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언제나 책봄] '스토너'를 통해 내 삶을 반추해 보다

  • 등록 2025.05.14 10:2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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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스의 <STONER>를 읽고

더에듀ㅣ18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 소위 말하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되어 교육감을 보좌하는 비서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반절 가량을 글쓰기란 업을 갖고 살아왔는데, 새 옷을 입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한동안 글쓰기를 멈췄습니다. 그러자 내 마음 한구석에 공허함 그 비슷한 마음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읽고 에세이를 써보기로 다짐했습니다. 지난해 2월 호기롭게 시작한 이 다짐은 지금도 꾸역꾸역 이어가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내 안의 나와 만나는 일은 제 삶을 더욱 반짝이게 한다는 걸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오랜만에 차분하게 잘 짜인 소설을 읽었다. 책을 다 읽고 3주 차가 되도록 글쓰기를 미룬 것은 분주하게 돌아가는 일상 탓도 있었지만, 조금 더 오랜 시간 스토너를 음미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만큼 소설 속 인물인 스토너의 삶을 반추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태어나 인간에게 주어진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각자가 선택한 길이 있겠지만, 그의 인생을 엿보며 돌이켜본 내 삶의 현주소와 인간 본연의 타고난 성정, 잘 맞지 않는 사람과의 결혼 생활이 비단 그뿐만 아니라 주변인들 얼마나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지... 모든 걸 묵묵히 견뎌낸 그가 죽음 앞에서 초연해지는 모습, 평생을 함께한 책을 곁에 두고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묵직한 감동으로 밀려온다. 

 

그는 잠시 손으로 책들을 만지작거렸다. 가늘어진 손가락, 관절의 섬세한 움직임이 놀라웠다.

그 안의 힘이 느껴져서 그는 탁자 위에 어지럽게 쌓아 있는 책 더미에서 손가락으로 책 한 권을 뽑아냈다.

그가 찾고 있던 그 자신의 책이었다.

손에 그 책을 쥔 그는 오랫동안 색이 바래고 닳은 친숙한 빨간색 표지를 향해 미소 지었다. p388

 

 

책이 망각 속에 묻혔다는 사실,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책의 가치에 대한 의문은 거의 하찮게 보였다.

흐릿하게 바랜 그 활자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는 환상은 없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작은 일부가 정말로 그 안에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중략...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p389

 

1965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거의 50년이 흐른 뒤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그 뒤로 꾸준한 입소문 속에 '역주행'에 성공해 요즘 서점에 가도 베스트셀러 코너에 노란색 표지가 환하게 빛나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나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비결은 스토너의 삶 자체가 우리 인생과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스토너는 1891년 미주리주의 작은 농가 마을에서 태어났다. 평생 이렇다 할 말한 학교 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그의 부모는 어느 날 집에 방문한 군청 공무원의 말에 따라 스토너를 미주리 대학교에 보낸다. 대학에서 영문과 조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생을 마감한 그를 먼발치서 바라보면, 답답하면서도 애잔함이 밀려오기도 하고, 경외심이 들기도 했다.

 

자신의 일을 향한 스토너의 묵묵한 성실함과 꾸준함, 유럽 전역에 전쟁이 벌어져 캠퍼스의 학생들과 그의 친구가 전장으로 나간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대학에 남아 공부를 하는 괴짜(내 기준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영문과 학과장인 로맥스에게 맞서지 않고 당하기만 하는 모습 등을 보면서 내내 답답함이 밀려오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스토너 같은 사람이 있기에 이 사회가 돌아간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한 평생을 살면서 삶의 비중을 어느 쪽에 두느냐가 성공과 실패의 가늠자가 되기도 한다. 스토너는 학자로서 명성을 떨치진 못했지만 적어도 미주리 대학교에서만은 평생 학문 연구와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성실한 사람이었음을, 무엇보다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이었음을, 그러므로 눈을 감는 순간 세상의 모든 시간은 자신의 것임을 자각하며 초연해질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스토너의 삶은 아름답게 빛났다.

 

하지만 여성의 관점에서 본 스토너의 사랑은 짜증 날 정도로 애처롭고, 애잔했다. 첫눈에 반한 아내 이디스에게 청혼했지만 성장 과정과 환경, 생활 태도, 성격까지 모든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다른 아내 이디스와 결혼 생활은 정말 불행해 보였다. 어쩌면 그가 몰두했던 학문에 대한 집념과 연구는 불행한 결혼 생활의 도피처가 아니었을까? 소설 중간 캐서린이란 제자와 외도를 하는 스토너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다.

 

두 사람이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두 사람 모두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열정에서 시작된 감정이 욕망을 거쳐 깊은 관능으로 자라나 순간마다 계속 새로워졌다."욕망과 공부." 캐서린이 한 번은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건 그것뿐이죠. 안 그래요?" 스토너가 보기에는 딱 맞는 말 같았다. 이것이 그가 살면서 터득한 것들 중 하나인 것 같았다. p276
 

 

나 역시 살면서 유한한 시간 속에 삶의 가치와 비중을 어디에 더 많이 둘 것인지 숱한 고민을 한다. 일과 사랑, 육아, 공부, 취미, 노동 등을 두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랑하는 남편과도 여러 면에서 다른 점이 많아 소설 속 이야기와 견주어 내 삶을 반추해 보았다. 그리고 다짐한 건, '다름을 다름으로 내팽겨두지 말고,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과 우리 사랑이 삶 속에서 균형감 있게 아름답게 펼쳐지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그러다 보면 결국 다름과 다름은 0이 된다고.'

 

소망이 있다면, 아무쪼록 어수선한 우리 정치에서도 다름과 다름을 나누지 말고, 0이 되길 바라보지만... 가능할까? 요즘 기승전 세계정세와 나라 걱정이니... 내가 철이 든 걸까?

 

# 이 글은 브런치에 실린 것을 재구성했습니다.

 

임가영 충북교육청 비서관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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