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대한민국에서 소위 ‘최고 명문대’를 나오고 고위 공직에 오른 이들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지표가 되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목도한 현실은 처참하다. 지식의 상아탑에서 정의를 논하던 이들이 권력의 단맛에 취했을 때, 그들이 보여준 것은 고결한 지성이 아니라 추악한 특권 의식의 민낯이었다.
한국 사회의 공정은 이제 형해화(形骸化)된 수사(修辭)로만 남았다. 한 시대의 지성을 자처했던 이들이 뱉어낸 감언이설과 그 뒤에 숨겨진 탐욕의 변칙은 우리 공동체의 신뢰 자본을 밑바닥부터 갉아먹었다.
이혜훈과 조국, 이 두 이름이 사회에 남긴 흉터는 단순한 정치적 논란을 넘어 ‘정의’라는 단어 자체를 오염시킨 지독한 상흔이다.
‘내로남불’의 일상화와 위선의 보편화
조국 전 장관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뼈아픈 상흔은 ‘위선의 보편화’이다.
밤낮으로 SNS를 통해 정의와 평등을 설파하던 그 화려한 손가락이, 정작 자신의 가문과 자녀를 위해서는 법망의 빈틈을 파고드는 기교로 변모했을 때 청년 세대가 느낀 박탈감은 형언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가 쌓아 올린 지적 성(城)은 결국 타인에게만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했던 ‘특권 의식’의 요새였음이 드러났다.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던 감언이설 뒤에서, 정작 본인의 자녀는 온갖 편법을 동원해 용(龍)으로 승천시키려 했던 그 이중성은 대한민국 공정 담론에 대한 테러나 다름없었다.
훈장 입시와 병역 우연, 그리고 배우자의 교수직 책임론
이 모든 행태의 기저에는 알량한 지식을 권력과 등가 교환하려는 ‘파우스트적 거래(출세와 명예를 위해 자신의 양심과 도덕을 파는 지식인)’가 자리 잡고 있다. 출세와 명예를 위해 자신의 영혼을 팔아치우는 지식인의 전형을 이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혜훈과 조국은 지식인의 명성과 진보적 서사라는 영혼을 메피스토펠레스적 권력과 맞바꿨다. 그들은 광장에서 개혁의 기수를 자처하며 정의를 연출했지만, 골방에서는 가문의 영광과 세습을 위해 병역, 입시, 부동산, 갑질이라는 ‘사회의 역린’을 주무르며 특권의 성벽을 쌓아 올렸다.
특히 이혜훈의 배우자인 연세대 교수의 행보는 지식인의 타락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제자를 가르치는 선생의 양심을 팔아 자녀의 입시 부정에 가담한 자가 여전히 교수직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은 교육계에 대한 모독이다. 그나마 남은 속죄의 길은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뿐이다. 그것이 최소한 교사의 양심이다.
그들이 행한 파우스트적 거래의 대가는 혹독하다. 본인들은 일시적인 권력과 부를 얻었을지 모르나, 대한민국 사회는 ‘정의’라는 단어의 파산을 경험하게 되었다.
“나도 저들처럼 권력이 있었다면 내 자식 군대 편하게 보내고, 훈장 따위로 대학 보냈을 텐데”라는 냉소가 독버섯처럼 번진 것이다.
공동체의 도덕적 마지노선을 허물어뜨린 이 지독한 냉소야말로 그들이 우리 사회에 남긴 가장 치명적인 상흔이다.
파우스트적 거래로 영혼을 팔아 가문을 세우다
이혜훈의 사례에 이르면 비판의 칼날은 더욱 서늘해진다. 대한민국 입시 제도가 아무리 복잡하다 한들, 할아버지가 내무부 장관 시절 의례적으로 받은 훈장이 손자의 ‘연세대 수시 합격’이라는 프리패스가 된 현실은 가히 ‘소가 웃을 일’이다. 이는 실력과 노력을 믿고 밤잠을 설친 수만 명의 수험생과 학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폭거이다.
조상의 음덕과 선산에 묻혀 있는 권력의 유산이 입시의 결정적 도구가 되는 사회에서 어느 누가 ‘공정’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입시 부정의 문제를 넘어,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세습을 위해 얼마나 치밀하고도 뻔뻔하게 시스템을 농락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여기에 아들이 집 근처에서 공익요원으로 근무하게 된 기막힌 ‘우연’까지 겹치면, 대중은 이것을 필연적인 ‘갑질’과 ‘특권’의 결과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상흔 위에 세워진 위선의 기념비
이혜훈과 조국이 건드린 것은 단순한 법적 쟁점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보편적 정서와 윤리의 근간이자 국민의 사회적 역린이다.
부동산 투기와 부정 청약이 ‘지능적 재테크’로 둔갑하고, 고위직의 오만한 갑질이 ‘정당한 권리’인 양 치부되는 사회는 이미 죽은 사회이다. 명문대를 나오고 최고위직에 오른 이들이 보여준 부러진 도덕성은, 우리 사회의 엘리트 카르텔이 얼마나 썩어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우리는 이제 그들이 남긴 상흔을 직시해야 한다. 그들의 이름은 대한민국 공정 잔혹사의 서문에 기록될 것이다. 이 지독한 위선의 서사를 끝내기 위해서는, ‘파우스트적 거래’로 쌓아 올린 가짜 정의의 탑을 완전히 무너뜨려야 한다. 소가 웃을 일이 현실이 되고, 권력이 있으면 4대 역린도 피해 갈 수 있다는 오만이 통용되는 시대에 종지부를 찍어야만 한다.
이혜훈과 조국, 그들이 남긴 사회적 흉터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들은 여전히 그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특권의 노예로 살 것인가, 아니면 무너진 공정을 다시 세울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