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로 간 어린이철학] 죄를 통해 '사람의 가치'를 판단해도 될까

  • 등록 2025.11.17 0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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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중학교, 울산고운중학교의 철학수업 이야기

더에듀 | 공교육은 입시와 경쟁, 시험, 서열 등으로 아이들의 생각과 삶을 단단하게 고정해 놓고, 삶 자체를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라는 정해진 트랙 위에서 움직이게끔 한다. 이 트랙을 성실하게 달리는 사람에겐 모범 학생이라는 훈장을 준다. 그런데, 울산 최초의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넘어 저항적이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철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과 삶에 대한 사색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에 <더에듀>는 아이들이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데 도움을 주는 박상욱 철학교사의 수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교육이 경쟁과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사람의 가치는 본래부터 결정되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판단과 행위로 인해 평가되는 것일까?

 

사람의 가치가 본래부터 결정되어 있다는 생각은 과거 계급사회를 유지했던 근본적인 관점이었다. 왕권제 국가에서 왕과 귀족의 가치는 평민이나 노예보다 본래부터 더 높다고 여겨졌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정해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일정 부분 이어지고 있다.

 

물론 사람의 가치가 위계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관점은 아니다. 오히려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가치 있는 존재로 태어난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천부인권이라는 말이 가능해진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소중하게 대우받을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범죄자’에 대해 토론하는 순간 다른 관점이 비집고 들어온다. 죄를 저지른 사람의 인권이나 가치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보장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사춘기 시절의 아이들과 토론을 이어갈 때면 이러한 관점이 더욱 거세진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는 사형하거나 고문을 해도 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SNS나 대중매체를 통해 접하게 되는 자극적인 범죄 장면들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 같다.

 

범죄자의 인권 보장이라는 주제 이면에는 ‘사람의 가치’에 대한 깊은 철학적 쟁점이 숨겨져 있다. 오늘 수업에서 철학소설을 읽은 아이들이 제기한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죄를 통해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해도 될까요?’


이 질문을 한 아이는 무조건 죄를 지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말했다.

 

물론 반의 다른 친구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심지어 학교폭력 가해 학생들을 거론하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범죄의 피해자와 똑같이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에 들어가자마자 반의 분위기가 너무 과열되는 것 같아 시간을 좀 갖기로 했다. 5분간 아무런 발언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명상을 했다.

 

유진이가 말했다.

 

“갑자기 무슨 명상이에요?”

 

나는 각자의 생각을 진전시키기보다 생각과 감정을 좀 비워보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5분이 지나고 반의 분위기가 좀 차분해지자 다시 토론을 시작했다. 조용히 민성이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좀 전보다 훨씬 차분해진 목소리였다.

 

민성: 죄를 짓게 된 이유가 중요한 것 같아요.

나: 조금만 더 설명해 줄래?

민성: 똑같이 사람을 죽였지만, 어떤 사람은 계획적으로 그런 일을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을 수도 있어요.

주윤: 가족을 보호한 것이 죄라고 할 수 있어?

지성: 사람을 죽였다면 죄이지 않을까?

아름: 그건 정당방위라고 생각해요.

나: 죄를 지었어도 그 의도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거구나.

유진: 저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인권도 보장해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 아동 성범죄자는 더 그래요.

지성: 인간이라고 할 수 없지. 인간으로서 대우할 가치도 없는 거지.

 

민성이는 죄를 지었어도 의도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아름이는 정당방위는 죄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덧붙였다. 이 지점에서 죄를 짓는다는 것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했다. 하지만 곧이어 유진이는 아동 성범죄자를 예로 들며, 범죄자의 인권은 보장해 줄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나는 앞서 발언한 내용 중에 죄의 기준과 같이 꼭 논의해 봤으면 하는 쟁점이 있었지만, 일단 아이들의 호기심이 이끄는 흐름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물론 민성이나 아름이가 다시금 문제를 제기했다면 좀 달라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는 지성이의 발언을 발판 삼아 질문을 던졌다.

 

나: 그 사람이 가치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통해 정해지는 걸까?

유진: 그 사람이 저지른 죄를 통해 정해지는 거죠.

예성: 그건 사람들의 평가인 것 같아요. 모든 죄를 똑같이 보지는 않으니까요.

