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행복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흔히 외부 조건을 먼저 떠올린다. 돈이 많고, 잘 생기고, 좋은 직장과 지위, 넓은 집과 멋진 차를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지금 내가 그 위치에 있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여기고, 언젠가 그 자리에 오르면 평생 행복할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바로 그 믿음이 행복하지 못한 삶의 시작이자 끝이다. 행복은 자판기처럼 외부 조건을 넣으면 자동으로 나오는 단순한 공식이 아니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고 살아온 삶의 궤적이 다르기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60년 가까이 살아오며 깨달은 것은, 행복에는 특정한 기준점이나 도달점이 없다는 사실이다. 행복을 어떤 목표에 도달했는지 여부로 평가하거나 구분하는 것은 지나치게 어렵고, 때로는 무의미하다. 그 대신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기질과 삶에 대한 가치관, 태도와의 조화이다. 그것이 맞아떨어질 때 행복할 확률이 높아진다. 동화 속 인물 흥부와 놀부를 떠올려 보자. 흥부는 착한 기질을 지녔기에 돈 욕심이나 남 위에 서려는 마음이 없다. 그에게 행복은 가족과 함께 소박하게 살아가는 데 있다.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로 금은보화가 쏟아져도, 그것이 오래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오순도순 살아가는 일상이 더 큰 행복일 수 있다. 반면 놀부는 욕심이 많고 권세를 누리기를 좋아한다. 그에게 전 재산을 잃는 것은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이다. 놀부가 마음을 고쳐먹고 욕심을 버리는 일은 잠시 흉내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오래 지속되는 행복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놀부다운 행복은 올바른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그 권세를 누리는 데 있다. 즉, 흥부와 놀부의 행복은 서로 다르며, 각자의 기질과 가치관에 맞는 방식으로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와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내 기질과 삶에 맞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진짜 해결책이며, 행복의 열쇠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비교할 필요도 없다.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하거나 따라갈 필요 없이, 내 삶에 집중하고 나다움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행복은 남이 정해주는 기준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옷을 입는 것과 같다. 남의 옷을 억지로 걸치면 불편하고 어색하지만, 내 몸에 맞는 옷을 입으면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맞는 행복을 찾고, 그것을 매일매일 누리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행복의 이유이다.
더에듀 | 학창시절을 돌아보자. 교실은 늘 새로운 구성원으로 채워졌고, 그곳에서 다양한 역사가 만들어져 왔으며, 어른이 된 오늘도 그 시간을 그리워한다. 한 가지 색이 아닌 셀 수 없는 무수한 빛깔로 가득 찬 곳에서 수없이 많은 꿈을 꿀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더에듀>는 ‘꿈몽글 교사들’과 함께 교실에 펼쳐진 다양한 색을 찾아가는 여정 ‘오늘의 교실’을 시작한다. 교실은 그때도, 지금도, 내일도 살아있다는 것만 기억하자. 학교는 어떤 공간일까요? 학교는 어떤 곳이 되어야 할까요? 이 질문에는 다양한 답변이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표현이 이루어지든 간에 그 중심에는 ‘교육’이 빠져서는 안 되겠지요.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가 학교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교육’이 빠져있는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학교에는 배움이 있어야 하고, 가르침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통해 성장의 경험이 학생들에게 일어나야 합니다. 만약 이러한 배움과 가르침, 성장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학교는 원활히 굴러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즘 이러한 대처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얽혀있는 복잡한 정치적 역학 관계 그리고 경제적 논리가 교육이라는 단어를 말끔히 지우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또 그 기저에 깔린 다양한 이유로 이러한 문제를 교육 종사자들은 분명하게 드러낼 수가 없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거기에서 자유롭진 못하지요. 교육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학교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을 솔직하게 다뤄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학교를 두고 일각에서 제기하는 문제점들을 훑어보며, 사회에서는 어떤 원리로 학교를 문제투성이로 생각하는지 가늠해 보고자 합니다. 교육 관련 이슈에 올라온 누리꾼들의 댓글을 중심으로 이 내용을 다뤄보겠습니다. “공부만 강요해서 아이들의 사고를 억압하는 공간이 학교야” 정말 자주 보이는 표현이지요. 아마 이런 댓글을 다시는 분들은 학교를 다닌 시점이 몇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런 연령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육과정이 그새 많이 바뀌었거든요. 교육 철학과 이념도 끊임없이 변화했고요. 요새 아이들은 스스로 ‘학교 다닐 때가 좋았다’고 말합니다. 