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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산업화 학교의 종말 ①] AI가 답하는 시대,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 ‘AI 혁명’은 왜 교육의 근본 질문을 다시 꺼내게 만들었나

AI 대전환이 흔드는 교육의 오래된 문법…이젠 ‘어떤 인간을 길러낼 것인가’ 물어야
불과 몇년 새 지식의 경계 넘은 AI…묻고 답하던 도구서 스스로 일하는 ‘에이전트’로
산업혁명과 함께 성장한 대중교육 시스템도 피할 수 없는 거대 변곡점 맞아
“지식 필요없다”는 또 다른 착각…AI 시대일수록 질문하고 판단하는 힘 중요
교육과정·교사·평가·입시까지 다시 설계할 때…미래세대 교육이 국가 미래 결정

 

「AI가 인간 대신 답하고 생각하며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산업화 시대에 만든 문법 위에 서 있다. 교육은 다시 거대한 갈림길이다. 미래 세대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더에듀'는 10회에 걸쳐 학교의 뿌리부터 AI 시대 교육의 미래까지 추적한다. 그 선택이 대한민국의 다음 100년을 결정한다. /편집자 주」

 

더에듀 윤철순 기자 | 수만 년 전 어느 날. 한 아이가 어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어른은 땅에 남은 흔적을 살폈다. 어느 동물이 지나갔는지, 얼마나 오래된 흔적인지 알아냈다.

 

먹을 수 있는 열매와 독이 든 열매를 구별했고, 짐승을 발견하면 어떻게 몸을 숨겨야 하는지도 알았다. 아이는 지켜봤다. 그리고 따라 했다. 잘못하면 목숨을 잃었다. 잘 배우면 살아남았다.

 

아마 인류 최초의 교육은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교실도 없었다. 교과서도 없었다. 시험도 없었다. 그러나 가르침은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먼저 경험한 사람이 다음 세대에게 자신이 아는 것을 전했다. 아이는 그것을 배우고 또 자신의 아이에게 전했다.

 

그렇게 지식은 쌓였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문명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힘 가운데 하나도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

 

2026년 대한민국. 한 아이가 책상 앞에서 수학 문제를 풀고 있다. 막혔다. 예전이라면 교과서를 다시 펼쳤을 것이다. 참고서를 뒤졌을 수도 있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표시해 뒀다가 다음 날 선생님에게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이제 스마트폰을 든다. 문제를 찍는다.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줘.” 몇 초 뒤 답이 나온다. 답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풀이 과정이 따라온다. 이해하지 못하면 다시 물으면 된다. 더 쉽게 설명해 달라고 할 수도 있다.

 

영어도 묻는다. 역사를 묻는다. 과학을 묻는다. 글도 써달라고 한다. 그림도 그려달라고 한다. 컴퓨터 프로그램도 만들어 달라고 한다. 밤 11시든 새벽 2시든 상관없다. 짜증도 내지 않는다. 몇 번을 되물어도 된다.

 

수만 년의 시간이 흐른 끝에, 아이 곁에 전에 없던 ‘무언가’가 등장했다. 인공지능(AI)이다.

 

인간만이 답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AI의 등장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사건은 아니다. 컴퓨터는 오래전부터 인간보다 계산을 잘했다. 검색엔진은 인간이 평생 읽어도 다 읽지 못할 정보를 순식간에 찾아냈다. 스마트폰 하나에는 과거 거대한 도서관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정보가 들어왔다.

 

그래도 한동안 경계는 비교적 분명했다. 기계는 찾았다. 인간은 생각했다. 기계는 계산했다. 인간은 판단했다. 그러나 생성형 AI의 등장은 이 익숙한 구분을 흔들기 시작했다. AI는 이제 검색 결과만 보여주지 않는다. 질문에 답한다.

 

긴 글을 읽고 요약한다. 서로 다른 자료를 비교한다. 외국어를 번역하고 문장을 다듬는다.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며 코드를 짠다.

 

최근 변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에이전트 AI’다. 인간이 하나하나 명령하지 않아도 목표를 주면 해야 할 일을 나누고, 필요한 정보를 찾고, 도구를 사용하면서 과업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AI가 진화하고 있다.

