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2026년 중등 공립 신규교사 임용시험을 앞두고 사서교사 임용 경쟁률이 12:1을 넘어섰다. 심지어 서울의 경우 경쟁률이 32:1을 달성해 사서교사 교원의 양성/배치에 실패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사서교사 공급은 적고 수요는 높은 상황에서 채용 인원을 매우 적게 편성했기 때문이다. 2018년 학교도서관 진흥법 개정으로 모든 학교도서관에는 이를 운영하는 전문인력을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1만 2073개 학교도서관 중 5745개 도서관은 전문 인력이 없고, 사립학교를 제외하더라도 4773개 도서관이 비어 있다. 학생이 1000명이 넘고, 예산이 3000만원을 넘겨도 이를 집행할 전문가가 없다. 현장에서는 사서교사 배치를 요구하고 있다.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은 올해 국정감사를 통해 “AI 시대에 걸맞는 학생의 독서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 강화를 위해 사서교사를 배치”를 요구했고, 지난 4월 열린 독서교육 정책토론회에서도 사서교사의 교육적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연구 결과도 마찬가지이다. 교원이 탐구학습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할수록 사서교사의 필요성을 느낀다는 연구(정진수, 2024), 동료 교원들이 독서교육 및 협력수업에 대해 사서교사의 역할을 크게 인식하고 있다는 연구(이연옥, 2020)를 찾아볼 수 있고, 사서교사의 필요성에 경기 등 몇몇 지역은 자체 예산을 이용해 기간제 사서교사를 채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사서교사 배치에 미온적이다. 1963년 사서교사가 생긴 후 60년간 사서교사 배치율은 16%로 매우 저조하다. 교사 1명이 35년간 근무한다고 가정했을 때, 모든 공립 학교 도서관에 사서교사를 배치하기 위해서는 연간 296명의 사서교사를 선발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의 사서교사 TO는 필요 인원의 반의 반조차 되지 않는다. 선발 뿐 아니라 양성도 문제이다. 사서교사 양성체제 방안 연구(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2022)에 따르면 한 해에 배출되는 사서교사는 260명 내외이며, 그마저 서울, 경기 지역에 집중돼 있다. 보건교사 양성 기관은 120개, 영양교사 양성 기관은 112개, 전문상담교사 양성 기관은 135개인데 비해 사서교사 양성기관은 38개에 불과하다. 사서교사 배치 필요성을 느낀 교수, 학생, 동료 교사들은 양성 기관 확대를 요구한다. 법에서 전문 인력을 배치할 것을 명시하고, 현장에 사서교사에 수요가 있으니 사서교사 양성 기관을 확대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양성 기관 확대, 나아가 대학원 내 정원 조정조차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남대학교는 전남 지역의 사서교사 양성 확대를 위해 교육대학원 사서교육 전공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정원 조정을 요구했으나 교육부는 거부했다. 이에 지난 14일, 전남대학교 문헌정보학과 학생들은 교육부 앞에서 교육대학원 사서교육전공의 정원 조정을 허가하지 않는 교육부를 규탄했다. 초등교사 단체도 사서교사 양성을 위한 제도 확대가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전직 등을 통해서라도 현장에 사서교사를 배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AI시대, 정부가 ‘생각하는 힘, 질문하는 능력, 인간다운 상상력을 키우는 인문학 교육을 확대’하고자 한다면 사서교사의 양성부터 배치까지 이어지는 장기적인 사서교사 양성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미래 역량은 스스로 알고자 하는 호기심에서 올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고른 책에서 삶을 지탱해 줄 문장들을 발견할 것이다. ‘화씨451’의 저자 레이 브래드버리는 “도서관이 없다면 우리에겐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학교도서관이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자 미래를 비추는 등대가 될 수 있도록, 사서교사라는 등대지기를 두어주길 다시금 요구한다.
