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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이슈] 산재 넘어 ‘사용자 책임’ 물었다…급식노동자 폐암 판결, 178명 피해자에 미칠 영향은

폐암 산재 승인 9명 손배소 일부 승소…지자체에 1인당 1000만원 배상 명령
산재보험과 별개로 안전·건강 보호책임 물어…국가 상대 청구는 기각
폐암 산재 승인 최소 178명·사망 17명 추계…다른 피해자 자동 배상은 아냐

 

더에듀 윤철순 기자 | 학교 급식실에서 장기간 일하다 폐암에 걸려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노동자들이 이번에는 민사소송에서 근무 지역 지방자치단체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받았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이미 산재 승인을 받았다’는 데 있지 않다. 업무와 폐암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급식노동자의 건강과 신체를 보호할 책임을 다했는지를 별도의 민사소송으로 물었고, 법원이 지자체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3단독 정선희 판사는 8일 학교급식 조리사 강모씨 등 9명이 국가와 광주·전남·경북·부산 등 4개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광주광역시가 원고 4명에게, 전라남도와 부산광역시가 각각 2명에게, 경상북도가 1명에게 각각 1000만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국가를 상대로 한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고 9명은 학교 급식실에서 최소 12년 이상 근무했으며 2022~2024년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조리업무와 폐암 사이의 업무상 인과관계를 인정받아 산재 승인을 받았다.

 

이들은 지난해 1월 국가와 지자체가 급식노동자의 건강과 신체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아 폐암이 발생했다며 1인당 1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산재 인정과 이번 판결은 뭐가 다른가

이번 소송을 이해하려면 산업재해 인정과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원고들은 소송 제기 전 이미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폐암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았다. 급식실에서 수행한 조리업무와 폐암 발병 사이에 업무상 인과관계가 있다는 판단을 받은 것이다.

 

이번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국가와 지자체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를 물었다. 원고 측은 국가가 학교 급식실을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적용되는 사업장 범위에서 제외하고,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인 ‘조리흄’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고 주장했다.

 

조리흄은 고온에서 기름을 사용해 음식을 튀기거나 볶을 때 발생하는 미세입자와 유해가스 등을 말한다.

 

지자체에 대해서는 조리흄을 제대로 배출할 환기시설을 갖추지 않고 보호구를 충분히 지급하지 않는 등 노동자를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지자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했지만 국가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다.

 

다만 재판부가 지자체의 어떤 행위 또는 부작위를 구체적인 과실로 판단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판결이 8일 선고돼 원고 측에도 판결문이 송달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학교 급식노동자 폐암 산업재해 피해자 국가책임 요구 및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위원회(대책위)’는 9일 <더에듀>와의 통화에서 “판결문은 아직 송달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가책임 기각 이유와 구체적인 판결 내용 등에 대해서는 “판결문을 분석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폐암 산재 승인 최소 178명…사망자는 17명 추계

이번 판결이 원고 9명만의 문제로 끝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대책위에 따르면 학교 급식노동자 가운데 폐암으로 산업재해를 승인받은 노동자는 올 6월까지 178명으로 집계됐다.

 

대책위는 “178명은 최소한의 숫자”라며 “그 이후에도 폐암 진단을 받았다는 노동자들의 연락이 계속 들어오고 있어 더 늘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망자는 노동조합들이 공동으로 파악한 결과 올해 7월 기준 17명으로 추계됐다.

 

다만 이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제공받은 사망자 통계가 아니라 학교 급식노동자들이 소속된 노동조합들이 함께 집계한 수치다.

 

이번 판결이 이들 모두에게 곧바로 손해배상의 길을 열어주는 건 아니다. 이번 사건은 9명의 개별 노동자가 제기한 민사소송에 대한 1심 판단이다. 다른 폐암 산재 피해자들에게 배상책임이 자동으로 적용되는 판결이 아니며, 후속 소송이 제기된다면 각각의 근무환경과 손해, 사용자 측 책임 등을 놓고 다시 판단을 받아야 한다.

 

대책위는 이번 판결을 학교급식 노동자의 폐암 피해에 대해 지자체의 책임을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로 평가하고 있다. 다만 대책위가 주장하는 ‘첫 판결’ 여부는 판결문과 관련 판례를 추가로 확인할 필요가 있어 <더에듀>는 이를 확정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국가는 왜 책임에서 빠졌나

또 하나의 쟁점은 국가책임이다. 원고들은 지자체뿐 아니라 국가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국가를 상대로 한 청구를 기각했다.

 

왜 국가책임은 인정하지 않고 지자체의 책임만 인정했는지는 현재 확인되지 않았다. 판결문이 아직 원고 측에 송달되지 않아 재판부의 구체적인 판단 근거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책위는 “국가책임 부분이 기각된 사유도 판결문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원고 측의 항소 여부 역시 결정되지 않았다. 대책위는 “판결문 내용을 분석하고 교육청 대응이나 국가책임 부분이 기각된 이유 등을 본 뒤 함께 논의해야 한다”며 “현재로서는 항소 여부를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1000만원 배상’보다 중요한 질문

이번 판결을 단순히 ‘폐암에 걸린 급식노동자에게 1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로 읽으면 핵심을 놓칠 수 있다. 원고들이 애초 청구한 금액 자체가 1인당 1000만원이었다. 따라서 법원이 폐암으로 인한 전체 손해를 1000만원으로 산정했다고 볼 수는 없다.

 

더 중요한 건 학교 급식실에서 발생한 직업성 폐암을 놓고 산재보험을 통한 보상을 넘어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해야 할 주체의 별도 민사책임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점이다.

 

대책위는 판결 이후 교육부에 학교급식법 개정 취지를 반영한 급식종사자 건강·안전 대책과 적정 인력기준 마련을, 교육청에는 환기시설 개선과 산재 감축 대책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판단은 아직 1심이다. 판결문도 공개되지 않았고 항소 여부도 결정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이 다른 급식노동자 폐암 피해자의 후속 소송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도 아직 단정할 단계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은 산재 승인 이후의 책임을 묻는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에 걸린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지급하는 것으로 국가와 교육당국의 책임은 끝나는가.

 

178명 이상으로 늘어난 폐암 산재 피해를 앞에 두고 교육당국이 답해야 할 질문도 그 지점으로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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