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의도 : AI가 인간 대신 답하고 생각하며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산업화 시대에 만든 문법 위에 서 있다. 교육은 다시 거대한 갈림길이다. 미래 세대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더에듀는 10회에 걸쳐 학교의 뿌리부터 AI 시대 교육의 미래까지 추적한다. 그 선택이 대한민국의 다음 100년을 결정한다. /편집자 주]
더에듀 윤철순 기자 | 지난 8일 방송된 MBC ‘PD수첩’에는 낯선 장면이 등장했다. 인공지능(AI)이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의 답을 순식간에 찾아낸다. 인간에게는 오랫동안 배우고 수없이 문제를 풀어야 가능했던 일이 기계에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는 현실이다.
방송은 여기서 수능을 물었다. ‘정답을 고르는 능력을 AI가 너무 쉽게 수행하는 시대에도 지금과 같은 시험은 유효한가.’ 하지만 질문을 교실 안으로 한 걸음 옮기면 또 다른 사람이 보인다.
교사다.
학생이 모르는 걸 설명한다. 문제를 낸다. 답을 확인한다. 틀린 곳을 고쳐준다. 다음에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오랫동안 가르치는 사람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런데 이제 AI도 한다. 학생은 모르는 개념을 AI에게 물을 수 있다. 이해하지 못하면 다시 설명해 달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생 눈높이로 바꿔 달라고 하거나 예시를 더 달라고 할 수도 있다. 문제를 만들어 달라고 하고 자신의 답을 검토해 달라고 할 수도 있다.
밤늦게도 가능하다. 몇 번을 물어도 짜증내지 않는다. 그렇다면 불편한 질문 하나를 피하기 어렵다. “AI가 설명하고 문제를 내고 답까지 확인해준다면 교사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교실에 들어온 ‘세 번째 존재’
이 질문은 먼 미래 얘기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교원·교수학습조사(TALIS 2024)를 보면 한국 중학교 교사의 43%가 최근 1년간 업무에 AI를 사용했다고 답했다. OECD 평균 36%보다 높다.
AI를 사용한 한국 교사 가운데 58%는 수업계획이나 학습활동을 만드는 데 이용했다. 51%는 학생의 새로운 기능 연습에, 50%는 자료를 찾고 내용을 요약하는 데 활용했다. 학생 과제를 평가하거나 채점하는 데 썼다는 응답도 31%였다.
교사가 AI를 사용할 것인가를 논쟁하는 사이 적지 않은 교사는 이미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UNESCO는 이 변화를 전통적인 ‘교사-학생’ 관계가 ‘교사-AI-학생’의 관계로 바뀌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중요한 변화다. 교실에서 지식을 가진 존재가 교사 한 사람뿐이던 시대가 끝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학생이 이해하지 못하면 교사를 기다려야 했다. 이제 학생 옆에는 또 하나의 설명자가 있다.
그 설명자는 경우에 따라 더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고, 더 빠르며, 한 학생에게 필요한 만큼 반복해서 설명할 수도 있다. 교사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다르게 보면 정반대의 질문도 가능하다. “설명하는 일이 교육의 전부가 아니었다면 어떨까.”
‘아는 사람’이라는 권위가 흔들렸다
학교의 오랜 구조에는 명확한 정보의 비대칭이 있었다. 교사는 먼저 배운 사람이다. 학생보다 많이 알고 있었다. 교과서를 읽어 설명했고 질문을 받았다. 무엇이 중요한지 골라줬고 시험에 무엇이 나오는지도 알고 있었다.
물론 좋은 교사는 언제나 그것보다 많은 일을 했다. 학생의 표정을 살폈고, 이해하지 못한 아이를 알아챘다. 답만 가르치지 않고 생각하도록 기다렸다. 한 아이가 자신감을 잃을 때 손을 내밀었고, 때로는 학교에서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어줬다.
다만 학교 시스템은 오랫동안 교사를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으로 세워왔다. AI는 바로 그 부분을 흔든다. 교사가 20분 동안 칠판에 설명하던 내용을 AI가 몇 초 만에 정리할 수 있다. 같은 내용을 학생 수준에 따라 바꾸는 일도 가능하다. 자료를 찾고 연습문제를 만드는 데 들었던 시간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기계와 그 일을 놓고 경쟁해야 할까. 더 빨리 설명해야 할까. 더 많은 지식을 기억해야 할까. 그 경쟁이라면 인간 교사에게 유리하지 않다. 오히려 다른 데서 교사의 전문성을 찾아야 한다. 무엇을 설명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다.
