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캐나다 온타리오주 동남권 여러 학교에서 보결 교사로 근무하는 정은수 객원기자가 기자가 아닌 교사의 입장에서 우리에게는 생소한 캐나다 보결 교사의 하루하루를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소개한다.(연재에 등장하는 학교명, 인명은 모두 번안한 가명을 쓰고 있다.) |

나이 마흔여덟에 정체성 혼란이라니 싶겠지만, 수학 이야기에 이어 보결 강사의 일상과 교과 전공에 관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싶다.
이곳에서는 보결 교사뿐만 아니라 정규 교사도 동일 교과군이 아닌 교과를 복수로 전공하는 경우가 흔하다. 자격증의 전공 교과는 교육대학을 다니기 전 학부 전공과 관련된 교과로 정해지지만, 예비 교사들은 취업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학교에서는 원활한 학점제 운영을 위해 복수전공을 선호한다. 특히, 중등 교사는 두 개의 전공 교과가 필수이다.
실습 때 사회과 교무실에서 한 번 부전공 이야기 나왔는데, 대부분 역사, 지리, 일반 사회가 전공이지만, 부전공은 체육, 프랑스어, 일반과학 등 다양했다. 사회 교과군 복수 전공을 한 교사도 다른 분야 전공을 하나 더 갖고 있기도 했다.
이런 게 가능한 이유는 관련 학점만 충분히 이수했다면 120시간 정도의 연수를 통해 부전공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전공 자격연수에 필요한 학점은 해당 교과 교육과정 관련 과목을 4개 들으면 된다. 학점이 부족하면 학점제로 취득할 수도 있고, 교사가 부족하고 시험으로 변별이 확실한 프랑스와 수학은 시험으로 교과 전문성을 위한 학점을 대체할 수도 있다.
체육? 수학? 과학?
지금은 주전공 교과 자격을 미술로 취득했지만, 처음 썹쌤 일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아직 자격증이 나온 상태가 아니었다. 자격증 전환 시 교사협회에서 대학 성적표를 보고 결정하는데 필자의 경우는 미술, 사회과학, 역사, 가정 등 여러 가능성이 있었다.
당시 퀸즈대 자격연수 부서에서는 사회과학이나 역사가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실습도 역사로 하긴 했지만, 매일 다른 과목을 가르치는 현실에서 가끔은 교과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아무래도 수업이 성공적이거나 쉬우면 이 교과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직 전공 교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는 스스로 무슨 과목 교사인가 혼란이 오기도 했다.
수학 말고도 별로 수업 준비 부담 없이 가르칠 수 있고 퍼포먼스로 아이들을 집중시킬 수 있는 수업들이 있었다. 페이스북 릴스에서 중학생 상대로 스포츠 실력을 뽐내고 찬사를 받기 위해 체육 선생님이 됐다는 농담 반의 얘기를 하는 교사처럼 말이다.
축구를 이십 대 때까지 취미로 했기 때문에, 체육 수업 때 축구팀 간의 균형을 맞춰준다는 명분으로 약팀에서 같이 뛰면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어 잠시 고민한 적도 있다.
잘하지는 못해도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배우는 운동 경기의 규칙과 기본자세도 대충 아니까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동기 중에 체육 전공이 아닌데도 야외 활동을 좋아해 체육 부전공을 딴 경우도 있어 더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다른 예로 화학 수업 때는 기즈모 앱을 쓰지 않고도 칠판에 분자 모형 몇 개 만들어주면서 막힘없이 질량 전하량 뽑아줬더니 애들이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하면서 집중을 끌어모을 수 있다. 그날 수업도 고등학교 비인기 교과치곤 잘 됐었다.
중학교 과학 수업은 좀 더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도 가르치기 쉽고 필자가 좋아하는 실생활 체험이나 핸즈온 활동으로 이끌어가기 좋다 보니 대부분 잘 되는 편이기도 했다.
사실 영어 수업도 특히 작문이든 문학이든 독해든 수업이 쉽게 되는 편이라서 괜찮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언어는 달라도 작가 지망생이었던 덕에 기본적인 문법적, 문학적 지식은 있기 때문이다.