 

오늘의 AI가 질문에 대답하는 존재라면 내일의 AI는 인간을 대신해 일정 부분 ‘일하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그렇다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수만 년 동안 교육의 중심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었다. 먼저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지식을 전달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가르쳤다.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쳤다. 교사가 학생에게 가르쳤다.

 

그런데 이제 학생의 손 안에 웬만한 질문에 즉시 답하는 존재가 들어왔다. 교육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학교는 왜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됐을까

시간을 다시 돌려보자. 인간이 농사를 짓고 한곳에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사회는 복잡해졌다. 도시가 생겼다. 국가가 만들어졌다. 문자가 등장했고 기록해야 할 게 늘어났다. 행정과 법, 종교와 학문을 담당할 사람도 필요해졌다.

 

교육 역시 달라졌다. 그리고 산업혁명은 또 한 번 거대한 변화를 불러왔다. 공장이 생겼다. 도시가 커졌다. 대량생산이 시작됐다. 국가는 더 많은 사람이 읽고 쓰고 계산할 수 있기를 원했다.

 

소수에게 허락됐던 교육은 점차 다수를 위한 제도로 확대됐다. 근대적 학교가 성장했다.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을 한곳에 모았다. 학년을 나눴다. 시간표를 만들었다. 배워야 할 내용을 정했다. 교사가 가르치고 학생이 배웠다. 시험을 통해 얼마나 배웠는지 확인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학교의 모습이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게 있다. 산업화 시대의 학교를 ‘낡은 공장’이라고 손쉽게 비판하는 일이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대중교육은 인류가 만들어낸 위대한 사회제도 가운데 하나다. 가난한 집 아이도 글을 배울 수 있게 됐다. 소수 계층이 독점하던 지식이 대중에게 확산됐다. 교육은 신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다리가 됐고 산업과 과학, 민주주의의 발전을 떠받쳤다.

 

대한민국은 그 수혜를 가장 극적으로 경험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적인 산업국가로 성장하는 동안 교육은 한국 사회를 움직인 가장 강력한 엔진 중 하나였다.

 

부모는 논밭을 팔아서라도 자식을 가르쳤다. 자식만큼은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랐다. 교실은 가난을 벗어나는 통로였고 대학은 계층 상승의 사다리였다. 그 믿음은 한국을 움직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온 교육시스템이 앞으로도 우리를 데려갈 수 있을까.

 

AI가 답을 알려주는데 공부는 왜 해야 할까

아이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 보자. 숙제가 있다. AI에게 맡기면 순식간이다. 독후감을 써달라고 하면 써준다. 영어 문장을 번역해준다. 수학 문제를 풀어준다. 발표자료의 목차도 만들어준다.

 

그렇다면 아이 입장에서는 당연한 질문이 생긴다. “그런데 이걸 왜 제가 외워야 하죠?” 교육이 앞으로 가장 자주 마주하게 될 질문 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

 

답은 의외로 쉽지 않다. AI 시대이니 암기교육은 끝났다고 말하면 간단하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AI의 답이 틀렸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낼까.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가짜 역사 이야기를 어떻게 구별할까. 수학의 원리를 모르는 학생이 AI가 내놓은 풀이 과정의 오류를 어떻게 찾아낼까. 글을 읽고 생각하는 힘이 부족한 사람이 수십 개의 AI 답변 가운데 무엇이 좋은 답인지 어떻게 판단할까.

 

AI가 지식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오히려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어디까지 스스로 알아야 하는가. 무엇을 기계에 맡겨도 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에게 남겨야 할 생각은 무엇인가.

 

최근 교육 연구에서 흥미로운 경고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를 사용한 학생은 당장의 과제를 더 잘할 수 있다. 문장은 매끄러워지고 답안의 완성도도 높아진다. 그러나 결과물이 좋아졌다고 그 학생이 더 많이 배웠다는 뜻은 아니다.

 

AI가 생각해야 할 과정까지 대신해버리면 멋진 답안은 남아도 학생의 머릿속에는 정작 남는 게 적을 수 있다. 이것이 AI 시대 교육의 첫 번째 역설이다.

