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8 (월)

  • 흐림강릉 30.6℃
  • 흐림서울 32.3℃
  • 구름조금울릉도 29.2℃
  • 구름많음수원 31.3℃
  • 구름많음청주 31.0℃
  • 구름많음대전 30.7℃
  • 구름많음안동 31.2℃
  • 구름많음포항 28.9℃
  • 구름많음군산 31.2℃
  • 구름조금대구 32.7℃
  • 구름조금전주 33.3℃
  • 구름많음울산 30.7℃
  • 구름조금창원 31.6℃
  • 구름조금광주 31.8℃
  • 맑음부산 32.0℃
  • 구름조금목포 31.0℃
  • 구름조금고창 32.7℃
  • 구름조금제주 31.6℃
  • 흐림강화 30.0℃
  • 흐림보은 29.2℃
  • 흐림천안 29.4℃
  • 구름많음금산 31.4℃
  • 맑음김해시 33.0℃
  • 구름조금강진군 31.5℃
  • 구름조금해남 32.1℃
  • 맑음광양시 31.6℃
  • 맑음경주시 32.0℃
  • 맑음거제 31.0℃
기상청 제공

[송미나의 THE교육] 기초학력 파괴하는 '다층적 안전망'

 

더에듀 | ‘모든 아이의 기초학력을 보장한다.’

 

그럴듯한 구호이다. 이를 위해 현재 우리나라에는 2021년에 제정된 ‘기초학력 보장법’이 존재한다.

 

이 법은 모든 학생이 국가가 정한 최소한의 학습 능력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음을 선언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기초학력 보장을 위한 책무를 지도록 규정한다.

 

교육부는 모든 학생의 기초학력을 보장한다는 목표 아래 ‘제1차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2023–2027)’을 수립하여 시행 중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하는 기초학력 부진 대책은 학력 부진의 실질적 해결에 집중되기보다는 ‘다층적 안전망’이라는 거대 담론으로 포장되어 있다.

 

국가와 교육청, 의료기관과 학교, 학부모와 지역사회는 물론, 상담사와 복지사까지 총동원되어 원인을 나열하고 대책을 세운다.

 

얼핏 보면 빈틈없이 설계된 듯 보이지만, 과연 이러한 방식이 실제로 효과를 내고 있는지는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다층적 안전망,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정책은 기초학력 부진의 원인을 빈곤, 정서 문제, 다문화 배경, 가정불화, 교사의 역량, 지역 격차 등으로 늘어놓는다. 맞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하지만 원인이 많다고 해서 모든 요인에 동시다발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의학을 떠올려 보자. 환자가 고열, 두통, 구토, 어지럼증을 보인다고 해서, 의사가 머리·위·간·심장을 동시에 수술하지는 않는다. 명의는 복잡한 증상을 관통하는 근본 원인을 찾아 집중적으로 치료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다층적 안전망’이라는 핑계로 원인을 병렬식으로 나열하고, 그에 맞춰 예산을 쪼개 배분하는 것은 마치 환자의 전신에 무작정 메스를 대는 것과 같다.

 

정책 연구에서는 기초학력 정책 결정 과정에서 민·관·학의 합의뿐 아니라 학생, 교사, 학부모의 목소리가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다르다.

 

가령 ‘한 명의 기초부진 학생을 두고 국가, 교육청, 학교, 지자체, 민간단체, 학계가 각각 사업을 추진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학생은 여러 프로그램에 끌려다니며 정작 학습의 초점은 흐려지고, 교사는 행정 보고와 조율에 매달리며 학생 개별 지도의 여력은 줄어든다. 학부모는 낙인과 혼란 속에서 불안이 커지고, 각 기관은 중복 사업을 자신의 성과로 내세우느라 예산과 자원은 분산된다.

 

겉으로는 ‘다층적 지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복 개입과 행정 과잉 속에서 본질적 학습 지원이 실종되는 구조가 된다. 이는 병렬식 정책이 한 명의 학생조차 제대로 구제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빈곤, 정서 문제, 다문화 배경, 가정불화가 해결되면 학생의 학습 부진이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은 착각이다.

 

현재의 병렬식 정책 구조는 마치 ‘빈곤이나 정서 위기 해결 = 학습 부진 해소’라는 잘못된 등식을 전제하고 작동한다. 그러나 실제 학습 부진의 직접적 원인은 학습 자체와 관련된 요인—즉 읽기·쓰기의 결손, 수학적 기초 개념의 미숙, 학습 전략의 부재—에 있다.

 

따라서 학생의 사회·정서적 배경은 중요한 맥락이지만, 그것이 학습 결손을 자동으로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정치권의 접근 방식이다.

 

국회와 정부는 기초학력 보장법을 제정하고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겠다’라는 구호를 내세우지만, 실제 실행 단계에서는 이해관계에 따라 사업을 부처별·기관별로 쪼개어 배분한다.

 

정책의 이상적 설계와 실행 간 괴리가 커질수록, 책임은 분산되고 효과는 약화한다.

 

‘다층적 안전망’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본질을 흐리고, 학습 부진의 근본 해결을 지연시키는 가짜 해법이 될 위험이 크다.


필요한 것은 ‘다층성’이 아니라 ‘정밀성’이 초점


기초학력 부진 대책이 실질적 효과를 거두려면, ‘다층적’이라는 말로 문제를 희석할 게 아니라 정밀 진단과 초점화가 우선이다.

 

·읽기 결손이 핵심이라면 읽기 회복 프로그램에 집중해야 한다.

·교사의 교수 역량이 문제라면 연수와 수업 혁신에 자원을 몰아야 한다.

