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더하기-송미나] "교육은 교실이 아니라 법정에서 무너지고 있다"

  • 등록 2025.06.07 12: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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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은 대법관 증원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더에듀 | 지난 4일 새 정부가 출발했다. 취임 첫 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대법관 수 30명 증원’을 골자로 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겉으로는 사법의 과부하를 해소하려는 조치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깊은 구조적 병증 위에 덧씌운 임시 처방에 불과하다. 매년 3~4만 건에 달하는 상고 사건을 대법원이 떠안고 있는 현실에서, 대법관 수를 늘리는 것은 일시적 ‘속도 조절’일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숫자의 확대가 아니라, 사법의 기능과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는 ‘패러다임 전환’이다.

 

특히 교육 현장에서 약 40여년 동안 학생교육을 직접 담당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갈수록 심화하는 학교의 사법화 현상을 온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학교폭력 대응 방안에 대한 정책과 입법이 강화하고 있지만 더 이상 교사와 학교 차원에서 교육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 발생과 함께 즉각적 법적 대응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교실은 점점 조사실, 학교와 교사는 준사법기관, 학생은 피·가해자로 명명되며 사법 절차의 객체가 되어가고 있다.

 

이 같은 사법화 흐름은 교사의 정당한 교육 개입조차 위축시키고, 교실 공동체의 신뢰 관계를 해체하며, 갈등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교육의 본래 기능을 소멸시키고 있다.

 

학부모는 자녀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사교육 비용은 물론 이제는 법률비용과 정서적 고통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실제로 학교폭력 사건에서 변호사를 선임할 경우 일반적인 평균 비용은 약 400만원, 형사 고소까지 진행될 경우 최대 700만원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러한 비용 부담은 학부모에게 상당한 경제적 압박으로 작용하며, 사건이 대법원 상고까지 이어질수록 수임료는 더욱 증가하는 구조다. 사법화된 학교폭력 대응의 현실이 수치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제는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담임교사나 학교장보다 먼저 찾는 사람이 변호사이며, 로펌 소속 변호사가 학교에 직접 등장하는 일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풍경은 단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사법 시스템이 안고 있는 구조적 결함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주요 국가의 사법 구조를 비교해 보자.

 

 

OECD 주요국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는 모든 사건이 대법원까지 올라갈 수 있는 전면 상고심 중심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사법적 분쟁이라면 대부분 최종심까지 이어지는 이 구조는 단순한 사법 행정의 비효율을 넘어, 국민의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이다.

 

모든 갈등이 대법원으로 집중되는 현재의 이 시스템은 교육 문제조차 교육기관 내에서 교육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문제는 교실 안에서 조정되기보다, 변호사와 판결이라는 사법 절차를 통해 해소되며, 그조차도 사법부에 대한 신뢰 부족으로 장기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학교는 여전히 분쟁의 사실관계를 수집하고 사법 대응을 준비하는 ‘예비 조사기관’처럼 기능하고 있으며, 교육적 갈등조차 법정에서 장기간 다뤄지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폭력 사건을 다루는 교육 현장에 변호사가 등장하는 장면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이유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사법 제도의 개혁은 대법관 수를 늘리거나 줄이는 식의 ‘기술적 조정’으로 해결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그 이면에는 권력구조는 물론 법조 생태계 전반에 걸친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며, 이를 유지하려는 법조계와 정치권, 그리고 국민의 법 감정까지 맞물린 강력한 이해연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현재의 사법 구조를 들여다보자.

 

대법원은 전면 상고심 구조를 통해 헌법기관으로서의 정치적 권위와 조직적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모든 사건을 대법원이 다룬다는 구조 자체가 조직의 권위와 존속의 근거가 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주요 선진국들처럼 고등법원에서 다수 사건이 종결되는 구조로 전환된다면, 대법원의 역할은 헌법 해석과 판례 통일이라는 본래 기능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사법조직 내부 권한 재편을 의미한다.

 

변호사 집단, 특히 대형 로펌과 소송 중심의 변호사들에게는 현 구조가 유리하다. 사건이 고등법원에서 종결되면 소송 단계가 줄어들어 전체 수임료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 반면, 대법원까지 이어지는 상고심 구조에서는 상고 여부 자체가 협상의 수단이자 수익 창출의 전략적 카드로 작동한다. 소송이 장기화되고 복잡해질수록 수익 구조는 더욱 견고해진다.

