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오후 3시까지 학교에 머물게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맞벌이 가정의 돌봄 공백을 줄이기 위해 정규수업 시간을 늘리는 방식이다. 맞벌이 부모들이 겪는 어려움은 분명하다.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일찍 하교한 뒤 어디에서, 누구와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는 오래된 사회적 문제다. 그러나 돌봄의 공백이 있다는 사실과 정규수업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결론은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돌봄의 공백을 수업으로 메워야 하는가 초등 저학년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학교에 오래 머무는 시간이 아니다. 수업이 끝난 뒤에는 놀고, 쉬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이런 시간을 정규수업으로 채우는 것이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일인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돌봄이 부족하다면 국가가 책임지고 돌봄체계를 확대해야 한다. 국가는 재정과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어 지역 여건에 맞는 돌봄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돌봄 국가책임제가 아이들을 학교에 더 오래 머물게 하는 정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과 돌봄은 모두 중요하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수업시간을 늘리려면 왜 그만큼의 수업이 필요한지 교육적인 이유가 먼저
더에듀 | 대입개혁을 이야기할 때마다 경쟁을 줄여야 한다는 말이 반복된다. 등급을 줄이고,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꾸고, 한 번의 시험이 갖는 영향력을 낮추고, 여러 자료를 통해 학생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는 주장도 상당 부분 이 문제의식과 연결돼 있다. 대입개혁의 목표는 정말 경쟁을 줄이는 것인가. 원하는 사람보다 자리가 적으면 경쟁은 생긴다. 이것은 한국 대입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다. 선호하는 대학이나 학과의 정원이 지원자보다 적다면 누군가는 합격하고 누군가는 탈락해야 한다.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 한 일정한 변별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대입개혁에서 다뤄야 할 것은 경쟁의 존재 자체라기보다 어떤 경쟁과 변별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과 대가를 누가 감당할 것인가에 더 가깝다. 경쟁 완화는 목표인가, 수단인가 경쟁이 과열돼 학생의 학습을 왜곡하고 과도한 사교육을 유발한다면 완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경쟁 완화는 대입의 최종목표라기보다 더 공정하고 예측 가능하며 학교교육을 덜 훼손하는 선발을 만들기 위해 필요할 경우 선택하는 조건부 정책목표에 가깝다. 미래가 왔다고 선발의 희소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래교육의 변화가 곧
더에듀 | 교사가 시험문제를 팔아 돈을 챙겼다. 그것도 학생을 가르치고 평가해야 할 현직 교사들이 사교육업체 등에 문항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았다. 국회 교육위원회 김문수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사교육업체 등에 문항을 판매해 지난해부터 올 3월까지 징계를 받은 교원은 126명이다. 이 가운데 18명은 해임·강등·정직 등 중징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26명. 전체 교원 규모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한 줌’도 안 된다. 절대다수 교사는 오늘도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이들의 일탈을 교직사회 전체의 도덕성 문제로 확대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숫자가 작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도 아니다. 교사가 파는 건 단순한 ‘문제 몇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험문제에는 학생의 성취를 평가하고 진학과 미래를 가르는 교육의 공적 권한이 담겨 있다. 특히 사교육업체가 돈을 주고 현직 교사의 문항을 사들이는 시장이 형성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돈을 낼 수 있는 사교육시장과 학교 평가를 둘러싼 공정성 사이에 의심의 틈이 생긴다. 특히, 학생에게 정직하라고 가르치는 사람이 자신의 전문성과 공적 지위를 이용해 문제를 팔고 돈을 챙겼다
