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김연재 수습기자 | 전북교육청은 ‘2026년도 지방보조금(민간보조) 지원사업’ 공모 접수를 오는 21일 오후 6시까지 받는다고 7일 밝혔다. 지방보조금 지원사업은 건전한 시민사회단체를 육성하고, 민간의 교육사업 참여를 확대해 다양한 교육수요에 적극 대응함으로써 학생 중심 전북교육을 실현하는 데 목적이 있다. 올해 공모 분야는 ▲경제교육 ▲독서토론 교육활동 지원 ▲예술활동 지원 ▲소외계층 평생교육 프로그램 지원 ▲다문화학생 교육지원 ▲환경교육 지원 ▲민주시민교육 지원 등으로 총 예산 규모는 15억원 내외이다. 지원 대상은 △공익활동을 주목적으로 하는 법인 또는 단체 △사무소가 전북특별자치도에 소재하고, 사업범위가 학생·교직원·학부모를 비롯한 초·중등교육 관련 사업인 단체 △공고일 현재 최근 1년 이상 공익활동 실적이 있는 단체 등이다. 신청을 희망하는 단체는 오는 21일까지 지방보조금관리시스템인 ‘교육청보탬e’를 통해 온라인으로 접수하면 되며, 사전심의 및 보조금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오는 3월 중 최종 선정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보조금 지원이 결정된 단체는 분기별로 집행 내역을 공개해야 하며, 전북교육청은 보조금 사업의 적정한 집행을 위해 지방보조사업의 수행 상황을 점검하고, 사업 완료 후에는 사후 성과평가를 실시해 다음 연도 보조금 사업 심사에 반영할 예정이다. 이상곤 예산과장은 “지방보조금 지원사업 공모를 통해 적정하고 필요한 보조사업이 선정되어 다양한 교육수요를 충족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지방보조금 지원사업을 적정한 규모로 지원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운영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더에듀 김연재 수습기자 | 학교폭력 사안처리 과정 중 다문화 학생의 억울함이 없도록 통번역 서비스를 제공한 조서희 서울교육청 장학사가 적극행정 최우수상을 받았다. 서울교육청은 7일 ‘2025 하반기 적극행정 우수사례 경진대회’를 열고 조서희 동부교육지원청 장학사 포함 8명의 적극행정 우수공무원을 선정해 시상했다. 최우수상을 받은 장서희 서울교육청 동부교육지원청 장학사는 학교폭력 사안처리 과정 중 다문화 학생의 억울함이 없도록 제공한 통번역 서비스 ‘동부 온든든 통역지원단’을 운영했다. ▲자치구가족센터 2곳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18개 언어 상시 지원 인력풀 구성 ▲이주배경주민으로 구성된 생활통역봉사단 훈련 ▲학교폭력사안 조사 및 심의 시 사용될 통역 매뉴얼 발간 ▲통역 이용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운영시스템 구축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우수상은 강희정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주무관(주사)과 최근영 서울교육청 주무관(주사보)가 받았다. 강 주무관은 늘봄학교 관리시스템 개발에 참여해 학생 안전의 골든타임을 확보하고 업무 담당자의 업무 자동화를 실현한 것을 인정 받았다. 최 주무관은 교육취약학생 맞춤형 문·예·체 진로통합지원사업인 새꿈더하기를 실행하며 지원을 10배 확대한 민·관·공·학 협력모델을 구축한 것이 높게 평가됐다. 장려상은 김동원 교육시설관리본부 주무관(주사보), 하광용 서울교육청 주무관(주사), 강윤지 서울교육청 장학사가 귀감상에는 정의일 남부교육지원청 주무관(주사보), 김동우 서울교육청 주무관(주사)가 선정됐다. 정근식 서울 교육감은 “적극행정은 교육수요자가 서울교육의 변화를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며 “이번 우수사례 선정을 계기로 현장의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행정이 더욱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선정된 장학사 등 교육전문직에는 2025년 성과상여금 평가에서 가산점이 부여된다. 일반직 공무원 중 우수 등급은 성과급 최고등급 부여, 포상휴가(최대 5일), 문화상품권 등에서 인센티브를 선택할 수 있다. 장려상 수상자는 3일의 포상휴가와 문화상품권이 주어진다. 귀감상은 문화상품권만 지급된다.
더에듀 김연재 수습기자 | 전북교육청이 인공지능(AI)을 도입해 학교 안전사고 예방과 현장 업무 부담 감소에 나선다. 전북교육청은 2026년 신규사업으로 ‘AI 기반 학교안전사고 예측 모델’을 개발해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를 예방한다고 7일 밝혔다. AI 예측 모델은 안전사고 발생 예측 정보를 학교 현장에 제공해 기존의 안전사고 대응 중심에서 예방 중심 안전관리 체계로 전환을 꾀한다. 안전사고 유형 복합화에 따라 AI 기반 분석과 예측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 사고 단순 분석에 그치지 않고 학교 유형과 교육환경에 따라 사고 위험도를 예측해 ‘학교안전 예보’ 형태로 학교에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북교육청은 AI 예측 모델을 안전교육 자료, 지도 문구, 체크리스트 등과 연계해 교사가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학교 현장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안전사고 예방 효과를 높일 계획이다. 실제 전북교육청이 2022~2024년 최근 3년간 조사한 ‘학생안전사고 발생 현황’을 보면, 시간대별·장소별 뚜렷한 패턴이 확인됐다. 장소별로는 화장실, 급식실, 강당 등 부속시설 발생 사고가 총 8106건(41%)으로 가장 많았으며, 운동장 발생 사고가 총 5024건(26%)으로 뒤를 이었다. 시간대별로는 체육시간 발생 사고 5669건(29%)으로 가장 많았고, 점심시간 발생 사고 3132건(16%), 학교행사 및 특별활동 시간 발생 사고 2780건(14%)으로 집계됐다. 전북교육청은 AI 예측 모델에 월별·시간대별 사고 사례는 물론, 학교급별·활동유형별·기상조건별 사고 사례 등의 분석 결과를 종합적으로 반영하며, 다음 달 중 학교 현장에 보급할 예정이다. 장경단 학교안전과장은 “학교안전사고는 우연이 아니라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AI 기반 예측 모델을 통해 교사와 학교가 사고 위험을 미리 알고 예방할 수 있도록 지원해 학생 안전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더에듀 김연재 수습기자 |부산 최초 장애·비장애 공립 통합유치원이 개원한다. 편견과 차별 없는 교육을 실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부산교육청은 7일 ‘편견과 차별 없는 특수교육 대상 유아교육 실현’을 위한 부산 최초 장애·비장애 공립 통합 유치원인 ‘공립 단설 새결유치원’이 올 3월 강서구 에코델타시티 내에 개원한다고 밝혔다. 통합유치원에서는 장애 유아와 비장애 유아가 유치원 일과 전반을 함께 한다. 조기 통합교육으로 장애 유아의 사회적 적응력과 자립 역량을 높이고, 모든 유아에게 균등한 교육 기회를 보장하면서 상호 존중과 공감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형성하기 위해 추진됐다. 부산에 통합유치원이 문을 여는 것은 처음이라 더 의미가 깊다. 기존에는 공립유치원에 특수학급을 신·증설한 사례만 있다. 새결유치원은 3~5세까지 일반 7학급과 특수 6학급을 함께 운영한다. 학급은 일반교사와 특수교사가 전일제 협력교수 방식으로 운영하며, 특수교육실무원을 배치해 유아 발달에 적합한 놀이, 일상생활, 활동 등을 지원한다. 유치원에는 감각운동실, 심리안정실 등 다양한 시설과 함께 통학차량 운영으로 등·하원 편의성도 높였다. 