더에듀 | 올해는 이오덕(1925~2003) 선생이 가신 지 23년이 되고, 그의 탄생 한 세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필자를 비롯한 이 나라 교육계의 후학들은 한 시대의 사표로 살다 가신 선생을 기리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기억하고자 한다. 그는 분명 한국 교육사에서 대표적인 ‘삶과 글, 교육을 하나로 엮어낸 실천적 교육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교사·아동문학가·교육운동가로 활동하며 평생 ‘아이들이 자기 목소리로 말하고 자기 삶을 살아가는 교육’을 강조했다. 이 시대에 추진하는 이른바 생활 글쓰기, 삶을 가꾸는 교육, 참교육의 철학은 모두 그의 손에서 탄생하거나 깊이 확장된 개념들이다. 2025년, 그의 탄생 100주년을 우리가 기리는 이유는, 그의 교육 방식이 여전히 의미 있고 오히려 현재의 학교가 더욱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삶에서 시작하는 교육 — ‘생활 글쓰기’의 혁명 이오덕 선생은 한국 교육 현장에서 대부분의 글쓰기 지도가 모범답안을 따라 쓰게 하는 ‘정답 글쓰기’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솔직하게 적는 ‘생활 글쓰기’를 교육의 중심에 놓았다. 필자 또한 한때 글쓰기의 과정을 익히면서 기본적 마인드와 자세는 그의 사상과 방식에서 힘입은 바가 크다는 사실을 고백하고자 한다. 어느 시골 학교에서 선생이 지도한 한 학생의 글은 유명하다. “아버지가 먼 도시로 일하러 가신 날, 엄마는 새벽부터 말을 아끼셨다. 나는 밥숟가락이 넘어가지 않았다.” 이 문장은 문법적으로 완벽하진 않지만 아이의 마음이 그대로 살아 있다. 선생은 “이 한 줄이 아이를 바르게 자라게 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말하고 표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교육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오히려 인공지능(AI)으로 생성된 글, SNS에서 퍼온 문장들이 학생 글쓰기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시대일수록 이오덕의 생활 글쓰기는 학생의 ‘진짜 목소리’를 회복시키는 강력한 교육적 도구가 되고 있다. 경쟁 대신 성장을 바라본 교육 — ‘사람을 키우는 학교’ 일찍이 이오덕 선생은 성적과 서열 중심의 교육이 아이를 병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1970~80년대 농촌학교에서 그는 학생들의 성적표 대신 생활기록장에 ‘오늘 더 따뜻해진 말 한마디’, ‘친구와 함께한 일’, ‘정직했던 순간’ 등을 기록했다. 한 제자는 훗날 그 기록을 보고 “선생님이 나의 성적이 아니라 나의 삶을 봐주셨다는 사실이 평생의 자존감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지금 학교 현장에서도 기초학력, 성취도, 수행평가가 학생 평가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아이가 하루 동안 보인 작은 배려, 용기, 성찰은 공식 문서에 남지 않는다. 이오덕의 교육관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성장’을 기록하고 인정하는 교육이 왜 중요한지를 묻고 있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어른 — 참다운 교사의 길 이오덕 선생은 교사를 정의하길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아이의 삶을 지켜주는 사람’이라 했다. 그가 남긴 한 일화는 지금도 많은 교사가 인용하고 있다. 어느 날 아이들이 교실에서 장난을 치다 창문을 깨뜨렸다. 동료 교사들은 혼내야 한다고 했지만, 이오덕은 오히려 현장을 가만히 살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어떤 마음으로 놀았니? 무엇 때문에 창문이 깨졌을까?” 그는 벌을 주지 않았다. 대신 아이들과 함께 깨진 창문을 치우고, 위험하지 않게 뛰어놀 방법을 함께 찾았다. 벌점은 아이를 잠시 멈추게 할 뿐이지만, 스스로 책임을 느끼는 경험은 평생 가는 배움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실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고 오히려 더 커져만 간다. 그러나 이오덕 선생이 보여준 ‘아이의 입장에서 다시 보기’는 일종의 역지사지의 자세이자 회복적 생활교육, 대화와 소통 중심의 갈등 해결이 강조되는 지금의 교육 방향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할 수 있다. 왜 탄생 100주년에 이오덕 선생을 다시 추모하는가? 그의 사상은 단순한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지금 한국 교육이 절실히 돌아봐야 할 미래의 가치라 할 수 있다. ▲아이의 삶을 중심에 두는 교육 ▲경쟁보다 성장을 중시하는 교육 ▲진짜 목소리를 존중하는 교육 ▲교사가 먼저 인간적 품위를 보여주는 교육, 바로 이것이 그 이유라 할 수 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으나 실천하기 어려운 가치들이다. 학교폭력, 학업 스트레스, 정서 소진이 점점 심각해지는 오늘의 학교에서 이오덕의 교육은 여전히 유효하며 더욱 절실한 상황에 이르렀다. “사람답게 사는 아이들이 자라는 학교” 올해 탄생 100주년 해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그의 교육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교육을 할 것인지 다시 묻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자기 언어로 말하고, 자기 삶을 쓰고, 자기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 그것이 바로 이오덕 선생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이다. 오늘의 교실이 그가 꿈꾸던 ‘사람답게 사는 아이들이 자라는 학교’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의미는 충분하다 할 것이다. 작은 글 한 편, 아이를 바라보는 눈길 하나, 격려의 말 한마디가 바로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적어도 글을 쓰는 교육자는 그의 문법과 글쓰기 지침을 모델로 삼아 절차탁마의 수련을 거칠 필요가 있음을 이 글을 통해 제언하고자 한다.
