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전영진 기자 | 인천 초등학교 중 절반 이상이 돌봄교실 귀가 지원 인력을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00% 배치된 경기도와 큰 대조를 보였다.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국회 교육위원회)이 서울·경기·인천교육청으로부터 제출 받아 공개한 ‘관내 돌봄교실 이동 또는 귀가지원 목적 등으로 고용된 자원봉사자수’ 자료에 따르면, 인천 관내 초등학교 2곳 중 1곳에는 지원 인력이 없었다. 구체적으로 공백율은 ▲인천 53% ▲서울 26% ▲경기 0%였다. 김민전 의원은 지난 2월 대전의 한 학교에서 발생한 교사에 의한 학생 살인 사건을 예로 들며 “단 한 명의 지원 인력만 있었더라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였다”며 각 교육청에 돌봄교실 안전관리를 위한 경각심을 환기하고 조속한 관련 인력 확충을 주문했다. 한편, 故 하늘양 사건은 돌봄교실에서 퇴실하던 학생을 교사가 유인해 살해한 것으로 당시 학원 차량이 기다리고 있던 1층 현관까지 고인을 직접 안전하게 인계할 인력이 없었던 것이 문제로 제기됐다.
더에듀 지성배 기자 | 세종시의 한 중학교 수업 시간에 교사가 북한 선전가요를 학생들에게 들려 주며 받아쓰게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인 가운데, 학부모들이 기자회견열 열고 세종교육청을 비판하고 나섰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3일 자신의 SNS에 “세종시에 있는 한 중학교의 문제를 공개한다”며 ‘북한 이해’라는 문구가 새겨진 사진 한 장을 게재했다. 사진 속 출력물은 세종시의 한 중학교 도덕 수업 시간에 교사가 학생들에게 내어 준 것으로 ‘북한 노래 가사 맞히기-달려가자 미래로’라고 적혀 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북한 노래를 들려주고 가사를 쓰게 하는 것으로 ‘북한 노래 가사 맞히기’를 통해 북한을 이해하자는 취지의 교육활동이다. 해당 교사가 가르친 교과서는 검정교과서로, 북한 이해 단원이 존재하며 북한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주제가 있다. 주 의원은 “정청래 대표가 전교조의 정치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더니 이제는 중학생들에게 북한 노래까지 가르치고 있다”며 “과연 대한민국 교육 이대로 가도 되나”하고 지적했다. 이에 학부모들이 21일 세종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사과와 관리감독 강화 방안 마련 등을 요구했다. 교육바로세우기운동본부와 세종시건강한학부모연합, 세종교육연합은 “건전한 안보의식이 형성되어야 할 중학생들에게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며 “체제 선전가요의 가사를 그대로 받아쓰게 하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주입이며, 교육이 아니라 세뇌”라고 지적했다. 또 “학생들에게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대신, 왜곡된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는 위험한 교육 방식”이라며 “세종교육청은 교사 감싸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교실 안에서 헌법 기반 올바를 국가관과 안보관을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상적인 교육과정에 따른 활동’이라는 세종교육청의 해명에 “학부모들에게 큰 충격과 깊은 불신을 불러일으킬고 있다”며 “공산주의 체제를 미화하거나 찬양하는 내용의 교육을 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며, 헌법 정신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위험한 교육”이라고 일갈했다. 이들은 ▲전면 재조사와 공식 사과문 발표 ▲수업 진행 과정과 자료 출처 투명 공개 ▲헌법 근거 교육 위한 관리 감독 방안 마련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지난 17일 세종교육청 감사관을 면담하고 해당 사안에 대한 감사요청서를 제출한 상태이다. 한편, 세종교사노조는 지난 16일 성명서를 내고 중학교 2학년 도덕과 ‘북한 이해’ 단원에 따른 통일교육의 일환으로, 북한의 역사·문화·언어를 비교·이해함으로써 학생들이 상이한 체제와 문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비판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도록 설계된 교육과정의 일부아고 설명했다.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15일 본인의 SNS에 “미국 노래를 배우면 친미입니까, 일본노래를 배우면 친일입니까, 중국 노래를 배우면 친중입니까”라며 “북한 노래를 배운다고 해서 그것이 찬양입니까” 하고 주 의원의 문제제기에 이의를 남겼다. 해당 노래 제목은 ‘달려가자 미래로’이며 가사는 ‘보람찬 시대에 청춘을 맞았네/ 우리가 못해낼 일 하나도 없다네/ 달려가자 미래로 새 세기 부른다/ 내 나라 부강조국 락원으로 꾸리자’이다.