 

답을 얻기는 역사상 가장 쉬워졌지만, 무엇이 좋은 답인지 판단하는 능력은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

 

 

‘정답을 잘 찾는 아이’는 여전히 우등생인가

여기서 대한민국 교육은 더욱 난감해진다. 우리는 오랫동안 정답을 잘 찾는 학생을 우수한 학생이라고 평가해 왔다.

 

시험지를 받아든다. 주어진 시간 안에 문제를 읽는다. 다섯 개의 보기 가운데 정답 하나를 고른다. 더 많이 맞힌 학생이 높은 점수를 받는다. 그 점수가 쌓여 학교가 결정되고 대학이 결정되며 때로는 이후의 삶까지 영향을 미친다.

 

물론 시험은 필요하다. 배웠는지 확인해야 한다. 공정한 선발도 필요하다. 대한민국처럼 교육열이 높고 대학입시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평가를 없애자는 말은 현실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질문은 피할 수 없다. AI가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정보를 찾고 정답에 접근하는 시대에도 정해진 답을 빠르고 정확하게 찾는 능력을 교육의 가장 중요한 척도로 삼아야 할까.

 

앞으로 인간에게 더 필요한 건 정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어쩌면 정답이 없는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일 수 있다.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왜 그것을 물어야 하는지. AI가 내놓은 답 가운데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서로 충돌하는 답 가운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에 누가 책임질 것인지.

 

AI는 답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교사도 전에 없던 질문 앞에 섰다

학생만 달라지는 게 아니다. 교사의 자리도 흔들린다. 지식을 설명하는 능력만 놓고 보면 교사는 전에 없던 경쟁자를 만났다.

 

AI는 세계의 수많은 지식을 불러올 수 있다. 학생 수준에 맞춰 다시 설명할 수도 있다. 한 학생에게 몇 번이고 반복해서 가르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교사는 필요 없어지는가. 정반대일 가능성도 있다. AI가 수많은 답을 내놓는 시대에는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고, 학생에게 무엇을 질문하게 할지 결정하며,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도록 이끄는 사람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아이의 표정을 보고 오늘 유난히 힘들어 보인다는 걸 알아차리는 일. 친구와 갈등을 겪는 아이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 포기하려는 학생에게 한 번 더 해보자고 손을 내미는 일. 어떤 답이 사회적으로 옳은지 함께 토론하는 일.

 

AI가 교사를 대체한다는 단순한 미래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다. 세계의 교육 논의가 AI 시대에도 계속 ‘인간’을 강조하는 이유다. 기술이 강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인간 교사의 역할을 다시 묻게 된다.

 

문제는 교사가 없어질 것인가가 아니다. 교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 돼야 하는가.

 

그런데 학교의 시계는 어디를 가리키고 있나

AI의 시간은 빠르다. 몇 달 전 놀라웠던 기능이 금세 평범해진다. 지난해 할 수 없었던 일을 올해는 한다. 올해 어려운 일이 내년에도 어려울 것이라고 장담하기 힘들다.

 

그러나 교육의 시간은 다르다. 교육과정을 바꾸는 데 몇 년이 걸린다. 교사를 양성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학교를 짓고 공간을 바꾸는 일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입시는 한꺼번에 움직이기 어렵다.

 

여기에 한국은 또 하나의 거대한 변화를 동시에 맞고 있다. 아이들이 줄고 있다. 학생 수가 감소한다. 지역에서는 학교가 사라질 위기에 놓이고, 어떤 대학은 신입생을 채우는 것 자체가 걱정이다.

 

한쪽에서는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맞춘 교육이 가능한 기술이 등장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학생 자체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을 같은 학년에 묶어 같은 시간에 같은 교실에서 같은 교육과정을 배우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대체로 같은 시험을 향해 달려간다.

 

이것이 잘못됐다고 단정하려는 게 아니다. 묻자는 것이다. 이 방식이 앞으로도 최선인가.

 

 

학교의 종말이 아니라 ‘학교 문법’의 종말

[더에듀]가 이번 연재에 ‘산업화 학교의 종말’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이름을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교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교실을 없애자는 얘기도 아니다. 교사가 필요 없다는 주장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학교가 앞으로도 인간 사회의 가장 중요한 제도로 남기 위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를 묻는다. 동일 연령. 동일 시간. 동일 공간. 동일 교육과정. 지식 전달 중심의 수업. 정답 중심의 평가.

