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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로 간 어린이철학] '뇌물과 선물'...교사에게 준 마들렌의 다른 시선

공립 대안중학교, 울산고운중학교의 철학수업 이야기

더에듀 | 공교육은 입시와 경쟁, 시험, 서열 등으로 아이들의 생각과 삶을 단단하게 고정해 놓고, 삶 자체를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라는 정해진 트랙 위에서 움직이게끔 한다. 이 트랙을 성실하게 달리는 사람에겐 모범 학생이라는 훈장을 준다. 그런데, 울산 최초의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넘어 저항적이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철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과 삶에 대한 사색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에 <더에듀>는 아이들이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데 도움을 주는 박상욱 철학교사의 수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교육이 경쟁과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최근 ‘문해력’이라는 말이 화두다. AI와 각종 숏폼이 범람하면서 아이들의 문해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해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단순히 생각하면 글을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글을 이해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따져 물으면 쉽게 답하기 어려워진다. 그것은 글자의 의미를 안다는 차원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브라질의 교육학자 프레이리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프레이리는 글을 이해한다는 것은 글자의 뜻을 아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글을 둘러싼 사회, 인간, 규범, 문화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그에게 글을 읽는다는 것은 곧 세상을 읽는 것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의 문해력을 키우는 것은 문화·역사적 작업이다. 프레이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육 내용이나 정책을 편성하기 위한 출발점은 민중의 열망이 반영된 구체적이고, 체험적이며 현재적인 상황이어야 한다. 특정한 기본 모순들을 이용해서 우리는 체험적이고, 구체적이며, 현재적인 상황을 민중 앞에 자극과 반응을 요구하는 문제로서 제기해야 한다.

 

이를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아이들이 현재 놓여 있는 고유한 삶의 맥락과 어휘, 문화 속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한 맥락 속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토론 주제를 만들어 내고, 이에 대해 토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주어야 한다. 프레이리는 이를 ‘생성적 주제’라고 불렀다. 그는 아이들이 스스로 세상에 이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보편적 어휘, 사전적 어휘에서 벗어나 고유한 문화적 맥락 속에서 그 언어의 의미를 생성하고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유의 주체성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 길러질 수 있다.

 

따라서 아이들의 문해력을 길러주기 위한 최고의 교재는 아이들의 경험이다. 아이들이 겪는 일상의 사건과 경험을 토대로 쓴 철학 소설은 최고의 토론 교재일 수 있다. 어린이 철학 수업에서 교사가 쓴 철학 소설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한 학생이 제빵 동아리 시간에 만든 마들렌을 교무실로 가지고 왔다.

 

“선생님, 마들렌 만들었는데 한번 먹어봐요. 엄청 맛있어요.”

 

나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마들렌을 집어 입에 넣었다. 너무나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러자 교무실에 있던 다른 아이들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거 뇌물이지? 생기부 잘 써달라고 드리는 거 아냐?”

 

우리 학교는 대안학교의 특성상 생기부가 큰 의미가 없다. 애초에 내신 성적 등급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평가는 서술식으로 기록된다.

 

“아냐,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드리는 거야.”

“그래도 선생님께 좋게 봐달라고 주는 거면 뇌물이지.”

“그럼 너도 지금 선생님 심부름하는 거 뇌물 아냐?”

 

 

아주 가볍게 시작된 농담은 대화가 이어질수록 점점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수업 종이 울렸고, 아이들은 자기 반 교실로 돌아갔다. 교실에 남은 나는 아이들의 짧은 대화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곧바로 다음 철학 수업의 주제는 이걸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던 공문 작업을 멈추고 짧은 철학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다음은 그 이야기의 일부이다.

 

중학교 2학년 Y는 수학 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방과 후에도 선생님은 Y를 남겨 차근차근 문제를 설명해 주었다. 몇 주 뒤 Y는 다음 시험에서 훨씬 좋은 점수를 받았다.

집에 돌아온 Y는 말했다.

 

“엄마, 선생님께 감사해서 귤 한 상자를 드리고 싶어요.”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학교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말했다.

 

“감사해서 드리는 거니까 선물이지.”

“하지만 선생님이 다음에도 Y를 더 잘 챙겨주시면 어떡해? 그럼 뇌물 아니야?”

 

Y는 고개를 갸웃했다.

 

“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때 다른 친구가 말했다.

 

“Y는 안 바라더라도 선생님은 부담을 느낄 수도 있잖아.”

 

교실이 조용해졌다. 그때 철학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만약 귤을 드리는 날이 시험이 끝난 뒤라면 선물일까? 시험을 보기 전이라면 어떨까? 귤 한 개라면? 한 상자라면? 아주 비싼 과일이라면?”

