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더하기-송미나] 사회정서교육 "감정의 교육인가 학습의 교육인가"

  • 등록 2025.04.27 10: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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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EL 본질에 대한 비판적 고찰

 

더에듀 | 교육부는 2025년 올해부터 ‘한국형 사회정서교육(K-SEL)’을 야심차게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2024년 한 해 동안 전담 부서인 ‘사회정서성장지원과’를 신설하고, 초등 저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학교급별 4단계 6차시 중심의 프로그램 모듈을 개발하였다. 또한 120여 명의 핵심 강사와 전국 시도교육청의 선도 교원 약 600여 명을 양성했으며, 현재 ‘함께학교’ 플랫폼을 통해 교사용 지도서, 학생 워크북, 수업용 PPT 자료 등을 현장에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이러한 시범 운영을 바탕으로 올 3월부터는 전국 학교에서 K-SEL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제부터는 정책의 실행 그 자체보다, 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과 철학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이 정책의 성패는 핵심요원과 시도교육청 선도교원의 전문성과 SEL 해석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K-SEL이 단순히 ‘마음 건강’이나 ‘정신 건강’, 혹은 ‘감정 표현’에 머무르지 않도록 해야 하며, 학생의 학습 동기와 성장을 촉진하는 ‘사회정서학습(Social and Emotional Learning)’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SEL의 본래 철학과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고 현장에 맞게 재정립해야 한다.

 

학생들의 정서적 안정, 공감 능력, 대인 관계 기술 등을 기르겠다는 이 정책은, 현재 정서적 어려움에 처한 학생들을 위한 시대적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지점에서 반드시 질문해야 한다.

 

▶ 이미 학생의 인권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인권 개념을 넘어, 어떤 법적 주체보다도 특별한 보호의 대상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정서적 위기와 학교폭력은 여전히 감소하지 않고 있는가?

 

▶ 학생의 인권은 특별법에 의해 과잉 보호되고 있는데, 정서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공감 능력과 대인 관계 역량이 오히려 저하되고 있다면, 그 근본 원인은 어디에서부터 진단해야 하는가?

 

▶ 과연 무엇이 결핍된 것인가?

 

▶ 무엇이 넘치고, 무엇이 과도하게 투여되어 오·남용되고 있는가?

 

▶ 무엇이 여전히 제대로 보충되지 못하고 있는가?

 

교육정책이 ‘보호’와 ‘배려’라는 언어를 강화해 온 지난 10여 년 동안, 정작 학생들은 자기 내면을 견고히 구축할 수 있는 학습 기반의 성찰과 실천의 기회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육은 ‘결핍’을 메우는 일이 아니라,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감정을 잘 다루는 아이’를 넘어서, ‘학습을 통해 성장하는 아이’를 제대로 기르고 있는가를 되물어야 한다.

 

SEL은 학생들이 자기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며, 타인과 협력하고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전인교육의 핵심 요소다. 그러나 SEL이 교육의 목표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SEL은 학습과 성취, 실천을 위한 기반이지, 그것 자체가 종착점이 될 수 없다.

 

K-SEL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 CASEL(Collaborative for Academic, Social, and Emotional Learning)이 정립한 SEL의 핵심 목적은, 학생들이 건강한 정체성을 형성하고 감정을 조절하며, 개인적·공동의 목표를 성취하도록 돕는 데 있다. 즉, SEL은 성취와 실천, 곧 학습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완성되는 구조를 지닌다.

 

‘마음’ 과 ‘정신’이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영역에 기반하여 감정 안정 활동만 반복하고, 공감 능력만을 강조하는 교육은 심리적 위로를 제공할 수는 있어도 학업적 성장을 이끌어 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교육부가 개발한 한국형 SEL 모듈은 다음과 같은 중대한 오류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SEL의 본래 개념이자 국제적 기준(Global Standard)으로 자리 잡은 CASEL의 역량 체계에서 이탈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K-SEL 4대 영역과 6개 핵심역량의 구조적 문제이다.

 

K-SEL의 4대 영역과 6개 핵심 역량은 일부 기본 역량(자기인식, 자기관리, 사회적 인식, 관계기술)에서 개념적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적 상황을 고려한다는 명분으로 새롭게 추가된 '마음건강 인식·관리'와 '공동체 가치 인식·관리' 역량에서는 층위 혼합과 범주 오류가 발생하여 전체 구조의 논리성과 발달적 일관성을 훼손하고 있다.

