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의도 : AI가 인간 대신 답하고 생각하며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산업화 시대에 만든 문법 위에 서 있다. 교육은 다시 거대한 갈림길이다. 미래 세대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더에듀는 10회에 걸쳐 학교의 뿌리부터 AI 시대 교육의 미래까지 추적한다. 그 선택이 대한민국의 다음 100년을 결정한다. /편집자 주]
더에듀 윤철순 기자 | 중학교 1학년 교실에 서른 명의 아이가 앉아 있다. 나이는 비슷하다. 교과서도 같다. 수학시간 45분 동안 같은 단원을 배운다. 교사가 설명하면 함께 듣는다. 문제가 주어지면 같은 시간에 풀고, 종이 울리면 다음 수업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아이들의 머릿속까지 같지는 않다. 누군가는 교사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답을 안다. 누군가는 방금 설명한 개념부터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아이는 수학은 빠르지만 글쓰기가 어렵다. 다른 아이는 책을 좋아하지만 숫자 앞에서 자꾸 멈춘다.
관심사도 다르다. 배우는 속도도 다르다. 그런데 학교에 들어오는 순간 아이들에게 하나의 공통점이 생긴다.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같은 학년이 되고, 같은 교실에 앉아, 대체로 같은 교육과정을 같은 속도로 배운다.
너무 익숙해서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AI가 학생 한 명 한 명의 질문에 다른 설명을 하고, 서로 다른 문제를 내고, 각자의 속도에 맞춰 학습을 도울 수 있는 시대가 열리면서 오래된 질문 하나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왜 서로 다른 아이들은 같은 속도로 배워야 할까.
서른 명을 한꺼번에 가르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지금의 학교가 잘못됐기 때문에 이런 구조가 만들어진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모든 아이에게 교육할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소수만 교육받던 시대가 끝나고 국가가 모든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시작하자 엄청난 수의 학생을 가르쳐야 했다.
교사는 한정돼 있었다. 학교와 교실도 한정돼 있었다.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을 학년으로 묶고 한 교실에 모았다. 정해진 교육과정을 일정에 따라 가르쳤다. 효율적이었다.
무엇보다 공평했다. 부잣집 아이든 가난한 집 아이든 학교에 오면 같은 교과서를 받고 같은 내용을 배울 수 있었다. 지난 ②회에서 살펴봤듯 이건 인류 교육사의 엄청난 진전이었다.
한국 역시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교실 하나에 80명이 넘는 아이를 앉히고 2부제, 3부제 수업까지 하면서 모든 아이를 학교에 보내려 했다.
그 시대의 질문은 분명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아이에게 같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까.” 그 답 가운데 하나가 지금의 학교였다. 문제는 70여 년 뒤 질문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수업을 받았는데 왜 다르게 배우나
교사는 이미 알고 있다. 같은 내용을 설명해도 학생들이 똑같이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다시 설명한다. 문제를 더 준다. 수업이 끝난 뒤 남겨 가르치기도 한다. 먼저 이해한 학생에게는 조금 더 어려운 문제를 준다.
개별지도는 새로운 교육철학이 아니다. 좋은 교사는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왔다. 문제는 시간이다. 한 명의 교사가 동시에 수십 명을 가르치는 교실에서는 한 학생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이 제한돼 있다.
수업은 계속 앞으로 간다. 몇 명이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 단원에 계속 머물기도 어렵다. 반대로 이미 이해한 학생만을 위해 진도를 훨씬 앞당기기도 어렵다.
결국 교사는 교실의 어느 지점을 선택한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곳. 가능하면 많은 학생이 따라올 수 있는 속도. 대중교육을 가능하게 했던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그 선택의 양쪽에는 언제나 학생이 남는다. 너무 빨라서 놓치는 아이와 너무 느려서 기다리는 아이다.
AI는 처음으로 ‘비용’을 흔들기 시작했다
개인 맞춤교육이 이상적이라는 사실을 몰라서 학교가 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학생 한 명마다 교사 한 명을 붙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AI가 이 오래된 계산식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학생 A가 분수를 이해하지 못하면 다시 설명한다. 학생 B에게는 이미 아는 문제 대신 더 어려운 문제를 준다. 학생 C가 틀린 답을 내면 곧바로 정답을 알려주는 대신 어디에서 생각이 꼬였는지 질문한다.