준이: 맞네. 그렇네.

나: 사회적 평가로 그 사람의 가치가 정해진다고 보는 건가요?

예성: 맞아요.

나: 그러면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일본인에 비해 조선인의 가치를 낮게 봤잖아요. 그것도 정당한 건가?

주윤: 그건 아닌데...

유진: 그 시절에는 그게 정당한 것 아닐까요? 실제로 그렇게 했잖아요.

나: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 해서 그게 정당화되는 걸까?

승우: 그건 아니에요. 그건 정당하지 않아요.

민성: 모두 그렇게 행동한다고 해서 그게 정당한 행동은 아닌 것처럼요.

지성: 저는 사회가 각 개인의 가치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건 일종의 계급사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나: 조금 더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지성: 아...이 이상은 한계예요.

유진: 계급 사회는 사람의 계급을 나누는 거는 거예요. 그런데 사회가 사람들의 계급을 나누는 것은 민주적이지 못해요.

민성: 사람들은 본래 평등한 거니깐.

 

 

고대로부터 가치는 본래적으로 결정된 것이라는 입장이 강했다. 하지만 존 듀이는 『윤리학』이라는 책을 통해 가치는 평가를 통해 생겨나는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맥락의 차이는 있지만, 아이들 역시 사람의 가치는 사회적 평가의 결과라고 말했다. 굉장히 인상 깊은 발언이었다.

 

이 지점에는 나는 의도적으로 악마의 대변자 역할을 맡기로 했다. 의도적으로 아이들의 발언에 대한 반증 사례를 제시했다. ‘사람의 가치가 사회적 평가의 결과라면, 사회에 따라 잘못된 평가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담고 있었다.

 

나는 일제강점기를 예로 들었다. 그러자 반 분위기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사람의 가치가 사회적 평가에 따라 달라져도 될까?’라는 고민들이 엿보였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진이의 발언이었다. 유진이는 그 시대에는 다들 그렇기 했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과 가치의 구분이 엇갈리는 것 같았다. 유진이의 발언 덕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실과 가치를 구분하는 ‘자연주의 오류’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었다.

 

흔히 논리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해서 중학생들에게 논리를 있는 그대로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수학 공식처럼 논리를 접하게 되면 그것이 각자의 사유와 발언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논리에 대해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논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말의 법칙이자 사고의 법칙이다. 아이들은 말하는 그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논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교사는 토론의 과정 속에서 아이들의 발언에 들어있는 논리의 구조와 오류를 드러내고 함께 검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기만 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형식적, 비형식적 논리의 법칙들을 이해하고 자기 수정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것이 최근 미래 담론에서 강조하고 있는 메타-사고이다. 자신의 사고에 대해 스스로 검토할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한다.

 

민성: 인간에게 가치를 매기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주윤: 원래 태어날 때는 가치를 매길 수 없어요. 그건 사회가 평가하고 만들어 내는 거예요.

나: 가치를 매길 수 없다는 것은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걸까?

주윤 그게 아니라 누가 더 가치 있고 누구는 가치 없고를 판단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준이: 그럼 말을 바꾸어야 할 것 같아요. 가치를 매길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아요. 평등하게요.

지성: 그런데 사회가 생기면서 가치에 순서가 생기는 것 같아요.

나: 사회가 사람들의 가치를 매긴다는 건가? 예를 들면?

수진: 누구는 더 성실하고 더 공부도 잘하고 더 예쁘고 하는 것들이 다 가치 평가의 결과인 거죠.

아름: 그건 때로는 필요한 것 아닐까?

예성: 왜?

아름: 더 도덕적이다, 더 성실하다, 더 유능하다...이런 평가는 필요하잖아. 그리고 도덕적인 사람과 범죄자는 구분해야지. 그들인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는 것은 말도 안돼.

나: 사회적 평가가 필요하다는 말이구나.

민성: 그렇지만 사회적 평가 때문에 누군가를 차별하는 경우도 많잖아.

아름: 오늘 우리 주제처럼 죄를 통해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정당한 차별이야.

수진: 차별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

유진: 하지만 사회의 평가가 꼭 정당한 차별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승우: 동성애 차별, 인종 차별 같은 것도 있으니깐...