더에듀 지성배 기자 | 인천교육청이 故인천 특수교사 1주기 추모공간을 운영하면서, 인천 교사들과 교원단체, 노동조합 등에는 어떠한 안내도 하지 않아 진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인천교육청은 지난 17일 언론에 ‘故인천 특수교사 1주기 추모공간’을 20~27일 시교육청 본관 앞에서 운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1일에는 도성훈 교육감이 직접 참여해 추모식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도교육청에 따르면 이번 추모 공간은 교직원과 학생 등 교육가족 누구나 고인의 헌신을 기리며 헌화와 추모 메시지를 남길 수 있도록 공개된 장소에 마련했으며, 관계자는 교육공동체가 교직 현장을 되돌아보고 교권보호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천 관내 교사와 고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던 비상대책위원회, 교원단체, 노조 등에는 추모 공간 마련과 관련해 어떠한 협의나 안내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장은미 전국특수교사노조(특교조) 위원장은 “언론보도를 통해 사실을 접하고 유선 질의를 하니 대규모 모임이 아니고 선생님들이 모이는 자리가 아니다라는 답변을 받았다”며 “교사들의 참여를 제한하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교사들이 추모행사를 인지하고 참영할 수 있도록 공문 시행을 통한 홍보를 요청했다”면서 “돌아온 답변은 추모공간 마련은 정책이 아니기 때문에 공문을 시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또 “추모는 공문까지 시행할 것은 아니며 추모공간도 자유롭게 추모하도록 마련한 것이라 했다”며 “동료의 죽음으로 아파하는 교사들이 함께 기억할 기회를 달라는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격무로 돌아가신 선생님에 대한 추모 의지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특교조는 오는 25일 서울 종각역 5번 출구 광통교 인근에서 ‘故 김동욱 인천 학산초 특수교사 1주기 추모 및 특수교육여건개선 전국 집회’를 예고했다. 특교조는 이 자리에서 인천교육청의 자세를 책임 회피와 진정성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규탄할 예정이다.
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아이돌 논란에 참 민감하다. 누군가 좋아하는 가수가 구설수에 오르면, 단순히 실망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설마 아직도 걔네 노래 듣는 거 아니지?”, “너 아직도 걔네 팬이야?”라며 친구끼리 시비를 걸고 다투는 경우까지 있다. 좋아하던 존재가 무너질 때 느끼는 혼란과 상실감은 교실에서의 사건들로 배가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차라리 논란이 없는 가상의 아이돌이나 게임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물론 요즘 작품들이 워낙 훌륭하기 때문도 있겠지만, 논란에서 안전하다라는 이유로도 학생들은 이른바 3D보다 2D를 선호한다. 특히 가장 최근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애니매이션 영화에 나오는 헌트릭스라는 여자 아이돌 그룹과 사자 보이즈라는 남자아이돌 그룹이 유행이다. 어쩌면 이는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뒤에는 아쉬운 교육 기회가 숨어 있다. 바로 ‘사람과 작품을 구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다. 사실 성인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다. 내가 사랑하는 유명인이 사실은 알고보니 좋지 않은 사람이었음을 확인했을 때, 기분이 아무렇지 않은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고백컨대, 나 역시 좋아하던 배우, 축구선수, 심지어 정치인이 논란에 휩싸이는 걸 여러 번 지켜봤다. 그럴 때마다 작품과 사람을 따로 떼어내기가 참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때 느낀 감동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 감정을 회수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넘어 부당하기까지 할지도 모른다. 작품이 내게 와닿은 순간, 그것은 이미 내 것이 된 경험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문학이론가 롤랑 바르트는 이를 “저자의 죽음”이라 불렀다. 작품의 의미는 이미 출시된 순간 ‘누가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읽히는가’에서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시인이 자신의 시가 출제된 수능 문제를 틀린 적이 있다해도 특별히 이상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미 그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부도덕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작품만큼은 좋아할 수 있을까?’ 원칙적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세 가지 숙제는 남는다. 첫 번째는 그 사람이 논란 이후에 새로 내놓은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점이고, 두 번째는 그 작품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수익이 여전히 그 사람에게 돌아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용서이다. 유명인은 때로는 너무 가혹하게 비판받고 때로는 아주 가볍게 용서받기도 한다. 이상은 추가적으로 함께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종합하면,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논란 앞에서 서로를 비난하는 것을 넘어서 작품과 사람을 분리해 바라보는 눈을 기르는 것이다. 좋아한다는 경험은 누가 강제로 주입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특성이 작품과 만나서 생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예술과 유명인을 대하는 태도는 한층 성숙해질 수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돌의 논란이 해소되지 않아 실의에 빠져있는 아이들이 지금의 고민을 생각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시험 대신 길을 걷는 아이들 충남 금산 진악산 자락에 자리한 작은 학교, 금산간디학교. 