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정치는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민을 위한다는 선언과 국민을 위한 제도는 같은 것이 아니다. 법과 정책이 실제로 누구의 권익을 보호하는지는 그 이름이나 명분이 아니라, 시행 이후 누구의 권리가 보호되고 누구의 권리가 약화되었는지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
최근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 기능을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검사는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지만 수사가 부족하다고 판단하더라도 직접 보완할 수는 없게 된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검찰 권한의 남용을 막겠다는 것이 입법의 명분이다. 그러나 먼저 물어야 한다. 보완수사는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검사를 위한 권한인가. 아니면 미진하거나 잘못된 수사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국민을 다시 살피기 위한 국가의 공적 기능인가.
경찰 수사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고 검찰 수사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민주주의가 어느 한 기관을 무조건 신뢰하지 않는 이유다. 서로 다른 국가기관이 견제하고 보완함으로써 권한 남용과 판단 오류의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견제와 균형의 원리다. 따라서 보완수사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검사가 독점적으로 누리는 권리로 설계할 것이 아니라, 부실하거나 미진한 수사로 피해를 입은 국민이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구제 절차로 설계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국민을 위한 보완제도’가 아니라 ‘검사의 보완수사권’으로 부르는 순간, 국민을 위한 공적 기능이 특정 직역의 사적 권한인 것처럼 인식되는 착시가 생긴다. 정치가 제도보다 특정 주체를 앞세우고, 공적 기능을 그 주체의 권한으로 명명하는 순간 검사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이 곧 국민을 위한 개혁처럼 보이게 된다. 공적 기능을 특정 직역의 특권으로 프레이밍한 뒤 그것을 없애는 일을 개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교권으로 바뀐 교육의 공적 의무
이처럼 용어를 바꾸어 공적 기능을 특정 직역의 특권으로 보이게 만드는 정치의 프레이밍은 전혀 낯설지 않다. 지난 십여 년 동안 학교에서도 같은 방식이 반복되어 왔고, 지금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교사의 법적 직무는 학생을 교육하는 것이다. 교사의 교육활동은 교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사하는 사적 권리가 아니다. 국가가 학생의 학습권을 실현하기 위해 교사에게 맡긴 공적 의무이자 교육권한이다.
그러나 정치는 이를 교사를 위한 ‘교권’으로 프레이밍했다. 학생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교사의 생활지도와 교육적 개입을 제한하는 일이 어느새 ‘개혁’과 ‘혁신’으로 포장되기 시작했다. 정당한 교육활동과 권한 남용을 구분하여 전자는 보호하고 후자는 통제하는 정교한 기준을 세우기보다, 교사의 교육적 개입 자체를 위험한 권력처럼 의심했다.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과 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학생의 인권 역시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문제는 약자를 보호하는 입법 자체가 아니다. 개별 주체를 보호하는 정책이 헌법적 원리와 전체 법체계의 정합성, 다른 권리와의 균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설계될 때 발생하는 결과다.
학생의 권리를 교사의 교육활동과 대립시키고, 학부모의 권리를 교사의 전문적 판단과 충돌시키며, 교권과 학생인권을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권리처럼 배치해 온 입법과 정책 속에서 학교는 지속적인 갈등 구조에 놓였다.
그 결과 교사가 잃은 것은 특권이 아니었다. 가르치고 지도해야 할 법적 직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교사가 가르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침해된 것은 교사의 권리가 아니라 대다수 학생의 학습권이었다.
그런데 국가는 이 문제를 다시 ‘교권 보호’라는 특정 주체의 문제로 정의했다. 교권보호위원회를 확대하고, 전담기구를 만들고, 교권보호국을 신설하자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교육활동과 학생의 권리, 학부모의 권리, 국가의 교육책임을 전체 법체계 안에서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권리 간 균형이 무너져 발생한 구조적 문제를 다시 하나의 주체 중심 보호정책으로 해결하려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문제의 원인이 법체계의 부정합과 권리 간 불균형에 있는데도, 처방은 또다시 특정 주체를 보호하는 조직과 절차를 덧붙이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갈등을 제도의 기본값으로 삼는 입법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입법의 출발점에 있다. 갈수록 정치권의 입법은 헌법적 원리보다 특정 주체를 앞세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교사, 노동자와 사용자, 피의자와 피해자, 약자와 강자라는 이분법이 정책의 기본값이 된다.