세상 행복했다고요. 다들 매번 뉴스에 나오는 자극적인 타이틀 위주로 학원 수십 개 다니는 아이들에게 주목해서 그렇지. 안 그래도 이어서 이런 댓글들이 보이네요. ‘요새 아이들은 공부를 너무 안 해서 문제.’ 어휘력이 떨어진다느니, 기본적인 상식이 부족하다느니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던 어린 세대를 향한 부정적 평가들이 보입니다. 아까는 너무 공부만 해서 문제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공부를 많이 시킨다는 주장 자체가 정말 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비판인지, 검증이 필요합니다. 지필 시험의 영향도 많이 낮아진 요즘이기에, 학교가 주입식 유형의 공부만을 강요했다고 볼 수 있는지는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프로젝트 학습이나, 다채로운 활동들이 부쩍 늘어난 요즘이라서요. 좀 더 터놓고 말하면, 어떤 과목에서 성취 수준이 매우 낮은 학생도 미흡하다고 평가를 할 수 없는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의 실태를 세상이 알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고 있는 그대로 서술하기 힘든 상황이기도 하고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공부를 많이 하면 아이들의 사고가 억압되는 가’ 하는 부분도 아리송한 대목입니다. 다양한 지식을 갖출수록 더욱 창의성을 폭넓게 발현할 수 있다는 진실을 외면하는, 어쩌면 ‘무질서함이 곧 창의성’이라고 곡해하는 사상이 기저에 깔린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드는 부분이거든요. 그래요. 저 문장은 요로 봐도, 모로 봐도, 참 알쏭달쏭한 문장입니다. “진정한 스승은 옛말이다! 요새 교사들은 그저 직장인 아니냐” 일단 교사가 직장인이면 안 되는지도 깊은 논의가 필요합니다만, 급한 대로 저 발언을 하신 분의 마음을 존중하며 진정한 스승의 의미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또 같은 그 시대, 그러니까 과거의 학교를 다르게 기억하는 분들이 있어서요. 오, 찾았다. 이 댓글을 읽어볼까요? ‘예전 교사들이 교사냐. 애들 맨날 때리고 그랬지.’ 그래요. 예전 교사들에 대한 분노와 분개를 가지신 분들도 참 많아요. 그런 감정은 저도 이해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저도 같은 시대를 겪었으니까요. 교실에서 놀았다는 이유로 당구 큐대나 1m짜리 쇠자 좁은 면으로 두들겨 맞아 허벅지에 피가 철철 난 적도 있고요. 성적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수업 시간 내내 맞았던 사건도 기억나네요. 공부는 그래도 꽤 했는데, 거기에 비하면 참 많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런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예전 선생님들을 욕하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유형의 선생님도 계셨어도 여러 좋은 선생님들도 계셨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어찌 되었든 각자에게 그런 아픈 기억이 있을 수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제 말은, 그 마음은 이해한다는 거예요. 같은 시대를 겪었으니까요. 사실 그래서 더 교사가 되고 싶었거든요. 여러 좋은 선생님들을 보며 그 점을 닮아가고, 나쁜 선생님들을 만나면 그런 점들 때문에 받은 상처를 제자들에겐 절대 안 주겠다고 다짐하면서요. 그런데도 그 기억을 왜 저희 세대에게 투영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훌쩍. 아무튼 예전이 좋았다는 건가요, 안 좋았다는 건가요? 학교를 비판하시는 분들이 어떤 포지션인지 모를 때가 참 많습니다. 단적인 예가 ‘보충학습’이에요. 요즘도 어떤 열의가 넘치는 선생님들은 국어나 수학 등 주요 교과에 부진 정도가 심한 친구들을 위해 자체적으로 보충학습을 추진하시려고 해요. 저라면 정식 보충학습 시간이 아니면 감히 그렇게 하진 못할 거예요. 그만큼 존경스러운, 그렇게 열정으로 그리고 아이들을 향한 사랑으로 가르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참 슬픈 현실은요. 매번 그 노력을 안 좋아하는 분들이 나타나요. 학생을 위한 부가적인 지도 활동에 불만을 갖고 민원을 넣는 학부모님들이 계시거든요. 왜 우리 아이를 남겨서 기를 죽이니 뭐라느니 다양한 이유를 듭니다. 그저 아이를 위해서, 눈앞의 필수 성취 기준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하는 건데 말이죠. 그 상황에 다음 학년 내용을 예습하는 학원에 가야 하니 시간 낭비하지 말라며, 그냥 우리 아이 집으로 보내달라고 말하시곤 하는데, 그 속에서 온갖 복잡하고 다사다난한 경험을 반복하게 된 교사들은 이제 보충학습을 자체적으로 진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굳이, 왜?’인 거죠. 교사가 자신의 시간을 써서 아이를 위해 헌신해도, 고마워하는 게 아니라 화를 내시는 분들이 워낙 많아진 요즘이라서요. 이런 모습들은 결국 예전의 교육 방식을 사회에서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불량 학생들을 교사가 직접 제지하고 혼을 내는 방법은 이제 불가능해졌죠. 학교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교사가 이를 막고 혼을 내는 것도 불가능해졌죠. 담임교사가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했더니, 조그마한 사건 사고에도 교사가 모든 책임을 지죠. 심지어는 수업 활동 하나하나에 민원을 넣는 사례들도 꽤 자주 발견됩니다. 교사가 교육에 있어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단순히 학교만의 문제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공공 서비스 여러 영역에서 유사한 문제가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범죄자로부터 시민을 구한 경찰이 되려 처벌을 받는다든지, 사고로부터 시민의 생명을 구한 구급대원이 소송을 당한다든지 말이에요. 이런 문제들이 교육 현장에서는 교실이 진정으로 교육을 실천할 수 없는 공간으로 전락하는 모습으로 발현되는 셈이지요. 특정 직업 종사자가 그 직업에 최선을 다하길 바라면서, 막상 정말로 소명 의식을 바탕으로 본질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했을 때 처벌을 해버리고 마는 사회가 과연 유지될 수 있는 구조일까요. 