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나의 THE교육] 행정실 법제화③ 교원에게 씌운 '비공식', 관행이 되어 돌아왔다

  • 등록 2025.07.13 11:4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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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초중등학교 행정실 법제화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발의 이후 교육청공무원단체와 교원단체의 찬반이 격화하고 있다. 서로의 입장에 따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이때, <더에듀>는 송미나 한국교육정책연구소장(수석교사)가 바라보는 행정실 법제화의 법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살피며, 독자들의 판단 근거를 넓히는 데 도움되고자 한다.

 


현실 왜곡 1: ‘교무 행정업무’ 개념의 법적 공백과 교원의 비공식 행정노동


현재 대부분의 초·중등학교에서 교사는 ‘교무 행정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교무부, 연구부, 생활지도부, 정보부, 혁신부 등 이름 붙여진 교내 부서는 사실상 교육청 공문 이행과 각종 보고 업무를 분장하여 수행하는 실무 단위이며, 많은 교사가 이러한 행정성 업무를 일상적으로 떠맡고 있다.

 

그러나 역설이게도 이러한 현실을 지탱하는 법적 근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우선 ‘교무 행정업무’라는 용어 자체가 현행 법령 어디에도 정의되어 있지 않다.

 

‘초·중등교육법 제20조’는 교원의 직무를 ‘학생을 교육하는 일’로 명시하고 있으며, 교육과정 운영에 필요한 활동 즉 학교라는 필드에서 직접 수행이 가능한 업무와 관련된 수업과 생활지도, 평가, 상담 등이 교사의 법정 직무 범위다. 교육청발 공문에 따른 일반 행정업무는 교원의 법적 직무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오늘날 교사가 학교의 전방위적 행정업무를 수행하게 된 배경에는 ‘업무분장표’라는 비공식 문서가 있다. 이 분장표는 대부분 학교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편성되지만, 실질적으로는 교육청의 지침과 관행에 의존해 구성된다.

 

이는 교원의 행정업무 분장을 위한 일종의 편의적 운영 매뉴얼에 불과하며, 어떤 법령이나 규칙에서도 교원이 교육청의 행정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교무실을 중심으로 업무분장표를 두어야 한다는 근거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결국, 교사의 행정업무 수행은 비공식 조직 내에서 이루어지는 관행적 구조일 뿐, 법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려운 상태이며, 이러한 구조 위에 교무 조직이나 행정업무 자체를 법제화하는 것 역시 타당성을 갖기 어렵다. 교사가 행정업무를 아무리 성실히 수행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적 역할일 뿐, 교원이 행정의 법적 주체가 될 수는 없으며, 법제화의 대상이 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지속해서 제안되는 이른바 ‘교무행정전담교사제’는 교원을 아예 행정업무 수행의 제도적 주체로 고정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는 교원의 법적 정체성과 교육적 본질을 교원 스스로 훼손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학생 교육을 중심에 두는 교원의 존재 이유마저 위협할 수 있다.

 

행정업무 부담이 크다고 해서, 그 교사를 교육의 주체가 아닌 행정의 담당자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교육의 본질을 흐리는 잘못된 접근이다.

 

해결책은 명확하다. 교육 행정공무원 중심의 행정업무 이관과 전문 인력 확충만이 교사에게 부당하게 전가된 행정노동의 문제를 법적 구조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정부는 2027년까지 지방공무원 정원 축소 및 동결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이며, 이와 같은 행정 인력 확충 없이 행정실만 법제화하려는 시도는 결국 학교의 실질 운영 구조를 더 왜곡할 위험이 크다.

 

이번 발의안은 그 어떤 조항에서도 교원의 행정업무 실태나 구조 개편에 대한 언급 없이, 오로지 행정실의 법적 설치만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는 행정실 법제화와 교원 업무 정상화가 무관하다는 점을 입법자 스스로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으며, 문제 해결이 아닌 문제 회피를 위한 행정 기구의 외형 정비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욱이 ‘초·중등교육법 제30조 제2항(학교 회계의 설치)’과 ‘제3항(학교 회계의 운영)’은 이미 행정실의 회계 관련 직무 수행에 대한 법적 근거를 명시하고 있어 직무 중심 체계 안에서도 충분히 기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도 별도의 조직 설치를 명문화하려는 이번 법안은 실질적 개선과는 거리가 먼, 형식적 위상 강화를 위한 과잉 입법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학교의 행정 기능을 정비하려는 진정한 법제화 방향은 행정실 설치가 아니라 교원 행정업무의 체계적 이관과 전문 행정 인력의 적절한 배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이 또한 초중등학교 운영 원리인 직무 중심 체계의 원칙에 부합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현실 왜곡 2: 교직 내부 문화와 위계 인식의 내면화 – 직무 중심 철학의 침식


초·중등학교는 법적으로 직무 중심 체계를 채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직 내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위계적 문화와 역할 분담의 혼란이 고착되어 있다.

