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설 연휴, 안방극장을 울린 영화 ‘대가족’은 오늘날 따뜻한 가족의 의미를 상실해 가는 시대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특히 보는 사람들의 심장을 가장 강렬하게 고동치게 하는 것은, 혈연을 넘어선 '선택된 가족'의 탄생이었다.
보육시설을 벗어나 차가운 산속으로 숨어든 두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서슴없이 서로의 반려자가 되기로 결심한 두 어른의 즉석 결단은 전율에 가까운 감동을 주었다.
영화 ‘대가족’은 우리에게 묻는다.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영화는 파격적이면서도 눈물겨운 답을 내놓는다. 부모 없는 아이들에게 우주가 되어주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삶을 던진 두 남녀(음식점 사장과 직원)의 모습은, 가족 해체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인간관계의 성스러움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었다.
영화 속 가장 가슴 시린 장면은 보육시설에서 피를 섞지 않은 무연고를 알고, 미국인 가정에 입양 가는 것이 싫어 전에 살던 집으로 찾아간 두 어린 남매가 야생의 산속으로 숨어들게 된 모습이었다.
사회의 보호망조차도 충분한 국가의 지원 없이 ‘관리’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영혼을 구속할 때, 아이들이 선택한 곳은 역설적으로 아무도 없는 산이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추위와 싸우며 굶주린 채 죽음과 맞닿아 있었다.
이 아이들을 발견한 두 어른의 시선은 단순한 동정(Sympathy)이 아닌 공감(Empathy)을 넘어선 결단으로 향한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국가의 보조금이나 시설의 침대가 아니라, 자신을 온전히 받아줄 '우주 같은 부모'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와 결혼해 주겠소?” 이 말은 두 어린 생명을 구하기 위한 가장 아름다운 계약이었다.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는 때로 생명의 시급함보다 형식의 완결성을 우선한다. 두 주인공이 아이들을 정식으로 입양하여 품에 안으려 할 때, 거대한 벽에 부딪힌다. ‘부부’라는 법적 자격 없이는 아이들의 부모가 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 말이다.
여기서 영화는 백미를 보여준다. 남녀 주인공은 오직 아이들을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서로에게 청혼한다. 이들의 결혼은 남녀 간의 에로스적 사랑을 넘어, 버려진 생명을 살려내겠다는 인간의 고귀한 도리, 즉 ‘아가페적 결단’이었다.
“부모는 아이들의 우주요, 아이는 부모의 신이다”라는 극 중 노 대사의 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완성된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내던지는 부모는 아이에게 모두를 감싸고 품어주는 우주가 되고, 대가 없는 사랑을 통해 부모 역시 아이들이 비로소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만드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
우리는 여전히 가족을 피의 농도로 측정하곤 한다. 그러나 영화 속 두 주인공이 보여준 입양의 과정은 가족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임을 증명한다.
산속에서 떨고 있던 아이들을 데려와 따뜻한 밥을 먹이고, 법적 보호자가 되기 위해 인생의 경로를 수정하는 행위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존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입양은 단순히 갈 곳 없는 아이에게 방 한 칸 거처를 내주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생명의 우주 전체를 책임지겠다는 거룩한 약속이며, 우리 사회의 깨어진 인권과 관계를 개선하는 가장 강력한 연대라 할 수 있다.
두 주인공의 청혼이 그토록 아름다웠던 이유는, 그것이 개인의 행복을 위한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나의 삶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거룩한 영성’이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 속에서 인간의 고독과 소외는 우리가 서로의 우주가 되어주기를 거부할 때 발생한다. 설날을 맞아 모인 가족들 사이에도 소통의 단절과 반목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진정한 가족이라 부를 수 있을까?
오히려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생명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손을 맞잡는 관계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라 할 것이다.
정부는 초저출산 예방을 위한 출산 장려 정책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 차가운 시설이나 산속이 아닌 따뜻한 가정의 품에서 자랄 수 있도록 입양 문턱을 낮추고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가난하고 피폐한 국가가 책임을 외면하고 더 나은 선진국으로 무작정 팔아치우듯 해외 입양을 시킨 것은 이젠 더 이상 국가의 존재 이유를 망각하지 않고 스스로 품어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민간에서도 입양 가정을 ‘특별한 소수’가 아닌 존엄을 실천하는 인간애의 선구자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산속에서 구조된 아이들이 어른들의 등에 업혀 세상 밖으로 나올 때, 우리는 보았다. 인간의 도리가 실천되는 순간, 절망은 희망으로 치환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 설 연휴, 영화 ‘대가족’이 던진 화두를 우리의 가슴에 새겼으면 한다. 우리 사회의 모든 아이가 누군가의 우주 안에서 안전하기를, 그리고 모든 어른이 한 아이라도 신을 섬기듯 경건한 마음으로 생명을 대하기를 소망한다. 인간관계의 성스러움은 바로 그 헌신적인 사랑의 틈바구니에서 피어나는 것이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