더에듀 | 가상세계가 수업에 활용되면서 교실과 학교라는 공간의 벽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교사들은 확장된 교육공간 속에서 아이들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것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하면서 흥미도와 참여도가 향상했다고 말한다. 이에 <더에듀>는 가상현실을 활용한 교육활동에 도전장을 내민 ‘XR메타버스교사협회’ 소속 교사들의 교육 활동 사례 소개를 통해 아이들과 수업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지 살피고자 한다. 작은 교실, 더 넓은 세계를 꿈꾸며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교실은 물리적으로 작고 한정된 공간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은 언제나 이 작은 교실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인한 기후 위기, 낯선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필자의 학급에도 다양한 문화권의 친구들이 모여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다면 이 작은 교실에서 넓은 세상을 만나고, 더 나아가 세계시민으로서 성장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필자는 그 고민의 실마리를 ‘생성형 AI’에서 찾을 수 있었다. AI, 세상과 소통하는 창문이 되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세계시민교육 수업은 총 10차시에 분량으로 개발되어 진행되었다. 수업 내용은 인공지능 리터러시와 세계시민역량의 하위 요인을 고려하여 선정하였다. 처음 수업을 시작할 때 초등학교 5학년인 필자의 학급 학생들의 대부분은 ‘세계시민’이라는 용어를 처음 들었다고 했다. 그러니 ‘세계시민’의 정의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필자는 오히려 생성형 AI라는 친구를 통해 학생들이 세계시민으로서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 궁금해졌다. AI라는 창문을 통한 첫걸음을 떼다 프로젝트 수업의 첫 시작인 1~2차시에서는 AI 윤리와 기초 지식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AI는 우리의 삶을 간편하고 효율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부분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또 단순히 AI의 긍정적이고 밝은 면만을 강조하는 것보다 AI가 만들어낸 가짜뉴스, 편향된 정보 등 AI의 어두운 면을 살펴보며 ‘AI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AI를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하여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연습하며 세계와 소통하는 첫 걸음을 뗐다. 창문 너머의 ‘우리’를 발견하다 3차시에서는 생성형 AI인 ‘뤼튼(Wrtn)’과의 문답을 통해 세계시민의 정의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뤼튼과의 대화를 통해 얻어낸 각자의 세계시민의 정의에 대해 조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시민’의 모습을 구체화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은 캔바(Canva)를 활용한 ‘세계시민선언문’을 만들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양한 색깔의 세상을 만나다 4~5차시에서는 조별로 탐험해 볼 문화권을 정하고 그곳의 고유한 전통 의상, 음식, 생활 모습 등에 대해 조사했다. 학생들은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문화권의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뤼튼을 통해 그림을 생성하며 시각적 자료를 만들기도 했다. 조별로 조사하고 생성한 발표 자료를 친구들 앞에서 다양한 문화권에 대해 소개하며 본격적으로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탐험의 시간을 가졌다. 작은 교실에서 세상을 향해 외치다 6~7차시에서는 단순한 세상 구경을 넘어 세계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졌다. 뤼튼과 함께 기후변화, 인권과 평등, 난민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해 탐색하고 조별로 가장 해결이 시급하다고 생각되는 이슈를 골라 국제 뉴스 제작을 위한 시나리오를 작성하였다. 학생들은 조별로 조사한 내용과 생성된 이미지를 캔바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작성해 나갔다. 학생들이 쓴 시나리오와 생성한 이미지가 브루(Vrew) AI 영상 제작을 통해 ‘우리 반 국제 뉴스’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너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 8~9차시에서는 ‘우리 반 국제 뉴스’를 시청하며 어느덧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토의의 장으로 변해갔다. 뉴스를 통해 다른 조가 조사한 글로벌 이슈에 대해서도 알아보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생겨났다. 학생들은 다시 뤼튼과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 방법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이를 바탕으로 열띤 토의를 이어 나갔다. 