이곳에는 성적표도, 등수도 없다. 아이들은 시험 대신 길을 걷고, 졸업시험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 이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배움이란 ‘지식을 암기하는 일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고 관계를 배우는 일’이라고 믿는다. 한국의 교실이 여전히 입시와 경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 금산간디학교의 교실은 천천히 숨을 고른다. 아이들은 오늘 배운 수학보다, 오늘 만난 사람과 자연을 더 오래 기억한다. 배움은 교과서가 아니라 세상 속에 있고, 스승은 교사뿐만 아니라 사람과 풍경이며, 공부의 목적은 진학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발견하는 일로 받아 들인다. “공부는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교사들이 가장 자주 꺼내는 말이다. 그 단순한 신념이 이 학교의 모든 교육을 움직인다. 사랑과 자발성으로 살아가는 학교 금산간디학교는 비폭력과 평화의 철학을 바탕으로 세워진 전일제 대안 중·고등학교이다. 2008년 개교한 이후 줄곧 ‘사랑과 자발성으로 행복한 학교’를 목표로 해왔다. 교과는 일반 교과를 중심으로 하되 영어·수학·과학 같은 지식교과뿐만 아니라 락밴드·시와 사진·어반스케치 같은 감성교과, 요가·축구·걷기 같은 건강교과, 제빵·미싱·요리하기 같은 자립교과를 함께 운영한다. 학생들이 친구들을 직접 가르치는 위치에서 수업을 운영하는 학생수업(클라이밍과 복싱)을 처음으로 개설해 시범적으로 운영하기도 있다. 학생 수는 학년별 20명 남짓, 각 반에는 담임교사 2명이 있어 아이들의 하루를 세심하게 살피고 함께 생활한다. 시험 대신 프로젝트와 발표로 성장을 평가하며 휴대전화는 쓰지 않는다. 갈등이 생기면 대화로 풀고 회복적 생활교육으로 관계를 회복한다. 입학 첫 달에는 뮤지컬 캠프와 야영을 통해 공동체에 적응하고 2학년이 되면 15주 동안 필리핀에서 해외연수를 하며 언어와 문화를 몸으로 배운다. 울릉도와 독도를 탐방하고, 매 학기 파쿠르·조형예술 등 예술 집중 수업을 진행한다. 아이들은 이 시간을 통해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천천히 찾아간다. 졸업 후의 길도 다양하다. 일반고등학교를 비롯해 특성화 대안고등학교, 미인가 대안학교 등 다양한 경로로 상급학교에 진학한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해 전공을 살리기도 하고 예술가로, 환경 및 마을 활동가로 또 친환경 농부로 살아간다. 학교는 아이가 세상 속에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 힘을 기르도록 돕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고 실현하고 있다. 길 위에서 배우는 생명교육 배움의 방식은 언제나 몸으로, 관계로, 경험으로 이어진다. 지난 9월, 학생들은 영덕에서 강릉까지 13박 14일 동안 해파랑길을 걸었다. 책을 덮고 세상 속으로 나선 ‘생명체험학교’. 휴대전화도, 간식도, 용돈도 없이 시작된 여정이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짐을 꾸리고, 밥을 해 먹으며 하루 수십 킬로미터의 길 위에서 서로를 배우고 세상을 배웠다. 그 길에서 그들은 기후위기 현장을 보고, 삼척 화력발전소 폐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울진 원자력발전소를 찾아 에너지의 현실을 배우고, 바닷가에서는 쓰레기를 줍고, 강릉의 독립서점에서는 작가와 마주 앉아 삶을 이야기했다. 길 위에서 다투고, 울고, 화해하며 아이들은 조금씩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갔다. “우리는 그저 이 지구를 함께 나누는 수많은 생명 중 하나일 뿐이다.” 이 문장은 아이들의 발걸음을 이끈 신념이자 배움의 결론이었다. 이 길을 걷는 이유는 단순한 도보여행이 아니다. 기후와 생태, 인간과 사회, 공존과 평화의 가치를 온몸으로 배우는 ‘살아 있는 교과서’가 바로 이 길이기 때문이다. 글로 완성하는 삶의 논문 길 위의 배움이 끝나면, 금산간디학교 학생들은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한다. 3학년이 되면 누구나 ‘졸업논문’을 쓴다. 대학의 논문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묻는 삶의 논문이다. 나윤이는 ‘어른이 되면’이라는 주제로 인터뷰집을 만들고 있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기 위해 다양한 직업과 나이의 어른들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한다. 메일을 보내고 거절을 경험하고 때로는 공연장에서 만난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진짜 어른이란 무엇인가를 배워간다. 그 과정에서 나윤이는 ‘어른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계속 배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다른 학생 서준이는 사진집을 만든다. ‘나는 왜 사진을 찍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그의 작업은 사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기록이다. 서준이는 직접 찍은 사진으로 엽서와 엽서북을 만들어 지역 축제에서 판매해 제작비를 스스로 마련한다. 사진은 그에게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는 언어가 되었다. 졸업논문은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면서도 가장 깊이 성장하는 과정이다. 멘토와 끊임없는 대화, 여러 차례의 수정과 발표 그리고 공동체의 응원 속에서 완성되는 한 편의 글. 발표회 날, 교사·학부모·졸업생·친구들이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울고 웃는다. 그 순간 아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자랐는지를 스스로 깨닫는다. 배움이 삶이 되는 학교 금산간디학교 교사들은 교육을 ‘배움이 삶이 되고, 관계가 교과서가 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 학교의 배움은 느리고, 불편하고, 때로는 멈춰 서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의 속도로 자란다. 걷고, 쓰고, 생각하고, 나눈 그 길 끝에서 아이들은 “우린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배움은 살아가는 일이라는 걸”이라고 말한다. 더에듀 지성배 기자.