아, 정말 모르겠어요. 이건 아닌데! 예전과 오늘날 교사의 역할에 대한 일대 일 비교가 어려운 상황인데요. 사회에서는 교사들에게 옛날 스승의 역할을 기대하면서 실상은 모든 권한이 제한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교사는 모든 부분에서 책임을 지길 바라면서도 교사로서의 역할은 하지 않길 바랍니다. 교사의 가르침이 기분 나쁘면, 그게 심지어 정상적인 학급 운영이거나 교육과정에 따른 교육 활동이더라도, 각종 민원 공격을 퍼붓는 오늘날입니다. 교육을 바라기보다는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길 바라는 셈입니다. 정말 슬프고도 웃긴 일이지요. 그런 식의 모순된 요구는 교사의 역할을 아주 큰 정도로 흔들고 있습니다. 그렇게 학교도 다른 공공 서비스 영역처럼 매우 큰 정도로 흔들리고 있어요. 그게 오늘의 교실이 대면한 크나큰 문제입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소중한데” 어떤 분들은 자기 아이가 실수했을 땐 “어린이가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지만, 상대 아이가 잘못했을 땐 “어떻게 아이가 그럴 수 있느냐”라고 말씀하시기도 해요. 똑같은 아이이고, 똑같은 행위인데, 누가 하면 나쁘고 누가 하면 착한 것이지요. 행위의 주체가 누구와 더 가깝냐에 따라 행동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상황들이 교실에서 참 자주 일어나요. 이때 나타나는 문제가 ‘사소한 일’을 ‘심각한 사건’으로 전환하는 일들이지요. 아이들은 이미 화해하고 친하게 지냄에도 부모님들끼리 다툼이 커져 싸우는 사건들, 아마 많은 학부모님과 학교 관계자들은 귀에 닳도록 자주 들어보셨을 겁니다. “우리 아이는 소중한데”, “이런 일을 겪으면 안 되는데”... 그런 유형의 명분으로 아이들끼리는 진작 마무리된 사안을 심각한 사건으로 격상시키고자 합니다. 솔직히 학교폭력 문제, 진짜 참 어이가 없습니다. 어린 아이들도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117’로 신고하도록 신고를 장려하곤 했지요. 그런 사회적 인식 변화로 별일 아닌 사건에도 심심하면 신고로 넘기는 경우가 많다 보니 경찰분들도 애로사항이 있는 줄로 압니다. 인계되어 접수된 신고는 학교에서 다 사안 처리를 해야 하고요. 우리 아이가 피해를 입은 경우에는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간주해 학교폭력 신고를 강행하는 보호자 분들이 계시기도 합니다. 상식적이라면 부모님이 아이를 달래고 마무리될 아무것도 아닌 사안에 대해서요. 혹시라도 있을 학교폭력 은폐를 막기 위해 어떤 사소한 건이든 정식적으로 학폭 절차를 밟게 모든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지금 학교를 욕하는 분들이 어린 시절이라면 ‘이걸 신고한다고?’ 하는 생각이 들 아주 사소한 일들도 죄다 학교폭력 사안으로 처리되고 있는 오늘입니다. 그러면, 학교폭력 신고 건수는 당연히 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학교 밖 사람들은 이걸 보고 또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우리 어린이들이 얼마나 소중한데. 학교폭력 신고 건수가 나날이 늘어나다니. 이거 참 심각한 문제구나! 아주 혼쭐을 내줘야겠어. 아무튼 학교는 참 한심해.” 그 생각으로 온갖 말도 안 되는 대책들을 내놓습니다. 그 대책 속에서 선량한 아이들이 다치고 쓰러지는 경우도 허다하게 발생합니다. 신고가 남발되면서 ‘진짜 학교폭력’ 사건으로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한 경우에도 다른 ‘가짜 학교폭력’ 사건에 어우러지며 정의가 구현되지 못하는 상황도 많고요. 분명히 말하지만, 학교폭력 신고의 의미를 격하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된 학교폭력 신고로 진짜 바로잡아야 할 학교폭력 사건이 드러나지 못하게 되는 이 악순환이 답답하기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 양상은 아까의 주제로 이어집니다. 한 아이가 한 아이를 바보라고 놀린 사안이 발생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아이들은 교사에게 지도받고 고칠 점을 약속한 후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요. 하지만 양쪽 가정의 반응은 사뭇 다릅니다. 우리 아이가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면 “뭘 그런 사소한 일로 신고를 하냐”라면서 교사에게 “학교폭력 신고를 왜 막지 않냐”고 비난합니다. 반대로 자신의 아이가 조금만 피해를 입어도 “상대 아이는 강제 전학을 가야 한다”라면서 강력한 처분을 기대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학교는 학교폭력을 은폐했다고 주장합니다. 그 과정에서 교육과 학생은 논의되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를 앞세운 어른들의 자존심 싸움만이 오고 갈 뿐이지요. 우리 아이들, 정말 소중합니다. 정말 소중한데, 왜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사사로운 감정으로 그 소중함이 달라져야 하나요. 자신의 아이만 소중하고, 같은 교실에 있는 다른 아이는 왜 함부로 대해져야 하나요? 그 속에서 착하고 여린 아이들은 다칩니다. 부모님들도 무차별적으로 공격당합니다. 교사들도 무너집니다. 학교는 그때도, 지금도, 내일도 그곳에 있다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도, 어떤 이는 언제나 대한민국 학교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말할 거예요. 누군가는 언제나 학교에 결함과 문제가 존재한다고 볼 거예요. 아니, 그렇게 생각되어야만 할 거예요. 사회에 크나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교육 때문이다’라고 외칩니다. 누군가의 잘못이나 실패도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학교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학교가 세상에 이롭지 않고, 도리어 교육에 방해가 되는 존재로 인식되어야만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는 상황도 분명 존재합니다. 그 이익을 위해 학교를 집중적으로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게 현실인 줄은 압니다. 하지만 전 여기서 분명히 말하고 싶어요. 겨우 그런 것 때문에 교육을 꺾지 말아주세요. 학교와 교실에서 살아가는 오늘날의 주인공들을 함부로 평가절하하거나 폄훼하지 말아주세요. 