김석준 부산교육감은 “새결유치원은 유아 통합교육의 선도 모델로서 지역사회 전반에 포용적 교육문화를 확산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장애‧비장애 유아가 자연스럽게 놀며 배우는 교육환경 조성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더에듀 김연재 수습기자 | 제주교육청이 2027년 3월 개교를 앞둔 신설 특성화고등학교 (가칭)제주미래산업고등학교의 교명을 ‘제주미래고등학교’로 최종 선정했다고 7일 밝혔다. ‘제주미래고’라는 교명은 제주의 발전을 이끌 차세대 핵심 인재를 길러내는 학교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변화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학생들이 미래 역량과 실무 기술을 함께 갖춘 인재로 성장한다는 교육 비전을 상징한다. 교명은 지난해 11월 12일부터 12월 11일까지 한 달간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했고, 공모전에서 접수된 총 279건의 후보를 ‘교명 선정·심의위원회’가 심의해 결정했다. 지역 및 학부모 대표, 특성화고 전문가, 교육청 관계자 등 15명으로 구성된 교명 선정·심의위원회는 ▲학교 설립 취지 ▲제주 지역성과 정체성 ▲미래 산업 변화에 대응하는 교육 방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제주미래고’를 교명으로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선정된 교명은 ‘제주특별자치도 도립학교 설치 조례’ 개정 절차를 거치면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심의를 통해 최종 확정된다. 개정 절차 일정은 조율 중이다. 한편, 제주미래고는 제주시 노형동에 설립되는 공립 특성화고로 △글로벌조리과 △스마트농업과 △디지털·관광콘텐츠과 △인공지능(AI)소프트웨어과 등 4개 학과에 학급당 20명, 총 12학급 240명 규모의 소규모·맞춤형 실습 중심 학교로 운영될 계획이다. 제주미래고 개교 준비를 진행 중인 제주교육청은 2026년 중 신입생 모집 계획과 학과별 운영 모델을 순차적으로 안내할 예정이다. 제주교육청 관계자는 “제주미래고는 제주의 핵심 산업과 미래 사회 변화를 선도할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산학 협력의 중심 학교가 될 것”이라며 “학생들이 미래지향적 역량과 현장 실무 능력을 균형 있게 키울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환경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더에듀 | 대한민국의 교육은 언제나 ‘개혁’이라는 화려한 수사 속에서 전진해 왔다. 그러나 그 이면에 도사린 민낯은 참담하다. 교실은 여전히 서열화의 전쟁터이며, 부모의 경제력은 자녀의 성적을 넘어 인생의 궤적을 결정짓는 절대적 변수가 되었다. 우리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야 한다. 국가 교육과정이 그토록 정교한 체계를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교육비는 매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부모들의 노후를 갉아먹는가. 첫째, 현행 교육과정은 체계적 지식을 전수하는 ‘교과 중심’, 학생의 경험을 중시하는 ‘경험 중심’, 지식의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 중심’, 그리고 전인적 성장을 지향하는 ‘인간 중심’ 가치가 층층이 쌓인 중층적 복합체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이 모델이 현실에서는 유기적 결합 대신, 학생들에게 각기 다른 방향의 학습 노동을 강요하는 모순의 굴레가 되고 말았다. 둘째, ‘창의적 체험활동’의 명과 암, 그리고 그 치명적인 역기능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인 창의적 체험활동(자율·동아리·봉사·진로활동)은 학생의 잠재력을 깨우는 순기능을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 활동이 대입의 결정적 지표가 되는 순간, 그 고귀한 가치는 사교육 시장의 ‘상품’으로 전락했다. 공교육이 설계한 창의성이 권력과 자본에 의해 ‘기획된 스펙’으로 둔갑하는 순간, 개천의 용을 꿈꾸던 아이들의 사다리는 무참히 걷어차였다. 과거 조국 전 장관 사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허위 인턴십’과 ‘논문 저자 등재’는 창의적 체험활동이 어떻게 ‘부모 찬스’를 통한 스펙 조작의 도구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역기능의 사례이다. 셋째, ‘내 아이만은 다르게’라는 교육 지도층의 파렴치한 표리부동이다. 교육의 공정성과 평등을 외치던 수장들의 이중성은 대중의 불신을 심화시켰다. 자사고·외고 폐지를 주장하면서 정작 자신의 자녀는 외고에 진학시켰던 조희연 전 서울교육감 등 이른바 ‘강남 좌파’ 교육 위정자들의 행보는 교육 개혁의 동력을 완전히 잠식했다. 입으로는 ‘인간 중심 교육’과 ‘일반고 역량 강화’라는 숭고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면에서는 엘리트 교육의 단맛을 독점해 온 그들의 위선은 공교육의 보루를 스스로 허물어뜨렸다. 이러한 도덕적 해이는 공교육을 탈출해 사교육의 정점으로 치닫게 하는 최고속 전용 선로를 깔아준 꼴이며, 절망한 학부모들에게 사교육행 ‘탈출 KTX 티켓’을 강제로 쥐어 준 비극적 방조다. 넷째, 입시라는 단일한 ‘깔때기’가 만든 교육 지층의 어긋남이다. 문제의 핵심은 복합적인 교육 가치들을 오직 수능과 내신이라는 협소한 잣대로만 걸러내려는 데 있다. 학교는 경험을 말하지만, 평가는 여전히 정량적 변별력에 귀착된다. 학생들은 낮에는 학교에서 ‘창의’라는 기록을 연출하고, 밤에는 학원에서 ‘점수’라는 생존권을 사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이러한 이중의 과업은 학부모를 사교육의 노예로 전락시킨 근본 동인이다. 이제 우리는 미봉책이 아닌 ‘결단’을 내려야 한다. 단순히 입시 기술을 수정할 것이 아니라 교육의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꿔야 한다. 대학 서열화의 완화와 지역별 비례선발제 같은 구조적 대수술이 선행되지 않는 한, 어떤 교육과정도 사교육의 연료가 될 뿐이다. 또한 지도층의 표리부동을 엄단하고, 학교 내 활동의 질적 균등화·균질화를 통해 부모의 배경이 아닌 학생의 노력이 오롯이 평가받는 토양을 재건해야 한다. 교육은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설계하도록 돕는 숭고한 여정이다. 이제 변별의 기술만을 가르치는 시대를 끝내고, 학생의 삶을 복원하며 진정한 성장을 증명하는 ‘정직한 교육으로의 회귀’를 선언해야 한다. 그것만이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정의로운 교육을 열망하며, 침묵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우직한 항심에 응답하는 유일한 길이다.