더에듀 AI 기자 | “수학 지도는 성취 기준 속도가 아닌 과정 중심 탐구로 방향을 잡아주세요.” 미국 뉴욕주 교육청이 같은 수학지도 지침을 교사들에게 권고했다. 더 이상 학생들에게 빠르게 문제를 푸는 능력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난 18일 미국 일간지 New York Post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새로 발표된 수학 지도 지침을 보도했다. 지침의 핵심은 문제 해결 속도를 학업 성취 기준으로 삼는 평가 방식을 지양하고, 느리더라도 과정을 중시하는 탐구 기반 학습과 협동학습 환경을 조성하라는 것이다. 지침 변경 배경에는 최근 빠르게 확산하는 ‘수학 불안(Math Anxiety)’ 현상이 자리하고 있다. 뉴욕시 브루클린 소재 한 초등학교 교사 제니퍼 브래들리(Jennifer Bradley)는 “수학 시험에서 ‘속도’가 전부라는 분위기가 아이들을 얼마나 압박해 왔는지 체감하고 있다”며 “이제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이들이 생각을 깊이 하고, 실수도 해보면서 배울 수 있는 공간이 생긴 셈”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뉴욕주 교육청 산하 교육정책분석국에서 지난 1년간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고학년 및 중학생의 약 67%가 “시험 시간에 문제를 풀다 보면 손이 떨리고 머리가 하얘진다”고 응답했다. 특히 연산이나 단답형 문제 풀이에서 나타나는 ‘속도 압박’은, 수학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에 뉴욕주는 초·중학교 수학 교과과정 내에서 계산 도구(계산기, 앱 등)의 활용도 적극 장려할 방침이다. 또 프로젝트 기반 수업(Project-Based Learning)이나 협동적 문제 해결 활동을 통해 수학을 ‘생활 속 사고 도구’로 인식시키는 노력을 병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뉴욕 교육청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뉴욕대학교(NYU) 수학교육학 교수 아론 케슬러(Aaron Kessler)는 “개념과 이해를 중시하는 교육은 물론 필요하다”면서도 “기초적인 연산 속도나 암산 능력은 여전히 수학적 사고의 토대를 형성하기에 속도 중심 평가의 완전한 폐지는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뉴욕주 외에도 캘리포니아주, 일리노이주 등 다른 주에서도 유사한 방향의 논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특히 도시 지역 교육구에서는 이미 몇몇 학교가 시범적으로 속도 평가 폐지 조치를 도입하고 있다. 한편, 뉴욕주 교육청은 이번 지침의 발표와 함께 ‘학생 수학 경험 개선 태스크포스’를 구성, 향후 2년간의 정책 효과를 지속해서 모니터링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수학 불안을 줄이고, 학생 개개인의 학습 유형에 맞는 맞춤형 지도가 가능하도록 방향성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 이 기사는 Article Writer를 활용해 작성했으며 지성배 편집국장의 감수를 거쳤습니다.