 

대학교수가 ‘총장–학장–교수’ 체계 속에서 연구와 교육 중심의 명확한 직무 수행과 제도적 처우를 보장받지만, 초·중등 교사는 교장·교감·수석교사·교사로 구성된 사실상의 위계적 분위기 속에서, 행정과 교육 사이의 경계 없이 다양한 비공식 업무를 떠안고 있다.

 

더욱이 교사 스스로가 교육 전문가인 교장을 행정조직의 ‘상급자’로 인식하고, 교무업무를 내부 승진의 통로로 받아들이는 경향은 직무 중심 체계의 철학을 내부에서부터 훼손시키는 원인이 된다.

 

이는 단순한 직급의 문제가 아니다. 직무 중심 원리를 따르는 법적 체계가 현장의 문화 속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무력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며, 제도 개혁이 문화 개선 없이 작동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실제 교장은 교육과정 운영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교사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교원 자격’에 해당하며, 수평적 직무 관계에 있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교장이 권한자로, 교사는 집행자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인식 구조는 교직을 전문성과 자율성이 보장된 직무로 보기보다, 조직 내 위계질서의 일부로 이해하게 만들고, 결국 교사의 교육적 주체성을 점차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법이 보장하고 있는 전문성 기반의 직무 중심 체계는 현장에서는 점차 ‘행정 친화적 승진 구조’로 변형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이 문화는 교직 전반의 사기와 정체성마저 갉아먹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단지 외형적 조직을 법으로 고정하려는 시도는 학교를 교육기관이 아닌 ‘교육적 권위가 실종된 행정 관리조직’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 결국, 법과 제도뿐 아니라 학교문화 전반이 함께 수렴되지 않는다면, 직무 중심 교육 철학은 그저 ‘제도 속 문구’에 불과한 선언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학교는 사람을 세우는 곳이다. 그곳은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각자의 주어진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의 책임과 열정 위에 세워진다. 그렇기에 학교의 중심은 ‘조직’이 아니라, ‘직무’여야 한다.

 

지금 국회가 제안한 법안은 학교에 ‘행정실’이라는 조직을 덧붙이겠다는 것이지만, 정작 빠져 있는 것은 그 학교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직무와 전문성에 대한 성찰이다.

 

학생교육을 위해 존재하는 교원이 ‘법적 근거 없이 행정업무까지 떠맡게 되는 현실’은 결국 교육의 질을 해치고, 행정의 전문성마저 훼손시키는 이중 손실을 초래한다.

 

이처럼 무너진 전문성 위에 조직만 더하는 방식은, 학교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없다. 초·중등학교 운영에서 조직은 직무를 ‘보완해야지 대체해서는’ 안 된다. 교원의 직무가 무너지면 학교의 교육도 흔들린다. 교육이 위계와 조직, 관리의 이름으로 재단될 때, 학생들에게 남는 것은 무늬만 남은 ‘교육기관’일 뿐이다.

 

‘초·중등교육법’은 교원이 ‘학생을 교육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이미 명확히 선언하고 있다. 그 선언이 형식적인 문구에 머물지 않으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조직이 아니라, 교원의 직무 본질을 회복하고 그 직무가 존중받는 구조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학교는 교원을 조직에 묶어두는 곳이 아니라,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공간이다.

 

지금 학교에 필요한 것은 ‘조직’이 아니다. 교육활동을 방해받지 않을 시간, 교사의 판단이 존중받는 구조, 그리고 교원의 전문성을 교육의 관점에서 신뢰하는 국회와 정부다.

 

학교를 교육의 공간으로 지키고자 한다면, 행정실 설치를 위한 ‘학교조직법’이 아니라, 직무 중심 철학에 기초한 ‘학교직무법’이어야 한다.

 

이제는 그 본질로 돌아가야 할 때다.<끝.>

 

송미나 광주 하남중앙초 수석교사/ 한국교육정책연구소장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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