정말 못 하겠다 싶은 과목도 발견
이렇게 자신에게 쉽고 잘하는 것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어려운 것도 경험을 통해 좀 더 명확해지기도 한다.
11~12학년 심화 교과 수학은 가르칠 자신이 없다. 우리랑 용어도 접근법도 너무 다르고 상황 중심의 문제가 많다 보니 한국에서의 수학 학습의 기억으로만 극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학을 배워본 게 벌써 30년 전이니.
그렇게 “고교 심화 수학이나 물리는 따로 다시 공부하지 않으면 못 가르치겠구나.”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체육도 뭔가 보여줄 수 있는 종목이 아닌 걸 가르칠 때는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중학생 체육 수업은 도저히 자신이 없고, 학생들이 말을 따라주는 고교에서는 축구 말고 애들 상대로 뭐라도 더 잘할 수 있는 게 없어 일찍 관심을 접게 됐다. 요새는 선택할 기회가 있다면 체육 수업 대신 교과 수업을 선택한다.
자격만 있으면 졸업 즉시 취업이 가능하다는 프랑스어도 중학교에서 성공적인 수업 이후 관심을 가졌지만 일단 부족한 학점이나 어학 능력 이전에 분량과 설명이 많아지는 고교에서 수업해 보니 감독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는 수준이라 포기했다.
프랑스어 다음으로 취업에 장점이 있다는 음악 수업도 어느 날 고교에서 기악 합주 수업을 하고 나서 포기했다. 동시에 여러 악기 소리가 나면 누가 틀렸는지 누가 잘하고 있는지 파악이 안 되는 수준의 청음 능력으로는 아무리 이론을 알아도 할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결국 주전공은 미술, 부전공은 수학과 역사로
그렇게 지난해 12월에 받은 자격증은 미술이 주전공으로 나왔다. 그때까지는 단 한 번도 보결 기회가 없었지만, 수업 아이디어가 가장 많이 떠오르는 교과라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초등학교 담임을 할 때도,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생을 할 때도 가장 즐겁게 수업했던 교과기도 하다. 종종 다른 교과 수업을 할 때도 미술 융합을 했었고. 미술 심화 교과 중에는 다소 경험이 있는 만화나 출판 디자인 수업도 있기 때문에 심화 교과도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결국 중등 기초(7~10학년 ) 수학 부전공 자격연수를 받고 있다. 처음에는 이수학점이 부족해서 포기했다가 동기 미술 선생님이 시험으로 학점을 대체하는 자격연수 과정을 이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택하게 됐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거의 한 학기를 다 가르쳐본 역사가 가르치는 것도 제일 쉽고 개인적인 흥미도 가장 많긴 해서 여름 방학 때는 역사 부전공까지 추가할 계획이다.
지역사를 활용해 필자가 좋아하는 실생활 연결할 거리도 무궁무진한데, 12학년 심화 교과도 다양한 설명을 해가며 강의를 할 수 있을 정도기도 하고, 기자라는 직업이 하는 일도 사실 역사와 많이 중첩되기에 더욱 그렇다.
여유가 된다면 지리도 몇 번 해본 수업으로는 역사 못지 않게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수업 계획도 떠오르고, 재미있을 것 같기는 하다.
여러 과목을 가르치면서 보상으로 얻는 정체성
다양한 수업 경험을 하면서 대집단 전체를 이끌어가는 것보다 어려움이 있는 소수의 학생에게 맞는 수업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게 더 보람도 있고 즐겁기도 해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의사소통 학급 지도를 또 하고 싶기도 하다.
행동 장애나 중증 프로그램은 자신도 없고 특수 전담으로 수리, 문해도 안 가르치고 싶으니 특수 전문 자격을 딸 생각은 없지만, 특수 초급을 중급 자격까지는 올리고 이미 있는 자폐 학생 지도 자격까지 하면 의사소통 학급 적임자가 될 것 같긴 하다.
아무튼, 이렇게 경험을 통해 교사로서 스스로 정체성도 조금씩 형성해 간다는 게 보결 교사로 여러 과목과 학교급을 넘나들며 가르쳐보는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의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