 

이어지는 토론에서 아이들은 ‘가치 매기기’를 통한 차별의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교사는 철학적 토론에서 기본적으로 안내자 역할을 맡지만, 특정한 쟁점이나 논점을 사전에 면밀하게 계획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은 토론 자체가 굉장히 산만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물론 그런 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어느새 새로운 쟁점이나 주제에 자연스럽게 집중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시냇물이 아무런 규칙도 없이 흐르는 듯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물줄기들이 모여서 커다란 강을 이루는 것처럼 말이다.

 

앞선 대화에서 아이들은 사회적 평가로 인한 차별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지만, 곧 정당한 차별도 존재한다는 의견으로 나아갔다. 도덕적인 사람과 범죄자를 구분해야 하듯이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평소 정치적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유진이가 반론을 제기했다. 사회의 평가가 정당한 차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곧이어 동성애와 인종 차별 같은 사례가 자연스럽게 등장하면서 교실 토론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러한 쟁점이 중요하긴 하지만 자칫 토론의 분위기 자체가 피상적으로 흘러갈 위험도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나: 사람에게 본질적으로 정해진 가치가 있을까?

준이: 있죠. 누구나 소중하고 가치 있게 태어나는 거죠.

유진: 그런데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사회적 평가가 달라져요. 그래서 가치가 나뉘는 거죠.

민성: 사람들의 가치를 평가하고 구분해야 할 필요는 있다고 봐요.

아름: 우리는 누군가를 혐오할 자유가 있어요.

주윤: 맞아요. 저는 아까 말했듯이 아동 성범죄자는 혐오예요. 그 사람의 죄는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될 짓이잖아요. 그런 사람의 가치까지 인정해 주고 싶지는 않아요.

나: 혐오의 자유가 있다는 말이구나.

유진: 그러면 동성애자를 혐오할 자유도 있다는 거야? 개인의 자유니깐...?

수진: 남혐이나 여혐도 마찬가지겠네.

지성: 음....사람의 가치를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나: 그럼 사람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중요한 거 아닐까?

승우: 맞아요. 그 기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할 것 같아요.

 

서양철학의 역사 속에서 인간의 본질적 가치는 주로 변하지 않는 본성이나 기준을 의미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각자의 선택을 통해 그 가치가 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절대적 본성을 부정한다. 각자가 가진 가치는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일 뿐이다. 인간의 주체적인 선택과 행동만이 그 사람의 가치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잘못된 행위로 인한 사회적 비난과 차별은 감수해야 하는 것일까? 자신의 행위에 따른 최종적인 책임도 그 자신에게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아름이와 주윤이는 이러한 입장에서 혐오의 자유를 말했다. 범죄자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혐오의 문제를 거론하자 다시 미묘한 틈새가 드러났다. 혐오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것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남혐이나 여혐, 장애인 혐오와 같은 것도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일까? 물론 이에 대해서 아이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조금 흥분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던 아름이와 주윤이도 조금 더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승우의 발언을 끝으로 아이들은 철학 노트를 꺼내서 쓰기 시작했다. 그때 지성이가 조용히 옆 친구에게 말을 꺼냈다.

 

지성: 근데 학교에서 평가하는 것도 정당한 기준이야? 나처럼 공부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잖아.

준이: 그러니깐. 대안학교가 있는 거지. 우리 학교는 시험이 없잖아.

 

철학에 대한 많은 오해 중 하나는 너무 추상적이고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 우리 삶과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고상한 사람들이 하는 취미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철학함’이라고 볼 수 없다. 철학적 질문은 언제나 우리 삶의 맥락, 구체적 상황 속에서 나온다. 그러한 질문에 숨겨진 개념, 의미, 쟁점, 기준 등과 같은 추상적 차원의 논의가 철학적 토론을 통해 전개되더라도 언제나 다시 구체적인 삶의 맥락 속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수업의 끄트머리에서 지성이의 질문은 이 지점을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지성의 말 덕분인지 아이들은 철학적 글쓰기를 통해 학교에서 진행되는 여러 가지 평가 활동 및 교사들의 발언을 토론과 연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친구들 사이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내적인 대화와 의미로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는 교실 구석의 책상에 앉아 이 장면을 그냥 지켜볼 뿐이었다.

 

박상욱 울산고운중 철학교사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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