이러한 주체 중심 설계는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에 따른 후속 보완책에서도 드러난다. 정치권은 직접 보완수사 폐지에 따른 공백을 막겠다며 가정폭력, 아동학대, 성폭력, 스토킹, 장애인·노인학대 등 사회적 약자 대상 7대 범죄에는 별도의 보완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 그러나 특정 범죄에서 보완수사가 필요하다면 그 기준은 피해자의 신분이 아니라 수사의 누락과 오류, 피해의 중대성, 증거 보완의 필요성이어야 한다. 미진한 수사를 다시 살펴달라고 요구할 필요는 특정한 국민에게만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적 보완 기능은 없애면서 일부 범죄에만 예외를 두는 것은 보완수사가 불필요하다는 증명이 아니다. 오히려 국민 보호를 위해 보완 기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는 권력과 자원의 불균형이 존재하며 사회적 약자를 특별히 보호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약자 보호는 특정 주체를 절대화하거나 다른 권리를 적대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실질적 평등을 위한 보호 역시 비례성, 적법절차, 책임의 원칙, 전체 법질서와의 정합성 위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한쪽을 선으로, 다른 쪽을 악으로 규정하는 제도가 아니다. 충돌하는 권리와 권한을 법적 원리에 따라 조정하고, 어느 한쪽도 자의적으로 다른 쪽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견제와 균형을 설계하는 체제다.
그런데 정치가 갈등을 헌법적 원리로 조정하기보다 갈등하는 주체들의 대립을 입법의 기본값으로 삼기 시작하면,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법이 그 대립을 제도 속에 고착시킨다. 하나의 보호입법이 새로운 충돌을 낳고, 그 충돌을 해결한다며 또 다른 특별법과 기구를 만든다. 특정 주체 중심 입법, 권리 간 불균형, 현장의 갈등, 새로운 보호대책과 제도의 복잡화가 반복되는 것이다.
정치적 오용과 공적 기능을 구분해야 한다
검찰과 학교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그러나 정치가 문제를 정의하고 개혁의 방향을 설정하는 방식은 놀랄 만큼 닮아 있다.
문제가 된 것은 모든 교사가 아니었다. 교육을 정파적으로 이용하거나 교육활동을 부당하게 행사한 일부 사례였다. 문제가 된 것도 모든 검사가 아니었다. 수사와 기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권한을 남용한 일부 검사와 그들을 둘러싼 정치적 구조였다.
그렇다면 개혁의 대상은 교사의 교육활동이나 검사의 공적 기능 자체가 아니어야 한다. 공적 권한을 정치적으로 동원하지 못하도록 개입 구조를 차단하고, 권한 남용에는 명확하게 책임을 묻되 정당한 직무 수행은 보호했어야 한다.
문제는 교사가 가르친 것 자체가 아니라 교육이 정치적으로 이용된 것이었고, 문제는 검사가 수사한 것이 아니라 수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된 것이었다. 그런데 정치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정치적으로 이용된 권한을 바로잡기보다 권한 자체를 축소했고, 정치가 만든 왜곡을 교사와 검사의 문제로 바꾸었다. 정치적 오용이 문제였는데 처방은 공적 기능의 축소였다.
정치는 자신을 어떻게 개혁했는가
그렇다면 이제 정치권에 물어야 한다.