 

아이들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선물과 뇌물을 나누는 것은 물건의 종류나 가격이 아닐지도 몰라. 주는 사람의 의도, 받는 사람의 마음, 그리고 그 선물이 공정한 판단을 흔들 수 있는지까지 함께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 Y는 귤 상자를 들지 않고 질문 하나를 들고 갔다.

 

‘내 감사는 상대를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나에게 더 유리한 결과를 바라게 만드는 것일까?’

 

그 질문의 답은 아직 누구도 쉽게 내리지 못했다.

 

아이들은 위 이야기를 함께 읽고 질문을 만들었다.

 

수진: 혼자 남겨서 보충 수업을 해주는 것은 특혜일까?

주윤: 감사해서 주는 거라면 전부 선물일까?

준이: 선물은 주는 사람의 의도가 중요한 것일까?

유진: 뇌물을 주는 것이 왜 잘못인가?

승우: 선물과 뇌물을 엄격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짧은 논의 끝에 승우의 질문을 토론 질문으로 선택했다.

 

승우: 선물과 뇌물은 구분할 수 있을까요?

교사: 왜 이 질문을 제안했니?

승우: 저는 모든 선물은 일종의 뇌물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선물을 받으면 누구나 선물을 준 사람을 좋게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요. 좋은 감정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거고요. 그 런 좋은 인상이나 감정도 대가일 수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선물과 뇌물이 진짜 구분이 될까요? 너무 궁금해요.

 

승우의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토론으로 들어갔다.

 

교사: 선물과 뇌물은 구분할 수 있을까?

수진: 전 의도에 따라 다르다고 봐요.

교사: 의도?

수진: 네, 뇌물은 어떤 특정한 의도가 있어야 하는 거고, 선물은 그냥 주는 거니까요.

지성: 아냐, 선물도 의도가 있지.

준이: 맞아. 상대방을 기쁘게 하기 위한 의도가 있을 거야. 아니면 선물을 줄 필요가 없지.

교사: 수진이는 그런 의미로 의도라는 말을 쓴 게 아닌 것 같은데... 맞니?

수진: 네, 아니에요. 제 말은요,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한 의도를 이야기한 거예요.

교사: 다시 말하면, 내가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주면 뇌물이라는 뜻이니?

수진: 맞아요.

 

두 가지 이상의 개념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기준에 대한 탐구가 필수적이다. 정당한 기준을 찾는 일은 비판적 사고의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가 세상을 일관된 기준을 통해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제대로 된 비판적 사고를 하지 못하면 모든 일을 자신의 입맛에 따라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수진이는 선물과 뇌물의 차이를 주는 사람의 의도라고 보았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면, 어떠한 이익을 바라는 의도일 것이다. 지성이와 준이의 도움으로 수진이가 말한 ‘의도’라는 개념이 더 명료하게 다듬어질 수 있었다.

 

예성: 그건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교사: 어떻게 달라질까?

예성: 왜냐하면 의도를 알 수 없으니까요. 주는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모르잖아요. 보는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면 뇌물이 될 수 있죠.

주윤: 그건 너무 주관적이잖아. 그럼 진석이가 선생님께 준 마들렌도 뇌물이 될 수 있다는 거야?

예성: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민성: 그럼 궁금한 게 있어요. 주는 사람은 이익을 얻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줬는데, 결과적으로 이익을 얻은 게 없다면요?

아름: 맞네. 받는 사람은 그걸 순수한 선물로 생각할 수도 있잖아.

주윤: 그럼 뇌물을 판단하는 기준은 두 가지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하나는 주는 사람의 의도이고, 다른 하나는 받는 사람의 생각이야.

준이: 그리고 이익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뇌물이야. 애초에 이익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의미가 없잖아.

 

 

철학적 토론에서 항상 등장하는 쟁점 중 하나는 ‘의도와 결과’이다. 이는 윤리 사상적 맥락에서 보면 동기주의와 결과주의 사이의 논쟁에 해당한다. 대표적으로 공리주의와 칸트의 의무론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이러한 철학적 배경지식이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민성이는 동기와 결과 사이의 논쟁에서 핵심이 되는 쟁점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동기와 결과가 서로 모순되는 사례를 질문으로 던진 것이다.

 

이에 대해 주윤이는 뇌물과 선물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주는 사람의 의도와 받는 사람의 생각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는 수정된 의견을 제시했다. 동기와 결과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을 자연스럽게 풀어가려는 주윤이의 태도가 놀라웠다.

 

나는 내심 이쯤에서 토론 진행에 조금의 공백, 쉼표를 가지려고 했다. 하지만 나의 그러한 의도가 무색하게, 준이는 자신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야만 뇌물이 성립한다는 의견을 주장했다.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쟁점이었다.

