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18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 소위 말하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되어 교육감을 보좌하는 비서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반절 가량을 글쓰기란 업을 갖고 살아왔는데, 새 옷을 입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한동안 글쓰기를 멈췄습니다. 그러자 내 마음 한구석에 공허함 그 비슷한 마음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읽고 에세이를 써보기로 다짐했습니다. 지난해 2월 호기롭게 시작한 이 다짐은 지금도 꾸역꾸역 이어가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내 안의 나와 만나는 일은 제 삶을 더욱 반짝이게 한다는 걸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엘레나 페란테’의 4부작 중 제1권 ‘나의 눈부신 친구’는 이탈리아 나폴리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두 소녀 릴라와 엘레나의 이야기다. 두 인물의 유소년 시절부터 격동의 사춘기,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에는 우정의 이름으로 범벅된 인간의 잔혹함과 ‘질투’, ‘시기’, ‘욕망’ 등 그 이상의 무엇이 담겨 있다. 대학 시절, 이탈리아 르네상스 연극을 배울 때도 그랬지만 이탈리아 희곡은 극의 내용이나 줄거리, 구성을 떠나 이탈리아어로 된 인물 이름 자체가 생소해 대본 자체가 어렵게 느껴졌다. 1페이지부터 499페이지에 이르는 책장을 덮기까지 주인공인 ‘릴라’가 있는 체룰로 집안, ‘엘레나’가 사는 그레코 집안, 그 외에도 책 속에 등장하는 카라치, 펠루소, 카푸초 집안 등 시골 마을의 가족과 구성원들을 완벽히 파악하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외국인에게 ‘박경리의 토지’ 속 수많은 주인공의 이름이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타국에 대한 특별한 배경지식 없이 이야기에 푹 빠져들기에는 등장인물과 지명 자체가 너무나 낯설었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미국 HBO에서 2018년부터 최근까지 시즌 4에 걸쳐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시간이 되면 미드를 보면서 이 드라마틱한 소설을 영상으로 어떻게 풀어냈을지 매력에 푹 빠져봐야겠다. 명절이 되어야 시간을 내 영화나 드라마 몰아보기를 할 수 있는 신세지만 마음속 버킷리스트가 하나 더 생겼다. 무얼 해도 큰 노력 없이 척척 해내고 예쁘기까지 한 친구가 있는가 하면 죽어라 노력해도 친구의 그늘에서 늘 언저리만 맴도는 친구가 있다. 더군다나 그 예쁜 친구는 돈 많고 부유한 사람을 신랑으로 맞이하고, 늘 그녀의 2인자라 여겼던 친구는 얼굴도 별로고 연애 또한 잘 풀리지 않는다. ‘세상은 불공평한 듯 평등하다 했는가?’ 전자인 ‘릴라’는 태어날 적부터 명석한 두뇌와 어떤 상황에서도 서슴지 않는 당당함이 있었지만, 구두 수선공의 가난한 딸로 공부를 계속하지 못하고 부잣집 남자와 결혼한다. 후자인 ‘엘레나’는 시청 수위의 딸로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진학해 공부를 계속 이어간다. ‘엘레나’는 ‘릴라’가 다니지 못하는 고등학교에서 만점을 받을 정도로 학교에서 인정받고 있지만, 늘 릴라 앞에 서면 괜한 자격지심에 시달린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가계도가 익숙해질 무렵 주인공인 ‘릴라’와 ‘엘레나’의 심리 상태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그들을 둘러싼 마을 청년들과 옆집 밥숟가락 개수까지 알 정도로 작은 마을의 분위기 속에서 사춘기를 맞이하는 그녀들은 우정이라는 이름 아래 숨어있는 시기와 질투, 증오와 분노, 수치와 오만 등의 감정이 곳곳에 묻어나 있다. 여자들의 우정은 특별하고 복잡하다. 겉으로는 평생을 함께할 것 같은 우정을 맹세하고도 애인이 생기고, 결혼하고, 자녀들까지 태어나면 한 시절 빛났던 우정은 결국 가정에 자리를 내어주는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우정’이라는 말로 가장 가까이에서 상처 주기를 서슴지 않고 때로는 도를 넘어 간섭하기도 한다. 실제로 나도 고등학교 때 단짝이었던 친구 A에게 지금의 남편인 B와 결혼할 생각이라며 장미빛 미래와 로맨스를 취중진담 삼아 털어놨다. 고1 때부터 무려 17년을 사귀고 결혼을 앞둔 적령기였기에, B와의 결혼은 그저 내게 운명 같은 일이었다. 평소에는 나의 모든 걸 다 이해해 줄 것 같은 친절함과 상냥함으로 나를 대하던 A는 결혼 얘기가 나오자 돌변했다. ‘미용사인 남편과 결혼해서 뭐 어쩔 건데’라는 식으로, B의 집안까지 들먹이며 내게 모욕감을 줬다. 그 뒤로도 몇 년을 그 친구와 만났지만, 한순간 가시처럼 박혔던 절친의 말 한마디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다 결국 A와 손절했다. 여자들의 우정 속에는 말론 표현할 수 없는 형형색색의 감정이 실태래처럼 복잡하게 꼬여 있다. 뭐 여기서 반론을 제기할 사람도 있겠지만 마흔 중반을 살아온 나의 경우엔 그렇다. 사랑만큼 완벽한 우정은 없다. 설레고 가슴 뛰던 첫사랑도 시간이 지나자 인생을 함께 하는 친구와의 우정처럼 옅어져 가니까. 하지만 ‘30년이 지난 여자들의 우정이라면, 이것만큼 매력적이고 삶의 위로가 되는 소중한 것이 있을까?’, ‘농익은 삶을 살아낸 여자들의 우정이라면 이보다 더 멋진 것이 있을까?’ 10대 딸과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딸이 “친했던 친구가 자신만 쏙 빼고 동호회에 들어가 점심시간이 쓸쓸해 속이 상한다”라고 말했다. 여자 친구와의 관계가 세상의 전부와도 같았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별것도 아닌 일에 토라지고 무리를 만들어 함께 쏘다니던 나의 옛날 학창 시절의 모습이 선하다. “우리 딸! 엄만 네가 1명의 친구와의 우정, 관계에 연연하기보단, 그 친구와의 관계가 소원해졌다고 슬퍼하기보단, 너 자신을 더 아끼고 사랑하면 더 좋겠어. 인생은 어차피 혼자야.” “엄마, 인생은 독고다이야?” “꼭 그렇다기보다는 친구와 좀 멀어졌다 싶으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봐. 다른 친구와 세상의 멋진 것들을 향해 눈을 돌리고 살다 보면 그 친구와 다시 친해질 수도 있고, 아니면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도 있고...” 사춘기를 맞이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눈부신 친구’ ‘릴라’와 ‘엘레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유일한 그리움의 대상은 릴라였다. 내 편지에 답장 한 통 없는 릴라. 내가 없는 동안 릴라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나는 두려웠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이것은 오래전부터 가슴에 품어온, 살면서 단 한순간도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릴라의 삶의 일부분을 놓침으로써 내 삶의 밀도와 중요성까지도 희석될 것 같아 두려웠다. 나의 눈부신 친구 p.277 때론 부딪히고 때론 함께 울고 웃는 진한 우정을 통해 성장하고 세상 앞으로 나아가는 당당한 딸이 되기를 바라며, ‘엘레나’와 ‘릴라’를 떠올린다. 그리고 흔하지만 뼈아픈 말, ‘여자의 적은 여자야.’