답보다 먼저 ‘어디서 막혔는지’를 봐야 한다
학생 두 명이 같은 문제를 틀렸다. 답안만 보면 둘은 똑같다. 하지만 한 학생은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다. 다른 학생은 개념을 알고도 문제를 잘못 읽었을 수 있다. 또 다른 학생은 알고 있지만 시험 불안 때문에 실수했을 수도 있다.
처방은 달라야 한다. 다시 설명해야 하는 학생이 있고, 스스로 한 번 더 풀게 해야 하는 학생이 있다. 더 어려운 문제를 던져야 하는 학생도 있고 잠시 쉬게 해야 하는 학생도 있다.
교육은 정답과 오답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왜 틀렸는지를 알아야 한다. 바로 여기서 교사의 일이 달라진다. 지식을 얼마나 많이 전달했는가보다 학생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얼마나 정확히 알아내느냐가 중요해진다.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 왜 질문하지 않는가. AI가 내놓은 답을 정말 이해했는가. 그대로 베낀 것인가. 자신의 말로 다시 설명할 수 있는가. 한 학생에게 필요한 다음 질문은 무엇인가.
AI는 이 일을 도울 수 있다. 학생의 학습 기록을 분석하고 수준에 맞는 문제를 추천할 수 있다. 교사가 미처 보지 못한 패턴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러나 데이터를 보고 교육적 의미를 판단하고, 그 학생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결정하는 책임까지 기계에 넘길 수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가르치는 일은 ‘질문을 설계하는 일’이 된다
지난 ③회에서 물었다. AI가 답을 안다면 인간에게 지식은 필요 없는가. 답은 오히려 반대에 가까웠다. 좋은 질문을 하려면 알아야 한다. AI가 내놓은 답이 맞는지 판단하려면 인간 안에도 판단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교사의 역할도 이어진다. 학생에게 답을 주는 사람에서 좋은 질문 앞에 세우는 사람으로 이동한다. ‘이것의 정답은 무엇인가’에서 끝나지 않는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반대의 근거는 없는가. AI가 준 답에서 빠진 건 뭔가. 다른 사람 입장에서 보면 결과가 달라지는가. 네가 내린 결정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한 질문이 다음 질문을 낳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학생은 정답이 하나가 아닌 문제와 만나게 된다. 현실은 대부분 그렇다. 무엇이 공정한지, 어떤 선택이 더 나은지, 기술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한정된 자원을 누구에게 먼저 배분해야 하는지 같은 문제에는 답안지 맨 아래 정답 번호가 없다.
AI가 여러 답을 제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어떤 답을 선택할지는 결국 사람이 결정한다. 아이들이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연습시키는 것. AI 시대 교사의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교사는 준비돼 있는가
문제는 방향을 말하는 것과 실제 교실을 바꾸는 게 전혀 다른 일이라는 점이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올 6월 발표한 ‘초·중등 교실에서 AI 활용, 무엇이 어려운가’ 브리프는 현장의 간극을 보여준다.
AI 활용 교육을 실제 운영하는 교사와 장학사들을 조사했더니, 같은 학년에서도 교사에 따라 AI 활용 여부가 달라 학생들이 서로 다른 학습 경험을 하는 문제가 나타났다.
교사 연수도 문제였다. 현장에서 제공되는 AI 연수가 도구의 사용 방법을 알려주는 ‘매뉴얼’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실제 수업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OECD 조사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보인다. AI를 사용하지 않은 한국 중학교 교사 가운데 76%는 AI를 활용해 가르칠 지식과 기술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학교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응답도 52%였다.
AI를 교실에 넣는다고 AI 교육이 시작되는 건 아니란 얘기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지급하고 사용법 몇 시간을 교육하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교사가 먼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수업에 AI가 정말 필요한가. 학생이 직접 해야 하는 부분은 어디인가. 어디까지 AI의 도움을 허용할 것인가. AI가 틀렸을 때 어떻게 검증하게 할 것인가. 학생이 AI에 의존하고 있는지는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
결국 AI 활용법보다 AI를 언제 쓰지 않을지를 결정할 능력까지 교사의 전문성이 되는 셈이다.