 

교사: 그럼 일단 정리해 보자. 자신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익을 바라고 주는 것이 뇌물이라는 거지?

주윤: 네. 그리고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야 하고요.

교사: 보충해 줘서 고마워.

유진: 그래도 해결이 안 되는 것이 있어요. 좋은 감정이나 호의도 일종의 이익이잖아요. 다른 사람이 나에게 좋은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면 나도 좋으니까요. 그럼 그것도 뇌물 아닌가요?

민성: 그건 이익의 정도가 다르잖아.

교사: 정도가 무슨 의미일까?

민성: 뇌물은 훨씬 더 큰 이익을 바라고 하는 행위예요.

유진: 그건 사람마다 다르지. 어떤 사람은 돈이나 권력보다는 다른 사람의 인정을 더 크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

승우: 그건 그렇지.

지성: 그럼 후원이나 기부도 뇌물이 될 수 있는 거야?

수진: 그건 나의 이익보다는 타인의 이익을 바라는 행위잖아.

 

아이들은 뇌물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말했다.

 

첫째, 자신의 이익을 바라는 행위라는 것, 둘째, 받는 사람이 주는 사람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것, 셋째, 받는 사람이 주는 사람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뇌물의 성립 조건을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유진이는 ‘이익’이라는 개념에 문제를 제기했다. 좋은 감정이나 호의도 이익에 포함될 수 있다면 선물도 뇌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나에게 선물을 주는 사람에게 호의를 품기 마련이다. 민성이는 곧바로 ‘이익의 정도’라는 말로 반론을 제기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나 역시 어쩌면 타인의 인정이나 호의를 바라고 선물을 주는 것이라면 그것도 뇌물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 진석이가 준 마들렌도 뇌물이 될 수 있다는 건가? 아이들은 이 문제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기 시작했다.

 

준이: 그럼 이건 어때? 부모님에게 주는 선물도 뇌물이 될 수 있을까?

주윤: 뇌물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주는 건데, 부모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잖아.

수진: 그리고 부모는 법적인 양육자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뇌물을 줄 필요가 없지. 나를 잘 키워달라고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

민성: 그렇다면 교사도 마찬가지 아냐? 법적인 교육자잖아.

지성: 하지만 교사는 학생들의 성적이나 진학에 영향을 줄 수 있잖아.

아름: 만약 부모님에게 친구와 여행 가는 것을 허락받기 위해 선물을 줬다면 그건 뇌물이 될수 있다고 생각해.

교사: 그럼 타인의 인정도 나의 이익도 포함시켜야 할까?

주윤: 그건 아니에요. 그렇게 되면 선물은 의미가 없어져요. 다 뇌물이잖아요.

승우: 저도 뇌물은 이익 중에서 경제적 이익에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사: 그럼 상대방에게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주는 경우가 뇌물이구나.

수진: 그럼 선생님께 마들렌을 준 경우는 뇌물이 아니잖아. 선생님이 무슨 돈이 있어? 맨날 똑같은 옷만 입고 다니는데.

준이: 그럼 뇌물은 아니지. 하지만 그걸로 차별을 한다면 선생님이 나쁜 거고...

교사: 그렇구나. 근데 오늘 토론은 마지막이 뭔가 씁쓸한데...

아름: 아니에요. 기분 탓이에요.

 

우리 삶에서 쟁점이 되는 문제는 대부분 ‘정도’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준이 중요한 것이다.

 

아이들의 논의에서도 지속해서 ‘이익의 정도’가 문제가 되었다. 모든 이익을 포함한다면 선물과 뇌물을 명료하게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우는 ‘경제적 이익’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안했다. 호의나 인정은 제외하자는 말이다. 그러자 최초의 문제 상황에서 마들렌을 준 경우는 뇌물이 아니라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물론 왜 경제적 이익으로 국한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더 논의해 볼 여지가 있었다.

 

 

최근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을 읽어본 적이 있었다. 모스에 의하면 선물(증여)은 단순히 무언가를 주는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중요한 제도이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선물은 상호 교환을 전제로 한다. 즉 경제적 이익을 주고 명예를 받는 방식이나, 신뢰나 동맹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선물과 뇌물을 개념적으로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해 더욱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 철학자 데리다는 ‘진정한 선물’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호혜성이 개입하는 순간 선물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어떠한 보답도, 감사도, 기억도, 만족도 기대하지 않는 선물이란 가능할까? 나는 오늘 토론을 되새겨 보면서 아이들의 문제 제기나 사유가 마르셀 모스나 데리다의 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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