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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서의 회고(回顧)] '민원은 교장에게 하십시오'...명함 한 장이 허문 문턱

더에듀 |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며 미래의 과정이다. 백년지대계라 불리는 교육은 과거 없이 현재를 평가할 수 없으며, 미래를 논할 수 없다. 손기서 전 서울 강서양천교육장은 38년의 교직 생활을 하며 과거 교육의 변곡점을 현장에서 바라보고 경험했다. <더에듀>는 그의 기억에 존재하는 교육의 길을 다시 찾아보는 기행을 시작한다.

 

 

드라마 ‘참교육’의 인기는 무너진 교실을 보여주는 서글픈 현실이다. 오늘날 교육 현장은 교권 침해와 악성 민원이라는 거센 파도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AI 시대일수록 교육의 본질은 인간 사이의 ‘따뜻한 연결’에 있다. 교장실 문턱을 낮춘 명함 한 장의 소통이 학생, 학부모, 교원을 ‘원팀’으로 만드는 시작점이 되었다.

 

최근 전국 교육감님들이 교권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이 대책들이 교육 현장의 거친 파도를 막아줄 교사들의 단단한 방파제가 되기를 소망한다.

 


손을 잡고 건넨 명함 한 장, 연결을 위한 첫걸음


화원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첫해, 학부모 총회에서 내린 파격적인 결단은 바로 그 연결을 위한 첫걸음이었다. 학부모 한 분 한 분의 손을 잡고 개인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교장 명함을 배포했다. 그리고 선포했다.

 

“학교에 대한 건의 사항과 선생님을 향한 모든 민원은 교장에게 직접 하십시오.”

 

선생님들의 든든한 ‘민원 방파제’가 되겠다는 교육자로서의 엄숙한 선언이었다.

 

“어디 출마하십니까?”, “진짜 전화를 받기는 하실 겁니까?”라며 반신반의하던 학부모님들의 의구심 어린 눈빛이 지금도 선하다.

 

이 명함은 단순히 연락처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명함 뒷면에 ‘꿈·보람·감동으로 미래를 여는 신서중학교’라는 문구를 넣었고, 강서양천교육지원청에서는 ‘국토인생(국제공동수업·토론교육·인공지능교육·생태전환교육)’ 미래교육 브랜드를 직접 디자인해 넣었다.

 

명함은 그 자체로 걸어 다니는 교육 비전의 전파 플랫폼이었다.

 


무모한 도전, 아이들의 적극적인 변화로 ‘정답’이 되다


강서경찰서 간담회 자리에서 전교생과 학부모에게 교장의 개인 정보를 공개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당시 정용근 학교전담경찰관(SPO)조차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정도였다.

 

지인들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악성 민원으로 득보다 실이 많은 무모한 도전이라고 모두가 만류했다.

 

그러나 효과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먼저 나타났다. 화원중학교의 ‘3대 미래 교육 실천 운동’으로 ‘먼저 인사 잘하기' 캠페인을 벌이며, 인사성이 바른 학생들에게 교장의 명함을 선물로 주었다. 그러자 아이들 사이에서 “디자인이 멋지다”라며 교장 명함을 수집하는 유행이 번지기 시작했고, 먼저 인사 잘하는 학교 문화는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


법적 분쟁을 막은 소통의 방파제, 진심 소통


당시에 민원 한 건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가슴을 울린다.

 

어느 날 출근길, 한 학부모님으로부터 폭행당한 학생의 사진과 함께 거친 학교폭력 민원 전화가 걸려 왔다. 사안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터라 순간 당황스러웠다. 학교에 가보니 전날 발생한 사안을 교감 선생님과 생활지도부장조차 보고받지 못한 채, 담당 교사 선에서 자체 종결 처리한 상태였다.

 

학교에서 사안 처리의 미숙함을 직시, 즉시 교감선생님과 담임교사와 함께 피해 학생이 입원한 병원으로 달려갔다. 고개를 숙여 진심으로 사과했고, 학부모님은 학교의 책임감 있는 모습에 마침내 닫혔던 마음을 열어주었다.

 

그 후 학생이 졸업하던 날, 필자는 교장실로 아이를 따로 불러 축하와 함께 “우리 사회의 멋진 미래 리더가 되거라”며 격려의 포옹을 나누었다.

 

소통의 방파제가 없었다면 거대한 소송과 법적 분쟁으로 번졌을 상처가, 진심 어린 사과를 통해 치유의 역사로 전환된 순간이었다.


’1000장의 명함’, ‘국토인생’ 미래교육 브랜드 홍보대사가 되다


이후 강서양천교육지원청 교육장으로 재임할 때도 명함 소통 철학을 멈추지 않았다. ‘국토인생’이라는 미래교육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해 250여 회 학교를 방문하며 학생과 교사에게, 대외 행사에서는 학부모와 시민들에게 1000여 장의 교육장 명함을 대대적으로 배포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우려했던 악성 민원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오히려 명함은 교육청의 정책을 삶의 현장에 널리 알리는 가장 든든한 홍보대사 역할을 해냈다.


교육공동체 ‘원팀(One Team)’, 아이들의 아침을 설레게 하다


AI 시대에 학교장과 교육장이 먼저 자신을 열고 진정성 있게 다가갔을 때, 학생과 학부모, 교원 그리고 시민들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화답해 주었다.

 

학교장이 전면에 나서는 직접 소통의 방식을 모든 학교에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을 향한 진심만큼은 반드시 학교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교육의 모든 주체가 서로를 믿고 격려하는 ‘교육공동체 원팀(One Team)’이 될 때, 비로소 우리 아이들의 아침은 다시 설레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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