행복하게 서로를 아끼고 보듬으며 성장하는 학생들과 교사들을 공격하지 말아주세요. 그들은 오늘도 교실에서 정말 멋지게 살아가고 있어요. 매 순간 아름다운 시간을 쌓아가고 있어요. 교육을 중심으로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어요. 다양한 교육 담론이 펼쳐지고, 그 속에서 다채로운 수업의 장면들이 등장했어요.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더욱 즐거운 교육적 경험을 제공하고자 연구하고 부단히 노력했던, 그런 교육의 르네상스가 분명 존재했어요. 아마 교육 경력이 저랑 비슷하거나 저보다 많은 분은 모두 그 일련의 과정을 함께 보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성장이, 그러니까 학교와 교실이 변화하고 자라나던 시간이 단숨에 무너지고 말았어요. 정말 한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어요. 간절히요. 교실이라는 공간, 정말 괜찮은 곳이에요.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세요. 오늘의 교실을 흔들지 말아주세요. 저는 오늘의 교실을 향한 여정을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떠날 겁니다. <더에듀>와 마련한 ‘오늘의 교실’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합니다. 교실에 녹아있는 생각과 거기에 담긴 교육의 의미를 한층 깊게 알려드리려고요. 학생과 교사가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순간들, 오늘의 교실 소개 편은 아래 링크를 통해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의 교실 0-1화 링크 https://brunch.co.kr/@ggummongle/146 글: 이준기 / 교실과 학교 밖 공간을 잇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합니다. - 그림책 『내 마음 네 마음』, 『민정이의 등굣길』 글 담당 - 장편소설 『학폭교사 위광조』 공저자 - 꿈몽글 팀 글작가 그림: 이예솔 / 따뜻한 시선으로 마음에 닿는 그림을 그리고자 합니다. - 꿈몽글 팀 그림작가 꿈몽글 = 글과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교사와 전문 작가들이 힘을 합쳐 학교와 교실 속의 따뜻한 이야기를 기억으로 엮어내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대표작으로는 ‘학폭교사 위광조’, ‘내 마음 네 마음’, ‘민정이의 등굣길’ 등이 있다. <더에듀> 연재 ‘오늘의 교실’에는 14인의 교사들이 함께 한다. 교실에서 교육을 실천한 앤솔로지 프로젝트에 참여한 교사들이다.
더에듀 | 가상세계가 수업에 활용되면서 교실과 학교라는 공간의 벽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교사들은 확장된 교육공간 속에서 아이들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것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하면서 흥미도와 참여도가 향상했다고 말한다. 이에 <더에듀>는 가상현실을 활용한 교육활동에 도전장을 내민 ‘XR메타버스교사협회’ 소속 교사들의 교육 활동 사례 소개를 통해 아이들과 수업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지 살피고자 한다. 인공지능을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교사의 전문성과도 직결된다. 인공지능을 내용적으로 혹은 방법적으로 도입하는지에 따라 방향성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이들이 인공지능 기술이 우리의 삶에 긍정적으로 쓰일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아이들이 직접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상상해보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싶었다. 그때 필자의 눈에 들어온 것이 운동화였고, 아이들과 함께 ‘운동화 디자인 프로젝트’를 실천하게 되었다. 왜 운동화인가? 운동화는 우리의 삶 속에서 매우 익숙한 물건이다. 놀라운 부분이 있다면, 이 운동화가는 매년 230억 켤레가 생산되고 있으며, 전세계 인구가 80억명임을 가정할 때 매년 1인당 3켤레 이상 사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운동화는 65개 부품으로 구성됐으며 대부분은 재활용이 불가능하고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데 최대 1천년이 소요된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을까?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운동화라는 일상적 물건을 통해 과학, 기술, 사회의 상호 관계를 이해하고 친환경적 가치를 인식하게 하고 싶었다. 현재 운동화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탐색하고 환경을 고려한 운동화 디자인을 해보는 것이다. 이는 문제 해결역량뿐 아니라 자신의 일상생활을 성찰하고 삶 속에서 주도적으로 발명 아이디어에 대한 발상을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태도를 기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인공지능 기술이 어떻게 사용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창의적 사고 역량도 함양될 수 있고, 모둠원과 협력적으로 소통한다는 점에서 아이들의 의사소통 역량도 함양될 수 있으리라. 운동화 디자인 프로젝트의 과정 먼저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신는 운동화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다. 내가 집에 가지고 있는 운동화 개수는 몇 개인지,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사용하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각자 운동화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이에 대해 한 가지 조사하고 자료로 제작하여 발표하고 공유했다. 다음은 아이들이 제작한 발표 자료 중 한 예시이다. 흥미로운 점은 아이들이 발표하고 공유하는 와중에 운동화의 친환경성 등의 주제가 언급됐다는 것이다. 