이번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글로벌 이슈에 대해 직접 동참함으로써 ‘책임 있는 세계시민’으로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세상을 향해 띄우는 힘찬 다짐 10차시에서는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으로 글로벌 이슈 해결을 위한 작은 실천을 다짐하는 캠페인을 기획하였다. 학생들은 ‘안 녹는 쓰레기, 녹는 빙하’, ‘기아 4초에 1명씩 사망’ 등 캠페인 포스터에 들어갈 문구를 작성하였고, 캔바를 통해 포스터를 완성하였다. 학생들이 직접 만든 캠페인 포스터에는 세상을 향한 학생들의 진심 어린 목소리와 굳건한 다짐이 느껴졌다. 학생들 마음속 자라난 '공감'과 '책임'의 싹 10차시의 여정을 마친 후, 학생들에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막연함’이 ‘선명함’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생성형 AI를 통해 세계를 알아가고,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실천적인 활동을 통해 세계시민으로서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크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단순히 “환경 오염을 막아야 한다”, “지구를 지키자”라고 말하던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기후 위기가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먼 나라의 전쟁이 왜 우리에게 아픔이 되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과의 관계, 공감과는 먼, 그저 차가운 기술로만 여겨졌던 생성형 AI가 오히려 학생들과 세계를 이어주는 따뜻한 다리가 되어줄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가치가 있는 수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수업을 통해 우리 반 학생들의 마음속에는 ‘세계시민’이라는 작은 씨앗이 뿌려지고 싹이 텄다. 이 여린 싹이 자라고 성장하면서 진짜 사회에서 맞닿게 되는 문제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세계시민’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문제 해결을 위해 실천할 줄 아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XR메타버스협회 소개 XR메타버스교사협회는 XR과 메타버스에 관심을 가진 전국의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비영리 단체다. 초·중·고등학교 현장에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며, 교육에 접목할 수 있는 XR·메타버스의 다양한 가능성을 연구하고 실험해 보고 있다. 단순히 이론적 분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교재를 개발하여 수업에 투입하고,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더 많은 동료 교사들에게 노하우를 확산하고 있다. 또한 기업과 협업해 기술적 자문과 지원을 받고, 이를 교실 현장에 검증하는 과정도 거치며, 각종 학회나 박람회 부스를 통해 교육 혁신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오고 있다. 강유미 = 양청초등학교 5학년 담임이자 인성시민기획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최근 한국교원대학교에서 인공지능융합교육 석사학위를 받았다. AI와 에듀테크를 활용해 교실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수업을 지향한다. 학생들이 AI를 주체적인 도구로 삼아 창의적인 문제 해결력을 지닌 미래 인재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고자 한다.
더에듀 |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 2항에서 우리나라 정치형태는 민주주의, 즉 국민주권주의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모든 국민이 주인이라는 뜻이다. 주인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의사결정 과정을 정치라고 한다. 국가적 수준에서의 의사결정을 ‘좁은 의미의 정치’, 그밖에 일상생활에서의 의사결정을 ‘넓은 의미의 정치’라고 한다. 또 전자를 ‘정치형태로서의 민주주의’, 후자를 ‘생활원리로서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공교육에서, 생활원리로서의 민주주의 교육은 잘 실현되고 있는 것 같다. 학교폭력 예방 교육, 다문화 이해 교육, 생명 존중 교육 등 다수의 교육을 통해 인권, 이해와 존중, 배려 등의 민주주의적 가치가 내면화되고 있다. 또 학생 자치를 통해 대화와 타협, 다수결의 원리 등도 잘 학습되고 있다. 그런데 협의의 정치, 즉 치형태로서의 민주주의 교육은 오히려 위축되고 있는 것 같다. 헌법 제7조 2항에서는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헌법 제31조 4항에서도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해 교육에 있어서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고 있다.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은 교육의 중립은 애초에 교육과 교원이 특정 정파에 동원되는 것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교육기본법 제6조 1항에서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동법 제14조에서도 ‘교원은 특정한 정당이나 정파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하여 학생을 지도하거나 선동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서 ‘권리 조항’으로 보장되고 있는 정치적 중립이 법률에서는 의무조항으로 둔갑한 것이다. 