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샘의 천년고도 역사문화 기행] ③'시간을 거슬러'...고대의 시안성벽(西安城墙)

  • 등록 2025.09.10 15:4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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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당나라 수도였던 시안을 모델 삼아 만들었다는 계획 도시 경주와 일본의 교토, 동아시아 3개 나라의 천년고도 시안, 경주, 교토를 방문하며 보고 공부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록에 근거한 역사 문화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기회로 직접 경험한 내용들을 복기하면서 불분명함이 명확해지고 새로워지는 경험을 해보고자 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 중-

 

중국은 약 5000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로, 그동안 수많은 왕조가 광활한 국토에서 흥망성쇠를 반복해 왔다.

 

5000여 년의 역사상 국가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던 수도이자 역사가 깊은 지역을 고도(古都)라고 하며, 대표적인 역사 도시인 시안, 뤄양, 난징, 베이징을 '중국 4대 고도'라고 부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안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고도이자 이탈리아 로마, 그리스 아테네, 이집트 카이로와 더불어 ‘세계 4대 고도’로 불린다. 그래서 시안을 여행할 때는 단순히 관광지가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종루와 고루가 호텔 및 백화점 등과 어울리며 도시의 중심에 있고 이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시안성벽(西安城墙, Xi’an City Wall)이다.

 


시안성벽은 중국에서 가장 크고 잘 보존된 성곽 중 하나이다. 14세기 명나라 때 축조된 이 성벽은 외적을 막기 위한 군사적 요새이다.

 

사람들은 이 시안 성벽을 보고 고대의 장안성이라는 생각을 가지기도 한다.

 

시안 성벽은 명나라 초기에 당나라 장안 황성의 기초위에 건설했고 여러 차례 보수공사를 거친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오래된 성벽이다.

 

전체 둘레가 13.74km로 성벽 위의 길 폭은 4차선 도로와 비슷한 13m이고 높이는 12m이다. 성벽의 벽돌에는 보수할 당시 벽돌을 만든 지역을 상징하는 표시가 새겨져 있다. 황제만 다닐 수 있었다는 남문인 영녕문을 통해서 보통 많이 입장을 한다.

 

성벽 안쪽은 오래된 건물과 저층 건물이 주를 이루고 성 밖은 아파트와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다. 성벽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는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넓고 깊다.

 

동서남북으로 각각 성문이 하나씩 있었는데, 그중에서 서문(안정문)은 고대 실크로드로 가는 길목이라서 중요시되었고, 싸움이 잦았던 북문(안원문)은 도성을 수호하는 데 매우 중요했다.

 

해 질 녘 성벽에서 보는 석양은 해자와 어울려 운치가 있다.

 

 

장안의 전성기는 당나라 도읍이 되면서 시작되었고 인구가 백만 명에 달했다. 장안과 더불어 세계 3대 도시였던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과 아바스 왕조의 수도인 바그다드보다 인구가 많고 규모가 컸다. 장안성의 크기가 현재의 시안 성벽 내의 면적보다 일곱 배가 넘는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7~8세기경, 장안성의 도시계획과 관심사는 동북아시아의 유행이 되었고 발해의 상경용천부와 일본의 교토, 신라 경주의 외양이 장안성과 비슷했다.

 

한나라 때의 장안은 지금 시안의 북서쪽 시가지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비단길의 시작점이었다. 장안의 정치 경제적, 그리고 전략적 이점들이 전한의 수도가 된 원인이었다.

 

한고조는 장안으로 수도를 옮기고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지어진 건축물인 장락궁이었는데, 원래 진나라 때의 건물이었던 흥락궁을 토대로 개축한 것이었다.

 

서쪽으로는 미앙궁이 건설되었다. 한 고조 시절 장안은 주로 이 두 궁궐로 이뤄졌고, 아직 성벽이 완전히 세워지지 못한 상태였다.

 

한 고조의 아들인 혜제 시절에 성벽을 완공함으로써, 장안이 도시의 모습을 갖추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무제 시대 장안은 제국의 수도로서 가장 번영했다. 당시 장안성의 대부분은 장락궁과 미앙궁 등의 궁궐과 관청들이 차지하고 있어, 황제와 고급 관료들을 위해 설계된 도시라고 할 수 있었다.

 

 

시안 성벽은 당나라 때 장안 황성으로 축조했던 성벽이 원조다.

 

당나라 말기에 장안 황성 대부분이 파괴되면서 수도를 뤄양으로 옮겼고, 1374년 명나라가 방어 체계를 구축할 목적으로 새로이 성벽을 쌓은 것이다.

 

시안 시가 1983년부터 무려 20년에 걸쳐서 명나라 때의 성벽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높이 12m, 폭 15m, 총길이 13.7km에 달하는 성벽으로, 총 98개의 성루가 성벽을 따라 이어진다.

 

현재는 시민들이 성벽을 드나들기 쉽도록 문을 몇 개 더 설치했다. 총 18개 문 중에서 13개 문을 통해서 성벽에 오를 수 있는데, 워낙 넓어서 자전거 하이킹도 할 수 있고 마라톤 대회가 열리기도 하는 등 그 규모가 생각 이상으로 크다.

 

 

천년 고도 시안, 누군가는 죽고 살았을 성벽 위 자전거 타는 연인들을 보면서 인생의 희극과 비극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김현진 인천 첨단초 교사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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