그 후 운동화에 관한 다양한 데이터(전세계 지역의 운동화 소비량과 생산량, 수출량, 쓰레기량, 운동화 소재 비율, 운동화의 탄소발자국 등)가 담긴 사이트를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사이트를 탐색하면서 데이터를 바탕으로 운동화의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사이트는 필자가 streamlit으로 제작한 것으로 간단한 구조로 이루어져있다. 운동화를 신거나 운동화 자체에서 불편하거나 개선할 점을 브레인스토밍했다. 같은 의견의 경우, 화살표로 연결했고, 우리가 공통으로 생각하는 불편한 점을 함께 공유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이는 아이들에게 운동화의 불편한 점을 개선하는 방법과 탐색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아이들은 모둠별로 해결하고 싶은 문제점을 선택하고, 이를 해결할 방안을 토의했다. 발명기법과 기존 운동화 기술도 조사했다. 다음은 한 모둠이 조사한 자료의 예시이다. 아이들은 개선 아이디어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온도 제어 장치, 안마 기술, 원단 정보 등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친환경성’과 ‘기술성’이라는 두 가지 기준에 부합도록 모둠별로 운동화를 협업하여 디자인했다. 다음이 아이들이 낸 아이디어의 예시이다. AI 센서가 발의 입구를 조절할 수 있다니 신박한 기능이었다. 발표의 과정에서 충전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등 현실적인 면에서 질의가 이루어졌다. 발의 온도가 조절되고 오래 신어도 편하지만, 친환경적인 소재를 찾는 노력도 있었다. 초등학생이지만, 아이들은 진지하게 탐구했고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협업했다. 본 프로젝트는 작은 프로젝트였지만, 아이들과 함께 발명이란 무엇이고, 발명을 위해 필요한 기술을 종합적으로 탐색해 본 계기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자연스럽게 언급되었다. 교육은 삶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삶과 연계된 교육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어떤 콘텐츠로 아이들과 함께 인공지능 기술을 융합하여 이야기해 볼 수 있을지 우리는 계속 연구할 필요가 있다. XR메타버스협회 소개 XR메타버스교사협회는 XR과 메타버스에 관심을 가진 전국의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비영리 단체다. 초·중·고등학교 현장에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며, 교육에 접목할 수 있는 XR·메타버스의 다양한 가능성을 연구하고 실험해 보고 있다. 단순히 이론적 분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교재를 개발하여 수업에 투입하고,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더 많은 동료 교사들에게 노하우를 확산하고 있다. 또한 기업과 협업해 기술적 자문과 지원을 받고, 이를 교실 현장에 검증하는 과정도 거치며, 각종 학회나 박람회 부스를 통해 교육 혁신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오고 있다. 임보라 = 현직 초등교사이자 XR메타버스교사협회 회원이다. AI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교육 혁신에 관심이 많아 학교 현장에 선도적으로 아이들과 함께 소통하며 수업을 하고 있으며, 교원 역량 강화를 위한 연수 및 컨설팅에 다수 참여하였다. 초등영어교육 박사이자 서울대 인공지능융합교육전공 석사과정 재학중으로 배움에 힘쓰고 있으며, 대외적으로 우리나라 교육의 위상을 높이는데도 관심이 많아 유네스코 디지털 러닝 위크 파리에서 발표, 몽골 AI 선도교사 연수 강사, 싱가포르 STEM 지도안 대회 우승 등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더에듀 | 오승걸 교육과정평가원장이 사임했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영어 시험이 불수능이 되면서 수험생의 성적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성적을 제대로 평가 못 한 이유가 무엇일까. 변별력을 갖추지 못하고, 수험생 모두에게 낮은 점수를 안긴 이유가 무엇일까. 진짜 문제는 수능은 변별력을 갖게 출제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해마다 수능 시즌이 되면 올해는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이 난다. 크고 작은 사고가 매년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불수능이고 물수능이고 그것대로 문제이다. 귀신이 출제하지 않는 한 그치지 않을 문제이다. 올해의 영어 문제는 미국의 고3학년 수준이라고 한다. 대학생들이 거의 영어 벙어리에 가까운 나라에서 원어민 수준의 출제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일이다. 수학 출제 수준도 고등수학 수준이다. 국어 또한 마찬가지이다. 모두 정상을 벗어난 행태이다. 결국 책임을 교육과정평가원장의 사임으로 귀결됐다. 11대 원장 중 8명이 중도사임했다. 더 이상 이런 불행을 막아야 하는 게 아닌가. 막지 못하면 앞으로도 그 자리는 바늘방석일 게 틀림없다. 고급 인력을 그렇게 폐기 처분해도 될까. 수능 자체의 문제점을 바로 보아야 한다. 아이들은 초중등교육 12년을 받고 사회에 나온다. 학생들의 성적과 생활과 인격은 학교생활부에 거의 모두 기록되어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아닌가. 굳이 더 필요한 게 있다면 인터뷰로 보완하면 된다. 대학과 대학교육 이수 희망자를 직접 만나게 하자. 왜, 무엇 때문에 국가가 나서 시험을 보게하고 아이들에게 별도의 성적을 쥐어 주는가.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갈 수 없나. 이제는 미국이 멀지 않게 느껴지는 시대이다. 미국에선 아이들이 대학가는 데 국가가 나서지 않는다. 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 세계 무대에서 뛰는 우리 아이들에게 미국 방식을 적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세계시민으로서 그들과 경쟁하게 해야 한다. 별도의 시험은 폭력일 뿐이다. 초중등교육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길은 수능이나 학력고사와 같은 시험을 없애는 것이다. 초중등교육을 고등교육과 독립시켜야 한다. 우리 아이들을 살리는 길이고, 교육과정평가원장같은 고급 인력을 살리는 길이다. 입시를 없애자. 우리교육을 살리는 길이다.
