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썹쌤일기] ㉒매번 쉽지 않은 ‘학교에서 사회로’ 과정

  • 등록 2025.12.06 11:4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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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캐나다 온타리오주 동남권 여러 학교에서 보결 교사로 근무하는 정은수 객원기자가 기자가 아닌 교사의 입장에서 우리에게는 생소한 캐나다 보결 교사의 하루하루를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소개한다. (연재에 등장하는 학교명, 인명은 모두 번안한 가명을 쓰고 있다.)

 

 

“오늘은 서대원 선생님 대체예요.”

“‘학교에서 사회로’ 과정이네요?”

“맞아요. 수업 계획은 아직 없지만, 합반 수업도 많고... 그냥 ‘학교에서 사회로’ 과정 선생님들 수업 계획 시간 맡아주는 거예요. 특수 교육 보조 선생님들이 일과를 아니까 별로 할 거 없이 편할 거예요.”

“네, 아마 그렇겠죠?”

“‘학교에서 사회로’ 교실 위치는 아시죠?”

“그럼요, 감사합니다.”

 

지난주 목요일 보결을 하러 갔을 때였다. 한동안 보결 연락을 받지 못하다 이미 첫 수업이 시작했을 때 뒤늦은 연락을 받고 갔더니 그동안 기피해 왔던 ‘학교에서 사회로(School to Community)’ 과정 보결 수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행정실장님은 ‘편한 하루’라고 했는데 기피했다니 의아할 수도 있지만, 별로 할 게 없다는 상황이 꼭 좋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편하게 있다가 일당 받고 가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편한 수업이 맞기는 하다.

 

그래도 교사라면 뭔가 가르치는 게 낫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는 게 편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학생들을 위해 별로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이 일당을 받아 가는 게 영 마음에 걸리기도 한다.

 

게다가, 아무것도 할 게 없으면 차라리 대학 진학 과정 심화 수업 자습 시간처럼 아예 대놓고 노트북으로 뭔가다른 일이라도 하고 있을 수 있는 상황이 낫지, 학생들에게 기기를 사용하는 모습이 자극이 되고 모범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사회로’ 과정 교실은 그러지도 못한다.


통합교육의 이면, 이름만 다른 특수반


학생들이 다른 수업과 다른 이유는 ‘학교에서 사회로’ 과정의 성격 때문이다. 이름은 ‘학교 졸업 이후 사회 적응을 미리 돕는다는’ 의미에서 붙여졌지만, 이미 진로 교과도 있고, 부모 교육이나 자기 관리, 개인 건강이나 재무 관리, 취업 실기 과정도 있고, 각종 진로지도 지원 교사도 있는 마당에 별도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은 중증 장애 학생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결국 명분은 교육적 의미를 부여했지만, 중증 장애 학생들만 있는 특수학급인 것이 현실이다. 물론 우리나라로 치면 특수학교를 다녀야 할 정도의 중증 장애 학생이 절반쯤 되는 학급이 일반 학교 특수반으로 있고, 하루의 절반은 일반 학급과 함께 합동 수업을 하니, 통합은 좀 더 잘 되는 거겠지만, 결국 이름만 다른 특수학급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과정을 다닐 수 있는 자격 자체도 다른 학급에서 교육적 유익을 누리기 어려울 정도로 충분히 중증이라는 특수교사의 추천이 있어야 한다. 그냥 학교 공부보다 사회 진출 준비에 집중하겠다는 학생들에게 개방되는 과정이 아니다. 이 때문에 이 과정에는 보통 고교 졸업 연령이 한참 지난 21세까지 다닐 수 있다.


공부보다는 자립을 위한 생활 기술을 배우는 시간


그뿐만 아니라, 수업 내용도 단순히 학습에 지원이 필요하거나 학습이 몇 학년 뒤처진 학생들이 배우는 내용이 아니다.

 

1교시는 교직원에게 커피를 배달하는 시간이다. 경제적 자립을 위해 최소한 일정하게 반복적인 과정이 이뤄지는 일이라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커피가 준비됐으면 고객한테 뭐라고 하지?”

“선생님, 커피 준비됐어요.”

 

“복도에서 이동할 때는 카트 뒤에서 가는 거잖아.”

...

 

“자, 공부하는 반 수업 방해하지 말고, 목소리 낮춰야지.”

...

 

물론 단순히 커피 타고 접대하는 법만 배우는 게 아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사회적 상호작용과 간단한 업무 처리법을 배운다. 주문은 어떻게 받는지, 손님에게 뭐라고 인사하는지 등 사회적 의사소통을 하는 법을 배우고 주문 받은 상품을 찾아서 준비하는 등 매뉴얼에 따라 일하는 법을 배운다.

 

또, 복도에서 커피 카트를 밀고 가는 과정의 안전 규칙 준수를 배우고, 복도에서 기다릴 때 다른 학급이나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하는 사회적 존중의 규칙은 뭔지 등을 배운다.