더에듀 |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이맘때쯤 야구장은 오히려 더욱 뜨거워진다. 많은 이가 기다리고 고대하던 가을야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경기장에서 바라보는 선선한 바람 속, 마운드 위의 선수들은 여전히 땀으로 얼룩진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고 있다. 프로야구의 포스트시즌, 이른바 ‘가을야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홈팀과 원정팀의 지역은 그 어느 축제보다 활력이 넘치고 살아 움직인다. 선수들의 승부는 단지 공과 방망이의 싸움이 아니다. 그 안에는 치열한 삶이 있고 교육이 담고자 하는 모든 가치(끈기, 협력, 도전, 회복)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우리의 청소년들은 그 장면들을 보고 듣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때로는 교실보다, 교과서보다 더 진한 가르침이 바로 이 가을의 그라운드에서 피어나기 때문이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위로 – 오재원의 마지막 눈물 2022년 가을, 두산 베어스의 오재원 선수가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수비수였고, 팀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리더였다. 하지만 은퇴식 날, 그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후회도 많았고, 부끄러운 날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건…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 한마디는 수많은 청소년에게 울림을 주는 메시지였다. 바로 실패와 후회도 괜찮다, 중요한 건 끝까지 자신을 놓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 교실에는 시험 성적 앞에서 자신을 부정하는 아이들, 친구 관계에서 실망하고 무너지는 아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에게 오재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실패도 삶의 일부이며, 넘어졌다고 끝이 아니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건넬 수 있다. 교육은 ‘완벽한 아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어야 한다. 벤치의 1분 – 김강민이 보여준 팀의 품격 2020년 가을, SSG 랜더스의 베테랑 김강민 선수는 중요한 한국시리즈에서 선발이 아니었다. 많은 이가 그를 잊고 있을 즈음, 결정적인 순간 대타로 나와 극적인 홈런을 쳤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1분이라도 뛰게 해주시면, 그 1분을 위해 모든 걸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은 교실 안 모든 학생에게 적용된다. 우리는 흔히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만 주목한다. 하지만 교실 뒤편, 조용히 자신의 ‘1분’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아이들이 있다. 교사는 그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책임과 역할을 떨쳐내서는 안 된다. 김강민은 그날 홈런을 쳤지만, 더 큰 홈런은 모든 순간을 성실히 준비하는 삶의 태도였다. 이 태도야말로 우리가 학생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교육의 핵심 가치일 것이다. 야구는 혼자 하지 않는다 – 팀워크의 교훈 가을야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번트를 대고 1루에서 아웃되는 타자, 주자를 진루시키기 위한 희생플라이, 몸을 날려 상대의 안타를 막는 외야수. 이들은 모두 자신의 이름보다 ‘팀의 승리’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 모습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냉소를 벗어던지는 감동을 준다. 교육도 이처럼 협력과 연대의 가치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수업 중 팀 프로젝트, 동아리 활동, 학급 회의 등 다양한 장면에서 학생들이 서로를 위해 움직이고, 함께 성취하는 경험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하듯이 혼자 잘하는 아이보다, 함께 잘하려는 아이가 더 멀리 간다는 것을, 가을야구는 매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학생들에게 꿈을 심는 불씨 어느 해 가을, 경북의 한 중학교에서 진행된 진로 설문조사에서 한 학생은 이렇게 적었다. ‘저는 야구선수가 되고 싶어요. 이유는… 지더라도 끝까지 싸우는 모습이 멋있어서요.’ 그 학생은 야구부도 없고, 훈련도 받지 않았지만, 매일 밤 가을야구를 보며 글을 쓰고 꿈을 키웠다. 이렇듯 스포츠는 진로의 방향이 되기도 하고, 삶의 가치관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가을야구는 ‘꿈을 꾸는 법’을 가르쳐주는 또 하나의 훌륭한 수업이다. 교육자인 우리는, 이 아이들이 마음속에 품은 작은 불씨를 꺼뜨리지 않도록 응원하는 관중이자, 벤치에서 조용히 지켜봐 주는 코치여야 할 것이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냐” 가을야구는 단지 시즌의 마무리가 아니다. 그곳엔 우리가 교실에서 가르치고 싶은 온갖 가치들이 살아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작은 역할도 소중히 여기는 책임감, 함께 싸우는 동료애와 팀워크,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념, 이 모든 것이 그라운드 위에서, 땀과 눈물 속에서 생생하게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그러니 이 가을, 교실 밖에서 울리는 함성과 투혼의 이야기를 아이들과 함께 나누자. 그리고 말해주자. “인생도 야구와 같단다. 언제든 역전의 기회는 온단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란다.” 가을야구를 보고, 듣고 즐기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이를 소중한 교육의 계기로 삼아 청소년 교육에 적극 활용하는 지혜를 이 땅의 많은 교사들이 잘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대하는 마음을 이 글에 담아 전하고자 한다.
