 업무 외에 개인 생활 중에도 공무원 신분에 어긋나는 과도한 정치 활동은 금지하고 있다.
정치적 견해 표명 ‘불허’ 인식 28%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교사 중 다수는 아니지만 28%나 정치·사회적 이슈에 관한 개인 의견을 표명하면 안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모든 학생의 의견을 동등하게 의미 있는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답변도 23%였다.
특히,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교실에서 정치적 주제를 다뤄서는 안 된다는 답변은 8%,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나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에서 한쪽 편을 드는 의견을 들면 안 된다는 답변도 9%였다.
물론, 사회적 부담에도 보이텔스바흐 협약과 공무원법이 규정한 범위와 일치하는 인식을 가진 교사가 많기는 했다. 학생들이 다양한 토론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형성하는 것을 지원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대부분 교사(98%)가 동의했다.
또한, 공무원법과 보이텔스바흐 협약에 모두 명시하고 있는 대로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나 인권을 지지하는 표현은 해도 된다는 의견도 대부분 교사(96%)가 공유하고 있었다.
다만, 정치·사회적 이슈에 관해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기 위한 경우에 한해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표현해도 된다는 인식은 73%로 훨씬 낮았고, 그렇지 않다는 인식도 27%나 됐다.
교사 다섯 명 중 한 명은 ‘정치 중립’ 위반 우려
이런 상황에서 교사 중 18%는 자기 행동이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이 될까 봐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유형별로는 초등 17%, 전문계 또는 종합계 20%, 인문계 고교 10%, 특수학교 21%, 직업학교 25%였다.
특히 동부 27%, 서부 18%로 동서 간 격차가 컸다. 이는 독일의 정치적 지형 영향이다. ‘독일을 위한 대안’ 지지세가 더 높은 동부에서 교사의 정치 중립 위반 문제 제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정치적 중립 부담보다는 시간 부족이 더 큰 문제
정치적 중립성 사안이 최근 부상한 현안이기는 하지만, 독일 교사들이 꼽은 민주시민교육의 가장 큰 장애는 아니었다. 가장 큰 장애는 수업 시간 부족이었다. 저소득 학교 교사 중 73%, 나머지 학교 중 87%가 이를 꼽았다.
2위는 저소득 여부에 따라 달랐는데, 저소득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는 ‘학생 흥미 부족(42%)’을 꼽았고, 나머지는 ‘교사 교육 부족(43%)’을 꼽았다. 그 외 자료 부족, 동료 교사 관심 부족, 관리자 관심 부족 등이 꼽혔다.
그러나 이 질문에서도 연방 공무원법 중립성 위반 우려가 저소득과 비 저소득 학교에서 각각 15%, 18%였으며, 학생 간 갈등 우려도 각각 20%, 18%였다. 또한 학부모 저항과 지지 부족도 17%, 10%나 됐다.
학교가 민주시민교육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의견도 48%나 됐다. 지난해의 54%에 비해 줄었지만 여전히 절반에 가까웠다. 충분히 하고 있다는 의견은 46%로 지난해 38%보다는 꽤 늘었다.
민주시민교육 개선을 위해 필요한 조치로는 더 많은 수업 시수(17%)가 꼽혔다. 학습과 의사결정 참여 확대(11%), 더 많은 프로젝트 활동(10%), 외부 전문가 참여(6%), 학생 표상 강화(5%), 전문성 강화(5%),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구조와 절차 수립(5%), 더 많은 정보 제공(3%) 등이 뒤를 이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학생 문제행동
이번 조사에서 ‘민주시민교육과 정치적 중립성’ 영역을 새로운 설문 항목을 신설하면서까지 현안으로 다뤘지만, 그 외에도 학생 문제행동, AI, 직무만족도에 관한 설문도 이뤄졌다.
교사들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으로는 지난해에 이어 학생 문제행동(46%)이 꼽혔다. 특히, 지난해 42%, 그 전 해 35% 등 최근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보고서는 이것이 단순한 생활지도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이유는 또래 집단 소속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25%), 학습 동기 부여가 어려운 학생(13%) 등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도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받는 학생(47%), 특수교육(33%), 학생 행동과 학급 관리(25%) 등에 대한 연수를 바랐다.
이어 이민 인구 증가로 인한 학생 인구 다변화(34%)가 꼽혔다. 업무 과다(27%), 관료주의(22%), 학부모(20%), 교직원 부족(18%), 저성취 학생(12%), 학급 규모(10%), 시설 투자 부족(8%), 디지털화(5%), AI(5%) 등이 뒤를 이었다.
학부모와 AI 항목은 급격히 높아지진 않았고, 아직 상위권이 아니었지만, 학생 문제행동 외에 감소 없이 지속해서 높아지고 있는 항목이었다.
이제 일상이 된 AI 사용, 여전히 높은 교직 이탈 의지
일주일에 여러 차례 AI 도구를 이용하는 교사는 25%로 지난해 11%의 두 배 넘게 늘었다. 게다가 AI 사용에 자신이 있다는 교사는 48%나 됐다.
AI는 주로 디지털 조력자로 과제 생성(64%)과 수업 계획(58%)에 사용되고 있었으며, 약 절반이 넘는 교사(52%)가 AI 관련 연수를 더 받기를 원했다.
직무 만족도는 이전 조사들과 같이 높은 편(83%)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교사(28%)가 대안이 있다면 교직을 떠나겠다고 응답했다. 특히 인문계 고교를 제외한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들이 더 높은 교직 이탈 의지를 보였다.
한편, 학교 바로미터는 로베르트 보슈 재단에서 2019년부터 정기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2023년부터는 종단 연구로 진행되고 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11월 11일~12월 2일에 걸쳐 1547명의 교원을 대상으로 시행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