더에듀 AI 기자 | 정규교육과정에서 만 3세 유아를 대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가르치는 핀란드 교육이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6일 미국 언론사 The Washington Post는 지난 2013년 국가교육정책에 미디어 리터러시(매체 이해력)를 채택하고 2019년 유아기까지 확대한 핀란드의 만 3세 유아 교육에 대해 보도했다. 핀란드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인공지능(AI) 리터러시까지 확대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허위정보 공격이 유럽 전역에서 심화하면서, 교육 정책은 정보의 진위뿐만 아니라 AI가 생성한 자료를 인식하는 법까지 포함하도록 진화하고 있다. 안데르스 아들레르크레우츠(Anders Adlercreutz) 핀란드 교육부 장관은 “우리가 이렇게 많은 허위정보에 둘러싸일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며 “지금 우리는 정보전(disinformation) 시대에 살고 있으며, 우리의 민주주의는 이러한 정보 공격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고 말했다. 헬싱키 북쪽에 위치한 타파닐라 초등학교에서는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를 구별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교육은 단지 정보의 신뢰도를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사회의 다양한 주장과 메시지를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설계됐다. 빌레 반하넨(Ville Vanhanen) 타파닐라 초등학교 부교장 및 교사는 “우리는 수년 동안 학생들에게 가짜정보에 대해 가르쳐 왔다”며 “지금 우리는 AI로 만들어진 이미지나 영상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법도 배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헬싱키 기반의 일간지 ‘Helsingin Sanomat’은 2024년 15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입문서인 ‘ABC Book of Media Literacy’를 배포하는 등 핀란드 미디어들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협력하고 있다. 핀란드는 유럽 미디어 리터러시 지수(European Media Literacy Index)에서 꾸준히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키이아 하칼라(Kiia Hakkala) 헬싱키시 교육 담당 전문관은 “우리는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이 매우 중요한 시민적 역량이라고 생각한다”며 “국가의 안전과 민주주의의 안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Article Writer를 활용해 작성했으며 지성배 편집국장의 감수를 거쳤습니다.
더에듀 | 민주공화국에서는 교원이나 공무원도 다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이 제한되고 있는 이유는 독재 권력에 의한 부당한 탄압이나, 교원 집단에 대한 비합리적 혐오 때문이 아니다. 헌법에 규정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라는 공공선을 위해서이다. 헌법 제31조 제4항에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헌법 제7조 제2항에는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인 개인적 표현의 자유는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공공선과 충돌하지 않는 개인적 표현의 자유까지 교원과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제한하는 것은 민주공화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정당 가입이나 선거운동 등 교원과 공무원의 집단적 정치활동까지 허용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허용하면 학교를 정치의 장으로 만들 위험성이 있고, 조직적인 관권선거가 부활할 가능성이 있어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학교를 정치의 장으로 만들 위험성 ◆ 보이텔스바흐 협약과 헌법재판소 판례 교원의 정치활동 허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학교 밖에서 근무 시간 외에만 허용하면, 학교 안에서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특히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을 통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76년에 마련된 ‘보이텔스바흐 협약’은 학생들에게 특정한 견해를 강제로 주입하거나 교화해서는 안 된다는 ‘강제성의 금지’ 원칙, 수업에서 현실 세계의 다양한 논쟁적 사안을 다루되 여러 입장을 균형 있게 제시해야 한다는 ‘논쟁성의 유지’ 원칙, 학생들이 스스로 현실적 상황을 판단하고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정치적 행위 능력 강화’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특정 정당에 가입해 선거운동을 하는 교사들이 수업 시간에 정치적 중립 준수와 강압적 주입 금지의 원칙 등 보이텔스바흐 협약을 제대로 지킬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지금까지 교원의 정당 가입이나 선거운동을 제한해 온 이유는 수업 시간에 교사들이 보이텔스바흐 협약처럼 정치적 중립 의무를 준수하도록 강제하기 위해서인데, 지금은 정당 가입이나 선거운동을 허용해도 보이텔스바흐 협약을 철저히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교원들이 보이텔스바흐 협약을 지키면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된다는 말도 교원들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하지 않으면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된다는 말과 같은 동어반복일 뿐이다. 오히려 특정 정당에 가입하여 선거운동을 하는 교사들이 수업 시간에 보이텔스바흐 협약을 철저히 지킬 수 있을지 우려하는 국민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미 헌법재판소도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근무 시간 내외를 불문하고 일절 금지해야 한다고 판단해 왔다. 지난 정당법 제6조 제1호 등 위헌확인(2001헌마710)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감수성과 모방성, 그리고 수용성이 왕성한 초·중등학교 학생들에게 교원이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고, 교원의 활동은 근무 시간 내외를 불문하고 학생들의 인격 및 기본 생활 습관 형성 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잠재적 교육과정의 일부분”이므로 근무 시간 외에서도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국가공무원법 위헌소원 사건(2009헌바298)에서도 “교원의 특성에 비추어 보아 교육공무원의 선거운동을 기간과 태양, 방법을 불문하고 일절 금지하는 방법 외에 달리 덜 제한적인 방법으로 목적 달성이 가능할 것인지 불분명하고, 법익균형성도 갖추었다”라고 판시했다. 헌법재판소는 공직선거법 제60조 제1항 제4호 등 위헌확인(2018헌마222) 사건에서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별 행위들을 일일이 규정하기란 입법 기술상 불가능하고, 근무 시간 내외를 불문하고 학생들의 인격 및 기본 생활 습관 형성 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교육공무원의 특성 등에 비추어 침해의 최소성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라는 공익은 선거운동의 자유에 비해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법익의 균형성도 충족한다”라고 판시했다.