더에듀 | 가상세계가 수업에 활용되면서 교실과 학교라는 공간의 벽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교사들은 확장된 교육공간 속에서 아이들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것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하면서 흥미도와 참여도가 향상했다고 말한다. 이에 <더에듀>는 가상현실을 활용한 교육활동에 도전장을 내민 ‘XR메타버스교사협회’ 소속 교사들의 교육 활동 사례 소개를 통해 아이들과 수업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지 살피고자 한다. 디지털 성범죄 예방교육, 왜 메타버스이어야 했을까? “디지털 성범죄 예방교육을 한다고요? 초등학생에게요?” 아직도 많은 사람은 디지털 성범죄를 ‘청소년 이후의 문제’로 오해한다. 그러나 통계는 다르다.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이미 90%를 넘었고, 그들이 가장 몰입하고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공간은 교실이 아니라 유튜브, 게임 플랫폼, SNS 등 디지털 세계이다. 현실보다 온라인에서 더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상호작용을 하며, 다양한 자극을 탐색하는 이들에게 디지털 공간은 ‘또 다른 일상’이 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환경이 일상의 중요한 일부가 된 상황에서, 현실 중심의 교육만으로는 디지털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상황에 적절히 대비하기 어렵다.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고, 피해가 장기적이며 회복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예방 교육 또한 디지털 환경을 반영하여, 학생들이 실제로 접하는 방식과 맥락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배경에서 필자는 ‘메타버스’라는 공간 자체를 교육의 장으로 삼아 보고 싶었다. 아이들이 메타버스 안에서 안전하게 탐험하고 탐색하며 활동하는 경험을 통해, 디지털 공간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익히기를 바랐다. 디지털 성범죄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단순한 경고나 지시가 아니라, 스스로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체득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적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ZEP’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ZEP 플랫폼을 활용한 디지털 성범죄 예방 교육이었다. 경계를 넘는 손가락, 디지털 성범죄의 시작 ‘시작별’ 수업은 한 학생의 고민에서 시작된다. 게임을 통해 알게 된 친구가 생일 선물 대신 ‘몸 사진’을 요구했다는 일기장 이야기다. 현실이라면 쉽게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메타버스 속 아바타 ‘구름이’를 통해 제시하면 학생들은 심리적 거리를 두고 더 몰입하며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본인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실제적인 문제이지만, 이를 곧장 ‘나의 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구름이’라는 가상의 친구를 돕는다는 설정을 통해, 제3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해 보는 경험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이후 ‘깨우는 방(Awakening Room)’으로 이동한 학생들은 디지털 성범죄의 다섯 가지 유형(딥페이크, 온라인 그루밍, 유포 협박, 불법촬영, 동의 없는 유포)을 실감나는 사례로 익힌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닌 ‘피해자일 수도,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위치 감각을 인식시키는 데 있다. 교사의 역할도 단순한 해설자가 아닌 안내자이자 조력자로 전환된다. 학생들의 아바타가 정보를 읽고, 질문에 답하고, 선언문을 작성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적절한 시점에 개입해 사고를 확장시켜준다. 메타버스 수업, 진짜 효과가 있을까? 그렇다면 이런 수업은 어떤 교육적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첫째, 공간의 전환은 인식의 전환을 이끈다. 책상에 앉아 듣기만 하는 교육에서 벗어나 가상공간을 탐험하며 학습하게 되면, 추상적 개념이 구체적인 ‘행동의 언어’로 전환된다. 둘째, 역할극 기반의 시뮬레이션은 공감 능력을 키운다. ZEP의 ‘연습실’에서는 디지털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행동 지침을 체득하며, 위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미리 연습해 본다. ‘그 사진을 정말 보내도 될까?’, ‘게임 속 친구는 왜 이렇게 잘해줄까?’라는 고민에 대한 자신의 기준을 점검하고 정립할 수 있다. 셋째, 학생들에게 익숙한 디지털 언어로 말한다. 아바타와 가상공간, QR코드 초대, 리액션 기능, 구글 설문과 패들렛 공유 등은 학생들에게 익숙한 상호작용 방식이다. 이들의 디지털 리터러시를 존중하고, 그 언어로 소통하며 성교육의 경계를 확장한다. 경계를 존중하는 연습, 성범죄 예방의 시작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수업 후반, ‘약속하기 방’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이다. 학생들은 서로의 아바타와 함께 촬영하며 이렇게 다짐한다. “게임 안에서도, 온라인에서도, 친구의 경계를 지킬게.” ‘시작별’이라는 이름처럼, 이 수업은 거대한 디지털 세계로의 첫걸음이다. 학생들이 성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고,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지키며, 위험 상황에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감각을 키우는 교육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기술이 아닌 경험을 설계하는 교사 이제 우리는 에듀테크를 단순히 ‘수업에 기술을 적용했다’는 차원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통해 학생의 경험이 얼마나 변했는가’, ‘사고의 지형이 어떻게 넓어졌는가’이다. ZEP 기반의 디지털 성범죄 예방교육은 교사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지금, 아이들의 현실과 함께 수업하고 있는가?” 학생들이 머무는 디지털 공간에서,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로,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방식으로 교육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변화이고, 메타버스 교육이 제시하는 새로운 길이다. XR메타버스협회 소개 XR메타버스교사협회는 XR과 메타버스에 관심을 가진 전국의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비영리 단체다. 초·중·고등학교 현장에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며, 교육에 접목할 수 있는 XR·메타버스의 다양한 가능성을 연구하고 실험해 보고 있다. 단순히 이론적 분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교재를 개발하여 수업에 투입하고,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더 많은 동료 교사들에게 노하우를 확산하고 있다. 또한 기업과 협업해 기술적 자문과 지원을 받고, 이를 교실 현장에 검증하는 과정도 거치며, 각종 학회나 박람회 부스를 통해 교육 혁신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오고 있다. 이지혜= 초등학교 보건교사이자 생활부장으로서 ‘인공지능·인문 융합 교육 전공’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건강과 성, 디지털 시민성의 교차점에서 아이들의 안전한 성장을 돕는 교육을 고민하며, AI·에듀테크를 활용한 참여형 보건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메타버스 기반 성교육, 학교폭력 예방교육, 인문·예술 보건교육과 성교육 등 다양한 미래형 수업을 설계하며 교육현장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더에듀 전영진 기자 | 초등교사들이 지난 7월 집중호우 피해 주민을 돕고자 성금을 기탁, 함께 사는 세상을 몸소 실천했다. 초등교사노동조합 6일 2025년 전국재해구호협회에 성금 500만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이번 기부는 전국 각지 초등노조 조합원들의 뜻을 모아 이재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전달하고자 마련됐다. 초등노조는 그동안 재난과 위기 상황에서 학생과 지역사회를 위한 연대와 나눔을 실천해 왔으며, 이번에도 신속한 지원을 통해 초등학생을 포함한 피해 주민들의 회복을 응원했다. 