학생이 이해하지 못하면 표현을 바꾼다. 필요하면 몇 번이고 반복한다. 한 교실에 학생이 서른 명 있어도 이론적으로는 서른 개의 서로 다른 학습 경로가 가능해진다.
OECD가 올해 ‘디지털 교육 전망 2026’에서 생성형 AI의 교육적 가능성 가운데 하나로 대화형 AI 튜터를 주목한 이유다.
기존의 디지털 학습 프로그램도 학생 수준에 따라 문제를 달리 제시할 수 있었다. 생성형 AI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학생과 대화할 수 있다. 질문하고, 힌트를 주고, 설명 방법을 바꾸면서 학생 반응에 따라 다음 행동을 달리할 수 있다.
아직 인간 교사처럼 학생을 이해하는 단계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모두에게 같은 설명을 한 번 하는 수업’ 외에 다른 선택지가 커지고 있다. 교육의 오래된 꿈이었던 개인화가 이전보다 훨씬 싸고 넓게 가능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AI 선생님을 줬더니 아이들이 찾지 않았다
여기서 얘기가 끝난다면 너무 쉽다. ‘AI가 학생마다 개인교사가 돼 맞춤교육을 실현한다.’ 이미 익숙한 미래교육의 그림이다. 그런데 지난 8월 미국에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테네시주 18개 중학교에서 2년 동안 진행된 무작위 실험이다.
학생들은 기존 수학 보충수업 시간에 칸아카데미를 이용했다. 일부 학생에게는 생성형 AI 튜터 ‘칸미고(Khanmigo)’도 제공됐다. AI는 답을 곧바로 알려주기보다 학생에게 질문하고 힌트를 주도록 설계됐다. 학생 한 명에게 언제든 질문할 수 있는 AI 튜터가 생긴 셈이다.
결과는 기대보다 복잡했다. AI 튜터를 배정받은 학생의 96%가 적어도 한 번은 사용했다. 하지만 중간값 기준으로 학생들이 AI 튜터에 메시지를 보낸 날은 학습일의 약 3분의 1에 불과했다.
문제를 틀린 학습 세션 가운데 AI 튜터와 실제로 상호작용한 경우는 17%였다. 학업 성취도는 한 학기당 미국 전국 백분위 기준 약 1.3포인트 높아졌다. 연구진은 이를 1년 기준 약 0.06~0.08 표준편차의 효과로 추산했다.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모든 학생에게 개인교사가 생긴다’는 기대와는 거리가 있었다. 연구진이 주목한 문제는 기술의 성능만이 아니었다. 학생이 그걸 얼마나 제대로 사용하느냐였다. AI 튜터를 책상 위에 놓는다고 개인화 교육이 저절로 시작되는 건 아니었다.
결국 다시 교사가 필요했다
비슷한 결과는 다른 실험에서도 나타났다. 초등학생에게 AI 기반 학습 플랫폼을 제공한 연구에서는 사용할 시간을 따로 줬는데도 AI를 혼자 이용하도록 한 학생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플랫폼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사용한 학생도 일주일 평균 2~5분 정도에 그쳤다. 옆에 사람이 붙자 달라졌다. 직접 내용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학생이 AI 학습에 참여하도록 돕는 사람을 붙였더니 이용시간과 참여도가 71~80% 늘었다.
그렇다고 곧바로 읽기 성취도가 올라간 것도 아니었다. 묘한 결론이다. AI를 이용해 인간의 개별지도를 확장하려 했더니, 그 AI를 제대로 사용하게 만드는 데 다시 인간의 도움이 필요했다. 지난 ④회에서 던진 질문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AI가 교사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교사가 해야 할 일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
교사가 서른 명에게 같은 설명을 반복하는 시간을 AI가 줄여준다면, 교사는 학생이 어디에서 막혔는지 보고, 누구에게 어떤 학습이 필요한지 판단하고, 혼자서는 학습하지 않는 아이를 움직이게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
개인화 교육의 핵심이 ‘학생 한 명당 AI 하나’가 아니라 ‘학생 한 명 한 명을 다르게 볼 수 있는 학교’일 수 있단 얘기다.