더에듀 전영진 기자 | 경기 성남교육지원청 학교폭력심의위원들의 尹정부 김승희 전 의전비서관 자녀 학폭 심의 과정 평가 점수 짬짜미 정황이 드러난 가운데, 경기교육미래포럼이 관련한 간부 전원 직위해제 등 강도 높은 조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2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 전 비서관의 학교폭력 사건 관련 심의위원(장)들의 육성이 담긴 녹음 파일이 재생됐다. 재생된 내용은 점수와 조치 수준 등을 논의하고, 추후 논란이 됐을 경우를 대비한 대책까지 담겼다. 녹음을 공개한 김영호 교육위원장은 “심의위원들이 학급교체 처분을 하기 위해 서로 점수를 공유하고, 조율하고 말을 맞춘 것”이라며 “범죄자의 공모”라고 질타했다. 이에 임태희 경기교육감은 “녹취를 처음 본다. 대단히 부적절한 논의”라며 “특검에서 정확하게 밝혀지길 희망한다”며 수사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날 재생된 녹음 파일은 김건희 특검에도 제출됐으며, 특검은 지난 20일 김건희 시와의 관련성 확인을 위해 성남교육지원청과 가평교육지원청을 압수수색했다. 이 같은 상황에 경기교육미래포럼은 21일 설명서를 통해 “단순 비위가 아닌 권력형 학폭 조작”이라며 “학폭위 공정성을 무너뜨렸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사건 연루 간부들은 부교육감, 교육장 등 승진과 도교육청 핵심부서로 이동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단순 인사 실수가 아니라 은폐 책임자 보호라는 조직 문화 재현”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경기교육감 공식 사과 및 관련 간부 전원 직위해제 ▲교육부·특검의 경기도교육청·성남교육지원청 전면 수사 및 인사라인 조사 ▲학폭위 전 과정의 투명 공개 및 시민감시기구 설치 ▲피해자 중심의 제도 개혁 및 외부 참여 확대 등을 요구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지난 2023년 성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것으로,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 전 비서관의 자녀가 같은 학교 2학년 학생을 화장실 등에서 수차례 구타해 각막 훼손 등의 상해를 입혔다. 학교는 긴급조치로 출석정지 처분을 내렸으며 이후 열린 학폭위는 학급교체 및 출석정지 10일을 처분해 솜방망이 처분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더에듀 | “선생님이 나를 보았어요.”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속에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꾸중도, 칭찬도 아니었다. 그저 교사의 눈빛을 마주친 순간, 아이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꼈던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의 말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잊어버려도, 그 말을 건넬 때의 표정과 눈빛, 목소리의 떨림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요즘 교실은 ‘말 많은 교실’이 되었다. 설명하고, 지시하고, 타이르고, 훈계한다. 그러나 아이는 말보다 그 말의 그림자를 읽는다. 입으로는 “괜찮아”라고 하지만 표정은 “실망했다”고 말하고, “기다려”라고 말하면서 눈빛은 “지겹다”고 속삭인다. 아이들은 그 모순을 정확히 느낀다. 그래서 교육은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았는 가’가 더 중요하다. 누구나 가장 따뜻했던 순간과 가장 서러웠던 기억을 떠올리면, 그 안에는 언제나 한 사람의 표정이 남아 있다.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아준 선생님.” “무서운 얼굴로 끝까지 눈을 마주쳐준 선생님.” 그 표정 하나, 눈빛 하나가 말보다 깊은 흔적으로 남아 아이의 마음에 ‘자기 존재의 무게’를 심어준다. 교육은 결국 관계이다. 그리고 그 관계의 시작은 ‘눈을 마주치는 일’이다. 말보다 눈빛이 먼저 아이의 마음을 연다. 한 번의 진심 어린 시선은 “나는 너를 보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 순간, 아이는 무시당하지 않았다는 확신 그리고 ‘이곳에 나의 자리가 있다’는 소속감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바쁩니다. 교사는 성적을 관리하느라, 부모는 미래를 설계하느라 아이를 ‘응시’할 여유를 잃었다. 결과로만 평가하고, 문제로만 판단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묻는다. “선생님, 저 보고 계세요?” “엄마, 아빠는 제 말 들으세요?” 수많은 말보다 한 번의 눈맞춤이 아이를 변화시킨다. 긴 설교도, 엄한 훈계도 아닌, 상대를 온전히 바라보는 그 태도, 그 진심이 교육의 시작이다. 말은 잊히지만, 눈빛은 남는다. 그 눈빛이 전한 사랑과 믿음은 아이의 마음에 오래 머문다. 아이는 말보다 태도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 태도의 첫걸음은, ‘눈을 마주치는 일’이다.
