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문해력 저하, 누구의 책임인가 - 한글날 100주년
「'한글날 100돌'을 하루 앞두고 교사들이 체감하는 학생 문해력 저하 실태가 공개됐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을 넘어 개인의 삶과 사회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 역량이다. <더에듀>는 이번 조사를 계기로 문해력 저하의 원인과 교사·학교·가정·국가의 역할, 학생들의 미래에 미칠 영향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더에듀 윤철순 기자] “사건의 시발점이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왜 욕하냐고 한다.” 2024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실시한 학생 문해력 실태조사에서 한 교사가 소개한 사례다. 어떤 일이 처음 시작된 지점을 뜻하는 ‘시발점(始發點)’을 학생이 욕설로 받아들인 것이다. ‘금일’을 금요일로, ‘족보’를 족발·보쌈 세트로 이해했다는 사례도 나왔다. ‘두발자유화’를 놓고 토론하는데 두발을 머리카락이 아닌 두 다리로 알았다는 교사도 있었다. 웃고 넘길 수도 있는 얘기다. 하지만 학생이 단어의 뜻을 다르게 이해하면 교사의 설명을 잘못 받아들이고, 글에 담긴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이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발표한 조사에서 교사 1356명 중 96.5%는 최근 5년 사이 학생들의 문해력이 낮아졌다고 답했다. 82.1%는 최근 1년간 문해력 문제로 수업이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2024년 교총 조사에서도 응답 교원 5848명 가운데 91.8%가 학생 문해력이 과거보다 떨어졌다고 답했다. 조사 기관과 질문 방식은 다르지만, 교사들의 우려가 이번에 처음 등장한 건 아니다. 그런데 교사들은 학생 문해력 문제의 관찰자이면서 교육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교사들이 체감한 변화는 실제 학생들의 읽기 능력과 얼마나 일치할까. 문해력이 낮아졌다면 그 원인은 무엇이고, 누가 무엇을 해야 할까. 교사들의 우려, 실제 성적도 그럴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달 발표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5)는 교사들의 우려를 살펴볼 또 다른 근거다. 한국의 만 15세 학생 읽기 평균은 501점으로 2022년보다 낮아졌다. 읽기에서 기초적인 성취수준인 2수준에 미치지 못한 학생도 17.8%였다. PISA가 측정하는 읽기 능력은 단어의 뜻을 아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글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고, 여러 내용을 연결하며 글쓴이의 주장과 근거를 평가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가령 글에 적힌 사실을 그대로 찾아 답하는 것과 여러 자료를 비교해 어느 주장이 믿을 만한지 판단하는 건 다른 수준의 읽기 활동이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일상생활의 문제 해결에 활용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한국 학생 전체가 읽기를 못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국은 여전히 OECD 평균보다 읽기 성취도가 높고, 참가국 가운데 상위권이다. 2022년 평가에서는 2018년과 비교해 읽기 평균에 큰 변화가 없었다. 최근 하락은 확인되지만, 교사 설문처럼 지난 5년 내내 문해력이 떨어졌다고 단정할 근거는 부족하다. 두 조사의 대상도 다르다. PISA는 만 15세 학생을 평가한다. 반면 이번 교사노조 조사 응답자의 83.6%는 초등교사다. 초등학교 교사들이 경험한 변화가 곧 만 15세 학생 전체의 성취도 변화를 뜻하지는 않는다. 더욱이 교사 설문은 학생들에게 읽기 시험을 치르게 한 결과가 아니다. 교사들이 수업과 생활지도 과정에서 경험한 어려움을 조사한 것이다. 교사의 체감과 학생의 실제 성취도는 서로 참고할 수 있지만 같은 지표는 아니다. 문해력은 학교에서만 만들어질까 문해력은 글자를 소리 내 읽는 능력에 그치지 않는다. 문장을 이해하고 정보를 비교하며, 읽은 내용을 판단하고 활용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그 기초는 학교 입학 이전부터 형성된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서로 다른 언어 경험을 쌓는다. 가정에서 어른과 얼마나 대화하는지, 책을 접할 기회가 얼마나 있는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어떤 언어활동을 경험했는지 등이 어휘와 문장 이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개인별 언어·인지 발달 특성도 살펴야 한다.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라고 해서 말과 글을 이해하는 속도가 모두 같지는 않다. 어떤 아이는 낱말의 뜻을 빠르게 익히지만, 어떤 아이는 긴 문장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경제적 여건과 양육자의 지원도 관련된다. 책과 학습자료에 접근할 기회, 가정에서 학습을 도울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정환경이 문해력을 결정하는 건 아니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도 발달과 학습 결과는 다를 수 있고, 학교의 적절한 지도로 초기 격차를 줄일 가능성도 있다. 여기서 구분할 문제가 있다. 학생마다 문해력 수준이 다른 이유와 최근 학생 집단의 평균 읽기 성취도가 낮아진 이유는 반드시 같지 않다. 가정환경과 개인별 발달 차이는 학생 사이의 격차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평균 성취도가 왜 변했는지 알아보려면 그 기간에 뭐가 달라졌는지 추가로 확인해야 한다. 디지털 매체 이용이나 독서량 변화도 검토 대상이다. 다만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한다는 사실만으로 읽기 능력이 낮아졌다고 결론 내릴 순 없다. 무엇을 얼마나 읽고,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이번 교사 설문 역시 원인을 확정하는 자료는 아니다. 교사는 관찰자일 뿐인가 교사노조 조사에서 응답자의 41.7%는 학교교육 측면의 문해력 저하 요인으로 읽기·쓰기 활동 부족을 선택했다. 교사들 스스로 학교 수업의 문제를 지적한 셈이다. 그렇다면 학생이 글을 이해하지 못할 때 학교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교사가 글의 내용을 설명하고 학생이 받아 적는 수업과, 학생이 직접 읽은 뒤 핵심 내용을 정리하고 자신의 말로 설명하는 수업은 학습 경험이 다르다. 모르는 낱말을 알려주는 데서 끝낼 수도 있고, 그 낱말이 문장 안에서 어떤 뜻으로 쓰였는지 확인한 뒤 다른 문장에도 적용하게 할 수 있다. 