·정서 불안이 학습을 가로막는다면 상담·치료 연계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다층적 안전망’은 이런 핵심 개입을 보조적으로 뒷받침하는 구조여야지, 병의 주원인을 가린 채 ‘모든 부위 수술’로 자원을 흩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학생의 학습을 관리하는 교사의 교육적 진단이 낙인과 차별을 우려하는 왜곡된 인권 담론에 가로막히고, 정책이 그 담론에 편승함으로써 교육적 진단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무력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사가 학생의 학습 부진을 있는 그대로 학부모와 학생에게 알리면, 이는 곧바로 낙인과 차별, 심지어 아동학대와 인권침해로 둔갑한다.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겠다’라는 구호를 외치면서도, 그 약속을 실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전수 진단과 학생 선별은 ‘낙인과 차별’이라며 금지한다.

 

마치 같은 입으로 서로 다른 말을 내뱉는 것처럼, 지금의 기초학력 정책은 앞뒤가 맞지 않는 자기모순을 안고 있다. 이는 마치 전 국민 대상 건강검진을 통해 조기에 질병을 발견하는 것은 모든 국민을 잠재적 환자로 취급하는 것이므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똑같은 선별과 진단을 교육에서는 인권침해로 낙인찍으면서 의료에서는 생명권 보장의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이 이중 잣대야말로, 정부가 교육정책을 대할 때 드러나는 정치적·이념적 프레임이다.

 

현재 정부가 시행하는 ‘기초학력 진단’은 전수 의무가 아니라 선택적·자율적 응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모든 학생의 기초학력을 보장한다’라는 기초학력 보장법의 입법 취지와도 정면으로 어긋난다.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진단하지 않는다면, 누가 지원이 필요한지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으며, 결국 법이 약속한 보장은 공허한 구호로 남을 수밖에 없다.

 

결국, 지금의 정책은 학생의 학습 결손을 드러내는 기초학력 진단 결과와, 그에 따른 맞춤 지원 이력에 대한 교육적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생성하지 않음으로써, 문제 자체를 은폐하는 길을 택하고 있다. 이 선택은 낙인 논란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문제를 은폐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교사의 전문 영역인 교육적 진단과 증거 기반 접근이 제도적으로 차단된다면, 기초학력 부진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학습 부진 학생을 보호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방치하는 셈이다. 따라서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교사의 교육적 진단을 인정하고 데이터 기반 개입을 가능하게 하는 정책 프레임의 근본적 개선이다.

 

결국 학습 부진 문제는 학습 요인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정책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학습 요인에 집중하는 것을 가장 크게 방해한다.

 

그 방해 요인은 다름 아닌 사실적 정보 제공과 데이터 기반 진단에 ‘낙인’과 ‘차별’이라는 부정적 프레임을 씌우는 왜곡된 인권 담론 문화다. 이에 따라 지원이 절실한 학생을 정확히 찾아내고 초점화시켜야 할 학습 지원이, 정작 “차별적”이라는 이유로 무력화된다.

 

결과적으로 정책은 학습 부진을 해결하기는커녕, 지원 자체를 차단하는 역설을 낳고 있다.

 

해외 교육 선진국은 이미 다른 길을 보여주고 있다.

 

‘핀란드’는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기초 문해·수리 능력 평가를 통해 정기적으로 진단하고, 부진 학생에게는 ‘특별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추가 자원을 집중한다. ‘모든 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실제로 담보하기 위해 전수 진단과 맞춤 지원을 제도화한 것이다.

 

학부모와 학생은 이를 낙인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국가가 우리 아이에게 더 투자한다’라는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인다.

 

우리 교육계가 자주 이상화(理想化)하는 핀란드조차, 데이터 기반의 차별적 지원을 통해 기초학력을 보장하고 있는 셈이다. 핀란드의 성공을 표피적으로만 소비해 온 우리의 교육정책의 관행을 이제는 돌아봐야 한다.

 

‘미국’ 역시 전수 데이터를 토대로 RTI(Response to Intervention) 3단계 지원 체계를 제도화해, 맞춤형 지원을 ‘낙인’이 아니라 ‘추가 기회’로 정착시켰다.

 

‘호주’ 또한 ‘NAPLAN’이라는 전국 단위 학업성취도 평가를 통해 모든 학생의 데이터를 확보하고, 학교별 맞춤 예산으로 차별적 지원을 실행한다. 결국 두 나라 모두 ‘데이터 생성 → 맞춤 지원’이라는 정밀한 개입을 통해 학습권을 보장한다.

 

반대로 ‘한국’은 데이터를 만들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를 은폐한다. 이들 나라에서 데이터는 은폐 대상이 아니라, 학부모에게는 국가가 보장하는 안전장치, 학생에게는 학습 성장을 위한 추가 자원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데이터를 만들지 않는 것을 ‘차별 방지’라 포장하고, 지원의 기회를 차단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책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이 요구된다.


명의의 정책, 선택과 집중


교육은 의학과 다르지 않다. 겉으로 드러난 증상보다 근본 원인에 집중해야 비로소 회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확한 진단과 선택적 집중이야말로 부진을 치료하는 명의의 방식이다.

 

지금처럼 원인을 병렬적으로 나열하고, 모든 부처와 기관을 끌어모아 예산을 분산시키는 방식은 결국 ‘모든 것을 한다’라면서도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다층적 안전망’은 만능이 아니다. 기초학력 정책이 진정 아이들을 살리려면, 이제는 정치적·행정적 수사(修辭)를 넘어, 핵심 원인에 집중하는 정밀하고 불가피한 차별적 개입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교육의 명의(名醫)’가 걷는 길이다.

배너
배너
좋아요 싫어요
좋아요
2명
100%
싫어요
0명
0%

총 2명 참여


배너
7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