 

다녀와서도 서로 역할을 분담해 정리하도록 지도한다. 배달할 때 썼던 재료를 제자리에 놓고, 간단한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지만, 협동을 배우고, 절차에 따라 일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커피 배달이 완료되면, 시간 지킴이는 출발 시간과 도착 시간을 기록한 다음, 배달에 걸린 시간을 계산하는 간단한 뺄셈과 시간 개념을 연습한다.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사회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생존 기술을 배우는 셈이다.


전형적인 통합 활동, 짝 활동으로 함께하는 체육 시간


상지고에는 ‘학교에서 사회로’ 과정 학급이 둘이라 그 다음 시간부터는 요일이나 학급에 따라 일정이 다르지만, 보통의 하루 일과를 소개하자면 한두 시간 정도는 체육이나 댄스 등의 합반 수업을 한다.

 

체육 수업은 일반 학급 학생과 ‘학교에서 사회로’ 학급 학생 한 명씩 짝을 지어 활동한다. 일반 학급은 11~12학년 학생들이며, 수업도 학생 중 한두 명이 직접 진행한다. 체육 교사가 전체적인 과정을 관리·감독하지만, 활동 내용을 준비하는 것도, 설명하고 진행하는 것도 학생들이다.

 

장애 학생들에게는 일반 학생과 어울릴 기회이자 꼭 필요한 신체활동을 할 기회가 되고, 일반 학생들에게는 장애인과 동행하는 경험과 활동을 지도하는 경험이 쌓인다. 보통 통합교육을 홍보하는 영상에서 가장 볼 법한 장면이 나오는 통합 수업이다.

 

특수교사와 특수교육 보조 선생님들은 체육관까지 학생들을 안전하게 데리고 가고 짝을 지어 주고 나면 대부분의 학생들을 직접적으로 보조하지 않는다. 휠체어 정도의 어려움이 있어도 짝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체육 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학생들도 어떻게든 체육관까지 함께 가서 안전한 짐볼에 앉아 소음 차단기와 의사소통 보조 기기 등을 이용하는 시간을 가진다.

 

일부 신체 활동은 참여할 수 있지만, 규칙이 있는 체계적인 활동은 하지 못 하는 학생도 있다. 그런 학생은 별도로 모두의 안전을 위해 특수교육 보조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다만, 그날 상태나 장애의 종류가 체육관 활동 자체가 어려운 경우에는 특수교육 보조 선생님이 교실에 남아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댄스 합반 수업은 이론 학습도 포함돼 있고, 안무를 직접 시연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서 일상 기능이 많이 어려운 학생은 참여하기 어렵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일반 학생이 많이 있다 보니 한 모둠에 한 명 정도 장애 학생이 끼어 활동하는 상황이라 특수교육 보조 선생님들도 좀 더 여유가 있어 좀 더 많은 중증 장애 학생이 특수교육 보조와 함께 교실에 남고 나머지 학생들은 활동을 하러 간다.


때로는 합반으로, 때로는 집중 지도를 통해 수준별 교과 학습


체육이나 댄스 외에는 요일에 따라 한두 교시 정도는 기초적인 문해나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 수업을 ‘학교에서 사회로’ 교실에서 하거나 일부 기초적인 문해가 되고 다른 학습이 가능한 학생은 수학, 과학, 지리, 역사 등 일반 교과 교실로 이동해 수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런 합반 수업은 대부분 가장 학습이 뒤처진 일반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듣는다. 9~10학년에서는 실용 계열 수업을 듣고(계열 통합이 진행 중이지만, 일부 교과는 아직 분리돼 있다) 11~12학년 수업을 들을 때는 지역 특색 계열(주로 장애 학생을 위해 교육청에서 자체 승인한 과정)이나 취업 계열 수업을 듣는다.

 

‘학교에서 사회로’ 과정과 합반하는 일반 교과 학급은 보통 10명 내외의 소수 학급으로 운영되고, 일반 학생도 학업 성취가 많이 뒤처지는 학생이라 특수교육 보조 선생님도 한두 명 참여한다. 그 외에 학생 도우미나 자원봉사자도 함께해 수업의 내용도 실생활과 기초 지식에 초점이 있지만, 개별 혹은 2~3명의 소그룹 지도로 수업을 하는 환경이기도 하다.  

 

장애의 종류에 따라 때로는 해당 학년의 나이일 때는 힘들어도, 몇 년 간의 집중적인 개입으로 후에 나이가 들어서 진학 계열의 심화 선택 수업까지 듣는 학생도 있다. 21세까지 과정을 열어놓는 의미는 여기에도 있다. 물론 한 학기에 두 학점씩만 들어도, 21세가 되기 전에 고교 졸업에 필요한 30학점을 이수할 수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합반하지 않고 하는 언어 수업은 주로 기초 문해와 사회적 의사소통에 초점을 맞춰 진행한다. 보통 교사가 진행하는 시간 일부와 개별 활동 시간으로 나눠 진행하는데, 유치원이나 초등 저학년 수업과 비슷한 느낌의 동화책 읽기를 하면서 내용 이해를 묻기도 하고, 다 같이 노래를 부르면서 각자의 필요에 따라 발음과 발표 연습을 하기도 한다.

 

 

개별 활동은 각자 장애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활동지를 이용할 때도 있고,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여러 지원 프로그램을 활용해 개별화하기도 한다.

