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아이가 말한다. “급식 남는 거 줄이는 일 할래.” 어른이 답한다. “그런 직업 없어.” 다른 아이가 말한다. “할머니들 스마트폰 알려 주는 사람.” 어른이 되묻는다. “그건 봉사지, 직업이 아니잖아.”
아이는 같은 말을 두 번 이상 하지 않는다. 그다음부터는 어른이 아는 이름 중에서 고른다. 그때 아이가 접은 것은 꿈이 아니다. 어른에게 말해 볼 마음이다.
목록은 어른이 살아온 시대의 것이다
어른이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아이가 남들 다 아는 길에서 벗어나면 그 뒷감당이 내 몫이 될 것 같아서다. 그 불안이 아이가 고를 수 있는 목록을 좁힌다.
진로검사지에 뜨는 직업도, 진로체험의 날 부스도 마찬가지다. 지금 있는 직업을 모아 놓은 것이다. 아이가 살아갈 시대가 아니라 어른이 살아온 시대의 목록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20년 발간한 ‘한국직업사전 통합본 제5판’에는 직업명 1만 6,891개가 실렸다. 2012년 제4판보다 5,236개 늘어난 수치다. 이 가운데 새로 등장한 신생 직업은 270개였고, 생산 중단과 디지털화로 종사자가 사라진 18개 직업은 사전에서 빠졌다.
그중에는 필름 영화에 수작업으로 자막을 넣던 ‘영화(필름)자막제작원’도 있었다. 한때 안정적으로 보였던 일이 기술 변화 앞에서 먼저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름은 나중에 붙는다
새 직업이 사전에 오르는 순서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름이 먼저 생기고 그 자리에 사람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순서는 반대다. 조사원이 회사를 찾아가 사람들이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지 확인하고, 그 일로 사람을 뽑는 공고가 있는지까지 본 다음에야 사전에 올린다.
그러니 직업사전은 앞날을 알려 주는 책이 아니다. 이미 벌어진 일을 뒤늦게 적어 둔 기록이다. “그런 직업 없어”는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이른 말이다. 아직 이름이 안 붙었을 뿐이다.
지난 글에서 나는 진로는 발견이라고 썼다. 경쟁하지 말고 교차하라고도 했다. 둘 다 나를 들여다보는 이야기였다. 오늘은 반대다. 밖을 본다. 누가 무엇 때문에 불편한가.
반려동물 장례가 그랬다. 반려동물 장례를 사업으로 등록하게 한 법은 2008년에 시행됐다. 그전에도 이별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보호자는 있었다. 불편이 먼저 있었고 직업이 나중에 왔다.
직업을 만드는 일을 창직(創職)이라 한다. 내 직업도 목록에 없는 이름이다. 수의사이면서 그로쓰 퍼실리테이터다. 읽고 쓰고 사람을 만나다 보니 하는 일이 생겼고, 거기에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사전이 이름을 붙이는 건 맨 나중이다. 하지만 내가 나를 부르는 이름은 먼저 지어도 된다. 오히려 도움이 된다. 나를 한 문장으로 정의해 보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또렷해진다. 앞으로 할 일도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삶의 해상도가 높아진다.
문제는 그 이름을 한 번 정하면 못 바꾸는 것으로 여길 때다. 그때부터 아이는 이름에 자기를 맞추느라 애쓴다. 정작 그 이름이 가리키는 일은 한 번도 해 보지 않는다. 그러니 아이가 이름을 지었다면 이렇게 덧붙여 주면 된다. 그건 얼마든지 고쳐도 된다고. 사람은 변한다. 하는 일이 바뀌면 이름도 바뀐다.
그래서 무엇을 물어야 하나
뭐가 되고 싶으냐가 아니라, 누구의 어떤 불편을 덜어 주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어떨까. 아이는 “몰라요”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다시 묻는다. 최근에 누가 곤란해하는 걸 본 적 있느냐고. 장면 하나면 된다.
장면이 나오면 또 묻는다. 그 사람을 위해 이번 주에 해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이 뭐냐고. 이 질문을 아이에게 하기 전에 나부터 답해 보자. 나는 누구의 어떤 불편을 덜어 주며 살고 있는가.
사람이 먼저고, 일이 그다음이다. 이름은 언제 붙여도 된다. 그 이름을 채우는 건 결국 일이다. 아이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