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간 기자 생활을 하다 소위 말하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되어 교육감을 보좌하는 비서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반절 가량을 글쓰기란 업을 갖고 살아왔는데, 새 옷을 입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한동안 글쓰기를 멈췄습니다. 그러자 내 마음 한 구석에 공허함 그 비슷한 마음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읽고 에세이를 써보기로 다짐했습니다. 지난해 2월 호기롭게 시작한 이 다짐은 지금도 꾸역꾸역 이어가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내 안의 나와 만나는 일은 제 삶을 더욱 반짝이게 한다는 걸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

우리 집모녀의 희비가 교차했던 아이들 방학이 드디어 끝났다. 밤늦게 잠들고 오전 11시까지 늦잠을 자는 두 녀석 덕에(?) 아이들 아침 식사 준비를 패스하고 우아하게 수제 요거트를 먹으며 조간신문을 볼 수 있었다. 회의가 있는 날엔 모두가 잠든 이른 새벽의 고요를 누리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섰고, 그렇지 않은 날엔 유유자적 책도 읽고, 아주 가끔 딸아이가 좋아하는 김치볶음밥을 만들어놓고 출근을 하곤 했다.
반면 길고 긴 방학 동안 친정엄마는 매일 아침 사우나를 다녀오시는 아빠의 아침상을 1차로 차리고, 베짱이가 된 손주들의 밥을 2차로 차리고, 오후 서너 시쯤 출출해하는 아이들 간식도 모자라 매일 늦는 딸 대신 저녁밥까지 해주셨다. 이런 엄마의 헌신이 없었다면 아마도 난 일을 계속하지 못했을 거다.
내심 아이들 방학 동안 아침밥을 안 해서 좋았는데 개학을 했다. 방학이 쏜살같이 느껴진 건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다. 방학이 시작된 그 주 주말, 남매의 손을 잡고 서점에 갔었다. 겨울 방학 선행학습까진 아니더라도 주어진 시간을 계획적이고 알차게 보냈으면 하는 부푼 맘에 문제집도 함께 고르고 출근 전 짬을 내서 오늘의 숙제도 내줬다.
초등학교 때까지 먹히던 자기주도학습 유도형 '하루편지'(To do list, 소소한 일상)는 애들의 머리가 크자 좀처럼 통하지 않았다.
"어! 맞다. 엄마 숙제 까먹었다. 담에 하지 뭐. 엄마 피곤하면 먼저 자. 주술회전 좀 보다 잘게."
"벌써 밤 11시반이야. 엄마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해. 너네 자꾸 이럴래?"
사실 방학 초기엔 주도권을 잡고 아이들의 공부 습관을 길러주려고 잔소리를 좀 했었는데, 방학 중반쯤 지나자 이미 자유로운 영혼이 된 사춘기 남매의 다이내믹한 모습을 지켜보며 반쯤은 포기해야 했다.
"엄마, 교육청 가더니 잔소리가 더 심해졌어. 내가 알아서 할게."
매일 교육 정책과 현안을 접하다 보니 내 아이에게 좀 더 좋은 교육을 접하게 하고 싶어 이런저런 권유를 자주 했던 것 같긴 하다. 게임 헤드셋을 끼고 같은 반 친구들과 미친 듯이 웃고 떠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발로란트를 하는 아들놈과 주방 가득 설거지 거리를 잔뜩 쌓아놓고 쿠키를 만드는 딸내미를 보면 속이 터지다가도, ‘그래 욕심부리지 말자. 실컷 놀고 실컷 자라. 덕분에 키는 컸잖아’ 하며 마음을 내려놓는다.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면 아이도 따라 읽는다던데 우리 애들은 어찌된건지 매주 틈날 때마다 책 읽는 날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개학이 다가오자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바쁘기도 했지만 어느 한 시점이 되자 자녀 교육에 대한 내 욕심도 차차 수그러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남의 집 아이들은 선행학습이다 뭐다 바짝 열심히 했을 텐데 바쁘단 핑계로 놀게만 둔 거 같아 조급해 하는내게 아들이 말한다.
"엄마 날 믿어봐. 맨날 게임만 해도 나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간 책으로 숱하게 접해 머리로만 알고 있던 이야기,아이들의 특성을 잘 안다고 자부했었는데 중2 아들과 성숙한 초6 딸의 본격적인 사춘기는 중년 아줌마의 마음을 마구마구 흔들어 놨다.
내친김에 주말 아침 김붕년 교수의 <천 번을 흔들리며 아이는 어른이됩니다>를 읽었다. 부모가 읽어도 좋지만, 청소년들이 직접 읽어보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

“지금 혼란스럽고 불안한 건,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증거입니다.”
진료를 받기 위해서 3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김붕년 교수.
<유퀴즈>란 TV프로그램에 출연한 김 교수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활자에서 김 교수의 다정다감한 말투가 솟아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책 읽는 내내 상담 받는 기분이랄까?
청소년기는 뇌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전두엽이 '리모델링' 하고 있는 것이라는 김 교수의 말처럼, 중2병은 호환마마 보다 무서운 게 아니라 뇌가 가지치기에 들어가는 중대한 시기에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때문에 10대초·중반에는 뇌의 전두엽 기능들이 상대적으로 취약해진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벌어지는 수많은 변화에 부모들도 함께 적응해 가야 한다.
첫째, 상황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집니다.
둘째, 분노나 공격성 등이 높아져요. 다소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면 부정적 감정이 드는데, 이해력이 떨어지다 보니 감정을 소화하지 못하고 그대로 표현하게 됩니다.
셋째, 계획을 세우거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떨어져요. 상황을 멀리 보지 못하게 되죠. 자기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문제를 수정하는 과정이 힘겨워집니다.
넷째,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집중력이 떨어져요. 감정을 해소할 겨를도 없이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그대로 표현합니다. 오래 집중하는 능력도 떨어지고요. 감정이나 학업에 대한 인내심이 전반적으로 떨어집니다.
다섯째, 자신의 행동이 불러올 결과를 예측하지 못합니다....(중략)... p51~53
이렇게 우리 뇌는 10대 시기에 혹독한 '성장통'을 겪고 있어요. 청소년기에 '나는 왜 이럴까?' 하고 고민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결과랍니다. 처음 마주하는 생각과 감정에 무작정 휘둘리지 않고, 내면을 차분히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p54 |
저자는 뇌가 급격히 발달하고 성호르몬 변화가 일어나 심리적으로 큰 혼란을 겪게 될 아이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라고 말한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존중하며 소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잠시 혹독한 사춘기로 '선택적 함묵증'이라는 안개 터널을 지나와야 했던 나의 중2무렵이 떠올랐다.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던 기억을 안고 있기에, 어쩌면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더 예민하게 받아들였는지 모른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매일 아침 간절히 기도를 한다.
그대의 아이는 그대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그리워하는 큰 생명의 아들과 딸 들이니,
아이들은 그대를 거쳐서 왔을 뿐
그대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또 그대와 함께 있을지라도 그대의 소유가 아니다.
그대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으나, 그대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생각이 있으므로.
- 칼릴 지브란/ 예언자 中에서
# 이 글은 브런치에 실린 것을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