더에듀 | 공교육은 입시와 경쟁, 시험, 서열 등으로 아이들의 생각과 삶을 단단하게 고정해 놓고, 삶 자체를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라는 정해진 트랙 위에서 움직이게끔 한다. 이 트랙을 성실하게 달리는 사람에겐 모범 학생이라는 훈장을 준다. 그런데, 울산 최초의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넘어 저항적이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철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과 삶에 대한 사색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에 <더에듀>는 아이들이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데 도움을 주는 박상욱 철학교사의 수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교육이 경쟁과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나를 온전히 안다는 것이 가능할까?’ 잘 생각해 보면, 나라는 존재는 생각과 물질로 이루어진 생물학적, 문화적, 철학적, 사회적, 경제적 구조의 집합체에 가깝다. 그렇기에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 미시세계 속에서 내 몸의 세포는 초 단위로 사라지고 생성된다. 하물며 생각은 더 말할 것도 없어 보인다. 이렇게 시시각각 변해가는 나라는 존재 속에 있는 동일하고 변치 않는 자아를 찾아가는 것이 곧 데카르트가 시작한 근대적 기획이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거대한 질문 앞에 서면 대부분의 어른은 생각도 하기 전에 포기하고 회피한다. 그것이 결코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더라도 살아가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 ‘오늘날 인공지능이 초래된 인간 존재의 위기, 정체성의 위기는 이러한 질문을 회피해 온 결과가 아닐까?’ 내가 사라진 삶의 공간은 무한한 공허만이 자리할 뿐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아이들은 스스로 답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도 거리낌이 없다. 오히려 놀이처럼 자유롭게 질문을 가지고 노닌다. 틀이 없는 질문에 대해 더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한다. 아이들은 상식과 편견이라는 딱딱한 틀이 아니라 평평한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연결짓고 창조하며 새로운 탈주선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특성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철학이 필요한 이유이자, 아이들이 철학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이번 수업에서 민성이는 소설 『마크 Mark』를 읽다가 ‘나를 알려면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까?’라는 질문을 제안했다. 이 질문을 처음 제안했던 민성이는 “타인의 평가 없이 나에 대해 온전히 아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성이의 말은 소설 속 마크가 했던 말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유진이는 타인의 이야기는 그들의 생각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타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떠드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인터넷 상의 악플러를 예로 들었다. 타인의 이야기에 너무 집착하면 오히려 나에 대해 더 모르게 될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나는 너무나 멋진 토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미드(George H. Mead)는 우리의 자아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미 미드의 자아 이론 속에서 자유롭게 노닐고 있었다. 유진: 왜 나를 알기 위해 타인을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 타인과 나는 다르잖아. 민성: 타인에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지. 부모님도 타인이잖아. 나: 민성이의 말은 우리가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는 거야? 민성: 맞아요. 타인의 성격이나 모습이 나에게도 영향을 줘요. 나: 다른 사람이 예를 들어볼 수 있을까? 아름: 음.... 주윤: 엄마가 잔소리가 많아요. 그래서 저도 동생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예성: 저는 원래 게임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와 놀다 보니 저도 게임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민성: 넌 원래 좋아하잖아. 예성: 아니야!! 자유주의자에 대한 공동체주의자들의 비판 중 하나는 우리의 자아가 진공 속에서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특정한 가족, 사회, 문화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을 통해 자아는 형성되어 간다. 그렇기에 서로 다른 문화적 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들은 당연히 성격이나 취향, 관심사,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자아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속한 공동체를 떠나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민성이의 주장은 공동체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자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논쟁이 계속 평행선을 그으며 이어지자, 나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겠다고 결심했다. 나: 도대체 나를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내가 나를 모를 수도 있을까? 주윤: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거요. 준이: 감정이나 습관, 성격 같은 것 아닐까요? 유진: 욕망도 있어요.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요. 민성: 겉모습도 있죠. 성별이나 외모 같은 거요. 나: 외면과 내면을 모두 알아야 한다는 거구나. 지성: 그런데 객관적으로 알 수는 없어요. 