왜 이런 불합치성이 발생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규정이 정치형태로서의 민주주의 교육의 족쇄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공직선거법상 만 16세부터 정당 가입이 가능하고, 만 18세부터 선거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강조되면서 교실에서는 정치가 ‘금기’가 되었을까? 가장 쉽게 짐작되는 이유는 미성숙한 청소년이 교사의 정치적 성향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과관계도 불분명할 뿐 아니라 사실도 아니다. 청소년도 성숙할 수 있고, 성인도 미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청소년들은 교사뿐 아니라 부모, 친구, 미디어 등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만 16세부터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는 법률의 취지와도 맞지 않다. 그런데 교사가 공무원이기 때문에 교사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예상되는 것은 교사가 교육을 정파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위험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랴’라는 속담처럼 교육의 중립성을 준수하느라 더 중요한 민주주의 교육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마치 거짓 선동가들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완전히 금지시켜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지금의 정치적 중립은 그 모호성으로 인해 정치 자체를 금기시하게 되었다. 교사의 지극히 교육적인 지도가 별안간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듯 교사의 어떤 발언이 별안간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 혐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적 중립이란 정치적 논쟁에 대해 어떤 평가도 하지 말 것, 어느 한쪽에 불리하거나 유리한 이야기도 하지 말 것, 누군가 듣기 불편한 이야기도 하지 말 것. 즉 양비론이나 양시론 또는 기계적 중립, 심지어 침묵으로 정리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정치적 중립’이 모든 정치적 관심과 대화와 토론을 가로막고 있다. 플라톤이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받는 것이다”라고 말한 이유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더에듀 | 사람은 늘 바쁘다. 봄에는 새싹이 돋아나는 계절답게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여름은 뜨거운 햇볕 아래 하루 종일 일에 매달리며 흘러간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 더욱 바쁘고, 겨울은 추위와 짧은 해 때문에 몸과 마음이 움츠러든다. 그렇게 사계절을 정신없이 보내다 보면 어느새 한 해가 훌쩍 지나가 버린다. 남는 것은 ‘열심히 살았다’는 흔적뿐이다.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삶의 중심은 결국 ‘나’이며, 그 ‘나’를 잃어버린다면 아무리 성취가 많아도 공허함이 남는다. 나는 이 점을 꼭 강조하고 싶다. 기성세대, 특히 50대 이상은 ‘나를 희생해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삶’을 고귀하고 바람직한 삶으로 포장하며 강요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사회가 아니다. 그렇게 살아서도 안 된다. 국가도, 사회도, 다른 사람들도 내 삶을 대신 챙겨주지 않는다. 내 삶은 내가 챙겨야 한다. 바쁠수록 멈추어야 한다. 지친 나를 쉬게 해 주는 일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부속품이 되지 말고, 주체적인 나를 다시 세워야 한다. 나답게, 내 삶을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회복이다. 그래서 나는 올가을, 나 홀로 여행을 떠나려 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오래된 광고 문구가 떠오른다.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다. 자기 자신을 다시 세우는 작업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잠시 멈추어 서서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곧 삶을 회복하는 길이다. 가을은 이미 깊게 물들어 가고 있다. 붉게 물든 단풍잎처럼, 우리 삶도 잠시 멈추어 서서 자신을 돌아볼 때 더 깊고 아름답게 빛난다. 이제는 공동체의 톱니바퀴가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계절을 맞이해야 한다.
더에듀 지성배 기자 | 교육감들이 학부모의 교육참여 법제화와 교육활동 중 안전사고 발생 시 교원책임 면책 보장 등을 교육부에 요구한다. 반복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부정행위에 대한 대안 마련 등도 논의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교육감협의회)는 지난 20일 경남 통영 스탠포드호텔앤리조트에서 제105회 총회를 개최하고 이 같은 결정과 논의를 진행했다. 우선 이날 8개 안건이 심의·의결됐다. 구체적으로 ▲학부모 교육참여 법제화 ▲교육활동 중 안전사고 발생 시 교원 책임 면책 보장 ▲교원 영리업무·과외교습 원천 차단을 위한 NEIS 시스템 기능 개선 ▲사립학교 사무직원 보수·복무에 관한 「사립학교법」 개정 등을 교육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또 ▲관계회복 프로그램의 실효성 제고를 위한 학교폭력예방법 개정 제안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명칭 변경 ▲2025년도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제2회 세입·세출 추가경정예산(안) ▲2026년도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세입·세출 예산(안) 등이 의결됐다. 