교사를 AI 사용자가 아니라 ‘수업 설계자’로
UNESCO가 제시한 교사용 AI 역량체계도 단순한 프로그램 사용 능력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 중심의 관점, AI 윤리, AI의 기본 원리와 활용, AI를 적용한 교수법, 교사의 지속적인 전문성 개발을 함께 요구한다.
핵심은 도구가 아니다. 누가 교육을 설계하고 판단하느냐의 문제다. OECD 역시 생성형 AI가 인간의 가르침과 튜터링을 강화할 수 있지만 교사의 주도성은 보존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말하자면 AI가 교사를 대신해 수업하는 구조가 아니라 교사가 AI까지 자신의 교육 도구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크다.
AI에게 “중학교 2학년이 이해할 수 있게 삼각형의 닮음을 설명해줘”라고 입력할 줄 아는 것과, 왜 이 학생이 닮음 개념에서 막혔는지 알아내고 어떤 경험과 질문을 통해 이해하도록 만들지를 설계하는 건 다른 능력이다. 전자는 기술 사용법이고, 후자는 교육이다.
AI가 잘할수록 인간 교사의 일은 더 인간적이 된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교사가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일까. 지식은 여전히 가르쳐야 한다. ③회에서 살펴봤듯 인간 안에 지식이 없으면 좋은 질문도, 판단도 어렵다.
하지만 지식을 전달하는 데서 멈출 수 없다. 그 지식을 이용해 생각하게 해야 한다. 질문하게 해야 한다. 다른 답과 비교하게 해야 한다. 틀렸을 때 다시 생각하게 해야 한다. 자신이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말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도 배워야 한다.
교실에는 지식만 있는 게 아니다. 친구가 있다. 갈등이 있다. 협력이 있고 경쟁이 있다. 실패했을 때의 좌절이 있고 처음 해냈을 때의 기쁨도 있다. 어떤 학생은 한마디 칭찬으로 다시 책을 펼치고, 어떤 학생은 자신을 믿어주는 어른 한 사람 때문에 학교를 버틴다.
UNESCO가 AI 시대에도 교사를 대체할 수 없다고 강조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비판적 사고와 윤리적 판단뿐 아니라 정서적 지능, 인간적 관계,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감각은 교육에서 쉽게 떼어낼 수 없다. 기계가 더 많은 일을 맡을수록 역설적으로 교사에게 남는 일은 더 인간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교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교사의 문법’이 바뀐다
AI가 교사를 없앨 것이란 전망은 단순하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이 들어올 때마다 교사의 역할은 달라졌다. 책이 보급됐다고 교사가 사라지지 않았다. 인터넷이 등장했다고 학교가 없어지지 않았다.
AI 역시 교사의 일부 업무를 대신하거나 크게 줄일 수 있다. 수업자료를 만드는 시간. 반복 문제를 만드는 시간. 학생 수준에 맞게 문장을 바꾸는 시간. 기초적인 피드백을 작성하는 시간 등.
그 시간을 정말 줄일 수 있다면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교사는 확보된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인가. 아이를 더 자세히 보는 데 쓸 것인가. 질문을 만드는 데 쓸 것인가. 수업을 새로 설계하는 데 쓸 것인가. 학생마다 다른 어려움을 찾아내는 데 쓸 것인가. 아니면 AI 덕분에 생긴 시간만큼 또 다른 행정업무가 들어올 것인가.
기술만 들어오고 교사의 업무 구조가 그대로라면 AI가 약속한 교육 혁신도 교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AI 시대 교사 문제는 단순한 ‘교원 AI 연수’ 문제가 아니다. 교사가 학교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다시 정의하는 문제다.
설명하는 사람에서 학습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에서 질문하게 하는 사람으로. 모두에게 같은 내용을 전달하는 사람에서 한 명 한 명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는 사람으로. AI와 경쟁하는 사람이 아니라 AI를 이용하면서도 교육의 방향과 책임은 놓지 않는 사람으로.
교사의 역할이 줄어드는 게 아니다. 어쩌면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음 질문이 시작된다. 교사가 학생 한 명 한 명을 다르게 가르쳐야 한다면 지금처럼 비슷한 나이의 수십 명을 한 교실에 모아 같은 시간에 같은 진도를 나가는 방식은 계속 가능할까.
AI는 처음으로 그 오래된 질문에 기술적 가능성까지 더하고 있다. 다음 회 〈산업화 학교의 종말 ⑤〉에서는 ‘같은 나이, 같은 교실, 같은 진도는 언제까지 가능한가’를 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