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요즘 교육 현장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 있다. “그럴 수도 있지.” 아이가 실수를 해도, 친구를 괴롭혀도, 심지어 교사에게 무례한 행동을 해도 이 말은 손쉽게 따라붙는다. “아직 어려서 그래요.” “요즘 아이들은 다 그렇죠.” 겉으로는 이해와 배려 같지만, 어느 순간 아이를 향한 방임으로 미끄러지곤 한다. 공감은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따뜻한 태도이다. 하지만 방임은 아이의 행동을 그냥 흘려보내는 태도이다. 둘은 결코 같은 이름을 가질 수 없다. 공감이 교육의 출발이라면, 훈육은 교육의 마침표이다. 공감만 있고 훈육이 없다면 아이에게 남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무한한 자기중심성이다. “그럴 수도 있지”가 아무런 점검 없이 반복될 때, 아이들은 행동의 결과를 마주하지 않는다.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고, 고쳐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한다. 물론 공감이 꼭 필요한 순간이 있다. 넘어져 눈물을 삼키는 아이, 실수로 마음이 다친 아이, 혼자 외로움에 머무는 아이. 그 아이들에게는 따스한 마음을 건네는 일이 우선이다. 그러나 친구를 때린 아이, 규칙을 반복해서 깨는 아이, 수업을 방해하고 교사에게 말대꾸하는 아이에게 “그럴 수도 있지요”라는 말은 책임을 비껴가게
더에듀 | “‘참교사병 오래 못 간다’ 조롱까지…교실 떠나는 젊은 교사들” 이는 최근 동아일보(2025. 11.22.) 사설의 단면이다. 이에 의하면 지난해 전국 국공립 초중고교에서 교직을 떠난 10년 차 미만 교사가 626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3년 만에 30% 늘어난 수치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국공립 초중고교의 자발적인 중도 퇴직 교사 수는 1004명이다. 이 중 62%가 10년 차 미만 젊은 교사였다. 사립학교까지 포함하면 이탈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젊은 교사의 연쇄 이탈로 공교육 위기가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10년 차 안팎 교사들은 교직 선호도가 높던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교대에 진학하거나 임용시험에 합격한 이들로, 상당히 우수한 자원으로 평가된다. 우수한 교사들이 헌신과 열정을 잃어가거나 교단을 떠나는 것, 모두 공교육의 커다란 손실이다. 교사가 사명감을 갖고 신나게 가르칠 수 있는 교실이 돼야 공교육이 살고 교육의 경쟁력도 올라갈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교직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 교사노동조합연맹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교권 침해 및 과
더에듀 | <더에듀>는 전국 곳곳의 교육 현장을 영상으로 담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장덕우 콘텐츠 실장이 있다. ‘현장감독 이야기’는 장 실장이 교육 현장을 촬영하며 본 것과 느낀 것을 영상이 아닌 글로 대중과 만나는 공간이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한양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들어온 이 문장은 한국 사회에서 한양(도시)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마치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반드시 도시로 가야만 하는 것처럼 도시를 동경하고 갈망하며, 도시에 입성하지 못하면 좌절하기도 한다. 교육 분야는 그 현상이 더욱 심해진다.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미래를 꿈꾸며 ‘인 서울’을 목표로 시간과 돈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나의 빛나는 미래를 위해 지방으로 가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처음 ‘농어촌유학’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선뜻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도시에 살던 아이가 농어촌으로 유학을 간다? 왜? 아이가 도시 학교에 적응을 못 했나? 부모님이 사업에 실패했나?’ 등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강원도 양양과 홍천에는 ‘도시’의 풍부한 자원을 뒤로