 

특히 모듈 방식으로 운영되는 K-SEL 특성상, 역량 간 위계 질서와 심화 경로가 명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설계는 학습자 발달 단계를 고려한 체계적 구조를 갖추지 못해, 현장 실행과 평가 모두에 혼란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둘째, 마음건강 인식·관리 영역의 문제이다.

 

'마음건강'은 본래 마음챙김(mindfulness)의 영역으로, 감정, 사고, 행동을 통합적으로 조절하는 뇌과학 기반 자기조절 체계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그러나 K-SEL은 ‘마음건강’을 단순한 감정 표현 차원으로 축소해 다룸으로써, 본래 뇌과학 기반 자기조절 및 학습 촉진 기능을 놓치고 있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감정 표현에는 익숙해질 수 있으나, 실제로 감정을 조절하고 목표 지향적 행동으로 실천하는 역량을 체계적으로 개발하는 데는 실패할 위험이 크다.

 

셋째, 공동체 가치 인식·관리 영역의 문제이다.

 

'공동체 가치 인식·관리'는 단순한 사회적 인식 차원이 아니라, 윤리적 가치 내면화와 실천을 요구하는 고차적 역량이다.

 

그러나 현재 K-SEL에서는 사회적 인식(타인의 감정과 관점을 이해하는 기초적 능력)과 공동체 가치 인식·관리(윤리적 실천까지 포함하는 고차적 능력)를 구분 없이 병렬 배치하고 있다.

 

이는 학교급 발달을 고려했다는 주장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발달적 순차성(logical sequencing)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로, 기초 인식조차 충분히 갖추지 못한 학습자에게 고차적 윤리 실천을 요구하는 구조적 모순을 초래하고 있다.

 

넷째, 문화적 조정과 구조적 정합성의 훼손이다

 

K-SEL은 한국적 상황을 고려하여 '공동체'와 '마음건강'을 추가하였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추가는 교육과정 설계의 구조적 정합성을 정당화할 수 없다.

 

문화적 조정(cultural adaptation)은 허용될 수 있으나, 핵심 구조(competency 중심 구조)와 범주 일관성(category consistency)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

 

이를 무너뜨린 현재의 K-SEL은 본질적 설계 오류를 내포하고 있으며, 오히려 ‘문화 반영’이라는 이름 아래 ‘개념 왜곡’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귤이 강을 건너 탱자가 되듯, 한국형이라는 이름을 다는 순간 본래의 개념이 변형되고 만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오류를 시정하지 않을 경우, 교육 목표와 교수·학습 설계의 논리적 일관성이 훼손되며, 학생 발달의 과정과 성취를 구체적으로 지원하거나 평가하는 데 심각한 한계가 발생할 수 있다.

 

다섯째, SEL은 과정(competency)이지, 특정 가치(value)를 주입하거나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CASEL은 사회정서학습(SEL)을 학생들이 사회적·정서적 역량(competency)을 학습하고 적용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접근은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감정, 사고, 행동을 조절하고,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을 둔다.

 

CASEL의 공식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사회정서학습(SEL)은 모든 청소년과 성인이 건강한 정체성을 형성하고, 감정을 조절하며, 개인적·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고, 타인에 대한 공감을 느끼고 표현하며, 지지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고, 책임 있고 배려 있는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지식, 기술, 태도를 습득하고 적용하는 과정이다’고 되어 있다.

 

이 정의가 보여주듯, SEL은 특정한 도덕적 가치나 행동을 강요하거나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 학생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둔다. 따라서 SEL은 가치 주입이 아닌, 역량 개발을 위한 교육적 접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K-SEL이 '공동체 가치 인식·관리'와 같은 특정 가치를 별도 핵심역량으로 설정하고 이를 강조하는 것은, CASEL의 철학과 구조를 오해하거나 변형한 결과라고 볼 수 있고 이는 SEL의 본래 취지와도 어긋난다.

CASEL은 공동체 가치를 SEL 과정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기대할 뿐, 이를 직접 교육 목표로 삼거나 독립된 역량으로 설정하지 않는다.

SEL은 특정 가치를 주입하기보다, 학생들이 건강한 정체성과 관계를 스스로 형성할 수 있도록 학습 기반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K-SEL이 SEL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려면, 특정 가치를 강조하기보다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사회적·정서적 역량을 개발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재구조화되어야 한다.

