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세계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하고도 뼛속에 각인되는 첫 문장을 꼽으라면 단연 레프 톨스토이의 명작 『안나 카레니나』의 도입부일 것이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이 불멸의 통찰을 오늘날 대한민국의 학교 현장에 대입해 보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다.
“잘나가는 행복한 학교는 서로 닮았고, 사사건건 시끄러운 불행한 학교는 저마다의 기상천외한 이유로 흔들린다.”
우리 주변의 학교들의 실상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 보자. 어떤 학교는 교장실, 교무실, 행정실, 그리고 학부모회까지 톱니바퀴 돌듯 맞물려 평화로운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반면, 어떤 학교는 월요일 아침부터 금요일 퇴근길까지 교권 침해, 악성 민원, 학교폭력, 부서 간 갈등이라는 불협화음의 헤비메탈이 멈추지 않는다.
도대체 전국으로 번져가는 이 불행한 학교들의 ‘제각각인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는 이 꼬인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 글에서는 인간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면서 학교 공동체의 평화를 되찾기 위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해법을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사사건건 충돌하는 학교들을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감지되는 연주곡이 있다. 바로 ‘소리 없는 아우성’과 ‘무사고(Thoughtlessness)’의 이중주라 할 수 있다.
선생님들은 늘어나는 행정 업무와 살얼음판 같은 민원 사이에서 “제발 나 좀 건드리지 마라”며 마음속으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내 아이가 혹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불안의 레이더를 세운다. 이 와중에 학교라는 공간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교육적 사유’와 ‘인간적 공감과 유대’는 상실해 버린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으로 저명한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경고했던 ‘생각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은 거창한 법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옆 반에서도 그렇게 처리했으니까”, “지침에 그렇게 나와 있으니까”, “관행적으로 해오던 것이니까” 등 많은 이유를 들면서 기계적으로 갈등을 대하고, 상대방의 맥락을 ‘자세히 보거나 오래 보지’ 않은 채 문서와 법조문으로만 대응하는 순간, 학교는 교육의 장이 아니라 법적 공방의 장으로 변해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여기에는 입시 준비 시간도 부족하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민주 시민 교육’의 부재가 불을 더욱 지핀다. 이런 교육에 허덕이는 학교는 작은 오해 하나도 메가톤급 폭탄으로 키워내고 만다.
톨스토이가 말한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점은 ‘스스로 갈등을 소화해 내는 건강한 위장(胃腸)이 있다’는 것이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모든 문제를 법정이나 교육청으로 끌고 가기 전에, 학교 공동체 내부에서 먼저 매듭을 풀려는 ‘결자해지’ 내지 교육 공동체 상호 간의 ‘자율적 회복력’을 복원해야 한다.
교사, 학생, 학부모는 서로를 대적하는 삼각관계의 적수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고 말해줄 수 있는 정서적 여유를 복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부모 총회나 간담회를 딱딱한 전달식 회의가 아니라, 차 한 잔 나누며 아이들의 성장을 함께 고민하는 ‘따뜻한 공감의 장’으로 리모델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학생 간의 사소한 갈등이 발생했을 때, 즉각적인 학폭위 신고와 처벌로 대응하기보다 ‘회복적 생활교육’을 도입하는 자체의 노력이 또한 중요하다. 여기에는 서로의 마음에 난 상처를 들여다보고 사과와 용서의 과정을 거치게 하는 것, 그것이 진짜 학교가 해야 할 ‘인성 교육’이자 ‘삶의 지혜’ 교육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학교 내부의 노력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구조적 태풍이 불 때가 있다. 이때야말로 교육청과 국가가 나서서 결자해지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말로만 학교 현장을 지원한다고 하지 말고 실체적인 행동과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 여기에는 지역별 교육청 나름의 각고의 노력이 지금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의 ‘교원안심공제’ 및 ‘통합민원창구’ 운영 (2024~2025)의 사례를 들여다 보자. 이는 교사가 홀로 악성 민원을 감당하지 않도록 학교 1차선에서 민원을 대리 접수·분류하고, 법적 분쟁 발생 시 교육청이 변호인단과 비용을 전폭 지원하는 제도이다. 교사가 안심하고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든든한 방패가 되어 준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
교육부의 ‘학교폭력 제로센터’ 전국 확대 (2025~2026) 운영도 나름대로 기여하고 있다. 교사가 학폭 조사 업무로 본업인 수업과 생활지도를 방해받지 않도록, 퇴직 경찰 등 외부 전문 조사관을 배치해 학교의 업무 부담을 덜어준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의 비극은 인물들이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각자의 집착에 빠져들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오늘날 갈등으로 얼룩진 불행한 학교들의 모습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모든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는 데 있다. 점수 몇 점에 연연하는 입시 기계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사유할 줄 아는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는 곳이 학교여야 한다.
이런 학교 문화에서는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상대를 배려하고 양보하고 나누며 공감을 나누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한다. 이 속에서 실수는 인간이지만 용서는 신의 포용력으로 넘어가는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필자가 오랜 학교 경험에서 얻고 지금도 불변의 지론(持論)으로 간직하고 있는 원리다.
결론하여 학교 구성원들이 스스로 갈등을 소화해 내는 ‘품격’을 기르고, 국가와 교육청이 그 뒤를 든든하게 받쳐줄 때, 우리는 마침내 톨스토이의 문장을 이렇게 바꾸어 쓸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행복한 학교는 ‘존중과 사유’라는 닮은꼴의 이유로 평화롭다.”
그 눈부신 평화의 배움터를 향해, 교육공동체 모두가 매일 서로를 향한 따뜻한 한 걸음이라도 전향적으로 내딛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