정수경 위원장은 “많은 이재민이 생겨 마음이 아프다”라며 “초등학생을 포함한 모든 주민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교사로서 교육과 복지를 넘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연대의 실천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더에듀 | 교육은 궁극적으로 개인의 성장 자산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교육의 목적과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있어 학생들의 경험과 고민을 공유하며, 함께 활용하는 방식을 찾아가는 소통 교육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독자의 관점에서 교육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교육의 방향에 대한 이해와 토론을 이끌어 내는 의미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이루기 위해 교육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동·서양 건축으로 본 미래교육 철학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적 활동을 빠른 속도로 대체하는 시대,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의 청사진을 다시 그려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배우고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흥미롭게도 그 해답의 실마리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지혜가 담긴 ‘건축’에서 찾을 수 있다. 동양과 서양이 공간을 이해하고 빚어온 방식의 차이는 우리가 미래 인재를 위해 어떤 교육의 ‘집’을 지어야 할지 명확한 방향을 제시한다. 서양 건축 ‘벽의 미학’, 동양 건축 ‘관계의 미학’ 서양 건축은 ‘벽의 미학’으로 요약된다. 건조한 기후 속에서 돌과 벽돌을 쌓아 올린 서양의 건물은 외부 세계와 나를 명확히 구분하는 견고한 ‘벽’에서 시작한다. 이 벽은 인간을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물리적 경계이자, 세상을 분석하고 객관화하는 서구 철학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러한 건축 철학은 그대로 서구식 근대 교육 시스템에 투영됐다. 교실이라는 사각의 공간, 과목별로 나뉜 뚜렷한 경계, 객관적 지식의 체계적인 축적과 평가. 이는 산업화 시대에 필요한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인재를 키워내는 데 더없이 효과적인 ‘교육의 벽’이었다. 반면, 우리 전통 건축은 ‘관계의 미학’을 보여준다. 비가 많고 사계절이 뚜렷한 자연환경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벽 대신 ‘기둥’을 세워 구조를 만들고, 그 사이를 유연하게 채우거나 비워두었다. 긴 처마는 비와 햇빛을 조절하며 자연을 안으로 들이는 완충지대가 되었고, 낮은 담장 너머의 풍경을 정원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차경(借景)’의 지혜는 공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세상과 내가 하나임을 일깨웠다. 이는 내부와 외부, 인간과 자연, 교과와 삶이 분리되지 않고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동양적 세계관의 발현이다. AI 시대, 어떻게 집을 지을 것인가 AI 시대,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견고한 ‘벽’인가, 아니면 세상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열린 ‘창’인가? AI가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지식의 벽을 쌓을 수 있는 지금, 교육의 패러다임은 서양 건축적 모델에서 동양 건축적 모델로 전환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미래 교육 설계는 다음 세 가지 ‘관계의 미학’을 회복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첫째, 교과목의 ‘벽’을 허물고 융합의 ‘대청마루’를 깔아야 한다. 수학, 과학, 역사, 예술이 분리된 지식의 방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제 해결을 위해 모든 지식이 넘나들고 소통하는 넓은 대청마루 같은 학습 환경이 필요하다. 프로젝트 기반 학습, 문제 중심 학습이 바로 이러한 융합적 사고를 키우는 교육의 ‘기둥’이 될 것이다. 둘째, 정답을 향한 ‘외길’ 대신 맥락을 읽는 ‘창’을 내야 한다. 우리 건축이 창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풍경을 담아냈듯이 교육 역시 정형화된 지식을 주입하는 대신 학생들이 세상을 자신만의 창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AI가 내놓은 결과값이 어떤 사회적, 윤리적 맥락을 갖는지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조망하는 통찰력이야말로 AI가 가질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역량이다. 셋째, 학교라는 ‘성곽’을 넘어 세상이라는 풍경을 ‘차경’해야 한다. 교실 안에서만 머무는 교육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기업과 협력하며, 전 세계 학생들과 교류하는 등 학교의 낮은 담장 너머의 세상을 적극적으로 교육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살아있는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학생들은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법을 체득하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AI 시대의 지속 가능한 인재는 지식의 ‘소유자(Owner)’가 아니라 관계의 ‘설계자(Architect)’가 되어야 한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지식의 벽을 높이 쌓는 교육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이 세상과 유연한 관계를 맺고, 변화하는 풍경을 기꺼이 껴안으며,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할 수 있도록 비어 있어 더 충만한 ‘관계의 집’을 지어주어야 할 때다. 김영배= 교육자이자 비영리 사회 단체장으로 25년 이상을 교육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교육은 사회 성장의 기반이 되는 자양분과 같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교육학 박사로서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교육의 방향은 무엇인지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이기도 하다. 특히, 인적자산이 대부분인 대한민국의 현실에 비춰, 소통과 협력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지식보다 인문학적 소양과 다양성 교육이 미래세대에 더 가치 있고 필요한 생활자산이라 생각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 흐름 속에서 교육의 중요성이 더 강화되고 있다는 기본 인식 속에 미래 가치를 어떻게 준비하고 연구해야 하는지를 국내외 사례 분석을 통해 논해 보고 싶어 한다.