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근무 시간 내외를 불문하고 일절 금지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현시점에서 여론에도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교원이 근무 시간 외에 특정 정당에 가입해서 선거운동을 하면서도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정치적 중립 의무를 준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교원들에게 근무 시간 외에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교원이 방과 후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거운동을 해도 막을 방법이 없게 된다. 근무지 밖에서만 선거운동을 허용한다고 해도 교원이 학교 주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거운동을 하면 막을 수가 없다. 일부에서는 요즘 학생들은 교사의 말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는 점을 정치활동 허용의 근거로 들기도 한다. 하지만 교원의 정치활동을 허용하면, 특정 정당 소속의 교장과 교사들이 학교를 편향적으로 운영하게 되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국민이 대부분일 것이다. ◆ 교원의 정치활동과 학생의 민원 증가 일부에서는 교원이 근무 시간에 특정한 정당이나 정파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등 교육의 중립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제한하거나, 수업 시간에 보이텔스바흐 협약을 지키지 않는 교사들에 대한 처벌 조항을 넣어 놓으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교원이 근무 시간이나 개별 수업 시간에 정치적 중립성 의무를 위반하는지, 보이텔스바흐 협약을 지키는지를 판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를 문제 삼고 신고하는 주체가 동료 교사나 학생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학교 내에서 교사 간 혹은 교사와 학생 간 극심한 정치적 갈등과 대립을 유발할 가능성도 매우 크다. 최근 경기 지역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했다’는 학생의 민원이 접수되어 교육 당국이 조치에 나서는 일이 벌어졌다. ‘해당 교사가 수업 중에 전 대통령에 대한 비하 발언을 하고, 지지 집회 참가자들이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이거나 특정 종교단체 신도라고 했다’며 지역 교육지원청에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해당 교육지원청은 이날 학교를 방문해서 특정 정치인, 정당에 대한 모욕과 일방적 옹호 등은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 소지가 있음을 알렸다고 한다. 2019년 서울 인헌고등학교 사태는 교원의 집단적 정치활동이 허용되지 않는 지금도 학교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로 인해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당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이다. 당시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인헌고 마라톤 대회에서 학교 측이 학생들에게 반일 구호를 외치게 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에 학생들로 구성된 인헌고등학교 학생수호연합(학수연)은 교문 앞에서 “학생은 정치적 노리개가 아니다”라는 충격적인 현수막을 들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학생 인권 침해로 보기는 어렵다고 하면서도 일부 교사의 반일 구호제창, ‘조국 뉴스는 가짜뉴스’ 등 발언에 대해서는 “매우 부적절하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인헌고 교장에게는 정치·사회적 현안 관련 행사와 수업 진행에서 학생 의사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서울교육청은 교사들의 발언이 반복적이고, 강압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하지 않았다. ‘교육 공무원 징계 양정에 관한 규칙’에 따라 교사가 정치활동을 할 경우 ‘감봉’이나 ‘견책’을 주는 징계 기준이 있지만, 어디까지를 정치 운동으로 볼지 애매하기 때문에 처벌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교원의 정치활동이 금지되어 있는 지금도 이러한데, 앞으로 교원의 집단적 정치활동이 허용된다면 학교가 정치의 장으로 변질되지 않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학교는 학교폭력과 교권 침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데 교원의 정치활동이 허용되면, 교사가 수업 시간에 말한 것을 꼬투리 잡아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민원을 제기하거나 신고하는 학생들이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동안 학교폭력이나 교권 침해로 징계를 받게 될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이를 모면하기 위해서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과 생활지도조차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교원의 정치활동이 허용되면, 교사가 수업 시간에 말한 것을 꼬투리 잡아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민원을 제기하거나 신고하는 학생들이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까지 아동학대를 핑계로 교사를 신고해 왔는데, 이제는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이라는 또 하나의 무기로 교사를 신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 학교의 가장 큰 문제는 학교폭력과 교권 침해 등으로 인해 학교의 교육력이 심각하게 저하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학교에서 AI 기술 패권 경쟁 시대 세계를 선도하는 미래 인재를 기르기는 어렵다. 여기에 교원의 정치활동까지 허용해서 자칫 극우니 극좌니, ‘1찍’이니 ‘2찍’이니 하는 낡은 이념 전쟁까지 벌어진다면 학교의 교육력은 더욱 심각하게 저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계엄과 탄핵 이후 정치적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시대에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은 시기상조이다. 