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우리 세계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 그리고 남미 사태 등 인류는 전쟁과 무력이라는 일방적인 방법, 힘의 논리로만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인류 문명이 잠시 후퇴는 있을 수 있을지언정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하고 성장한다는 진보주의 역사관에 나름대로 위로와 기대를 걸고자 한다.
현재 지구촌의 모든 비극과 불행은 다 한 순간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일종의 자기최면이 필요하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듯이 인류는 다시 이성을 되찾고 연대와 협력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할 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위기 속에서 또 다른 기회가 잉태하는 소위 전화위복이란 이름이 내일은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르듯 눈부시게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다.
과거 애플의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이것을 왜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단순한 경영 철학을 넘어 전화위복을 지향하고 혁신의 본질을 꿰뚫는 것이었음을 역사는 증거하고 있다.
2026년 현재, 대한민국 교육계는 AI 디지털 교과서와 에듀테크 등의 파고 속에 서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왜 가르치려고 하는가?”
이 질문은 국가백년대계(國家百年大計)라는 거창한 구호 아래, 교육이 가야 할 길은 기술의 속도를 쫓아가는 ‘기능적 확장’이 아니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불확실한 바다 위에서 아이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북극성’을 세우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의 교육 정책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지식 전달의 차원을 넘어, ‘어떤 인간으로 살게 할 것인가’라는 존재론적 철학으로 회귀해야 한다.
OECD의 ‘교육 2030’이라는 보고서에서는 ‘학생 주도성(Student Agency)’에 초점을 맞추어 OECD가 미래 교육의 핵심으로 ‘변혁적 역량’을 사람으로 대체하도록 제시하고 있다. 인간이 단순히 정보를 수용하는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가치를 창출하며 책임감을 갖게 하는 능력이다.
이제 우리의 교육 정책 입안자들은 표준화된 정답을 요구하는 낡은 평가 시스템을 과감히 해체해야 한다. 대신, 학생이 자신의 학습 경로를 스스로 설계하고 실패를 자산으로 삼을 수 있는 ‘심리적 안전망’과 ‘유연한 교육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교육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과정이랄 수 있다. 아무리 화려한 에듀테크도 아이들의 고달픈 삶을 보듬지 못한다면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예컨대, 생존의 철학, 밥상머리 교육에서 볼 때,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식이천(食以天)’의 옛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아침을 거르는 청소년이 40%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교육은 영양 있는 K-푸드를 통해 아이들 즉, 인간의 신체적·정서적 근육을 키워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건강한 신체는 불확실성을 견뎌낼 가장 강력한 자본이기 때문이다.
일선 학교의 교사는 이제 지식의 독점적 공급자라는 낡은 옷을 과감하게 벗어야 한다. AI가 지식의 인출을 담당하는 시대, 교사의 진정한 가치는 ‘본질적 질문’과 ‘인간적 연결’에 있다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거울이 아닌 등불이 되는 교사가 요구된다. 교사는 아이들의 현재 모습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에 머물지 않고, 아이들이 가야 할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교사는 미국의 미네르바 대학이나 핀란드의 현상 기반 학습(Phenomenon-based learning)처럼, 실제 세상의 복잡한 문제를 교실로 가져와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는 ‘학습 촉진자(Learning Facilitator)’로서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는 학교에서 교육의 전문가인 교사만이 할 수 있는 전문성이며 따라서 교육의 질은 교사에 의해 결정되는 근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의 불확실성은 두려움의 대상만이 아니다. 오히려 정해진 답이 없기에 우리가 써 내려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교육이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기술에 휘둘리는 수동적 적응이 아니라, 인간 존엄성을 바탕으로 기술을 다스리는 ‘주체적 인문주의’의 회복이어야 한다.
정책 입안자는 현장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토양’을 만들고, 교사는 아이들이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점차 큰 것으로 차근차근 고유한 빛을 내도록 만드는 데 중심을 잡아주는 인간 ‘북극성’이 되어야 한다.
다시 “우리는 왜 교육하는가?”로 돌아가, “아이들이 어떤 거센 파도 앞에서도 자신만의 키를 잡고 항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라고 당당히 답할 수 있을 때, 우리 교육은 비로소 국가백년대계의 위엄을 되찾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는 작은 아침밥 한 그릇의 온기를 놓치지 않도록 안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우주적 질문으로 나아가는 교육의 대장정, 그 위대한 여정에 북극성과 같은 존재로 우뚝 중심에 서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