더에듀 | 12월 초, 수능 결과가 발표되면서 또다시 익숙한 구호가 등장했다. “초등학교부터 수능 영어 제대로 공부해야”, “영어유치원 보냈다고 안심하면 실패” 등 동아일보(2025.12.8.)가 내놓은 유명 학원들의 홍보 문구들은 단지 현장을 소개하는 취재 언어라기보다, 불안과 조급함을 자극해 두려움 마케팅을 자행하고 있다. 이는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노골적인 압박을 부모에게 주입하는 것이다, 한국 사교육 시장이 오랫동안 반복해 온 전형적인 패턴이다. 올해는 그 악역을 수능 영어가 도맡았다. 하지만 매년 그렇듯이 특정 시험 한 회분의 난이도가 즉각적으로 ‘초등 때부터 수능 ○○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을 정당화할 근거는 설득력이 약하다. 수능은 본래 절대적 지식의 양을 겨루는 시험이 아니라, 교과 교육과정 속에서 기초 역량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그럼에도 일부 학원들은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불수능 → 불○○ → 조기 사교육 확대’라는 공식을 재빠르게 전파한다. 그러나 교육에서 불안과 두려움은 결코 생산적인 동력이 아니다. 그런 심리에 기반한 선택은 장기적 학습 동기를 약화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삶을 미래의 점수를 위한 현재로 축소할 수 있다. 초등학생에게 수능 기출을 들이밀며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순간, 교육은 바람직한 인간으로의 성장 과정이 아니라 경쟁의 총량을 앞당기는 도구로 전락한다. 이는 교육의 본질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마치 중국 고사에서 벼를 빨리 자라게 하려고 억지로 뽑아 올려 키를 키웠으나 결국 모두를 고사(枯死)시킨 어리석은 농부의 ‘발묘조장(拔錨助長)’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 한국 부모들이 불안과 두려움에 흔들리는 이유는 그들이 몰라서가 아니다. 이미 많은 이가 조기 사교육은 학습격차를 심화하고, 게임의 규칙을 더 불공정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흔들리고 빠져드는 것은, 사교육이 반복적으로 만들어 내는 ‘공포의 프레임’ 때문이다. “남들은 다 한다”, “지금 안 하면 늦는다”, “부모의 정보가 중요하다” 등의 말은 부모의 합리적 판단을 차단하는 가장 강한 압박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교육비의 급증, 교육 불평등의 심화라는 악순환의 연속을 한껏 부추긴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빨리 빨리’가 아니라 ‘옳고 바르게’이다. 필자는 고교 현장에서 관리직을 제외하고 32년 가까이 영어를 가르쳤다. 영어 역량은 조기 선행보다 꾸준한 읽기 경험, 풍부한 영어 경험, 학습자 스스로의 흥미와 자발성이 결정한다는 것을 이미 수십 년간 직접 경험했다. 시험 난이도가 변해도 이러한 원리는 변하지 않는다. 어느 해의 불영어를 이유로 전국의 가정이 조기 영어 사교육의 소용돌이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교육적으로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근거가 미미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사교육이 수능의 불안이나 두려움을 키우기 위해 학생과 학부모를 공포로 자극하는 것은 제2차 가해의 폭력이다. 주요 언론 기자들은 사교육의 공포심 유발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그들 또한 공범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의 품격은 경쟁을 충동질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과열된 경쟁의 속도를 늦추고, 근거 없는 공포를 거르고,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하는 데서 나온다.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공공성을 지켜주는 양심이자 교육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전국의 학부모에게 전하고 싶다. 아이의 교육은 마라톤이지, 단거리 질주가 아니다. 속도를 앞당기는 것은 쉬울지 모르지만, 그 속도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아이들이다. 초등학생에게 수능의 그림자를 앞서 드리우기보다, 영어에 대한 호기심과 학습력을 다양하게 그리고 서서히 키워주는 것이 훨씬 지속 가능한 길임을 믿어야 한다. 교육의 시계는 빨리 돌린다고 해서 더 나아지지 않는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중국의 어리석은 농부의 사례면 충분하다. 오히려 천천히, 그러나 넓게 가르칠 때 아이들은 비로소 스스로의 성장 과정을 충실하게 겪으며 완숙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사교육이 만드는 공포의 서사는 이제 멈춰야 한다. 교육은 불안을 먹고 자라는 산업이 아니라, 인간의 성장을 다루는 공공 영역이다. 우리는 더 이상 ‘수능이 어려웠다 → 조기 사교육으로 해결하라’는 단순하고 공격적인 논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교육은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앞당겨 부추기는 경쟁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의 시간을 존중하며 지속 가능성을 확장하는 지혜여야 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것으로 불안을 해소하는 대신, 교육의 본질을 되돌아볼 때이다. 아이들의 미래는 결코 공포에서 자라지 않는다. 신뢰와 균형, 그리고 충분한 시간적 과정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더에듀 지성배 기자 | “근본 원인을 모른다. 너무 이상적이고 낭만적으로 교육제도를 바라봤다.” 강주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회장이 정근식 서울교육감의 대입제도 제안에 이 같은 혹평을 내놨다. 지난 10일 정근식 교육감은 교교교육과 대학교육의 선순화 체제 구축이 필요하다며 ‘미래형 대입제도 제안’을 발표했다. 제안은 2028학년도, 2033학년도, 2040학년도 대입 등 3단계로 구분했다. 관심을 끈 핵심 사안은 ▲수도권 대학 정시 수능 위주 전형 비율(30~40%) 권고 폐지 ▲수시모집에서 일부 고교 유형(자사고, 외고, 국제고, 과학고, 영재학교) 지원 자격 제한(2028) ▲내신 절대평가 전면 전환 ▲수능 절대평가 전환 ▲수능 서·논술형 평가 도입 ▲학생부 중심 전형으로의 전면 개편(2033) ▲수능 폐지(2040) 등이다. 