정치권은 자신을 어떻게 개혁했는가. 검찰 인사와 수사에 정치권력이 개입할 가능성은 얼마나 차단했는가. 수사기관을 정권의 이해에 따라 이용하지 못하도록 정치권 스스로를 통제하는 장치는 얼마나 강화했는가. 교육과정과 학교를 정권의 이념과 공약을 집행하는 수단으로 동원해 온 관행은 얼마나 개선했는가. 법률이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권익을 대변하도록 입법 과정의 책임성과 숙의 구조는 얼마나 강화했는가. 잘못된 정책과 입법에 대해 정치인이 직접 책임지는 제도는 얼마나 마련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교사와 검사의 권한부터 줄였다면 그것은 정치개혁이 아니다. 정치의 실패를 공적 조직의 실패로 바꾸어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정치검사가 문제였다면 검사를 정치적으로 종속시키는 구조부터 개혁했어야 한다. 정치교육이 문제였다면 교육을 정파적으로 동원하는 정치권력부터 통제했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은 자신을 통제하는 제도보다 교사와 검사를 통제하는 제도를 먼저 만들었다.
공적 권한은 특권이 아니라 의무의 수단이다
헌법은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한다. 따라서 공적 권한은 그것을 행사하는 직역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권익을 위해 존재한다.
교사의 교육권한은 학생을 위해 존재하고, 검사의 수사 기능은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억울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존재한다.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교사와 검사가 가진 권한은 마음대로 행사하거나 포기할 수 있는 사적 권리가 아니다. 교사는 학생의 학습권을 실현하기 위해 교육하고 지도해야 하며, 검사는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억울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법이 부여한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들에게 부여된 권한은 특권이 아니라 그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법적 수단이다.
따라서 공적 권한을 박탈하거나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단순히 교사와 검사의 힘을 줄이는 일이 아니다. 학생과 국민이 법에 따라 당연히 제공받아야 할 교육과 수사·구제 기능을 국가 스스로 약화시키는 일이다.
교사에게 가르치고 지도할 권한을 보장하지 않으면서 학생을 제대로 교육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검사에게 미진한 수사를 직접 보완할 수단을 없애면서 국민의 억울함을 끝까지 살피라고 요구하기도 어렵다. 의무는 그대로 둔 채 그 의무를 수행할 권한만 제거한다면, 남는 것은 실질적 수행수단을 잃은 명목상의 직무뿐이다.
결국 공적 권한의 축소는 해당 직역의 특권을 제거하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공무원으로서 국민 전체에 봉사해야 할 의무를 수행할 실질적 수단을 제거하는 문제다. 권한을 박탈한 채 의무만 남겨둔다면, 그것은 의무를 존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무력화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 권한을 통해 보호받아야 할 학생과 국민의 법적 권익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끝까지 보장할 것인가.
개혁의 기준은 권한 축소가 아니라 국민 보호다
특정 직역의 권한을 확대하거나 축소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공적 권한은 국민의 권익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범위에서 보장하되, 그 남용은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는 헌법적 원칙을 다시 묻는 것이다.
공적 권한을 행사 주체의 특권으로 오인해서도, 권한 남용을 이유로 공적 기능 자체를 무력화해서도 안 된다. 다른 권리 및 국가기관과의 관계 속에서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설계해야 한다.
진정한 개혁은 권한을 무조건 확대하거나 없애는 일이 아니다. 공적 기능이 헌법적 원리와 전체 법체계 안에서 국민을 위해 제대로 작동하도록 바로잡는 일이다.
정치는 자신이 오염시킨 공적 조직을 개혁한다며 그 조직의 공적 기능부터 해체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으로 이용된 권한과, 국민을 위해 필요한 권한은 같은 것이 아니다. 약자를 보호하는 일과 특정 주체를 중심으로 국가를 설계하는 일 역시 같은 것이 아니다. 갈등을 해결해야 할 정치가 갈등을 입법의 기본단위로 삼고, 그 결과 발생한 새로운 갈등을 또 다른 법과 기구로 봉합하는 악순환도 멈춰야 한다. 교사와 검사를 개혁하기 전에, 그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온 정치는 자신을 얼마나 개혁했는가.
국민을 위한다는 말이 진실이라면, 이제 정치가 답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가 끝내 답하지 못한다면, 국민의 법적 권익을 보호해야 할 대통령은 이 법안에 재의를 요구해야 한다. 검사의 권한을 되돌려 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미진한 수사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국민을 국가가 끝까지 구제할 수 있는지 다시 심사하라는 요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