지금은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 확대가 아니라, 극단적인 정치 투쟁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는 안전한 학교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이다. 조직적인 관권선거의 부활 위험성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헌법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하고 있는 이유는 과거 1960년 4·19 혁명을 불러온 3·15 부정선거 이후 정권이 교원과 공무원들을 조직적으로 선거에 동원하는 관권선거를 방지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교원과 교육공무원에 의한 관권선거 교원의 정치활동이 허용되면, 교육감 선거에서 관권선거가 부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현직 교장이 휴직한 후 교육감 선거에 출마할 수 있고, 교사들도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교장은 소속 교사와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선거 캠프를 꾸리고 선거운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소속 교사와 학부모들 입장에서도 출마한 교장이 선거에서 낙선하더라도 다시 학교에 교장으로 복귀할 수 있으니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현직 교육감이 선거에 다시 나오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관권선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지금은 교육감이라도 지역 학교의 교장과 교사들을 선거운동에 동원할 수가 없다. 그런데 교원의 정치활동이 허용되어 교장과 교사들도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되면, 현직 교육감은 이들을 선거에 조직적으로 동원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교원과 함께 교육청 공무원까지 정치활동이 허용된다면, 현직 교육감이 공적인 교육청 조직까지 총동원하는 관권선거를 막을 수가 없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미 지금도 현직 교육감들은 선거법의 공백을 이용해서 암암리에 관권선거를 하고 있다. 그런데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활동까지 허용되면 현직 교육감들이 날개를 달게 될 것이다. 지금 교육감 임기는 4년이고 3선 연임이 가능하지만, 방대한 공적 조직을 동원할 수 있는 현직 프리미엄으로 인해 사실상 교육감 임기가 12년으로 늘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최근 춘천지방법원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불법 선거 운동과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강원교육감의 교육자치법 위반과 사전 뇌물수수 혐의 사건 선고 공판에서 교육감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앞선 결심 공판에서 교육감과 도교육청 대변인에게 징역 3년을, 관련이 있는 전직 교사에게 벌금 500만 원을, 지역 초등학교 교장 등에게 징역 6개월을 구형했다. 교육감이 선거법 위반으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자, 강원지역 교원단체들이 선출직 공무원의 선거법 위반은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중대 사안이라는 이유로 교육감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앞으로 교원과 공무원들의 정당 가입과 선거운동이 허용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쉽게 알 수 있다. ◆일반 공무원들에 의한 관권선거 교원의 정치활동을 허용하는 것은 정치적 중립 의무가 부여되는 다른 공무원과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교원도 시민으로서 정치적 기본권인 정당 가입과 선거운동 등 집단적 정치활동을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는 공무원도 시민으로서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국공립 유·초·중·고 학교 교원은 법관, 검사, 경찰공무원, 소방공무원, 군인 등과 함께 특수 분야의 업무를 담당하며 자격, 신분보장 등에서 특별법이 적용되는 특정직 공무원이다. 따라서 교원의 집단적 정치활동을 허용하면, 동일한 신분인 특정직 공무원들의 정치적 행위도 허용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공무원도 시민으로서 정치적 기본권인 정치활동을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로 일반직 공무원까지 정치활동이 허용된다면, 전체 지자체 선거에서 현직 시장이나 도지사들이 소속 공무원들을 총동원하는 관권선거가 자행되어도 막을 길이 없게 될 것이다. 특히 현직 시장이나 도지사가 선거에 다시 출마한 경우는 공무원 조직 전체가 관권선거에 동원될 수도 있다. 공무원도 근무지 밖에서만 정치활동을 허용하고, 근무지 안에서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무원들이 특정 정당에 가입해서 선거운동을 하면서도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이므로 관권선거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공무원의 정치적 행위를 허용해도 공직선거법상 엄정한 선거법 집행이나, 선관위의 감시, 감독을 통해서 관권선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의 정치적 행위가 금지되어 있는 지금도 선거법 위반 사건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데 엄정한 법 집행만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우리 사회가 관권선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정치적 양극화가 해소되지 않는 한,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은 시기상조이다. 우리 헌법에서 같은 시민임에도 불구하고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는 이유는 그동안 정치적 이념 대립이 극심해서 관권선거의 폐해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치적 이념 대립이 완화되기는커녕 계엄과 탄핵 등으로 오히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망국적인 관권선거를 방지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도 없이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지지하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더에듀 | 오늘 학교 현장에서 가려진 모순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현재 고등학생 제자는 정당에 가입하고 출마도 할 수 있는데, 정작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교사는 한 줄의 의견도 낼 수 없는 ‘정치적 무권리 상태’입니다. 