더에듀 | 2026년 중등 공립 신규교사 임용시험을 앞두고 사서교사 임용 경쟁률이 12:1을 넘어섰다. 심지어 서울의 경우 경쟁률이 32:1을 달성해 사서교사 교원의 양성/배치에 실패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사서교사 공급은 적고 수요는 높은 상황에서 채용 인원을 매우 적게 편성했기 때문이다. 2018년 학교도서관 진흥법 개정으로 모든 학교도서관에는 이를 운영하는 전문인력을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1만 2073개 학교도서관 중 5745개 도서관은 전문 인력이 없고, 사립학교를 제외하더라도 4773개 도서관이 비어 있다. 학생이 1000명이 넘고, 예산이 3000만원을 넘겨도 이를 집행할 전문가가 없다. 현장에서는 사서교사 배치를 요구하고 있다.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은 올해 국정감사를 통해 “AI 시대에 걸맞는 학생의 독서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 강화를 위해 사서교사를 배치”를 요구했고, 지난 4월 열린 독서교육 정책토론회에서도 사서교사의 교육적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연구 결과도 마찬가지이다. 교원이 탐구학습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할수록 사서교사의 필요성을 느낀다는 연구(정진수, 2024), 동료 교원들이 독서교육 및 협력수업에 대해 사서교사의
더에듀 | 올해는 이오덕(1925~2003) 선생이 가신 지 23년이 되고, 그의 탄생 한 세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필자를 비롯한 이 나라 교육계의 후학들은 한 시대의 사표로 살다 가신 선생을 기리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기억하고자 한다. 그는 분명 한국 교육사에서 대표적인 ‘삶과 글, 교육을 하나로 엮어낸 실천적 교육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교사·아동문학가·교육운동가로 활동하며 평생 ‘아이들이 자기 목소리로 말하고 자기 삶을 살아가는 교육’을 강조했다. 이 시대에 추진하는 이른바 생활 글쓰기, 삶을 가꾸는 교육, 참교육의 철학은 모두 그의 손에서 탄생하거나 깊이 확장된 개념들이다. 2025년, 그의 탄생 100주년을 우리가 기리는 이유는, 그의 교육 방식이 여전히 의미 있고 오히려 현재의 학교가 더욱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삶에서 시작하는 교육 — ‘생활 글쓰기’의 혁명 이오덕 선생은 한국 교육 현장에서 대부분의 글쓰기 지도가 모범답안을 따라 쓰게 하는 ‘정답 글쓰기’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솔직하게 적는 ‘생활 글쓰기’를 교육의 중심에 놓았다. 필자 또한 한때 글쓰기의 과정을 익히면서 기본적
더에듀 김승호 객원기자 | 대한민국 교육에서 ‘정치적 중립성’은 성역과도 같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원칙은 교육 현장을 가장 비정치적인 동시에 가장 정치적인 갈등의 장으로 만들어왔다. 신간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연구’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이 책은 지난해 한국교육정치학회 교육정책연구위원회의 기획에서 시작돼 약 1년 반의 시간 동안 교육계의 여러 학자가 대거 참여해 완성된 결과물이다. 책은 전반 부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단어가 가진 역사적 맥락을 복원한다. 1963년 헌법 개정 당시 이 조항이 도입된 배경이 순수한 교육적 의도가 아닌, 군사정권의 지지 기반 확보와 교원노조 무력화라는 정치적 셈법에서 비롯되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편향된 통제’의 역사를 고발하는 것이다. 이어 ▲한국 사회에서의 역사적·법적 제도화 과정 ▲독일·프랑스·미국·일본 등 해외 사례 비교 ▲언론 담론과 판례 분석 ▲교사들의 인식 조사 등 다각적인 접근을 통해 ‘기계적 중립’의 허상을 꼬집는다. 특히 “정치적 중립성은 더 이상 정치적 침묵이나 무관심이 아니라, 다원적 가치를 조율하고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적극적인 실천 원리로 재정립
더에듀 |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 2항에서 우리나라 정치형태는 민주주의, 즉 국민주권주의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모든 국민이 주인이라는 뜻이다. 주인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의사결정 과정을 정치라고 한다. 국가적 수준에서의 의사결정을 ‘좁은 의미의 정치’, 그밖에 일상생활에서의 의사결정을 ‘넓은 의미의 정치’라고 한다. 또 전자를 ‘정치형태로서의 민주주의’, 후자를 ‘생활원리로서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공교육에서, 생활원리로서의 민주주의 교육은 잘 실현되고 있는 것 같다. 학교폭력 예방 교육, 다문화 이해 교육, 생명 존중 교육 등 다수의 교육을 통해 인권, 이해와 존중, 배려 등의 민주주의적 가치가 내면화되고 있다. 또 학생 자치를 통해 대화와 타협, 다수결의 원리 등도 잘 학습되고 있다. 그런데 협의의 정치, 즉 치형태로서의 민주주의 교육은 오히려 위축되고 있는 것 같다. 헌법 제7조 2항에서는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헌법 제31조 4항에서도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
