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에듀 | 올해 고1 대상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에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새 정부도 이 같은 문제의 인식 속에 몇몇 대책을 내놨지만, 이 또한 논란에 빠지면서 가야 할 길이 험난한 상황이다. 국회는 국정감사를 맞아 고교학점제에 대한 집중 검증에 나서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상황이다. 이에 <더에듀>는 교사노조연맹 소속 교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고교학점제가 현장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 살피면서 교사들의 주장을 확인하고자 한다. |
“나 대학 나온 엄만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맞벌이로 겨우 먹고 사는데, 이젠 애 과목까지 챙겨야 하나요?”
“고교학점제가 아니라 귀족학점제네요.”
지난 봄, 교육부가 주최한 고교학점제 학부모 설명회에서 터져 나온 말들이다.
‘선택권’이 아니라 ‘혼란권’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적성과 진로에 맞게 과목을 선택하게 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듣기엔 그럴듯하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학생과 학부모 대부분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새로운 제도의 낯선 용어와 구조 속에서 불안만 커지고 있다.
진로와 적성에 따른 ‘선택’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닌, 잘못된 선택으로 입시에서 불리하지는 않을까,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압박으로 다가온다.
이른 나이에 진로를 확정짓기 어려운 현실에서, ‘무엇을 들어야 손해가 없을까’가 학생과 부모의 유일한 관심사가 된다.
설령 진로가 정해졌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대한민국의 어느 평범한 부모가 교육과정 편제표를 보고 자녀에게 맞는 학교와 과목을 판단할 수 있을까?
어느 학교에 어떤 과목이 개설되는지, 같은 과목이라도 어느 학년에 개설되는지, 공동교육과정이나 온라인 학교 수강이 가능한지, 그 과목의 평가 방식이 상대평가인지 절대평가인지 아니면 P/F(Pass or Fail)인지, 그리고 그것이 대학 진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계산해야 한다. 그러나 부모 대부분은 그 복잡한 체계를 해독할 수 없다.
‘선택’이라는 말은, 실은 정보와 자원을 가진 상위계층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되었다. 결국 고교학점제는 ‘선택권 확대’가 아니라, 혼란의 확산이자 불평등의 심화로 작동하고 있다.
정부가 만든 사교육 블루오션
복잡한 제도는 늘 새로운 사교육을 낳는다. 고교학점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과목 선택 컨설팅’, ‘학점제 로드맵’, ‘학교별 과목 매칭’ 같은 신종 사교육 상품이 속속 등장했다.
‘어떤 학교에 어떤 과목이 깔렸는지’, ‘언제 수강해야 유리한지’를 분석해 주는 컨설팅 시장이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다. 한 술 더 떠,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진로 설계부터 과목 선택, 학생부 관리까지 패키지로 제공하는 컨설팅까지 등장했다.
정부는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며 만든 제도였지만, 결국 사교육 시장을 키워준 ‘정책적 후원자’가 되어버렸다. 진로가 불확실한 17세 학생에게 ‘과목 선택의 책임’을 떠넘기고, 그 불안을 사교육이 파고드는 구조이다.
‘복잡함의 늪’, 2022 개정교육과정
고교학점제를 뒷받침한다는 2022 개정교육과정을 들여다보면, 그 복잡함과 불친절함은 상상을 넘어선다. 과목은 잘게 쪼개졌고, 과목명으로 도대체 무엇을 배우는지조차 알기 어려워졌다.
예를 들면, 예전의 ‘물리1, 2’는 ‘물리학’, ‘역학과 에너지’, ‘전자기와 양자’, ‘물질과 에너지’로 나뉘었다. 일반 물리학을 배우지 않고 ‘역학과 에너지’만 선택해 배울 수 있다.
학생은 그 중 일부만 선택할 수 있지만, 과학은 위계가 있는 학문이다. 기초 개념을 배우지 않은 채 ‘선택’만 허용된 구조는, 결국 학습의 단절과 왜곡을 낳고 있다.
비슷한 이름의 과목들도 혼란을 키운다. ‘기후변화와 환경생태’와 ‘기후변화와 지속가능한 세계’는 언뜻 비슷하지만 전자는 과학, 후자는 사회 과목이다. 학생과 학부모는 과목명만 보고는 구분이 어렵다.
공통과목, 일반선택, 진로선택, 융합선택 등으로 나뉜 156개 과목은 평가 방식에서도 또다시 혼란을 만든다. 5등급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병기, 3등급 절대평가, P/F까지 뒤섞여 있다. 그 중 무려 119개 과목이 상대평가다.
한 줄 세우기 평가제도에서 진로와 적성에 따른 과목선택이 가당키나 한가? 그 혼란의 대가는 고스란히 학생과 교사에게 돌아간다.
불안의 사슬, 공교육의 붕괴
그에 더해 대학은 권장이수과목을 발표한다. ‘우리 학교 00과에 오려면 이런 과목을 듣고 오라’고 말한다. 그러면 학교는 또다시 교육과정을 뜯어고친다. 이미 짜둔 교육과정을 대학에 맞추느라 갑자기 바꾸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느 과목은 4학점이 3학점이 되기도 하고, 없던 과목이 갑자기 추가되기도 한다. 결국 학생들은 배워야 하는 과목이 늘어나며 부담을 지게 되고, 한정된 시간 안에 더 많은 내용을 배우느라 학습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이 혼란 속에서 학생들은 상대평가의 공포에 시달린다. 100개가 넘는 과목이 개설되어도, 결국 아이들은 등급을 잘 받기 위해 친구들이 많이 듣는 과목을 따라간다.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등급을 위한 선택이 반복되는 것이다.
결국 학생 수 많은 학교, 교사 많은 학교만 살아남는다. 고교학점제는 지역 간 교육 격차를 키우며, 결국 지역소멸까지 부추기고 있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말 아이들을 위한 것인가?”
복잡함이 아니라 단단함이 필요하다
교육은 단순해야 하고, 명확해야 하며, 신뢰 위에 서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고교학점제는 ‘선택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복잡한 제도는 늘 사교육을 낳고, 불안을 키우며, 공교육을 무너뜨린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선택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안정된 교실이다.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아이들은 교육이 아닌 경쟁의 실험대 위에 남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