더에듀 윤철순 편집국장 | 초등학생의 돌봄 공백을 줄여야 한다. 그렇다면 학교 수업시간을 늘리면 해결되는 문제인가. 최근 논란이 된 ‘초등 3시 하교’가 던진 질문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확정된 정책이 아니라 의견수렴 단계라고 밝혔다. 논의 자체는 필요하다. 문제는 출발점이다. 맞벌이 가정 등의 돌봄 공백과 초등 저학년의 짧은 정규 교육시간은 겹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문제는 아니다. 돌봄이 부족하다면 돌봄을 늘리는 게 먼저 떠오르는 해법이다. 교육시간이 부족하다면 왜 부족한지, 무엇을 더 가르쳐야 하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두 문제를 하나로 묶어 모든 학생의 정규 교육시간을 늘리려 한다면 설명이 필요하다. 수업을 늘리는 게 돌봄 공백을 해결하기 위한 것인지, 교육적으로 지금보다 긴 수업이 필요하기 때문인지부터 분명해야 한다. 학교폭력도 비슷하다. 폭력에 대한 책임을 엄정하게 묻는 것과 학생 사이의 갈등을 교육적으로 풀어내는 건 다른 문제다. 처벌이 약한 것을 원인으로 보면 해법은 처벌 강화로 향한다. 관계를 조정하고 회복할 장치가 부족한 것도 원인이라면 답은 달라진다. 교원의 아동학대 신고 문제도 마찬가지다. 신고 자체를 막는 게 해법일 순 없다. 실제 학대
더에듀 | 숙제를 하다가 막히면 요즘 학생들은 어떻게 할까. 예전에는 참고서를 뒤지거나 친구에게 물었다. 지금은 스마트폰을 꺼내 AI에게 묻는다. 몇 초 만에 그럴듯한 답이 나온다. 편리하다. 그런데 그 편리함 뒤에 무언가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은 없는가. 앞선 칼럼에서 필자는 이를 ‘인지적 항복(Cognitive Surrender)’이라 불렀다. AI가 내놓은 답을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며,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통째로 넘겨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그렇다면 학교 교실은 AI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교실에서 이미 지켜야 하는 AI 활용의 3대 기준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은 이미 학교 현장에 적용되는 AI 활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두고 있다. 그 취지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AI는 정답을 대신 써주는 ‘자판기’가 아니라, 학생의 탐구를 돕는 ‘보조적 도구’라는 것이다. 이 가이드라인이 담고 있는 세 가지 방향은 결국 학생의 사고력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에 가깝다. 하나는 결과물이 아니라 생각의 과정을 남기는 일이다. AI가 써준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제출하는 것은 표절이나 부정행위가 될 수 있으며, 어떤 질문을 던졌고 AI의 답변 중 무엇을 취하고
더에듀 윤철순 편집국장 | 교육정책은 확정되기 전부터 움직인다. 문제는 ‘논의’가 어느 순간 ‘정책’이 되고, ‘추진’이 ‘확정’처럼 전달된다는 데 있다. 이번 주 교육계가 그랬다. 수능 서·논술형 도입 논의가 이어졌고, 초등 저학년의 이른바 ‘3시 하교’가 다시 등장했다. 당정은 지방국립대 신입생 등록금 전액 지원을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세 사안의 진행 단계는 모두 다르다. 수능 서·논술형은 아직 확정된 제도가 아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미래 대입제도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3시 하교’ 역시 정책포럼을 앞둔 논의 단계다. [더에듀]가 국교위에 직접 확인했을 때도 답은 분명했다. “확정된 건 전혀 없다.” 그런데 정책은 한번 제목이 붙으면 생명력을 얻는다. ‘논의’는 ‘검토’가 되고, ‘검토’는 ‘추진’으로 읽힌다. 몇 단계를 건너뛰면 어느새 시행을 앞둔 정책이 된다. 교육당국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책의 가능성을 먼저 꺼냈다면 현재 어디까지 왔는지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무엇을 검토하는지뿐 아니라 무엇이 결정되지 않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정책의 속도만큼 설명의 속도도 빨라야 한다. 언론의 책임은 더 크다. 새로운 정책의