더에듀 전영진 기자 | 3년 이내로 된 교원 연수휴직을 분할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국회 교육위원회)은 지난 5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고 밝혔다. 현행 교육공무원법에 따르면, 교원 등 교육공무원은 대학(교)·대학원·산업대학 및 전문대학 이상 학령이 인정되는 각종 학교 및 부설연구소 등에서 연수하는 경우, 3년 이내의 기간에서 휴직할 수 있는 연수휴직 제도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교육청은 연수휴직을 재직 중 1회로 횟수를 제한하는 등 운영기준을 달리 하면서 교육공무원들의 학위 취득 등 연수 수행에 제약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김 의원은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연수휴직을 법정휴직기간인 3년 이내에서 분할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김 의원은 “현장 교육공무원들이 개인의 연수 목적과 주기에 맞춰 유연하게 휴직제도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번 개정안은 실효성 있는 연수휴직 운영기준을 확립하고 교육현장의 전문성도 강화하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게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프로불편러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어느 책 제목처럼 많은 이들이 분노와 혐오로 점철된 우리 사회에 남은 유일한 희망은 다정함이라고 말한다. 반골 기질이 있는 나는 괜히 삐딱한 마음이 들어 괴팍한 사람들이 설 자리도 필요하다고 외치고 싶다. ‘붙임성 없이 까다롭고 별난 사람들, 뭐가 그리도 불편한지 싫은 소리를 자꾸 내는 사람들, 모두가 맞다고 하면 그런 줄 알면 되지 꼭 아니라고 외치는 사람들, 기어이 소란을 만드는 사람들’, 그래서 ‘비주류가 되거나 주변부로 밀려나기도 하는 위태로운 사람들.’ 나는 이런 사람들을 은밀하게 좋아한다. 그런 동료 교사가 하나 있어 학교가 쑥대밭이라도 되면 모종의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곤 한다. 속으로 더, 더, 더, 더 해달라고 외친다. 나는 이런 악취미를 품고 산다. “미녀들끼리 모여계시네요.” 같은 교무실 선생님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삼삼오오 교무실로 걸어가는 길이었다. 남학생 한 명이 우릴 보고 하는 소리다. ‘능글맞게 저런 말을 할 줄 아는 애가 있네’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대꾸없이 지나쳤다. 학생이 제 갈길을 떠나자, 옆에서 발맞춰 걷던 선생님이 넌지시 묻는다. “저런 말 들으면 기분 나쁘지 않아요?” 순간 내 뇌는 일시 정지, 최대한 회색지대에 근접한 대답을 억지로 만들어 낸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제 딴엔 장난스럽고 센스있게 인사하고 싶었나 봐요.” “교사를 뭘로 보는 건지 너무 징그럽잖아요. 교사가 아니더라도 저런 말은 하면 안 되죠.” 동료 선생님은 지나가는 말 한마디 속에 담긴 부조리, 여성을 대상화하고 외모를 품평하는 무의식적 습관을 읽어냈다. 나는 선생님이 학생을 불러세워서 방금 한 말이 어떻게 들릴 수 있는지 지적해 주기를 내심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를 바뀌게 하는 사람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변하기 어렵다고 한다.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주변에 딴지를 걸거나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이 더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사회적 지위를 갖추게 되면 사소한 공격도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듯 느껴져 함부로 입을 떼지 못하는 것 같다. 말 한마디로 위태로워지는 얄팍한 인간관계가 대부분이라 깨닫고 성장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늙는다는 건 여러모로 슬픈 일인가 보다. 그런데도 아주 가끔 나를 멈춰 세우고 뒤돌아보게 하고, 바뀌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식사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자기도 알고 보면 재밌는 사람이라고,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에 담임선생님이 ‘유머가 있는 학생’이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고 말하는 상대방에게 나는 장난스럽게 ‘유머 호소인’이라고 별명을 붙여주었다. OO 호소인 하는 유행어들을 자주 보고 들었던 탓에 자연스럽게 떠올린 농담이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자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고 가깝지도 편하지도 않은 그 사람은 ‘내 기분을 상하게 할까 염려스럽다’라고 운을 떼며 말했다. “호소인이라는 표현은 피해자를 의심하고 조롱하는 데서 나온 말이라 사용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그러면서도 고마웠다.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영원히 몰랐을 걸 알게 됐으니까. 나를 무안 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디 가서 또 그런 말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거다. 나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이 참 오랜만이었다. 용감하게 괴팍하게 나는 다정한 교사이자 동료로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며 산다. 아무리 내 속이 삐딱할지언정 최대한 고분고분 말하고 행동한다. 교원 평가에 적힌 학생들의 평을 빌리면 ‘항상 친절하고’, ‘학생들과 불필요한 잡음을 만들지 않는’ 교사다.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내세운 나의 거짓된 다정함이 가끔 통할 때도 있다. 수업 중에 코를 골며 엎드려 자는 학생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잠자는 사자의 콧털이라도 건들일까 애간장을 태우며 조심스럽게 흔들어 깨운다. 대차게 코를 골며 잠들었던 게 미안했는지 그다음 시간에 웬일로 교과서를 챙겨와 수업을 듣는 노력이라도 하면 괜히 마음이 이상하다. 난 그냥 너랑 부딪히기 싫어서 그랬던 것 뿐인데. 나의 이 ‘다정한 척’ 덕분에 교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수명이 조금은 연장되었을 지는 몰라도 이게 정말 서로에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내 눈에 거슬리는 행동’, ‘내 귀에 거슬리는 말을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는 게 과연 옳은 건지, 누구를 위한 건지 모르겠다. 학생들에게 잘 되라는 바른 소리를 해 본 적이 언젠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학생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게 도가 지나쳐서 좋게 풀어서 지도할 수도 있는 것들도 그냥 모른 척 넘어간다. 나만 그런 게 아닌 건지 예전엔 그래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던 호랑이 선생님들은 이제 학교에서 멸종위기다. 학교에 꼭 한 명씩 있는 ‘빌런’ 선생님을 못 본 지도 오래됐다. 학교라는 조직이 완벽할 수는 없을 텐데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런 평화가 싫지는 않다. 하지만 ‘다정하게 살아남기’보다 ‘용감하고 괴팍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 가끔은 그립다. ‘우리가 공들여 쌓아 올린 모든 부조리한 것들을 집요하게 의심하고 흔들어대고 마침내 무너뜨리던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이 글은 실천 교사 홈페이지에 게재된 것을 일부 재가공했습니다.
