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의 THE교육] 교육이 이념에 오염(汚染)될 때

  • 등록 2025.05.21 23:5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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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드디어 대법원이 정치문제에 이어 교육 문제까지 판단을 내리는 심판자로 등장했다.

 

서울교육청 산하 초⸱중⸱고교에서 실시하는 ‘기초학력 진단검사 결과’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한 서울시 조례안에 대해, 대법원은 적법하다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서울시의회는 코로나 장기화로 심화한 학력 저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023년 5월 기초학력 진단 결과 공개와 교육감 지원 의무를 명시한 조례를 제정했다.

 

이에 대해 서울교육감은 과열 경쟁과 학교 간 서열화를 조장할 수 있다며 위헌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기초학력 진단검사는 ‘기초학력 보장법’에 따라 시행되며, 학생들의 학습 상태를 진단하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학습 격차를 해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모든 학생이 균등한 교육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기초학력 데이터가 ‘안갯속’이 된 것은 문재인 정부 때부터다.

 

이명박 정부는 학부모와 교육계의 여론을 바탕으로, 일부 학생 표집 방식이었던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전수(全數) 방식으로 전환하고, 시·도 및 학교별 ‘기초학력 미달 비율’을 공개했다. 그 결과,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은 큰 폭으로 감소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기초학력 진단검사 결과의 공개 여부를 교육계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결국 대법원까지 가서야 판단을 받게 된 현실은 참으로 씁쓸하다.

 

그동안 기초학력 진단검사 결과는 학교 내부에만 공유되어 학부모조차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학력 수준을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


교육의 본질을 가리는 ‘이념의 그늘’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에 대한 핵심 원인은 교육감의 이념적 성향에 있다.

 

일부 교육감은 편향된 교육관을 가진 전교조 출신 교사들과 공생 관계를 맺으며, 교육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회복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교육 정책은 이념적 ‘그리드록(gridlock)’에 갇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진보 교육감이 평등성에 방점을 둔 교육 정책을 추진하는 반면, 보수 교육감은 수월성 교육을 강조하며 영재교육 활성화를 주장하는 등 교육 정책 방향성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이러한 이념적 충돌은 영재교육과 기초학력 보장 사이에서 균형 있는 정책 수립을 어렵게 만든다.

 

교육이 특정 이념과 이해관계에 갇혀 있는 동안, 세계는 이미 미래 인재 양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이념 논쟁에 머물며 정작 중요한 교육 혁신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

 

최근 대선 후보들은 대규모 교육 공약을 내세우며 경쟁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후보는 서울대 수준의 국립대 10개를 신설해 AI·미래 인재 육성에 10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후보는 대학 등록금 완전 무상화와 함께 초·중·고 무상 급식 확대에 30조 원 이상을 쏟아붓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이러한 거대 규모의 공약은 재정 부담은 물론, 교육 현장의 역동성을 저해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특히, 서울대급 대학 10개를 단기간 내 신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우수 교수진과 연구 인프라를 확보하기 어려워 교육의 질 저하와 대학 간 격차 심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우리나라 대학은 현재 4년제 대학 203개, 2년제 대학 137개 등 총 340개교에 이른다.

 

이처럼 이미 많은 대학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무리한 신설은 고등교육의 전반적인 질 향상보다는 재정 낭비와 교육 불균형 심화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후보들은 거창한 숫자 뒤에 가려진 현실적 한계와 부작용을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또한, 무분별한 무상 급식 및 등록금 지원 확대는 예산 낭비로 이어지고, 장기적으로는 국가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더불어, 지나친 투자 집중이 기초학력 강화나 맞춤형 교육지원 등 필수 교육과제에는 소홀해지는 ‘과잉 집중’ 문제를 낳는다.

 

후보들이 제시하는 천문학적 숫자에만 주목할 것이 아닌, ‘실현 가능성’과 ‘교육의 지속 가능성’ 그리고 ‘균형 잡힌 정책 설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육 현장과 정책을 옥죄는 편향된 이념의 굴레는 결국 학생들의 학습권과 미래의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독(毒)’이다. 이념에 갇혀 교육 본연의 목적을 상실하는 순간, 대한민국의 교육은 퇴행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제는 정치적 이념의 노예가 아닌, ‘교육의 주체인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한 ‘실질적이고 균형 잡힌 교육 혁신’이 절실하다.

 

 

김영배= 교육자이자 비영리 사회 단체장으로 25년 이상을 교육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교육은 사회 성장의 기반이 되는 자양분과 같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교육학 박사로서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교육의 방향은 무엇인지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이기도 하다.

 

특히, 인적자산이 대부분인 대한민국의 현실에 비춰, 소통과 협력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지식보다 인문학적 소양과 다양성 교육이 미래세대에게 더 가치 있고 필요한 생활자산이라 생각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 흐름 속에서 교육의 중요성이 더 강화되고 있다는 기본 인식 속에 미래 가치를 어떻게 준비하고 연구해야 하는지를 국내외 사례 분석을 통해 논해 보고 싶어 한다.

김영배 성결대학교 교수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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