과연 무엇을 위한 권리 박탈입니까? ‘교육의 중립’은 교사를 무권리 상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부당한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교육 현장을 지키는 것이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교사의 목소리를 막아버리면, 학교에는 현장을 모르는 이들이 만든 탁상행정식 정책들만 남게 됩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의 몫입니다. 교사가 정책 과정에 참여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 환경과 학습 여건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교사가 학생에게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대한민국 교사,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정치적 권리 보장받지 못해 여러분, 대한민국 교사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치적 섬’에 갇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OECD 국가 중 교원의 정치적 권리를 이토록 전면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합니다. 독일, 프랑스, 미국 같은 나라의 교사들은 정당 활동은 물론 출마도 자유롭습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민주주의 의식이 낮아서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교사가 깨어있는 시민일 때 교육이 더 건강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계적 기준에 한참 뒤처진, 이 낡은 규제는 이제 반드시 사라져야 합니다. 근무 시간 외 자유 보장 교사의 정치적 중립은 수업 시간과 학교 안에서 철저히 지켜져야 합니다. 하지만 학교 문을 나선 퇴근 이후의 삶까지 국가가 통제하는 것은 명백한 과잉입니다. 사생활의 영역에서조차 시민권을 박탈당한 교사가 어떻게 학생들에게 주체적인 시민의 삶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퇴근 후의 교사는 공무원이기 이전에 한 명의 시민입니다. 학교 밖에서의 자유는 교육의 중립을 해치는 것이 아닌, 교사의 인격을 존중하는 민주 사회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본입니다. 정당 가입의 필요성 지금 교사들은 교육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있습니다. 정당 가입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겠다는 선언 이전에, 현장의 실상을 전달하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시민의 통로’입니다. 교사가 정당을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비로소 학교는 ‘탁상행정’이 아닌 ‘현장 행정’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교사의 특혜가 아니라, 무너져 가는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가장 실질적인 대책입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이익에 기여 교사의 정치기본권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손해로 작용할까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현장 맥락을 무시한 정책들이 비가 오듯 쏟아질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갑니다. 교사가 정책 과정에 주체로 참여해 ‘이 정책은 아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한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사의 목소리가 살아나야 행정 편의주의적인 정책이 줄어들고,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창의적이고 안전한 학습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사회적 가치 수호를 위해 최근 12.3 계엄 사태나 청소년들의 극우화 현상을 보며 많은 분이 우려하고 계십니다. 민주주의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길러지는 것입니다. 정치가 거세된 교실에서 침묵만 배운 아이들이 어떻게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겠습니까? 교사가 시민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때, 비로소 아이들에게도 혐오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법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교사의 정치기본권은 우리 사회가 비민주적인 압력에 휩쓸리지 않도록 지켜주는 마지막 ‘방파제’가 될 것입니다. 무너진 교권, 왜 정치적 목소리가 해답인가? “교권 보호가 구호에만 그치는 이유, 현장의 목소리에 ‘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는 수많은 동료를 잃으며 교권 침해의 비극을 목격했습니다. 전 국민이 슬퍼하고 대책을 약속했지만, 왜 현장은 여전히 바뀌지 않을까요? 바로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권에 교사들의 목소리가 ‘실질적인 힘’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에게 교사는 ‘보호의 대상’일 뿐, 함께 정책을 논의할 ‘정치적 파트너’가 아닙니다. 교사에게 정치기본권이 있다면, 우리는 교권 보호를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를 바꾸는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내 교실을 지키고 내 제자를 안전하게 가르칠 최소한의 방어막, 그 ‘핵심 열쇠’가 바로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입니다. 교권 회복은 결국 우리 스스로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미래 교육의 설계자, 교사의 정책적 전문성 “교실의 담장을 넘어, 미래 교육을 설계하는 전문가로 거듭나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AI와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교육의 변화 앞에 서 있습니다. 이런 급격한 변화의 시기에 교육 정책이 현장과 따로 논다면 그 혼란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미래 교육의 성공 여부는 교사가 교실 안에만 갇혀 있느냐, 아니면 교육 생태계 전체를 설계하는 주체로 참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교사의 정치기본권은 단순히 투표권을 넘어, 교사의 전문적 식견이 국가 교육 설계도에 직접 반영되게 하는 통로입니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교사가 정책의 파트너로 바로 설 때, 우리 아이들은 비로소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미래 지향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사의 시민권 회복은 대한민국 미래 교육을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입니다.