 

더 나아가, 향후 사건이 분야별로 전문화되면, 대형 로펌보다는 전문 분야를 갖춘 변호사들이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기존 법조 권력 구조의 변화를 의미하며, 기득권 입장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곧 위협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입법과 정책을 담당하는 정치권 역시 본질적인 사법 개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상고허가제 도입이나 고등법원 종결 구조는 자칫 ‘대법원조차 갈 수 없게 만든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에게는 표 계산상의 유불리를 고려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그동안 제안된 다수의 사법개혁안이 공청회나 상임위원회 단계에서 반복적으로 무산되어 온 것이 이를 방증한다. 새 정부가 제시한 방안 역시 대법관 30명 증원이라는 단순한 양적 조정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구조적 개혁에 접근하지 못한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국민 역시 “대법원까지 가야 억울하지 않다”는 불신의 프레임 속에서, 현행 사법 시스템을 묵시적으로 지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생활 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학부모에게는 사교육비보다 학교폭력 대응을 위한 법률비용이 갈수록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만큼 현재의 사법 구조는 일상적 갈등마저 사법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며, 사법 중심 사회로의 전환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공생체계는 결국 학교를 장기간 법정으로 끌어들이는데 일조하면서, 교사를 조사관으로, 학생을 증인으로 빠르게 바꾸고 있고 그 사회적 고비용은 고스란히 학부모에게 전가되고 있다.

 

교육 주체들이 겪고 있는 이러한 고통은 공식 통계에 기록되지 않으며, 대법원의 사건 처리 건수에도 반영되지 않는다. 그러나 교육과 교실의 일상은 그렇게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대법원 중심의 구조가 유지되는 배경에는 사법부, 변호사 집단, 입법부와 정치권,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법원까지 가야 억울하지 않다”는 고착화된 국민 법 감정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이해관계 기반의 동맹’이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 구조는 ‘정의 실현’이라는 명분 아래 유지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의를 지연시키고 있는 왜곡된 구조다. 지연된 정의는 무기력한 정의이며, 오히려 그 틈을 타 정치인은 물론 교육계 또한 교육감의 잘못된 권력이 임기 말까지 연명 되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3심제의 외형을 유지한다 해도, 지금처럼 권력에 의해 시간만 지체되는 구조 속에서는 오심제도, 사심제도 결국 ‘지연된 정의’로 귀결될 뿐이다. 현재 대법원의 사건 수가 많은 이유는 국민이 분쟁을 많이 일으켜서가 아니라, 사건 처리 구조와 진입 시스템이 잘못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다원성과 전문성이 강조되는 시대이며, 사법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처럼 법률 분쟁이 다양화되고 전문화된 시대에 대법원이 모든 사건을 떠안는 구조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사건의 성격에 따라 기능별로 역할을 분화하고, 판단 권한을 합리적으로 재배치해야 한다. 고등법원을 분야별 전문법원으로 특화하고, 주요 교육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상고허가제를 도입하여, 대법원이 헌법적 쟁점과 법리 통일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사법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법 개혁의 본질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40여 년간 교육 현장을 지켜온 교육자로서 묻고 싶다.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린다고 해서 학교폭력 문제가 해결되는가? 지연된 정의가 회복되는가? 그렇다고 교원이나 학부모가 부담해야 할 학교폭력 관련 법률비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가?

 

진짜 문제는 ‘대법관 숫자’가 아니라, 사건을 처리하는 구조 자체에 있다. 현재의 사법 시스템은 모든 교육 갈등을 교육적 조정이 아닌 법정으로 끌어들이는 구조다. 이 구조를 개선하지 않은 채 추진되는 사법 개혁은 실익보다 해악이 클 수 있다.

 

오늘날 학교는 법조계의 ‘신흥 블루오션’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는 교육 문제를 사법적 분쟁으로 장기화할 수 있도록 만든 전면 상고심 구조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결과다.

 

교육을 교육답게, 학교를 학교답게, 교원을 교원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사법과 대법원이 모든 문제를 끌어안는 현재의 구조부터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 사법부에 필요한 것은 대법관 수의 단순한 양적 확대가 아니라, 고등법원의 전문화, 상고심 구조의 개편, 그리고 권한의 수평적 분산과 같은 질적 재설계다.

 

사건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정의가 실현되는 ‘방향’이다.

 

사법 개혁은 판사, 변호사, 정치권, 그리고 국민의 법 문화 인식까지 폭넓게 얽혀 있는 문제로 결코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정의는 언제나 불편함 속에서 태어났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입법은 사법부의 총량 처리 속도를 높이는 데 앞서, 정의가 어디에서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를 먼저 성찰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사법 개혁은 단지 법 제도를 정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는 생활 정치의 차원에서 학부모의 법률비용 부담을 완화하는 동시에, 교육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제도를 바꾸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그 제도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도록 만드는 일이다. 새 정부는 이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의의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해, 사회적 합의와 철학적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핵심은 대법관의 숫자가 아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신뢰 기반의 사법 체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송미나 광주 하남중앙초 수석교사/ 한국교육정책연구소장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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