더에듀 | 캐나다 온타리오주 동남권 여러 학교에서 보결 교사로 근무하는 정은수 객원기자가 기자가 아닌 교사의 입장에서 우리에게는 생소한 캐나다 보결 교사의 하루하루를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소개한다. (연재에 등장하는 학교명, 인명은 모두 번안한 가명을 쓰고 있다.) “얘들아, 보결 교사가 왔다고 함부로 행동하면 안 돼! 참, 쌤 이름이랑 전공이 어떻게 돼요?” “정은수입니다. 미술이랑 수학이고 곧 사회나 역사 부전공도 딸 거예요.” “얘들아, 정 선생님은 조리 전공이 아니라서 실습은 안 하겠다고 해도 되는데 일부러 너희를 위해 하고 있는 거야. 잘 따르도록 해. 내가 바로 옆 교실에 있다가 한 번씩 와 볼 거야.”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여러 해 동안 보결을 해 봐서 어떤지 알아요. 근데 진짜 불편하시면 실기 수업은 안 하셔도 돼요.” “괜찮아요. 저도 집에서 아이들이랑 요리는 종종 하니까 별 문제 없을 거예요.” 가르치고 있는 교실 학생들이 복도에서 지나가면서 떠들자, 옆 교실에 있던 사회과 부장 선생님이 들어와서 몇몇 아이들이 지시에 바로 따르지 않는 걸 보고는 잠깐 거들어주셨다. 상지고에는 선택 과목으로 식문화 수업이 있는데, 이 수업에는 종종 실제 음식 조리 활동이 있다. 식문화나 조리 실기 전공이 아닌 교사는 안전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언제든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이 있다는 점을 알려준 것이다. 실제로 다른 교사는 종종 하지 않기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데 정말 여기서는 이런 경우가 아니라도 언제든 보결 교사가 불편하면 수업 계획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실기 수업은 안전 때문에 더 그렇지만, 실기 수업이 아니라도 개인의 특성대로 수업하는 걸 존중하기 때문이다. 개성을 존중하는 문화, 보결 교사의 선택에 맡겨 이곳에서 처음에 굉장히 당황스러웠던 일 중 하나가 첫 수업을 어떤 방식으로 하면 좋을지 묻는 질문에 지도교사인 군포고 황미영 선생님이 “선생님 성격대로 하세요”라고 대답한 일이었다. 처음 담임을 맡았을 때 교장선생님도 학급 운영에 대해 똑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곳 문화가 개인의 특성을 존중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개별화 수업도 그래서 더 발전한 것일 수도 있다. 이곳에서는 수업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사람들이 개인의 성격대로 일하는 걸 허용하거나 심지어 더 좋게 생각하기도 한다. 사회 규범과 업무에서 지켜야 할 분명한 선에 대해서는 철저한 편이지만, 그 안에서 선택의 폭은 넓은 편이다. 업무 규정도 담당자의 해석의 여지가 많다. 지금 생각해보면 관리자가 교사의 교육과정 계획이나 수업 계획을 굳이 보지 않는 이유도 교사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측면도 있지만, 이곳 문화가 전반적으로 개인의 특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보결 수업도 교사가 자신이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은 안 따라도 되고, 심지어는 계획 자체를 안 따르더라도 학생들을 관리·감독만 잘한다면 문제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기 하고 싶은대로 보결 수업을 하는 교사도 있다. 하긴 어떤 교사는 역사 수업을 하는 데 자신이 원래 관심 있고 자신 있는 분야라서 한 학기 내내 이집트 고대사만 가르쳤다는 얘기도 들었다. 어차피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역사적 개념은 가르쳤다는 명분이 진짜 대강화가 된 이곳 교육과정 덕에 있기도 하겠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개인의 방식을 존중하기 떄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가이 든다. 자유로운 보결 교사의 선택이 오히려 독이 되기도 물론 긴급 보결 교사는 매번 그러면 특히 자기 수업 계획을 그대로 제공한 교사들에게는 선호도가 떨어지니 그렇게까지는 권장할 일은 아니지만, 정규 보결이라면 얼마든지 그러기도 한다. 물론 이런 자유도가 꼭 좋은 건 아니다. 학생들이 보결교사가 오면 놀려고 하고, 특히 체육 수업에 자기들이 하고 싶은 놀이를 하자고 끝없이 조르는 것도 이런 분위기에서 체육 시간에 학생들이 원하는 놀이를 하게 두는 보결 교사나 분명 수업 계획이 있는데도 자습을 시키고 감독만 하는 교사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지난 화에서 말한 것처럼 보결 교사가 하기 편하고 자신도 신경 안 쓰이는 쉬운 수업이나 자습 계획을 보결 교사에게 맡기는 교사도 있지만, 수업 계획 자체에 선택지를 두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수학을 가르치는 허진희 선생님은 개념 설명은 수학 전공이면 교사가 하고 수학 전공이 아니거나 본인이 자신이 없으면 구글 클래스룸에 자신이 올려놓은 영상으로 대체하도록 하고 있다. 보결을 위해 따로 만들어놓은 영상은 아니고 학생들이 언제든 다시 개념을 확인할 수 있도록 스스로 찍은 핵심 개념 설명 영상이다. 실제로 자신의 수업 시간에도 보는 것을 허용한다. 학생에 따라 시끄러워 설명을 못 듣거나, 놓친 경우, 천천히 진행하고 싶은 경우 보기도 해서 학생들도 익숙하다. 원래 수업 계획 그대로 맡기는 선생님도 그리고 어차피 할 사람은 하고 못할 사람은 안 할 테니 자신의 원래 수업 계획 그대로 보결 교사에게 맡기는 교사도 있다. 물론 교과 전문성을 덜 걱정하거나, 자신의 수업 게획은 어떤 교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심지어 해당 과정에서 처음으로 하는 활동인데도 주로 교사들이 해본 경험 있는 활동일 경우 보결 교사에게 그 활동의 소개와 첫 시도를 부탁기도 한다. 수업 전체가 학생 중심 수업 활동이어서 강의가 필요 없고 학생 스스로 지식을 구성하는 수업을 운영하는 경우에도 좀 더 이런 자신감을 가지기 쉽다. 교실에 계속 같이 수업을 따라온 특수교육보조 선생님이 있거나 교과 내용을 알고 적극적을 참여하는 또래 학습 도우미(peer tutor)가 있을 경우도 그렇다. 또래 학습 도우미는 보통 해당 과정을 이미 이수한 상급생이 맡는데, 봉사 시간을 인정받거나 경우에 따라 산학협력 실습 시간으로 인정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연극 보결 수업을 할 때는 평소 일정대로 수업을 했는데, 수업 도입부에 매일 하는 드라마 게임은 학습 도우미가 진행하고, 새로운 개념 설명은 영상으로 설명하고, 추가 설명이 필요하면 학습 도우미에게 맡기도록 했다. 그 외에는 학생들이 조별로 기존에 작업하던 대본을 분석하고 연습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관련 경험과 지식이 있는 분야여서 개념 설명도 조금 하고, 조별로 약간의 지도를 해주기는 했지만, 하지 않았어도 무방한 수업 계획이었다. 교사의 보람은 학생 가르치는 일에 있지만… 그런데 이런 경우 간혹 열심이 넘치는 또래 학습 도우미나 자기 방식에 대한 고집이 강한 특수교육보조 선생님과 생각이 다를 때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해서 가능하면 수업은 스스로 진행하려고 하는 편이다. 이야기의 시작에 언급했던 식문화 수업도 그랬다. 조리 실습은 제외하고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제대로 할 수만 있다면 하는 것이 학생들에게도, 빠진 선생님에게도 나으니까 매번 빼지 않고 했다. 이렇게 그동안은 쉬운 선택이 있더라도 직접 가르치는 선택을 처음에는 특히 많이 했다. 그런데 마지막 학기에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하게 됐다. 그렇게 시도를 해서 잘 안 될 경우에는 오히려 교실도 더 어수선하게 학생들도 배우지 못하는 경우를 몇 번 경험하고 나서다. 간혹 전공이 아닌 교과를 만만하게 보다가 생소한 영어 용어를 헷갈리거나 잘못된 내용을 알려주는 실수도 생겼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내용에 자신이 있는 교과만 강의와 지도를 하는 수업을 하고 다른 수업은 가급적이면 대안을 선택하고 관리·감독하고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게 됐다. 여전히 학생들이 뭐라도 배워가는 수업을 하는 날이 보람 있지만, 정말 학생의 학습에 무엇이 보탬이 될지 생각하면 좀 더 겸손하게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계속>