그냥 내가 생각하는 나... 민성: 그러니깐. 타인이 필요한 거예요. 나를 평가하는 기준은 타인에서 오는 거예요. 그래야 객관적이죠. 주윤: 성격이나 감정 같은 것은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생기는 것 같아요. 나: 후천적으로? 주윤: 교육을 통해서요. 유진: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타인과 관계없이 고유하게 가지고 태어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민성: 그런 게 있다고? 유진: 내 욕망이나 감정은 가지고 태어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후천적인 배움이나 경험 은 단지 영향은 줄 수 있지만, 그게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아요. 나: 좀 더 근거나 예시를 들어봐 줄 수 있을까? 유진: 잘 생각해 봐요. 아기들도 다 다르잖아요. 어떤 아기는 조용하지만 어떤 아기는 활발해요. 그거예요. 지성: 아기들은 뭘 배우는 전이니깐. 분명 서로 다른 것을 가지고 태어날 수도 있겠네. 유진: 맞아. 그게 고유한 나를 형성하는 거예요. 승우: 그게 나라고? 그건 그냥 태어난 성격(?) 같은 거지. 그건 나의 1%도 안 되다고 생각해요. 민성: 맞아. 지금 우리에게 아기 때의 감정이나 습관이 거의 남아있지 않잖아. 유진: 잘 생각해 봐. 고유한 나가 처음부터 없었다면 타인의 영향을 받는 나는 어떻게 생기는 건데? 민성: 응? 그게 무슨 말이지? 지성: 타인의 영향을 받아서 나라는 것이 생기는 거라고 했잖아. 근데 그 타인의 영향을 받는 나라는 것은 처음부터 있어야 하는거 아닐까? 나: 유진이는 말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엇인가가 생기지는 않는다는 거지? 유진: 맞아요. 최소한의 고유한 나라는 것은 있어야 한다고 봐요. 꽤 긴 공방이 이어졌다. 이런 방향으로 논의가 이어질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민성이는 자아란 타인의 영향을 받아서 구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에 대해 유진이와 지성이는 그렇지 않았다.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고유한 나라는 것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진이는 타인의 영향을 받을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고유한 나’라는 존재가 없다면 ‘나’라는 자아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태어날 때부터 어떠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 플라톤에서 데카르트로 이어지는 본질주의의 흐름 위에 서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고유한 본질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이다. 이는 경험주의자들이 근대 합리주의자들에게 하는 중요한 반론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본질, 이성의 원천은 무엇인가? 아이들 역시 이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나: 타인과 독립된 고유한 나는 존재한다는 거구나. 준이: 그러면 그 고유한 나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건데요? 유진: 그건 모르지. 승우: 아무도 몰라. 지성: 유전자 같은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민성: 그럼 그 유전자도 부모에게서 오는 거잖아. 주윤: 그럼 타인의 영향을 받는 거지. 아름: 하지만 부모와 전혀 다른 성격을 아이도 있어요. 예성: 우연 같은 것일까? 나: 고유한 나는 우연의 결과라는 말이니? 예성: 그럴 수도 있어요. 고유한 나의 본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참 쉽지 않은 질문이다. 플라톤은 이에 대해 이데아라는 단순한 답변으로 무마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아무도 모른다’라는 답변부터 유전자와 우연이라는 대답까지 나아간다. 나는 특히 이 ‘우연’이라는 답변에서 굉장히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나라는 것이 결국 우연의 산물이란 말인가? 아마 다윈이라면 그렇게 답변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인간의 진화는 돌연변이와 우연의 산물이니 말이다. 아이들도 이 우연이라는 말이 재미있었는지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준이: 우연이 나를 만들고 타인을 통해 변화되어 간다는 것인가? 민성: 신이 나를 만들 수도 있지. 아름: 신까지 가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없어. 예성: 신이 우연을 만들고 우연이 나를 만들고 나는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그렇게 타인은 바뀌고... 지성: 그 바뀐 타인은 다시 나에게 영향을 주고? 유진: 그게 뭐야?! 승우: 몰라. 머리 아파. 나 몰라!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아이들은 지금까지의 내용을 종합하기 시작했다. 우연과 본질 사이의 개념적 절벽에 다가서면서도 아이들은 사유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사유하는 일은 아이들에게 일종의 놀이이다. ‘인간에서 고유한 본질이 있다면 그것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아포리아 즉 해결 불가능한 철학적 난제에 이르러 대화는 새로운 전환을 맞는다. 논리 구조들이 더 이상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지 못한다. 단지 다양한 개념들과의 순환 속에서 유쾌한 농담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불합리로의 귀결’은 잘못된 토론의 결론일까? 아동기 철학자 케네디(David Kennedy)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그는 이러한 종합과 요약이 변증법적 사유가 지향하는 미적 균형과 조화라고 말한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대화의 리듬, 유희, 만족, 균형, 순환을 꿈꾼다. 그것이 비록 불완전하게 좌절할지라도 말이다. 준이에서 지성으로 이어지는 대화의 흐름은 리듬이 점점 더해져 새로운 음악으로 만들어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렇듯 철학적 대화는 단순한 논리적 전개 그 이상이다. 그것은 리듬감 있고, 극적이며, 모방적이고, 시적이며, 유희적인 것들 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교실을 철학적 탐구공동체로 전환한다는 것은 새로운 예술의 형식, 공연의 무대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