 

산업화와 대중교육의 확대 과정에서 자리 잡은 이 익숙한 학교 운영의 문법이 AI 시대에도 그대로 유효한지를 하나씩 따져보자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불편한 질문도 피하지 않을 생각이다.

 

AI가 답을 알려주는데 지식은 왜 배워야 하는가. 교사가 지식을 전달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학생마다 다른 것을 배우게 하면 공교육의 공통성은 어떻게 지킬 것인가. AI가 작성한 답안을 무엇으로 평가할 것인가.

 

학교가 바뀌어도 대학입시가 그대로라면 정말 교육이 바뀔 수 있는가. 아이들이 급격히 줄어드는 시대에도 지금과 같은 학교 규모와 공간은 필요한가.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미래 세대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다시 ‘100년지대계’를 생각할 때

교육을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한다. 너무 자주 들어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지는 말이다. 하지만 그 뜻을 다시 생각하면 무겁다.

 

오늘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가 20년 뒤 대한민국의 중심 세대가 된다. 그 아이들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판단을 내리며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느냐가 그때의 대한민국을 결정한다.

 

세계의 기업들이 이미 분석적 사고, 창의적 사고, 기술 이해력, 유연성, 호기심과 평생학습 같은 능력을 미래의 중요한 역량으로 꼽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AI와 빅데이터를 다루는 능력 역시 빠르게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미래교육을 얘기할 때 더욱 경계해야 할 것도 있다. 유행이다.

 

한때는 컴퓨터가 교육을 바꿀 것이라고 했다.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도 그랬다. 스마트기기가 나왔을 때도 비슷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교육혁명이 이야기됐다. 그러나 기계를 교실에 들여놓는 것과 교육이 바뀌는 건 다른 문제였다.

 

AI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모든 학생에게 AI를 나눠준다고 미래교육이 완성되는 건 아니다. 교과서를 AI로 바꾸는 것만으로 교육혁명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기술보다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어떤 인간을 길러낼 것인가. 그 답이 있어야 무엇을 가르칠지 결정할 수 있다. 무엇을 가르칠지가 정해져야 어떻게 가르칠지를 정할 수 있다. 그래야 교사의 역할과 평가 방식도 결정할 수 있다. 입시 역시 그 뒤에 놓여야 한다.

 

순서가 거꾸로 되면 아무리 첨단 기술을 학교에 들여놓아도 낡은 방식 위에 새로운 기계 하나를 올려놓는 데 그칠 수 있다.

 

 

AI 대전환은 이제 시작됐다. 앞으로 어디까지 갈지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 그래서 더 어렵다. 동시에 기회일 수도 있다. 아직 어느 나라도 완전한 답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처음 가는 길이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교육이라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한 세대의 시행착오는 버튼 하나를 눌러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름을 바꾸는 교육정책으로는 부족하다. 교육과정 하나만 고쳐서도 안 된다. 교사, 학생, 평가, 입시, 학교 공간, 공교육의 역할까지 서로 맞물린 거대한 설계도가 필요하다.

 

10년 뒤를 보고 20년 뒤를 내다봐야 한다. 교육이 정말 ‘100년지대계’라면 계획 역시 그 이름에 걸맞아야 한다. 촘촘해야 한다. 철저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혁명에 가까워야 한다.

 

수만 년 전 숲에서 어른의 행동을 바라보던 아이와 2026년 AI에게 수학 문제를 묻는 아이 사이에는 엄청난 시간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어른에게는 다음 세대를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 AI가 답하는 시대,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그 답이 어쩌면 대한민국의 다음 100년을 결정할지도 모른다.

 

【다음 회는 〈산업화 학교의 종말 ②〉 ‘인류는 왜 학교를 만들었나’다. 동굴과 들판에서 시작된 배움은 언제 교실로 들어왔을까. 인지혁명과 농업혁명, 문자와 국가의 탄생, 산업혁명을 지나며 인간은 무엇을 가르쳐 왔고 왜 지금과 같은 학교를 만들었을까. 2회에서는 수만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오늘날 학교의 뿌리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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