더에듀 전영진 기자 | 경북 경산교육지원청과 스마트교육학회가 업무협약(MOU)을 체결, 디지털 교육 생태계 구축으로 지역 학생들을 미래 인재로 양성하는 데 힘을 합하기로 했다. 양 기관은 지난 1일 이 같은 취지의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AI 에듀테크 디지털교육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고 4일 밝혔다. 이번 협약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하는 디지털 교육 생태계 구축과 함께, 경산 지역 학생들이 미래 사회에 필요한 핵심 역량을 갖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 양 기관은 ▲AI, 코딩, 드론 등 첨단 4차산업 교육 프로그램의 운영 ▲스마트 액티비티 플랫폼과 에듀테크 디지털교육 ▲소규모학교, 다문화·특수학생을 위한 맞춤형 교육 ▲교원 역량 강화를 위한 연수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특히 스마트교육학회가 보유한 전문 인력과 100여개 에듀테크 회원사의 기술 역량을 경산교육지원청의 교육목표와 연계해, 초·중학교 대상 미래 교육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에 협력하고, 현장 실증, 교사 연수, 학생 교육활동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으로 협조하기로 했다. 박경화 경산교육지원청 교육장은 “이번 협약을 통해 학생들이 디지털 시대의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마련했다”며 “지역 내 미래교육 혁신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박종필 스마트교육학회 회장은 “AI와 에듀테크 기반의 미래 교육 모델을 실질적으로 현장에 적용할 수 있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학회가 보유한 에듀테크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경산 지역 학생들과 교사들이 변화하는 교육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더에듀 | 사서교사는 문해력, 정보활용, 미디어리터러시 등 미래교육의 핵심을 담당하며 학생들의 경험과 지평을 넓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더에듀>는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아이들의 학습과 경험을 돕고 있는 사서교사의 교육활동을 알아보기 위해 ‘전국사서교사노동조합’과 기획연재 ‘사서교사와 미래교육’을 마련했다. 교수 설계 전문가로서의 사서교사 위상을 알림으로써 배치 확대 필요성을 제안하고자 한다. 2022년 말 등장한 ChatGPT는 출시 2개월 만에 월간 사용자 1억명을 돌파하며 정보 생태계의 지형을 모조리 바꿔놓았다. 키워드 중심의 단방향 정보 검색에서, 완전한 문장으로 대화하며 답을 얻는 지식 생성 시대로의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편리함 뒤에는 AI 기술의 고질적인 문제인 ‘환각(Hallucination)’과 ‘편향성(Bias)’같은 위험이 존재한다. AI가 그럴듯한 거짓 정보를 사실처럼 만들어 내거나 학습 데이터의 편견을 비판 없이 증폭시키는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된다. 결국, AI는 학생들에게 가장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교묘한 함정을 품은 ‘정보원’인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학교 도서관의 역할이 대두된다. 수업 속으로: 데이터로 발견하고, AI와 대화하며 답을 찾다 국어과, 사회과와 연계하여 각각 ‘에세이 쓰기’와 ‘탐구 보고서 작성’ 수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담당 선생님들은 해마다 비슷한 고민에 부딪혔다. 학생들이 자신의 관심사를 탐구 주제로 확장하고, 그에 적합한 자료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이다. 도서관이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지도해 주길 바라는 것은 당연한 요청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예년의 고민 위에 새로운 문제가 더해졌다. 학생들의 과제물 곳곳에서 AI의 흔적이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 학생은 AI가 제안한 주제나 초고를 그대로 가져와 제출하는 경향을 보였고, 이는 단순한 성실성의 문제를 넘어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하는 학문의 본질적 과정이 생략될 수 있다는 심각한 우려를 낳았다. ‘그렇다고 AI를 무조건 금지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이미 학생들의 삶 깊숙이 들어온 기술을 외면하는 것이 과연 교육적으로 옳은 방향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이에 필자는 AI를 금지하는 대신, AI를 정보원의 한 종류로 삼아 이를 올바르게 활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쪽으로 수업의 목표를 수정하고, 이를 위해 ‘발견-심화-검증’의 3단계 탐구 과정을 설계했다. 1단계: 데이터로 주제를 ‘발견’하기 탐구의 첫 단계는 막연한 관심사를 구체적인 키워드로 만들고, 그 연구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단순히 흥미에만 의존해 주제를 정하면, 막상 연구를 시작했을 때 참고할 자료가 부족해 탐구를 이어가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학생 자신의 직관을 데이터로 증명하는 과정을 수업에 포함했다. 먼저 학생들은 활동지를 바탕으로 관심 분야의 세부 키워드를 10개에서 15개 정도 탐색한다. 이후 학술 데이터베이스(DBpia)와 뉴스 아카이브(빅카인즈)에서 해당 키워드를 상세 검색하며 정보의 양을 계량적으로 파악한다. 이렇게 파악한 정보량을 산점도의 X축에, 주제에 대한 흥미도나 참신성 같은 질적 가치를 점수화하여 Y축에 설정한 뒤 각 키워드를 좌표상에 표시한다. 이 과정을 거치며 학생들은 ‘흥미롭다고 생각한 주제가 아직 연구가 부족하구나’ 혹은 ‘이 주제는 정보도 풍부하고 흥미도도 높으니 깊이 탐구할 만하다’와 같이 데이터에 기반하여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험을 한다. 2단계: AI와 대화하며 관점을 ‘심화’하기 데이터 분석으로 잠재력 있는 주제 키워드를 선별했다면, 다음은 AI와 대화를 통해 탐구 주제를 심화할 차례다. 이 단계의 목표는 AI에게 정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는 떠올리기 힘든 새로운 관점을 얻고 자신의 질문을 더 날카롭게 만들기 위해 AI를 활용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먼저 학생들에게 생성형 AI의 특징과 환각(Hallucination) 현상 같은 주의 사항을 안내했다. 이어서 효과적인 프롬프트 작성의 4가지 원칙인 ‘역할 부여, 명확한 지시, 맥락/조건 설정, 형식 지정’을 바탕으로 AI에게 모호한 질문 대신 구체적인 임무를 부여하도록 지도한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와 해양 오염’에 관심이 생긴 학생은 다음과 같이 아이디어 확장을 위한 질문을 던진다. “너는 고등학생의 탐구 보고서 작성을 돕는 길잡이야. 기후 변화와 해양 오염을 큰 주제로, 고등학생 수준에서 탐구할 만한 구체적인 에세이 주제 3가지를 추천해 줘. 각 주제를 추천하는 이유와 어떤 방향으로 탐구를 심화할 수 있을지 함께 제안해 줘.” 여기서 핵심은 AI의 첫 답변에 머무르지 않도록 지도한 점이다. 처음에는 AI의 모호한 답변에 실망하던 학생들도, 포기하지 않고 추가 질문을 던지며(Iteration) 답변의 질을 높여나가도록 이끌었다. 학생들은 이 과정을 통해 AI의 답변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자신의 탐구 질문을 더욱 날카롭게 발전시키는 귀중한 경험을 한다. 3단계: 전통적 정보원으로 내용을 ‘검증’하기 AI와 대화를 통해 날카로운 탐구 관점까지 설정했다면, 마지막 단계는 그 내용을 신뢰할 수 있는 정보로 채우고 검증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의도적으로 AI 사용을 배제하고 전통적인 정보 검색 및 평가 수업을 진행했다. 이제 막 정보 탐색의 세계에 발을 들인 학생들이 AI의 편리함에만 익숙해지기 전에 정보의 원리를 이해하고 질 좋은 정보를 스스로 판별하는 기초를 길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AI가 제안한 관점이나 아이디어를 뒷받침할 근거를 찾기 위해 다시 학술 데이터베이스와 공신력 있는 웹사이트 등을 탐색한다. 그리고 찾아낸 정보들을 ‘CRAAP 모형’(최신성, 관련성, 권위성, 정확성, 목적성)의 5가지 기준에 따라 꼼꼼하게 평가하고, APA 양식에 맞춰 출처를 기록한다. 이 과정은 AI가 생성한 정보의 사실 여부를 교차 검증하고, 편향성을 걸러내며, 탐구의 깊이를 더하는 핵심적인 활동이다. 학생들은 이 과정을 통해 AI의 답변을 맹신하는 대신, 검증을 거친 정보만을 선별하여 자신의 지식으로 재구성하는 훈련을 하게 된다. AI 시대를 항해하는 도서관의 새로운 사명 AI가 만들어 내는 현상은 완전히 새로운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본질은 정보 리터러시 교육이 오랫동안 다뤄온 과제와 깊이 맞닿아 있다. 팩트체크, 편향성 분석, 비판적 사고 등 전통적 정보 평가 원칙이야말로 AI의 함정을 간파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서교사는 정보 리터러시 전문가로서 AI를 새로운 ‘정보원’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AI 리터러시 교육을 필연적으로 주도해야만 한다. 