한국 학교도 ‘같은 것’에서 벗어나고 있다
우리 교육 역시 움직이고 있다. 가장 큰 실험은 고교학점제다.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학점을 이수한다. 모든 학생이 같은 시간표를 갖는 학교에서 학생마다 조금씩 다른 시간표를 갖는 학교로 옮겨가는 시도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보다 복잡했다. 작은 학교에는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모두 개설할 교사가 없다. 농산어촌에서는 선택할 학생 자체가 적다. 선택권을 넓히려 해도 교사와 교실이라는 물리적 조건에 부딪힌다.
그래서 정부는 올해 온라인학교와 공동교육과정 거점학교 등에 정규교원 777명을 추가 배치하고, 농산어촌·소규모 학교 442곳의 다양한 과목 개설을 지원하고 있다. 단위학교에 없는 과목은 온라인학교나 공동교육과정을 통해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교실이라는 물리적 경계를 조금씩 넘어서는 것이다. 초·중학교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정부는 국가기초학력지원포털을 통해 초등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학습지원대상 학생의 학습이력과 성장기록을 학년이 바뀌어도 이어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1교실2교(강)사제도 확대하고 있다. 같은 학년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생의 출발점까지 같다고 보지 않겠다는 움직임이다.
AI 디지털교과서가 남긴 질문
한국은 이미 한 차례 큰 실험을 시작했다. AI 디지털교과서였다. 정부는 2025년 도입 당시 ‘모두를 위한 맞춤교육’을 내걸었다. 학생별 학습 데이터를 분석하고 수준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해 한 교실에서도 서로 다른 학습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도입 과정에서는 기기와 네트워크, 교사의 업무 부담, 개인정보, 효과 검증, 디지털 과몰입 등 수많은 논쟁이 뒤따랐다. 정책의 위상과 추진 방식도 바뀌었다. 중요한 건 특정 정책의 성공과 실패만은 아니다. 그 논쟁이 남긴 질문이다.
기술적으로 개인화할 수 있다는 것과 교육적으로 개인화해야 한다는 건 같은 말인가. 학생이 틀린 문제를 분석해 더 쉬운 문제를 주는 건 맞춤교육일 수 있다.
하지만 아이의 관심과 호기심, 친구 관계, 가정환경, 정서 상태까지 데이터 몇 개로 설명할 수 있을까. AI가 ‘이 학생에게 적합하다’고 추천한 학습 경로가 오히려 아이의 가능성을 일찍 좁힐 위험은 없을까.
수학을 못한다고 판단한 학생에게 계속 쉬운 문제만 준다면 그 학생은 언제 어려운 문제와 씨름해볼 수 있을까. 개인화는 가능성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질문이다.
모두 다르게 배우면 공교육은 무엇으로 묶이나
더 어려운 문제가 남는다. 학생마다 다른 걸 배우게 한다면 공교육의 ‘공통’은 어디에 있어야 할까. 학교는 개인의 능력을 키우는 곳인 동시에 사회가 다음 세대에게 함께 물려주고 싶은 걸 가르치는 곳이다.
읽고 쓰고 계산하는 기본 능력. 역사와 사회에 대한 공통의 이해. 민주주의와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가치.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경험. 학생이 좋아하는 것만 배우게 할 수 없는 이유다.
OECD도 AI 시대 교육에서 개인화 가능성을 얘기하면서 동시에 모든 학생이 독립적인 사고와 교과의 기초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UNESCO가 최근 AI 시대에도 교육을 ‘공공재(common good)’로 지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이유도 같은 문제와 맞닿아 있다.
AI가 학생마다 다른 교육을 제공할수록 질문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어디까지 달라도 되는가.
같은 게 정말 공평한가
여기서 ‘평등’이라는 오래된 단어와 만난다. 산업화 시대 대중교육이 만들어낸 교육의 평등은 강력했다. 누구나 학교에 간다. 같은 교과서를 받는다. 같은 시간을 배운다. 같은 시험을 본다.
가정의 경제력과 관계없이 최소한 학교 안에서는 같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려 했다. 그 성취를 가볍게 버릴 수 없다. 그러나 아이들의 출발점이 다른데 똑같은 것만 제공하는 게 언제나 공평한지는 다른 문제다.
100m 앞에서 출발한 아이와 100m 뒤에서 출발한 아이에게 똑같이 1km를 달리라고 하는 게 공정한가. 이미 알고 있는 학생과 아직 기초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학생에게 똑같은 문제를 똑같은 시간 동안 주는 게 평등한가.