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내가 스스로 정하는 게 가장 좋다 아이가 스스로 책임지는 행동을 정할 수 있을까요? 정할 수야 있겠지요. 문제는 ‘제대로’ 정할 수 있느냐겠죠. 아이들에 대해 불신을 갖는 사람들, 아이들의 잠재력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제대로 정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겁니다. 맞습니다. 아이들은 불완전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무턱대고 ‘아이들은 믿어주면 다 한다’고 말하는 것에 찜찜함을 느낍니다. 제 경험상 믿어준다고 아이들은 다 알아서 잘 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죠. 그렇다고 아이들의 잠재력을 부정하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아이들의 잠재력은 생각보다 큽니다. 그런데 그 잠재력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닙니다. 믿어주는 건 너무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믿어주기만 하면 나오는 그런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이들을 끌어주고 안내하는 역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얼마나 섬세하게 안내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잠재력은 빛을 발하기도 하고 발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교사의 역할이 너무도 중요한 겁니다. ‘아이들은 믿어주면 다 한다’는 말은 사실 믿어주는 건 기본이고, 응원하고 지지하고 끌어주고 도와주는 모든것들이 전제된 후에야 사실이 되는 겁니다. 이상적 아동관을 갖고 계신 분들한테는 죄송하지만, 믿어주기만 한다고 다 잘하는 아이는 이 세상에 거의 없습니다. 있긴 있을 겁니다. 우리는 그런 아이를 영재 혹은 천재라 부릅니다. 말이 길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아이들은 교사의 도움 아래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달을 수 있고, 스스로 책임지는 행동을 정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는 가능합니다. 아이와 아래와 같은 대화가 가능할 겁니다. “(복도에서 뛰는 아이를 멈춰 세우며) 잠깐 멈출게요. 뭐가 잘못됐을까요?” “복도에서 뛰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복도에서 뛰지 않아요.” 여기까지의 대화, 별것 아닌 것 같은가요? 그럴 수 있겠죠. 그렇지만 “누가 복도에서 뛰래? 여기에 너네만 있어? 또 뛸 거야?” 식으로 다그치는 것보다 저는 훨씬 낫다고 봅니다. 첫째, 질문의 형태로 물어보는 건 상대방이 존중받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둘째, 무엇보다 자기 잘못과 앞으로의 행동을 자기 입으로 얘기했습니다. 사실 지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모범답안을 얘기한 걸 모르지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교사가 일방적으로 혼내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안까지 모두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여기까지만 하면 사실 별 효과가 없는 건 매한가지긴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갈 것 같습니다. “복도에서 뛴 것에 대한 책임지는 행동을 해 볼게요. 어떤 걸 하면 될까요?” “……” 네, 사실 아이는 얘기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아이는 알아서 다 잘하지 않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 책임지는 행동인지 배우지 않으면 모릅니다. 평소에 학급에서 책임지는 행동에 대해 이것저것 고민하고 실제로 해본 경험이 많지 않은 아이라면 쉽게 말하지 못하는 게 당연합니다. 이럴 때 교사가 대안을 제시해 주고 동의를 거치는 과정을 거치면 좋습니다. “책임지는 행동으로 여기서 저쪽 복도 끝까지 뛰지 않고 걸어오는 연습을 하면 어떨까 싶어요. 할 수 있을까요?” 거의 대부분의 아이는 그러겠다고 할 겁니다. 이때, 대안을 더 다양하게 제시하면 좋습니다.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느끼면 아이는 더 존중받는다고 느끼며, 자발적으로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책임지는 행동으로 여기서 저쪽 복도 끝까지 걸어오는 연습을 하거나 ‘복도에서 걸어다니기’ 캠페인을 쉬는 시간에 하면 어떨까 싶어요. 둘 중에 어떤 걸 해볼래요?” 그런데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이 드실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상 선택을 강요한 거 아니냐고요. 아이 스스로 정한 것처럼 했지만 실제로는 교사가 유도해서 그거 아니면 안 되게 한 거 아니냐고요.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과거에 이런 상황에서 항상 선택권이 없었거나 있었어도 ‘답정너’같은 선택권만이 있었거든요. 우리가 스스로 대안을 생각하고 제안한 적도 당연히 없었습니다. 지금이라고 해서 문화가 근본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지금의 아이들도 이런 식의 질문과 선택, 대안 제시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고로 자기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기보단 그냥 선생님의 의도를 빨리 파악하고 할 것 빨리 하고 대충 끝내버리고 싶어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 중요한 건,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의 마음가짐입니다. 정말로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 게 실제로 있겠어, 하고 회의적으로 다가가는 분들도 많다는 것 압니다. 항상 오해는, ‘존중’이라는 것이 아이들의 모든 의견을 들어주고 받아들여 그 의견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강박에서 비롯됩니다.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것이 그런 게 아닌데 말이죠. 존중한다는 건 복도에서 뛴 아이에게 어떤 책임지는 행동을 할 건지 물어본 건 진심이어야 합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물어본 건 아니어야 합니다. 그게 존중의 첫걸음입니다. 실제로 네가 잘못한 것에 대해 너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라는 요구이며, 스스로 내린 결단을 존중한다는 의미입니다. 아이가 진정 고민하여 스스로 얘기하면 사실 가장 좋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대부분은 그런 고민을 해본 적도 없고 아직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기에 교사로서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해 도움을 주는 것뿐입니다. 