이번 안건은 지난 10월 23일 실무협의회를 통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전원 합의 과정을 거쳤다. 교육청 우수사례로는 ▲(경남) 학교급식연구소 맛봄 설립 ▲(서울) 사물인터넷(IoT) 활용 노후건축물 안전점검 효율화 ▲(울산) 지역사회 협력을 통한 학생맞춤통합지원 체계 구축 및 활성화 ▲(제주) 안전한 학교 환경 조성을 위한 학교안전경찰관제 운영 등이 발표됐다 교육의제 토의는 ‘수능 부정행위 현황’과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 도입·연장 대응 경과’를 주제로 진행됐다. 수능 관련 논의에서는 최근 부정행위와 유형별 현황을 살피며 ▲종료령 이후 답안 작성(6호) 등 반복되는 부정행위에 대한 사전 예방 및 홍보·교육 방안을 논의했다. 다음으로 논의된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 도입·연장 대응 경과’에 대한 토의에서는 그간 활동 사항을 공유하고 향후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법의 유효기간 연장을 전제로 한 예산안 제출 및 국회 심의 추진 사항과 ▲교육세 금융보험업분(증세분 포함) 우선 전출을 위한 개정 추진 사항을 면밀히 살피면서 대응하기로 했다. 강은희 교육감협의회장(대구교육감)은 “교육자치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해답을 찾아가야 할 때”라며 “교육 구성원 간 신뢰와 화합은 교육 대전환기를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미래 교육 혁신의 원동력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가올 미래를 주도할 수 있는 교육풍토를 우리 모두가 함께 마련하자”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총회에 앞서 최교진 교육부장관과 교육감들은 학교 민원 대응 및 교육활동 보호책을 논의하는 간담회가 진행됐다. 전국 시도교육감들은 최근 경험한 교권침해 사례들을 공유하며, 학교 현장에서 연이어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들이 단순히 교권의 위기를 넘어 교육 시스템 전체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교육감들은 교육부에 ▲예방 중심의 시스템 구축 ▲신속하고 실효성 있는 법적·제도적 지원 ▲책임과 권리가 조화를 이루는 교육풍토 조성을 위해 대책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음 총회는 2026년 1월 29일(목) 경기교육청 주관으로 개최될 예정이다.
더에듀 | 경기교육청이 AI 기반 교수학습 플랫폼 ‘하이러닝’ 홍보 영상을 공개한 것은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영상 속에서 교사는 AI 시스템의 부속물처럼 그려졌고, 교육의 핵심 가치마저 지운 채 기술 우월주의만이 강조됐다. 비판이 쏟아지자 교육청은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하고 사과했지만, 이미 드러난 인식 수준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홍보 실수로 치부할 수 없다. AI라는 이름만 붙이면 모든 것이 혁신으로 포장되는 현실 그리고 교육을 기술의 하위로 종속시키는 교육이 사라진 심연(深淵)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렇게 본말이 전도된 AI 시대라는 거대한 사회실험 속에서 교육 현장의 혼란과 불신을 심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AI 자체는 교육에서 자신의 역할과 한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AI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고, 무엇을 가르칠 수 없느냐?’고 물어보니, AI는 이렇게 답했다. “효과적인 교수법을 돕고 지식을 전하고 평가하는 것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판적 사고와 창의성, 공감능력, 윤리성처럼 인간적 역량을 키우는 스승 역할은 수행할 수 없습니다.” 이 답변은 단순히 기술적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정의적·심리적 영역 즉 감정, 가치 판단, 공감, 동기 부여 등이 AI로는 대체될 수 없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런데 교육청은 이를 무시한 채 교사를 AI 주변 장치로 전락하는 영상을 만들었다. AI조차 인정하는 한계를 간과한 관료적 착각이 드러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영상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교육 정책의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AI가 교육 현장에 도입되는 과정에서 정책 결정권자들은 ‘혁신’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실제 현장 교사의 전문성과 학생의 학습권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교사단체와 교원노조는 그동안 교육감 정책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해왔으며, 교육정책은 본래 이런 긴장과 균형 속에서 발전한다. 만약 이들이 제시하는 대안이 정책 담당자의 판단보다 더 나은 혜안을 담고 있다면, 그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마땅하다. AI 교육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기술의 도입이 교육의 목적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 교사는 학생의 사고와 감정을 읽고, 상황에 맞는 판단과 지원을 제공하는 핵심 주체이다. AI는 어디까지나 보조 도구일 뿐, 교사의 전문성과 인간적 판단을 대체할 수 없다. 