이 같은 제안에 11일 강 회장은 취임 1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근본적 원인을 모른다”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이른바 SKY 대학의 희소한 기회를 누가 가져느냐의 문제”라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지 기술적으로 해결하려고 해봐야 효과가 나겠냐”고 되물었다. 특히 “내신과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꾸면 대학에서는 구술·면접으로 학생을 선발할 것”이라며 “구술·면접의 사교육비가 가장 많이 든다. 사교육비가 폭증할 것”이라고 비판적으로 봤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 강화에 대해서는 “과거 학종을 강화하니 조국 사태가 터졌다. 컨설팅이 급증하고 공정성과 신뢰도 문제가 나올 것”이라고 했으며, 서·논술형 전환에 대해서는 “신뢰도 문제로 학부모 민원이 많이 들어올 것”이라고 부정적 평가를 내놨다. 그는 대입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공감대 형성과 공정성, 신뢰도를 제시하며 “정답 찾는 시험 문제 시대는 끝났다. 출제자의 의도보다 학생이 자기생각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등을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책이 이렇게 가면 문제는 단순히 이동할 것”이라며 “아이들과 학부모의 혼란, 학교의 부담이 많은 사안이라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정근식 교육감이 교육제도를 이상적으로, 낭만적으로 바라본 것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더에듀 | 급식실 조리사, 청사 미화원, 학교 행정보조원. 이들 공무직이 멈추면 대한민국 공공서비스가 멈춘다. 상시·지속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 40만명이 없다면 국가는 하루도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법적 지위는 공무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반 노동자도 아닌 회색지대에 있다. 정규직화라는 이름으로 고용은 안정됐지만, 임금과 복지는 여전히 부실하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가 남긴 ‘미완의 정규직화’의 실상이다. 폐지된 위원회, 방치된 사람들 숫자가 말한다. 2023년 3월, 공무직위원회 일몰 폐지. 그 후 1년여. 중앙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은 사라졌다. 같은 업무를 해도 지자체마다 임금이 다르고, 같은 기관 안에서도 수당 체계가 제각각이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정규직화의 성과만 자축하고, 정작 제도 정비는 손 놓았다. 이것이 노동존중인가?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 공무직이 시험한다 이재명 정부는 야심찬 노동 국정과제를 내걸었다. ① 93번: 차별과 배제 없는 일터 ② 94번: 노동존중 실현과 노동기본권 보장 ③ 96번: 혁신적 일자리 정책 등 모두가 그럴듯하다. 그러나 공무직 문제를 외면한다면 이 모든 과제는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어디서 시험받는가? 바로 공무직이다. ‘차별 없는 일터’의 출발점은? 공무직 제도 정비다. ‘혁신적 일자리’의 첫 실천 현장은? 공공부문, 그중에서도 공무직이다. 국정과제의 성패를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가 바로 여기 있다. 세 가지 제안, 외면할 수 없는 과제 최근 제출된 정책 제언 자료는 명확하다. 첫째, 법적 기반 마련이다. 공무직위원회법 제정과 공무직법 제정이다. 지침과 조례로는 한계가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는 제도를 누가 신뢰하겠는가? 법률상 상설기구가 필요하다. 둘째, 임금·수당·직무 표준화이다. 같은 일을 하는데 지역에 따라 임금이 다르다면 국민 상식이 용납하지 않는다. 국가 차원의 표준 임금체계, 표준 직무체계가 시급하다. 셋째, 지속가능한 재정 구조이다. 지방재정에 떠넘기기식 구조로는 답이 없다. 중앙정부의 재정지원 로드맵이 뒷받침돼야 한다. 예산 없는 정책은 구호에 불과하다. 이 세 가지를 실천하지 않고 노동존중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공무직은 ‘기본사회’의 뼈대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말하는 ‘기본사회’. 국가가 국민의 최소한의 삶을 책임지는 사회이다. 그 책임의 최전선에 공무직이 있다. 돌봄, 안전, 급식, 환경, 교육 모두 공무직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들이 흔들리면 공공서비스가 무너진다. 기본사회는 말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제도로 만들어진다. 공무직을 방치하면서 기본사회를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 정권의 진심은 약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역대 정권마다 노동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정권의 민낯은 거대 노조와의 협상이 아니라, 가장 취약한 노동자를 어떻게 대하느냐에서 드러난다. 공무직은 표도 적고, 정치적 이익도 크지 않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진짜 시험대이다. 이재명 정부가 ‘노동존중’을 진심으로 실천할 의지가 있는 지는 공무직 문제가 답을 줄 것이다. 선택의 시간 이재명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① 공무직위원회 상설화 및 법제화 ② 표준 임금·직무 체계 구축 ③ 중앙정부 재정지원 로드맵 제시 ④ 노정 협의체 제도화이다. 이 네 가지를 외면한다면, 국정과제 93·94·96번은 실패로 기록될 것이다. 반대로 이를 실천한다면, 이 정부는 진정한 ‘노동존중 정부’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공무직이 곧 국가이다 공무직 문제는 단순한 노동정책이 아니다. 국가의 지속가능성 문제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가를 떠받치는 사람들. 그들을 방치하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정권의 진심은 말이 아니라 제도로 증명된다. 공무직연금공단 주진하자. 공은 정부에 넘어갔다.