21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 연동 방식을 폐지하는 구체적인 개편안이 발표됐다. 54년을 이어온 제도를 뜯어고친다니 교육계가 발끈할 만하다. 학부모와 시민단체가 “교육재정을 지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교육은 숫자가 아니고, 재정의 안정성은 교육의 질을 떠받치는 중요한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논쟁을 ‘교육재정 사수’와 ‘재정권 빼앗기’의 프레임에만 가둬도 되는 걸까.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내국세의 20.79%를 자동 배분하는 구조다. 이 제도는 교육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학생이 늘고 학교를 짓고 교원을 확충해야 했던 시대에는 특히 그랬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학령인구는 급감하고 있다. 학교는 남는데 학생이 사라지는 지역이 늘고 있다. 동시에 교육의 모습은 오히려 복잡해졌다. AI와 디지털 전환, 기초학력, 특수교육, 다문화교육, 지역소멸, 대학 경쟁력, 평생교육, 영유아 교육, 국가 인재 유출까지 교육의 경계는 이미 학교 담장을 넘어섰다. 그런데도 1970년대의 학생을 위해 만들어진 ‘재정 공식’을 2026년에도 그대로 붙들고 있는 게 과연 ‘교육을 지키는 일’일까. 더구나 정부가 내놓은
더에듀 | 고교 내신은 절대평가로 바뀌고, 수능에는 서·논술형 문항이 들어왔다고 가정해 보자. 학생들은 지금보다 학교수업에 더 집중하게 될까. 점수 경쟁에서 벗어나 질문하고 토론하며 깊이 있게 배우게 될까. 국가교육위원회 대학입학제도 특별위원회에서는 수능 서·논술형 도입과 내신·수능 평가체제 개편 등 대입과 관련한 다양한 의제와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아직 확정된 제도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물어야 한다. 이 제도들이 실제로 시행된다면 학생과 학부모는 어떻게 행동하고, 고등학교의 교육과정과 수업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수업혁신이 아니라 대학입학제도의 문제다 여기서 논의의 좌표부터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를 다루는 기구의 이름은 ‘대학입학제도 특별위원회’다. 따라서 핵심은 서·논술형 평가가 학교수업을 얼마나 잘 바꾸는가가 아니라, 그것을 대학입학의 선발도구로 사용할 때 어떤 효과와 문제가 발생하는가에 있어야 한다. 대입특위가 답해야 할 것도 분명하다. 서·논술형 평가가 대학입학 선발도구로서 타당한가, 공정하고 신뢰롭게 운영될 수 있는가, 필요한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제도가 학생의 행동과 학교교육의 운영을 어떻게 바꾸는
더에듀 | 최근 국가교육위원회의 대학입학제도 개혁 논의에서는 AI 시대의 변화와 미래역량을 이유로 평가방식의 전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서·논술형 평가 확대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논의된다. AI 시대 교육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사고력, 비판적 사고, 판단이다. 생성형 AI가 몇 초 만에 그럴듯한 답을 만들어내는 시대이니,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답을 하나 더 만들어내는 능력만이 아니라 무엇이 사실인지, 어떤 근거가 타당한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상한 질문 하나가 생긴다. AI 시대에는 판단이 중요하다면서, 왜 여러 답 가운데 가장 타당한 답을 비교하고 판단해 고르게 하는 객관식 평가는 낡은 평가라고 하는가. 판단이 미래역량이라면 판단을 요구하는 평가도 미래형일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고른다’는 것은 정말 사고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AI가 같은 질문에 다섯 개의 답을 내놓았다고 해보자. 하나는 사실관계는 맞지만 중요한 조건을 빠뜨렸다. 하나는 표현은 그럴듯하지만 인과관계가 틀렸다. 하나는 일부 자료만 선택해 결론을 왜곡했다. 하나는 근거는 많지만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선생님, 지구가 조울증에 걸렸나요?” 몇 해 전 고교생과의 대화에서 한 학생이 던진 이 한마디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이상기후의 본질을 너무나 직관적이고 정곡을 찌르게 표현해 주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뭄으로 땅이 바짝 갈라져 기우제라도 지내야 할 판이었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집중호우와 폭우가 쏟아져 도시가 잠겨버렸다. 중간이라곤 없는 이 극단적인 ‘날씨 널뛰기’는 단연 지구온난화가 초래한 가장 지독한 후유증이라 할 수 있다. 대기가 뜨거워지면서 수증기를 스펀지처럼 대량으로 머금었다가 메마른 땅 위에 한꺼번에 쏟아붓고는 다시 혹독한 건조함을 부르는 열역학적 심술을 부리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오늘의 학교 현장을 둘러보면 어떠한가?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터전인 지구가 열병을 앓고 있는데,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교과서 속 “에어컨을 적정 온도로 틀자”, “음식물을 남기지 말자” 수준의 한가로운 도덕관념에 머물러 있다. 지구가 당장 숨이 넘어가는 재난 상황인데, 아이들에게 시험 문제용으로 “지구온난화의 원인 3가지를 쓰시오”라는 지식 암기식 교육을 시키고 있으니, 이 얼마나 웃지 못할 코미디인가!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