AI는 이 질문에 처음으로 현실적인 선택지를 조금씩 만들고 있다. 모두에게 같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에서 모두가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으로 교육의 평등을 바라보는 기준 자체가 이동할 가능성이다. 하지만 여기엔 조건이 있다.
‘맞춤교육’이 새로운 교육격차가 된다면
AI는 무료가 아니다. 좋은 기기가 필요하다. 빠른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좋은 AI 모델엔 비용이 들 수 있다. AI를 교육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사도 필요하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부모는 아이에게 좋은 AI 도구를 골라주고 사용법까지 함께 익힐 수 있다. 어떤 아이는 유료 AI 튜터를 여러 개 사용하고, 다른 아이는 학교가 제공하는 기본 서비스만 이용할 수도 있다.
UNESCO는 AI가 개인화 학습과 교육 접근성을 확대할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기존 교육격차를 오히려 확대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 교실에서도 이미 작은 차이가 나타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올해 AI 활용 경험이 있는 교사와 장학사를 면담한 결과, 같은 학년에서도 교사가 AI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학생의 학습 경험이 달라지는 문제가 확인됐다.
학교의 무선망과 기기 상태도 달랐다. 어떤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동시에 AI에 접속하기조차 어려웠다. 맞춤교육이 돈과 지역, 학교와 교사의 디지털 역량에 따라 달라진다면 그건 새로운 평등이 아니다. 새로운 격차다.
그래서 개인화 교육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공교육의 문제다.
학년이 없어질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당장 학년을 없애자는 얘긴 아니다.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데에는 교육적 의미가 있다. 친구를 사귄다. 협력한다. 갈등을 겪는다. 함께 기다리는 법도 배운다.
학교는 개인교습소가 아니다. 학생마다 이어폰을 끼고 AI에게 서로 다른 걸 배우는 공간이 미래학교의 완성형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오히려 AI 시대에는 학교라는 공동체가 더 중요해질 가능성도 있다.
달라져야 하는 건 ‘같은 학년’의 존재가 아니라 같은 학년이면 반드시 같은 속도로 같은 방법으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일 수 있다.
같은 교실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문제를 풀 수 있다. 기초가 부족한 학생은 필요한 부분으로 돌아갈 수 있다. 먼저 이해한 학생은 기다리지 않고 더 깊이 갈 수 있다. 때로는 함께 배우고, 때로는 각자의 속도로 배운다.
개별화와 공동체가 반드시 반대말일 필요는 없다.
서른 개의 시간표가 있는 교실
다시 처음의 중학교 교실로 돌아가 보자. 서른 명이 앉아 있다. 지금까지 학교는 그 서른 명을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데 탁월했다. 그 힘으로 대한민국은 짧은 시간 안에 거의 모든 아이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제 기술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교실은 하나지만 학습 경로는 서른 개일 수 있다. 함께 배워야 할 때는 함께 배우고, 각자 필요한 게 다를 때는 다르게 배울 수 있다. 교사는 교실 앞에서 모두에게 같은 설명을 하는 사람인 동시에 그 서른 개의 길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살피는 사람이 된다.
아직은 가능성이다. AI 튜터 실험이 보여주듯 기술을 준다고 학생이 저절로 배우는 것도 아니다. 개인화가 항상 더 좋은 교육이라는 증거도 충분하지 않다. 공교육이 지켜야 할 공통의 지식과 경험도 있다.
그래서 질문은 ‘학년제를 없앨 것인가’가 아니다. 더 근본적이다. 모두에게 같은 교육을 주는 게 교육의 평등인가. 아니면 서로 다른 아이가 자신에게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게 새로운 교육의 평등인가.
산업화 시대 학교는 첫 번째 질문에 위대한 답을 내놨다. AI 시대의 학교는 이제 두 번째 질문에도 답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배우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오래된 학교 문법이 흔들린다.
평가다.
모두가 같은 것을 같은 속도로 배우지 않는다면 같은 시험으로 같은 시간에 평가하는 방식은 계속 유효할까. 더구나 AI가 학생 대신 글을 쓰고 답안을 만드는 시대다.
다음 회 〈산업화 학교의 종말 ⑥〉에서는 ‘AI가 쓴 답안, 무엇으로 평가할 것인가’를 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