지금까지 많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정보 탐색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지만, 이제 그 역할은 생성형 AI에게 어떻게 질문하고, 교묘한 거짓에 속지 않으며, AI의 답변을 주체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학생이 AI의 편리성에 안주하는 소비자가 아닌, AI를 지적으로 활용하여 자신만의 지식을 재구성하는 주체적인 생산자가 되도록 돕는 것. 그것이 바로 AI 시대 사서교사에게 주어진 새로운 사명이다. AI 활용 능력이 미래 사회의 필수 역량이 된 지금, 학교 도서관이 책의 창고를 넘어 학생들이 미래를 항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 역량을 기르는 ‘교육 혁신의 허브’로 자리매김해야 할 결정적 순간이다. 김은현= 대학원에서 인공지능 융합 교육을 전공하며 이론적 깊이를 더하는 한편, 리터러시 역량과 AI 기술을 접목하는 교육 실천에 몰두하고 있다. 현장 연구를 통해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교육 모델을 모색하고, AI·에듀테크 선도교사, 학교 디지털 교육 혁신을 위한 학교 컨설팅 코디네이터 등 활발한 활동으로 동료 교사들과 그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데 힘쓴다. 학교도서관이 기술과 인문학이 만나 새로운 배움이 일어나는 혁신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더에듀 |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DT)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AIDT에 교과서 지위를 부여한 전 정부 정책을 현 정부가 법적으로 박탈하려는 이번 입법은 단순한 형식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교사와 학생의 권한, 공교육의 공공성과 형평성, 나아가 교육격차와 사교육 확산에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전 분야의 AI 기반 전환을 국가 전략으로 내세우며 대통령실에 ‘AI 미래기획수석’까지 신설한 이재명 정부가, 정작 교육에서의 AI 기반 제도화는 입법으로 차단하려 한다는 점에서 정책 간 자가당착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OECD의 공공적 디지털 교육 권고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결국 이번 개정안은 교육 혁신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결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AIDT의 법정 교과서 지위 부여에 반대하는 입장은 주로 교과서의 공공성과 표준성 유지 관점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AI의 알고리즘 기반 개별화 학습이 교육의 표준화와 공정성을 해칠 수 있고, AIDT의 유동적 콘텐츠 특성상 검정·인정 체계에 부합하지 않으며 평가의 공정성도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민간 기업 중심의 AIDT 도입은 교육의 상업화와 공교육의 중립성 훼손을 초래할 수 있으며, 교사의 수업 주도권 약화와 인간 중심 교육의 붕괴를 우려한다. 따라서 AIDT는 보조 자료로만 한정되어야 하며, 법정 교과서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몇 가지 중대한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형식주의적 법제화와 교육 자원의 법적 사각지대 고착화다. 개정안은 AIDT를 법정 ‘교과서’에서 제외하고 ‘교육자료’로 분류해 헌법상 무상교육의 보호 대상에서 사실상 배제하고 있다. 이는 교육자료의 실질적 기능보다 외형 형식을 기준으로 위계를 설정하고, 서책형 교과서만을 공공재로 고정하는 형식주의적 법제화를 고착시키는 결과이다. 그 결과, AIDT는 선택형 보조도구로 전락하고, 학교장의 재량이나 가정의 경제력에 따라 접근 격차가 벌어지며, 교사와 학생의 교수·학습 권한도 형식 논리로 제약된다. 이는 무상교육 원칙과 공교육의 형평성을 훼손하는 구조적 문제이며, 법 개념의 혼란과 수단의 목적화라는 입법 오류로도 이어진다. OECD 다수 국가는 디지털 콘텐츠와 서책형 교과서를 구분 없이 통합 관리하고 있으나, 개정안은 오히려 법 조문상 굳이 ‘교육자료’라는 새로운 항목을 신설하면서까지 교과서 체계 내에서 서책형과 디지털 자료를 법적으로 분리하고, 그 위계를 고정하는 분리 입법을 시도하고 있다. 결국 AIDT의 법적 지위 박탈은 단순한 형식 논쟁이 아니라, 디지털 교육 수단에 대한 제도적 차별과 배제를 통해 헌법적 권리인 무상교육, 공공성, 교수·학습 주체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위헌적 가능성이 있는 중대한 입법 행위로,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특히 디지털 교육자료 전반이 법제의 보호망 밖으로 밀려나는 법적 사각지대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은 더 크다. 둘째, 디지털 기반 교육 불평등의 구조적 제도화다. AIDT를 법정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분류하려는 이번 개정안은, 디지털 교육 접근의 공공성을 제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학습 기회의 불평등을 구조화할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 기기와 콘텐츠 활용에 있어 가계 소득 수준에 따른 격차가 여전한 상황에서, AIDT의 무상 제공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고소득층만이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선택형 학습자원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는 공교육 내 새로운 교육 격차를 초래하며, 교육의 공공성과 형평성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후퇴시키는 입법이다. 교육과정이라는 상위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과서와 교육자료 모두가 국가에 의해 균등하게 제공되어야 하며, 그 활용 여부는 교사의 전문적 판단에 달려 있다. 그러나 개정안은 AIDT의 무상 제공 근거를 삭제하고, 학교 예산이나 학부모 부담으로 전가하는 구조를 취함으로써, 디지털 수업 자원의 평등한 접근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학습자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교육 접근 격차가 고착되고, 공교육 내에서도 디지털 학습의 형평성이 무너지는 구조가 형성된다. 이는 단순한 수업 자원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자료의 형식에 따른 정책 결정이 학습 기회의 불평등으로 직결되는 중대한 구조적 문제다. 무엇보다 이러한 입법은 ‘서민과 약자를 대변하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 철학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교육이 국가가 책임져야 할 핵심 공공재라면, 디지털 시대 교육에서 AIDT와 같은 기술 기반 콘텐츠야말로 무상 제공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형식’을 근거로 AIDT를 공공재에서 배제하려는 이번 개정안은 교육정책의 방향성과 실행 간 괴리를 드러내며, AI를 국가 전략으로 강조하면서도 제도화를 가로막는 모순된 입법으로, 디지털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셋째, 교수·학습 주체의 선택권을 형식 논리로 제한하는 퇴행적 입법 구조다. 