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의원은 정치인이다.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밝히고, 다른 정치세력과 논쟁하고 때론 싸우는 게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런데 교육위원이라면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
교육을 다루는 정치인이라면 적어도 학교가 정치적 논쟁에 휘말릴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교사와 학생의 교육활동이 정치의 잣대로 재단되기 시작하면 뭘 잃게 되는지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최근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 전국 시도교육청에 이 영화의 학교 주관 단체관람 현황을 요구했다. 교육청은 다시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냈다. 일부 교육청은 관람한 학교가 없어도 ‘해당 없음’으로 제출하도록 했다. 결국 학교들은 국회에서 논란이 된 영화 한 편을 봤는지, 안 봤는지를 확인해 보고해야 했다.
왜 그걸 알아야 했을까. 학교가 학생들에게 부적절한 영화를 강제로 보게 했다는 구체적인 문제가 확인됐나, 영화를 통해 특정 정치적 견해를 주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나. 아니면 교육과정을 현저히 벗어난 활동이라는 판단이라도 있었나.
그런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따져야 한다. 그런데 그런 문제부터 확인한 게 아니라 어느 학교가 영화를 봤는지부터 찾은 것이다. 이쯤 되면 묻게 된다. 국회 교육위원이 학교를 정치에 끌어들여 대체 무엇을 얻으려는 건가.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고 생각한다면 영화에 문제를 제기하면 된다. 제작자를 비판해도 된다.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그 역시 정치의 장에서 치열하게 논쟁하면 된다. 그런데 왜 학교까지 불러내야 하나.
국회엔 자료를 요구할 권한이 있다. 교육청과 학교도 국회의 감시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 그렇다고 국회의원이 궁금해하는 모든 걸 학교에 물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요구할 수 있다는 것과 요구해야 한다는 건 다르다. 특히 교육위원이라면 그 차이를 더 잘 알아야 한다.
학교는 정치권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는 곳이 아니다. 학생이 배우고 교사가 가르치는 ‘교육의 공간’이다.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사회문제를 토론할지는 기본적으로 교육적 판단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판단에 문제가 있다면 확인한 뒤 책임을 물으면 된다. 정치권에서 논란이 된 영화라는 이유로 관람 학교부터 파악하기 시작하면 순서가 거꾸로 된다.
학교에 문제가 있어서 조사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논쟁에 학교를 끌어들인 뒤 문제가 있는지 찾는 모양새가 된다. 교사노조가 이번 자료요구를 ‘교육 검열’이라고 비판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물론 영화를 보여주지 말라고 명령한 건 아니다. 관람한 교사를 징계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벌어진 뒤에도 학교가 아무렇지 않게 영화를 고를 수 있을까.
‘학생들에게 필요한가’보다 ‘국회에서 문제 삼지 않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면 이미 정치가 교육적 판단에 들어온 것이다. 아무것도 금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 영향이 없는 게 아니다.
더 아이러니한 건 정치권이 학교와 교사에게 누구보다 엄격하게 ‘정치적 중립’을 요구해 왔다는 점이다. 교사가 학생에게 특정 정치적 견해를 강요해선 안 된다. 학교가 특정 정파의 도구가 돼서도 안 된다. 당연하다.
그렇다면 정치권도 학교를 자신의 정치적 논쟁에 끌어들이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닌가. 정치인이라면 더더욱, 특히 교육위원이라면 자신의 행동이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학교를 이용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는 일부터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교육위원이라는 자리는 교육을 정치에 이용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정치로부터 교육을 지켜야 할 자리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번에는 영화였다. 다음엔 무엇인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어떤 작가를 초청했는지, 어떤 연극을 봤는지, 어떤 역사자료를 사용했는지, 어떤 주제로 토론했는지도 국회에 제출해야 하나.
하나씩 묻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래서 선을 그어야 한다. 국회가 교육행정을 감시하는 것과 정치권이 학교의 교육적 선택을 들여다보는 건 같은 일이 아니다.
학교에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려면 정치부터 학교 앞에서 절제해야 한다. 학교는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도구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