하버드대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기술은 학습을 보조할 수는 있어도, 인간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력만큼 깊은 가르침을 줄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교육청이 해야 할 일은 AI를 ‘보조 장치’로 설계하고, 교사가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도록 제도적, 현장적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미국 MIT 미디어랩의 생성형 AI 연구에서 AI가 생각을 ‘대신’해 주면 사람은 생각을 멈춘다고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사고(思考)의 외주화’라 부른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홍보 사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교육청은 먼저 정책 기획과 집행 과정에서 기술이 교육 본질을 훼손하지 않도록 현장 검증과 지속적 피드백 체계를 구축해야 힌다. 그리고 학생의 창의성과 인성 발달을 우선시하는 거시적·미시적 평가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가 기술 중심 정책의 한계를 성찰하고 교육 본질을 회복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더에듀 전영진 기자 | ‘ASEL 아들러식 사회정서학습’을 받은 김해삼문고 학생들이 ‘공감, 용기, 공동체감’의 소중함을 느끼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는 호평을 쏟아냈다. 한국아들러상담학회는 지난 19일 김해삼문고 1학년 전교생을 대상으로 'ASEL 아들러식 사회정서학습'을 실시했다. 이번 교육은 학회 영화치료 분과 개발팀에서 전통적인 사회정서학습을 아들러 심리학 기반으로 개발한 것이다. 개발자인 이재근 영화치료 분과장은 “2024년부터 교육부 주도로 시작된 사회정서학습(SEL)을 ‘아들러 심리학’과 ‘아들러심리영화’를 연결해 ‘ASEL 아들러식 사회정서학습’으로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Adlerian Social and Emotional Learning) 이번 교육은 진은희 김해삼문고 전문상담교사가 기획했다. 진 교사는 평소 이 분과장을 통해 아들러 심리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으며, 아들러상담(Adlerian Counseling)이 학교상담(School Counseling) 실행에 최적의 상담 접근법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특히 아들러식 사회정서학습(ASEL)은 아들러 심리학 기반 공동체감과 용기 그리고 공감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 매료돼 ‘자기인식, 자기관리, 사회적 인식, 관계 기술,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내용으로 하는 전통적 사회정서학습(SEL)을 아들러 심리학 기반으로 재해석해 적용해 추진했다. 이번 교육은 아들러심리영화 ‘빅 브라더’를 활용해 진행됐다. 한 학생은 소감문을 통해 “공감이라는 것이 이렇게 큰 힘이 있는지 알게 됐다”며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잘 공감해야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학생은 “이 영화로 교육을 받으니 나도 용기 있는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돕고 싶다”고 했으며 “공동체감을 발휘해 행복한 내가 되고 싶다”고 적은 학생도 있었다. 교육을 진행한 김근영 강사는 “학회 영화치료 분과에서 영화를 통한 아들러 심리학을 생생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며 “공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 청소년을 교육하는 일에 아들러리안으로서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안나 강사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영화인 ‘빅 브라더’를 ‘아들러심리영화’로 발굴·선정하고 학생들의 공동체감, 용기, 공감을 격려할 수 있는 교육을 할 수 있어 기쁘고 행복했다”고 밝혔다. 손수경 강사는 “‘불완전할 용기’를 실천하는 마음으로 강의하게 되었다”며 “내가 할 수 있다면 우리 학생들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아들러 심리학은 ‘불완전할 용기’의 실천을 최상의 용기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한편, 아들러상담학회 소속 상담전문가들은 지난 6월 30일과 7월 7일 천안 불무초등학교에서 교육을 실시하는 등 개발자와 함께 전문적으로 교육 컨설팅을 진행 중이다. 이들은 아들러 심리학과 아들러심리영화를 연결해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임팩트 있게 교육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개발자인 이재근 분과장은 지난 7월 15일 신탄진중학교, 9월 10일 김해삼문고등학교 등에서 시범 강의를 통해 현장에서 직접 학생들과 호흡하고 있다. 아들러상담전문가 그룹은 ASEL 아들러식 사회정서학습을 전국으로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재근 분과장은 “더 많은 아들러상담전문가가 함께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며 “유행처럼 지나갈 교육이 아니기에 가장 중요한 교육”이라고 설명했다. ASEL 아들러식 사회정서학습은 각 학급 교육, 방송 교육으로 모두 실시 가능하며, 또래상담 동아리 교육, 학생회 임원 교육에서도 활용 가능하다.