더에듀 | 경기교육청이 AI 기반 교수학습 플랫폼 ‘하이러닝’ 홍보 영상을 공개한 것은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영상 속에서 교사는 AI 시스템의 부속물처럼 그려졌고, 교육의 핵심 가치마저 지운 채 기술 우월주의만이 강조됐다. 비판이 쏟아지자 교육청은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하고 사과했지만, 이미 드러난 인식 수준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홍보 실수로 치부할 수 없다. AI라는 이름만 붙이면 모든 것이 혁신으로 포장되는 현실 그리고 교육을 기술의 하위로 종속시키는 교육이 사라진 심연(深淵)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렇게 본말이 전도된 AI 시대라는 거대한 사회실험 속에서 교육 현장의 혼란과 불신을 심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AI 자체는 교육에서 자신의 역할과 한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AI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고, 무엇을 가르칠 수 없느냐?’고 물어보니, AI는 이렇게 답했다. “효과적인 교수법을 돕고 지식을 전하고 평가하는 것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판적 사고와 창의성, 공감능력, 윤리성처럼 인간적 역량을 키우는 스승 역할은 수행할 수 없습니다.” 이 답변은 단순히 기술적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
더에듀 |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최근 서울시의회에서 발의된 고등학생 대상 학원 교습시간 밤 10시에서 12시로 연장하는 조례 개정안을 접하고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학생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야 할 공적 기관인 서울시의회가 오히려 아이들의 건강권과 쉴 권리를 침해하고, 새벽 1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게 만들겠다는 발상은 ‘국가는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반하는 반인권적 조례이다. 현재 조례인 ‘초·중·고 학원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 허가’도 아동의 건강권과 행복추구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상황에서, 규제를 완화하려는 시도는 ‘선택의 자유’라는 허구 아래 아이들을 입시 경쟁 속으로 더욱 깊이 몰아넣는 행위이다. 그동안 교육 현장에서 함께한 교육자로서, 이 조례안은 우리 아이들의 전인적인 성장을 저해하고 공교육 시스템 자체를 더욱 파괴하는 야만적 정책임을 강하게 주장한다. 사교육 심화: 공교육 붕괴와 미래 역량 말살 현재 대
더에듀 | “너 어른한테 왜 그렇게 말하니?”, “선생님께 인사 좀 똑바로 해라.” 우리는 아이에게 존중을 요구하면서 정작 그 존중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는 제대로 가르치지 못할 때가 많다. 존중 교육의 출발점은 지시가 아니라 어른의 태도이다. 존중은 말로 전달되지 않는다. 시선과 말투,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처럼 일상의 작은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다. 겉치레로 꾸밀 수 없고, 권위로 강요할 수도 없다. 진심이 빠진 예의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른의 말과 행동이 불일치할 때 가장 먼저 그 모순을 간파한다. 아이의 실수를 가볍게 넘기거나 “왜 그랬어!”, “또 너야?”라는 말로 다그치는 순간, 아이는 자신이 존중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크게 체감한다.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아이는 반항하거나 마음을 닫는다. 반대로 존중받는 아이는 생각하고, 이해하고, 스스로 변화를 받아들인다. 즉, 존중은 훈육의 전제다. 아이를 한 사람의 존재로 인정할 때 비로소 훈육은 효과를 가진다. 존중에는 순서가 없다. 나이가 많다고 먼저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지위가 높다고 요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먼저 존중을 베푸는 사람에게 진정한 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