 

 

역량(competency), 상태(state), 가치(value)는 교육적 성격과 층위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CASEL은 이러한 층위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여, 학습 가능한 역량만을 중심으로 설계함으로써 교육 목표, 과정, 평가의 일관성을 확보했다.

 

반면, K-SEL은 이 층위 구분을 무시하고 역량-상태-가치를 병렬로 배열함으로써 구조적 일관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갈등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갈등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능력, 또는 윤리적 기준과 사회적 규범에 따라 건설적이고 배려 있는 결정을 내리는 태도와 책임 있는 행동을 가르치기보다는, 감정 표현과 공감 능력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것은 교육적 의미를 갖춘 SEL이라기보다 단지 ‘좋은 감정 훈련’에 머무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학생들은 공감은 잘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상태, 다시 말해 감정은 표현할 수 있으나 행동에는 책임지지 않는 태도에 머무를 위험이 크다.

 

교육이 감정에만 머문다면, 배움과 성장은 멈춘다. 학교는 학생이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세상과 연결될지를 학습을 통해 탐색하고 알아가며 성장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사회정서교육 프로그램이 학습의 발판이 되지 못한 채, '마음건강'과 '정서 안정'이라는 ‘상태’와 ‘정서’ 중심으로 집중되어 운영된다면, 그것은 곧 학교교육의 본질을 위협하는 일이 된다.

 

공감 역시 예외가 아니다. 공감이 도덕적 감정에 머무를 뿐, 책임 있는 의사결정과 실천이라는 도덕적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사회정서교육의 본래 의미는 상실된다.

 

우리는 학생들이 단순히 '착한 아이'로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할 수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그러나 지금 도입되고 있는 K-SEL은 과연 그러한 길을 열고 있는가?

 

‘마음 표현하기’, ‘감정 이해하기’에 머무르는 수업에서, 학생들은 자기 내면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고 갈등을 효과적으로 조정하며 윤리적 기준에 따라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는 방법까지 배우고 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갈등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이나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능력’이 핵심역량에서 제외되었다는 점은 K-SEL정책 설계의 방향이 학생에게 정서적 위안을 제공하지만, 성장을 위한 도전은 유예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정서적 위기를 극복하도록 돕는 것과 정서적 상태에 머무르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SEL은 학생들이 감정의 중심을 단단히 다지고, 그 위에 학업과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내적 역량을 기르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만약 SEL이 학업과 균형을 이루지 못한 채 운영된다면, 우리는 결국 ‘공감은 잘하지만 학업 수행은 어려운 아이’를 양산하는 교육을 정당화하게 될 것이다.

 

‘교육’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이상과 추상의 언어다. 그러나 학교에서 교육이 실제로 기능하려면, 그것은 반드시 ‘학습’이라는 실행 언어로 전환되어야 하며, 교사는 그 실행 언어에 대해 전문성과 권한을 지닌 주체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아무리 철학이 뛰어나고 취지가 훌륭한 교육정책이라 해도, 그것이 학생의 말과 몸, 생각 속에서 반복과 훈련, 성찰과 연습의 과정을 거쳐 축적되는 ‘학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잘 설계된 일회성 ‘정서적 이벤트’일 뿐이다.

 

K-SEL은 공동체 가치 실천을 고차적 심화 역량으로, 마음건강 관리는 감정·사고·행동을 통합하는 뇌과학 기반 자기조절 훈련으로 재정의하고, 모든 역량 간 위계 질서와 발달 순서를 체계적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육정책이 그러했듯, 학습으로 충분히 전환되지 못한 교육정책은 결국 학생에게 의미 있는 배움의 경험을 제공하지 못한 채,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조용히 퇴장하는 정책의 패잔병으로 남게 된다.

 

학교교육의 본질은 언제나 배움과 학습에 있다. 성장의 언어는 감동이 아니라 축적된 학습의 경험이고, 감정이 아니라 반복된 실천의 과정이다. 학교는 그 배움이 일어나는 공간이며, 모든 교육정책은 그 배움을 가능하게 만드는 수단이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 ‘사회정서교육’이라는 정책 언어는, 학교교육을 책임지는 교사들에게 반드시 ‘사회정서학습(Social and Emotional Learning)’이라는 실행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 이 전환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정책은 교육이 되고, 교육은 실제 교실에서 살아 움직일 수 있다.

송미나 광주 하남중앙초 수석교사/ 한국교육정책연구소장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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