학생이 글을 읽고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느 부분에서 막혔는지 찾아야 한다. 낱말의 뜻을 모르는 건지, 문장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글 전체의 주장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인지에 따라 지도 방법도 달라진다. 읽은 내용을 자신의 문장으로 쓰게 하고, 교사가 그 결과에 구체적으로 의견을 돌려주는 과정도 중요하다. 문해력 지도가 필요하다는 말과 실제로 어떤 수업을 해야 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그렇다고 교사의 교수법이 최근 문해력 저하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수업방식과 학생의 성취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별도 연구와 수업자료로 확인해야 한다. 교사들은 교육 여건도 문제로 꼽았다. 83.8%가 수업 부담을, 76.3%가 학교 지원 부족을 호소했고, 46.2%는 별도 지원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고 답했다. 한 학급에 읽기 수준이 서로 다른 학생들이 있다면 교사는 같은 글을 가르치면서도 학생마다 다른 설명과 과제를 제공해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학생의 어려움을 진단할 시간과 지도 방법,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실제로 부족한 건 뭘까. 학생을 개별 지도할 시간인가. 교사가 활용할 전문적인 교수법인가. 별도 지원인력이나 학교 밖 전문기관과의 연계인가. 교사의 책임을 묻는 일과 교사가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조건을 확인하는 일은 함께 이뤄져야 한다. 학교를 떠난 뒤가 더 문제 문해력 문제를 학교 성적만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학생들은 언젠가 학교를 떠난다. 그 뒤에도 읽고 이해하고 판단해야 할 일은 계속된다. 근로계약서를 읽을 때는 임금과 근로시간, 계약기간, 불리한 조건이 뭔지 알아야 한다. 금융상품에 가입할 때는 이자율과 수수료, 손실 가능성을 비교해야 한다. 병원에서 받은 안내문이나 의약품 설명서를 이해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문장을 읽을 수 있다고 해서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자신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인공지능(AI)이 확산하면서 읽기 능력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AI가 질문에 답하고 긴 글을 요약해 주더라도 그 내용이 사실인지, 근거가 충분한지, 중요한 조건을 빠뜨리지는 않았는지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남는다. OECD의 2023년 성인역량조사에서 한국 성인 16~65세의 문해력 평균은 249점으로 OECD 평균보다 낮았다. 31%는 가장 낮은 수준인 1수준 이하에 머물렀다. 반면 16~24세의 평균은 276점으로 OECD 평균보다 높았다. 한국의 모든 세대가 같은 수준의 문해력을 보이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이 조사만으로 현재 학생들이 장차 문해력이 낮은 성인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단할 수도 없다. 학생 대상 PISA와 성인역량조사는 평가 대상과 방식이 다르다. 다만 성인역량조사는 문해력이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중요한 역량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해력과 교육수준, 고용·소득 등 사회경제적 결과 사이에도 관련성이 나타난다. 그렇다고 문해력 하나가 개인의 직업이나 소득을 결정하는 건 아니다. 교육 기회와 노동시장 여건, 개인의 다른 역량도 함께 작용한다. 국가 차원에서도 문제는 이어진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한 직업 재교육, 평생학습, 공공정책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의사결정에도 읽고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해력은 학교에서 평가하지만, 그 영향은 학교 밖에서도 이어진다. 진단 이후, 얼마나 달라졌나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교육부는 2023년부터 제1차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을 시행하고 있다. 학생의 학습수준을 진단하고,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학교 안팎의 지원을 연결하는 체계다. 교원의 지도 전문성 강화와 업무 여건 개선도 계획에 포함됐다. 하지만 계획이 있다는 사실과 학생의 읽기 능력이 실제로 나아졌다는 사실은 다르다.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얼마나 빨리 발견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된 학생에게 어떤 지도가 얼마나 제공됐는지, 지원을 받은 뒤에는 실제로 어느 정도 나아졌는지도 살펴야 한다. 예컨대 학생이 긴 글의 핵심 내용을 찾지 못한다면 단순히 보충수업을 받았다는 기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도 전후에 글의 내용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능력이 달라졌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별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얼마나 다른지도 중요하다. 학생의 어려움이 비슷하더라도 학교에 전문인력과 지도 시간이 충분한지에 따라 지원 경험은 달라질 수 있다. 이번에 확인한 공개자료만으로는 이런 성과를 전국 단위에서 일관되게 평가하긴 어렵다. 교사들이 학생 문해력 저하를 우려하는 건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국제평가에서도 최근 읽기 성취도 하락이 확인됐다. 그러나 문제를 발견한 사람과 해결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 반드시 다른 건 아니다. 가정에서 어떤 언어 경험을 제공하는지, 학교는 읽기 능력을 어떻게 가르치고 평가하는지, 교사는 학생별 어려움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정부는 필요한 지원을 얼마나 제공하고 성과를 확인하는지 함께 따져야 한다. 학생들의 문해력이 낮아졌다는 진단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학생들은 결국 학교를 떠난다. 그때 학생들이 얼마나 읽고,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가. 문해력 논쟁의 답은 그 결과에서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