교사는 실제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아이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런데 교사가 제시한 대안, 즉 ‘복도 걷기 연습’과 ‘복도 걷기 캠페인’ 모두를 아이가 거부하면 어떡할까요? 일단 우리가 아이에게 선택권을 준 이상 아이가 ‘거부할 권리’ 또한 인정해야 합니다. 거부하는 걸 버르장머리 없다고 나무랄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시 돌아가, 정말로 아이가 거부하면 어떡할까요? 당황할 필요 없습니다. 아이가 대답을 못 해서 대안을 제시한 것 뿐이니까요. 그렇다면 다시금 아이에게 대안을 요구하면 됩니다. “선생님, 저 두 개 다 쑥스럽고 하기 싫어요.” “그래? 쑥스럽구나. 그럴 수 있지.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네가 다시 생각해서 얘기해줘. 만약 생각이 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저 두 가지 중 하나를 해야 해.” 아이에게 당장 대답을 요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생각할 시간을 적당히 주는 건 필요합니다. 그런데 시간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책임지는 행동을 얘기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제시한 대안 중 선택해야 합니다. 아이를 존중한다고 하여 아이에게 무제한의 선택권을 주는 건 허용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스스로 책임지는 행동을 정해 하게끔 하는 건 이상적인 방법이며,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 하지만 아이가 책임지는 행동 자체를 회피할 권리는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따윈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본인 스스로 정한다고 정했는데 너무 터무니없는 걸 정했다면요?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한다면요. “선생님, 저는 그럼 제가 잘못했으니 쉬는 시간 동안 복도에서 손 들고 서 있을게요.” 이렇게 말한 의도가 반항이든 그냥 엉뚱함의 발현이든 뭐든, 아이의 의견이라고 다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아니,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라면서 또 다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건 무엇이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것이 아이의 어떤 의견이든 받아들여 실행하라는 걸 의미한다면, 교실은 아비규환이 될 것입니다. 화가 나면 친구를 때려도 된다는 의견이 있을 때, 아이의 의견이니 받아들여야 한다면 교실은 폭력이 난무하게 될 겁니다. 의견을 존중한다는 건 사실 ‘말할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이가 하는 말이 아무리 터무니없더라도 일단 아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로 비난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죠. 일차적으로는 그게 존중입니다. 그리하여 쉬는 시간 손 들고 서 있겠다는 말도 다소 터무니없지만, 그 말을 했다고 해서 그 아이를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때, 지난 글에서 제가 말한 ‘3R1H’의 원칙이 다시 필요합니다. 존중하는 방식(Respectful)인지, 연관성(Related)이 있는지, 합리적(Reasonable)인지, 도움을 주는 방식(Helpful)인지 말이죠. 일단 누가 보더라도 손 들고 서 있는 것은 아이를 존중하는 방식이 아닐 뿐더러, 아이가 복도에서 뛴 것과 전혀 연관성도 없습니다. 사실 이 3R1H의 원칙은 다소 어렵더라도 아이들에게 미리 얘기해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책임지는 행동’은 이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요. 그래서 아이들이 다소 엉뚱한 방식을 얘기한다면 이 원칙을 들이밀면 됩니다. 모두 함께 정하는 것도 좋다 그런데, 사실 너무 어렵습니다. 대안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데, 거기다가 3R1H인지 뭔지 이상한 기준까지 맞춰야 하니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네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나 보구나. 그럼 우리 반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함께 정해보자. 그리고 그 중 괜찮은 게 있으면 골라서 해 보자.” 그러고선 실제 반 친구들과 함께 생각해 보는 겁니다. 함께 정할 때도 3R1H의 원칙은 지켜져야 합니다. 친구들이 얘기한 대안 중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거기서 골라 하면 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대안을 잘 얘기할까요? 다소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것들도 많이 얘기하지만, 분명한 건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겁니다. 은근히 그럴듯한 대안을 얘기하는 친구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교사가 어떻게 질문을 하는지, 아이들의 대답을 어떻게 다듬으며 정리하는지에 따라 아이들 답의 수준도 덩달아 올라갑니다. 열심히 함께 논의했음에도 친구들이 얘기한 것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없다면요? 네, 앞에서와 같이, 그렇다면 본인이 대안을 제시하면 됩니다. 그게 아니라면 좋든 싫든 제시된 대안 중 골라야 합니다. ‘책임’이라는 건 그런 거니까요. 내가 싫어도,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해야 하는 거니까요. 사실 많은 아이들에게 자주 일어나는 문제행동은 미리 함께 머리를 맞대 책임지는 행동을 정하면 좋습니다. 이른바 ‘학급회의’를 통해 규칙을 정하는 거죠. 함께 머리를 맞대고 규칙을 정하는 것. 이게 말이 쉽지, 실제로 해 보면 정말 쉽지 않습니다. 생각해야 할 것, 고려해야 할 것도 많고요.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이 또 한가득인데, 언젠가 이야기할 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친절하며 단호한 초등학생생활지도, 어떻게 해야 하나’ 연재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이 연재의 수명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글이 누군가에게, 티끌만큼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실천교육교사모임과 함께 한 연재 ‘실천교사 이야기’를 마칩니다. 그동안 의미 있는 글을 보내 주신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원 분들과 애독해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