 

개별화의 차원이 다른 만큼, 수업 준비의 부담도 남달라서 똑같은 특수교사라도 ‘학교에서 사회로’ 학급 담임은 하루의 절반이 수업 준비 시간이다. 이날 대체를 했던 교사는 두 담임의 준비 시간을 담당하는 교사였다.

 

두 교시씩 다른 교실에서 보냈는데, 그러면 그 선생님은 준비 시간이 따로 없게 된다. 그렇게 운영하는 것은 1교시의 커피 배달은 특수교육 보조 선생님들이, 합반 수업은 해당 과목 담당 교사가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한 시간 정도만 직접 수업을 진행했다.


선생님도 학생도 같은 공간에서 휴식과 식사를 


이렇게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4교시의 일과를 보내지만, 대부분 75분 수업을 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수업 시간 사이에 일반 학생에게는 없는 간식 시간이 있다. 또한, 수업 중간중간 이동 시간도 5분이 아닌 15분을 배정하고 있다.

 

간식 시간에는 특수교육 보조 선생님들도 교실 한쪽에서 휴식 시간을 갖는다. 갑작스러운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주로 교사 휴게실을 이용하거나 외부에 나가는 다른 선생님들과는 달리 특수교사나 특수교육 보조 선생님들은 학생들과 같은 공간에서 식사한다. 물론 담임도 별도의 교과 교무실이 없이 바로 교실에 붙어 있는 작은 방을 사무실로 사용한다.

 

 

학교 전체 특수교육 보조 선생님들의 휴게실도 이 ‘학교에서 사회로’ 교실과 연결된 공간에 있다. 그러다 보니 점심시간에는 이 학급 학생들을 전담하지 않는 특수교육 보조 선생님들도 만나게 된다.

 

또한, 일반 학생들은 수업 중 활동을 다 했다고 스크린 타임을 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학급에서는 아예 자유 스크린 타임도 제공된다. 과도한 부담과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하루를 마치면 일부 학생은 스쿨버스를 타고 일부 학생은 시에서 제공하는 장애인 버스를 이용한다. 그 때문에 수업이 끝나도 학생들 옷 입는 것부터 안전하게 버스에 오를 때까지 특수교육 보조 선생님들이 책임진다.


쉬울 거라고 했지만, 항상 어려운 ‘학교에서 사회로’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학교에서 사회로’ 과정에서는 특수교육 보조 선생님들의 역할이 핵심이 되는 이유도 설명한 것 같다. 커피 배달 시간뿐만 아니라 모든 이동과 개별화 수업에도 중심이 되고, 각종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과 교감을 하기 때문이다.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 각 교실에 상주하는 특수교육 보조 선생님이 세 명씩 있다. 그리고 커피 시간 외에도 대체 교사가 왔을 때는 그중 경력이 많은 선생님이 상황을 이끌어주고 학생들 대부분은 특수교육 보조 선생님이나 또래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서 수업 활동을 한다.

 

이렇게 세 명의 다른 어른과 함께 교실을 이끌어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행정실장님은 다 대신해 주니까 쉬운 하루가 될 거라고 했지만, 워낙 고참 특수교육 보조 선생님이 이끌다 보니 어느 시점에 맡겨야 하고 어느 시점에 이끌어야 하는지도 어렵다.

 

마지막 수업에서 계획대로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특수교육 보조 선생님이 의견을 주셨다. 일정이 조금 늦어져 온라인 개별 학습 프로그램에 접속하는 데도 한참 걸리고 접속하고 나면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을 거 같으니 하지 말고 그냥 자유 스크린 타임을 줘야 한다고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현장에 있는 사람하고 맞추는 게 우선이고 이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더 잘 아시니 그냥 그렇게 진행하는 수밖에 없지만, 수업 계획을 진행할 거라고 기대하고 맡긴 선생님과 특수교육 보조 선생님 사이에서 난감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

 

특수교육 보조 선생님들이 알아서 하도록 또 그냥 다 맡겨두면 고민할 거 없이 돌아가기는 하겠지만, 엄연히 결근하신 선생님의 수업 계획이 있는데 손 놓고 있는 건 보결 교사로서 평판도 신경 쓰이고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 그러지도 못 한다.

 

이렇게 교사와 특수교육 보조 사이의 역할 긴장이 있어서일까. ‘학교에서 사회로’ 과정의 한 학급 담임 선생님은 방문 앞에 자신에 관한 여러 표현을 써 붙여놨는데, 액세서리 수리공, 포옹 전문가, 치료사, 상담자 등에 이어 ‘특수교육 보조 보조’, ‘특수교육 보조 비서’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그만큼 특수교육 보조 선생님들에게 맞춰서 일한다는 표현이리라.

 

그렇게 어른 여럿이 같이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에서 사회로’ 교실에서는 항상 역할의 애매한 선을 잘 지키고 있는지에 대한 긴장감이 있는 데다가 전문성이 부족해 장애 학생들을 많이 도와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어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불편한 하루가 지나간다.<계속>

정은수 프론트낵고 긴급 보결 교사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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