이번 개정안은 디지털 시대의 실질적 교육 주체인 교사와 학생의 자료 선택권을 형식 기준으로 법제화하여, 교육의 자율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훼손하고 있다. AIDT를 교과서로 인정하지 않는 조치는, 디지털 자료 활용을 학교 재량이나 가정의 책임으로 전가함으로써, 교사의 전문성과 학생의 학습권을 제도적으로 축소하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법적 지위 박탈 → 예산 배정 차단 → 현장 활용 제약’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공교육 내 디지털 콘텐츠 접근을 사실상 봉쇄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교과서는 본질적으로 외형이 아닌 기능으로 정의되어야 하며, 교육과정을 충실히 구현할 수 있다면 형태를 불문하고 동등하게 인정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정안은 자료 형식을 기준으로 위계를 고정하고, 교사의 수업 설계와 학생의 선택권을 법으로 제약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는 “디지털 교육 확대”라는 정책 방향과 “서책형만 무상 지급”이라는 입법 내용이 충돌하는 이중적 구조로, 디지털 기반 교육의 공적 가치를 훼손하는 시대착오적 입법이라 평가할 수밖에 없다. 넷째, 공교육 상업화 우려는 오히려 ‘법적 교과서화’를 통해 대응해야 한다. AIDT를 교과서로 인정할 경우, 민간 기업 콘텐츠의 시장화가 우려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원인을 방치한채 결과만 차단하려는 비합리적 대응이다. 오히려 공교육 내 민간 콘텐츠의 상업화를 막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을 국가 기준에 따라 ‘법정 교과서’로 명시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국가가 품질 기준과 공급체계를 갖추고 디지털 교과서를 무상 제공하면, 공공 통제를 통해 접근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 실제로 핀란드, 덴마크, 에스토니아 등 디지털 교육 선진국은 민간 개발 콘텐츠라도 국가 품질 기준을 통과하면 법정 교과서로 인정하고, 공공 플랫폼을 통해 무상 제공한다. 이는 공공성과 민간 혁신을 조화롭게 결합한 검증된 정책 모델이다. UNESCO와 OECD 역시 디지털 교육자료는 공공재이자 인프라로 보아야 하며, 국가는 무상 제공과 형평성을 보장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한다. AIDT의 법적 교과서화는 바로 이런 기준에 부합하는 정책으로, 상업화를 막고 공교육의 공공성과 형평성을 확보하는 유일한 제도적 장치다. 민간 참여와 상업화 우려를 이유로 법제 통제를 회피하는 입법은 공교육 내부에서 민간 시장 논리를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다섯째, “서책형만이 학습친화적이다”는 교육적 근거 없는 신화가 정책 결정에 작용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종이 교과서에 대한 익숙함, 정서적 안정감, 전통적 교육문화에 대한 인식을 근거로 서책형만을 법정 교과서로 규정하고, 디지털 교과서는 ‘교육자료’로 격하하였다. 이는 동일한 교육과정 실현 수단임에도 외형 형식을 기준으로 위계를 설정한 것으로, 교수·학습 효과에 대한 실증적 검토 없이 정책이 형식에 종속된 사례다. 특히 교사와 학생의 학습 스타일, 과목 특성, 디지털 활용 역량 등은 고려되지 않은 채, 서책형만을 ‘공교육의 기본값(default)’으로 고정하고 다른 선택지를 제도적으로 배제한 것은, 주관적 정서에 근거한 편향적 입법의 대표적 사례다. 형식을 ‘기본값’으로 고정하는 입법은, 다른 교육 수단을 비정상적 예외로 간주하게 하여, 교육자료에 대한 전문적 판단 권한을 정치적 기호와 모호한 정서에 종속시키고, 교육의 자율성과 중립성을 훼손하는 구조를 낳는다. 결과적으로 이는 디지털 전환 흐름에 역행하고, 교육과정 중심 수업을 다시 교과서 중심의 일방 전달 구조로 되돌리는 퇴행적 조치다. 학습은 도구의 형식이나 익숙함에 의해 자동으로 발생하지 않으며, 교과서든 교육자료든, 디지털이든 서책이든 모두 교육과정 실현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진정한 학습은 교사와 학생의 해석과 실천을 통해 완성되며, 자료의 법적 지위 역시 정서적 안정감이 아니라 교육과정 구현 기여도를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개정안은 ‘도서’라는 외형 형식에 근거해 법적 위계를 설정함으로써, 교육과정과 학습의 실제 작동 원리에 대한 비전문가적 인식을 드러낸다. 수업은 교사의 전문성과 맥락적 설계 속에서 실현되는 과정임에도, 외형적 기준에 따라 법적 지위를 획일화한 이번 입법은 교육의 본질을 도구의 형식으로 환원한 형식주의 오류라 할 수 있다. AI 시대 학습권 보장을 위한 입법은 ‘지위 박탈’이 아니라, 공교육 체계의 재설계여야 한다. AIDT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 교육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핵심 인프라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의 서책형 교과서가 공교육의 무상성과 형평성을 대표했다면, 오늘날의 AIDT는 그 역할을 이어받을 디지털 기반의 교육 플랫폼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문제의 본질인 콘텐츠 품질과 정책 소통의 오류는 외면한 채, 형식만을 기준으로 디지털 교과서를 법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이는 실질적인 문제 개선보다는 법적 지위 ‘제거’에 초점을 둔 입법으로, 교육 혁신이 아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선택이었다는 비판과 맞닿아 있다. 문제의 원인에는 손대지 않은 채, 정치적 기호에 편승한 소극적 입법으로 무늬만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한 책임 회피성 입법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공교육의 미래를 위한 제도 개선이 아니라 형식적 후퇴를 선택한 이 개정안은 교육정책을 정파적 이해관계로 판단한 결과라는 의심을 낳기에 충분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번 개정안이 헌법 제31조 제6항에 근거해 “교과서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조항을 명분으로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의 공공성, 자율성, 학습권을 침해하는 역설적 입법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형식적 법률주의에 집착한 나머지, 교육의 실질적 기본권을 훼손하는 본말전도적 입법이며, 입법의 정당성 자체를 흔드는 자기모순적 구조에 다름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지 명목상의 법 제정이 아니라, 헌법적 가치에 근거한 실질적 입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개정안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AIDT의 법적 지위 박탈이 아니라, 오히려 다음과 같은 역방향 입법이다. ▲AIDT를 ‘공공 교과용 자료’로 법적으로 명확히 정의하고 ▲국가 주도의 통합 플랫폼 운영체계를 구축하며 ▲전면 무상 제공을 명문화하고 ▲콘텐츠의 품질 및 안전성을 법적으로 보장하며 ▲교사와 학생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법 방향은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서, 공교육의 공공성, 형평성, 그리고 국가 책임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제도 재구조화다. AI를 국가 전략으로 선언하면서도 교육제도에는 여전히 아날로그 법제를 유지하는 이중적 태도는, 정책과 법의 철학적 불일치라는 모순으로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이번 개정안은 단순한 교과서 형식의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전환기 공교육의 철학과 국가의 교육 책임을 어떻게 새롭게 정의하고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시험대다. 국회가 해야 할 일은 기술과 교육을 갈라치며 교육자료의 형식을 근거로 공공 자원의 법적 지위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법적 정의와 예산 구조를 재정립하는 일이다. 교육에서 형식은 목적이 아니다. 학생의 배움이라는 본질을 실현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며, 모든 제도와 정책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AI 디지털 교과서는 ‘단순한 교육자료’가 아닌, 교육과정을 구현하고 학습권을 실현하는 법적 기반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디지털 시대 공교육의 정의(正義)를 실현하는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