더에듀 | “너 어른한테 왜 그렇게 말하니?”, “선생님께 인사 좀 똑바로 해라.” 우리는 아이에게 존중을 요구하면서 정작 그 존중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는 제대로 가르치지 못할 때가 많다. 존중 교육의 출발점은 지시가 아니라 어른의 태도이다. 존중은 말로 전달되지 않는다. 시선과 말투,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처럼 일상의 작은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다. 겉치레로 꾸밀 수 없고, 권위로 강요할 수도 없다. 진심이 빠진 예의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른의 말과 행동이 불일치할 때 가장 먼저 그 모순을 간파한다. 아이의 실수를 가볍게 넘기거나 “왜 그랬어!”, “또 너야?”라는 말로 다그치는 순간, 아이는 자신이 존중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크게 체감한다.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아이는 반항하거나 마음을 닫는다. 반대로 존중받는 아이는 생각하고, 이해하고, 스스로 변화를 받아들인다. 즉, 존중은 훈육의 전제다. 아이를 한 사람의 존재로 인정할 때 비로소 훈육은 효과를 가진다. 존중에는 순서가 없다. 나이가 많다고 먼저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지위가 높다고 요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먼저 존중을 베푸는 사람에게 진정한 존중이 돌아온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의견을 진지하게 듣고, 감정을 얕보지 않으며, 사소한 말에도 성실하게 반응해 줄 때 아이는 존중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체득한다. “존중해라”라는 한마디보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이름을 불러주며, 말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태도가 훨씬 강력한 교육이다. 이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아이에게 “나는 존중받는 존재다”라는 감각을 심어준다. 존중은 결국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어른이 먼저 존중을 실천할 때, 아이는 자신도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이해하고 배운다. 그 씨앗은 아이의 태도 속에 뿌리내려, 결국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함께 살아갈 줄 아는 품격으로 자란다. 아이는 존중을 말로 배우지 않는다. 어른의 태도에서 배운다.
더에듀 | 요즘 필자 주변에는 “TV를 아예 보지 않는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치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이 국민을 피로하게 만들고, 공론장은 이미 혐오의 전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야는 국민을 설득하는 세력이 아니라 상대를 제거하려는 전투 집단으로 변했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적대의 언어가 정치의 일상어가 되었고, 국회는 민의를 대변하기보다 증오를 거래하는 시장이 되어버렸다. 이념의 진흙탕 싸움은 사회 전반으로 확산했다. 기업에서는 사용자와 근로자가, 학교에서는 교장과 교사가, 법원에서는 진보와 보수 판사들이 서로를 불신한다. 검찰과 언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가 국민의 피해의식을 자극하고, 그 분노에 조응(照應)하며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동안, 한국은 OECD 사회갈등지수 3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대한민국은 이제 ‘팔꿈치 사회’로 변했다. 모든 것이 이항대립으로 구도화되었다. 정치가 팔꿈치를 휘두르고, 언론은 그 장면을 확대 재생산한다. 폴리페서들은 학자의 이름으로 진영을 대변하며, 학문과 양심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한때 사회의 양심이었던 종교계마저 침묵 속에 갇혀, 기도와 목탁 소리가 세속의 소음으로 들릴 뿐이다. 여당은 오만하고, 야당은 책임을 회피한다. 정책 논쟁 대신 ‘전 정권 타령’과 ‘내로남불’이 난무한다. 정치의 본질은 갈등을 조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인은 갈등을 키우고, 그것을 팔아 표를 얻는다. 하버마스가 말한 ‘합리적 공론장’은 사라지고, ‘진영의 함성장’만 남았다. 마치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들이 피를 흘리며 군중의 환호를 기다리던 장면처럼, 오늘의 정치가 ‘증오의 엔터테인먼트’로 전락한 것이다. 토크빌은 “민주주의의 최대 위기는 자유의 남용이 아니라 무관심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정치가 입법의 절차로 빙의된 정치적 구호를 외치며 대중의 감정을 선동할 때, 무관심한 국민은 그들의 검투 경기를 묵묵히 지켜보는 관객이 된다. 그러나 이제 국민이 심판이어야 한다. 언론이 진실을 왜곡하면 시청률로, 정치가 부패하면 투표로, 종교가 침묵하면 양심으로 응답해야 한다. 에드먼드 버크는 “불의를 키우는 것은 불의가 아니라 우리의 무관심”이라 경고했다. 그 말은 오늘의 한국 사회에도 유효하다. 오염된 언어와 왜곡된 인식이 정화되지 않으면, 사회 전체가 그 탁류에 잠식된다. 마하트마 간디는 “진리는 언제나 소수의 편에 있다”고 했다. 굴절된 정의가 울림을 잃는 동안, 역사는 언제나 진실된 스승의 목소리를 기억해 왔다. 이제 교육계의 구루(guru·스승)들이 나서야 한다. 아이들에게 진리와 양심을 가르치고, 말의 품격으로 사회를 세워야 한다. 우리의 언어가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증오로 얼룩진 이 땅의 정치와 언어가 치유되려면, ‘진리의 민들레 홀씨’가 되어 곳곳으로 흩날려야 한다. 한국 사회는 지금 콜로세움의 검투사처럼 서로를 상처 입히며 생존을 증명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승리는 상대의 피가 아니라, 상처를 어루만지는 연민에서 비롯된다. 분열의 시대를 넘어, 공존의 언어로 다시 공론장을 세울 때 비로소 우리는 증오의 굴레를 벗어나 인간다운 민주주의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