더에듀 지성배 기자 | 박균열 중부대학교 교수가 제37대 한국교원교육학회 회장에 취임했다. 임기는 내년 1월 1일부터 1년이다. 한국교원교육학회는 지난 6일 총회에서 박 수석부외장을 신임 회장으로 인준하고 추대했다. 박 신임 회장은 지난해 차기 회장 선거에서 당선돼 2025년 수석부회장을 맡아 학회 활동을 수행한 교원정책 관련 전문가이다. 그동안 한국교원교육학회 부회장, 사무총장, 홍보출판위원장, 중등교육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쳤다. 또 대통령직속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상근전문위원, 교육부 정책자문위원, 경기도교육청 정책자문위원,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고려대학교 고등교육정책 연구소 연구교수, 교육부 재외교육기관장 선발 평가위원, 서울특별시교육청 학교장 능력개발평가 위원, 교장공모제 심사위원 등 우리나라 교원정책의 전반적 개선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특히 인천교육청 시민 감사관,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합동 평가위원, 감사원 산하 감사연구원 자문위원 등을 거치면서 행정·감사 실무에도 역량을 발휘해 왔다. 한국교원교육학회는 대학 등 교원양성기관과 연구기관의 전문가들은 물론이며 유아, 초등, 중등, 특수교육 등 각 분야의 현장 실천가들이 함께 연구하고 학술활동을 진행해 온 단체이다. 올해로 누적 회원 수가 5000명을 넘고, 실질 회원 수 4000여명을 상회하는 등 교원교육 및 교원정책 전반에 관한 국내 최고의 학문공동체로서 자리 잡고 있다.
더에듀 전영진 기자 | 폐교와 방치된 체육용지가 다자녀가구와 신혼부부를 위한 주거 공간이자 학생과 지역주민이 누리는 교육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전국 첫 사례로, 향후 폐교의 주거공간 전환이 활성화 할 것인지 주목된다. 제주교육청과 제주도, 제주도개발공사는 9일 도청에서 폐교 등 유휴부지를 공공임대주택 등으로 개발하는 내용의 ‘복합개발 공공주택 공급 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대상은 옛 무릉중학교와 송당리 체육용지이다. 이를 위해 지난 10월 주민설명회를 열었고, 11월에는 지역주민 대표 6명 포함 주민협의체 구성을 완료했다. 구체적으로 옛 무릉중(1만 4581㎡)에는 공공임대주택 30여 가구와 교육시설, 공원이 조성된다. 무릉초·중학교까지 약 50m 거리로, 준공될 경우 학생 수 증가 효과로 인근 학교 활성화도 기대된다. 송당리 체육용지(1만 624㎡)에는 공공임대주택 30여 가구와 공원이 들어선다. 인근 송당초등학교까지의 거리는 약 500m이다. 제주교육청은 부지를 제공하고, 유상 이관 받은 토지비는 시설비로 재투자한다. 완공 후에는 교육시설을 운영한다. 제주도는 복합개발 공급방안 마련과 폐교 리모델링, 공원 조성 등에 사업비 일부를 지원한다. 제주개발공사는 설계와 건설공사를 맡는다. 총사업비는 191억원이 투입되며, 내년 1월 기획설계 착수 후 2028년 12월 완공이 목표이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주택·교육·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복합공간 조성으로 제주 읍면지역 활성화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라며 “폐교에 다자녀 가족이 들어오면 아이들이 늘고, 아이들이 늘면 학교가 살아나고, 학교가 살아나면 마을 전체가 되살아난다”고 강조했다. 백경훈 제주개발공사 사장은 “협약기관이 함께 방향을 맞추고, 각자의 역할을 나눠 책임 있게 참여하는 데 의미가 있다”며 “공공임대주택 공급사업을 꼼꼼히 추진해 지역과 주민께 누가 되지 않는 공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광수 제주교육감은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의 연결 고리가 더욱 견고해지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며 “송당리, 무릉리 마을 전역에 우리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져 지역사회가 더욱 활성화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더에듀 지성배 기자 | 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가 나왔다. 대학수학능력평가(수능) 영어 난도 조절 실패에 따른 책임을 묻는 것이다. 평가원의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 산하 배치 검토도 촉구했다. 교육대개혁국민운동본부(운동본부)는 9일 성명을 내고 오 원장이 사교육을 부추겼다며 사퇴를 촉구하는 동시에 상대평가 수능의 개편, 평가원의 국교위 산하 이동 배치 등도 요구했다. 올해 수능 채점 결과, 절대평가인 영어 과목에서 1등급이 3.11%에 머무르자, 오승걸 원장이 난도 조절 실패를 인정하며 고개를 숙였다. 교육부도 영어 출제 과정 전반에 대한 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힌 상태이다. 이에 운동본부는 “영어 절대평가 전환 의도는 과도한 경쟁 완화”라며 “고난도 문제를 낸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영어 등급을 수시 모집 최저학력 기준으로 삼은 재학생들의 대거 탈락 위기를 맞이한 것을 두고 ‘함정에 빠졌다’고 표현했다. 이들은 “킬러 문제 하나를 없애는 대신, 까다로운 문제를 다수 출제했다”며 “사교육 시장이 더욱 비대해지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오승걸 원장이 수험생과 국민 앞에 사과하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교육부와 국교위에 상대평가 수능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작업에 착수할 것을 촉구했다. 또 평가원의 역할과 기능 전면 개편도 요구했다. 운동본부는 “교육과정 수립에 관한 업무가 국교위로 넘어간 상황”이라며 “(평가원은) 학교와 교사 교육과정을 풍부하게 구성해 운영하도록 지원하고, 학생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학습하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하도록 국교위 산하에 배치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편, 교육부는 12월 중 영어영역 시험 출제와 관련한 전반적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