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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로 간 어린이 철학] '성장'이란 무엇일까

공립 대안중학교, 울산고운중학교의 철학수업 이야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더에듀 | 공교육은 입시와 경쟁, 시험, 서열 등으로 아이들의 생각과 삶을 단단하게 고정해 놓고, 삶 자체를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라는 정해진 트랙 위에서 움직이게끔 한다. 이 트랙을 성실하게 달리는 사람에겐 모범 학생이라는 훈장을 준다. 그런데, 울산 최초의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넘어 저항적이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철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과 삶에 대한 사색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에 <더에듀>는 아이들이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데 도움을 주는 박상욱 철학교사의 수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교육이 경쟁과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더에듀 | 솔직히 나는 별생각 없이 교사가 되기로 했다. 교육에 대한 어떤 신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특별히 좋아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학교를 싫어했다고 보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남중, 남고를 다니면서 일상화된 폭력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학교는 내가 하루빨리 벗어나야 할 공간이었을 뿐이다. 그러니 요즘 아이들이 왜 선생님이 되었냐고 물어올 때면,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러던 중 교육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계기가 생겼다. 대학교 강의 시간에 본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 때문이었다. 나는 키팅 선생님을 보며 니체가 말한 초인을 떠올렸다. 공고하게 굳어진 전통, 관습, 규율이라는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려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에서 묘한 감동을 느꼈다.

 

 

미래, 진리, 이상, 하늘, 이념에 국한되지 말고 현재, 삶, 대지, 육체를 사랑하라는 그의 말과 태도는 흡사 니체 그 자체였다. 특히 자신의 시를 부끄럽게 여기던 한 학생의 내면에 잠든 야만성과 순수성을 이끌어내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철학자들은 이성이라는 단단한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 사랑과 예술을 택했다. 이 영화에도 그런 두 학생이 등장한다. 한 학생은 교칙으로 엄격히 금지된 연애에 뛰어들고, 또 다른 학생은 아버지가 강력히 반대하던 연극에 도전한다.

 

그에게 아버지는 일종의 법, 이성, 초자아를 상징하는 존재이다. 그는 아버지에게 끝까지 저항하지만,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이 일로 키팅 선생님은 모든 책임을 지고 학교를 떠난다. 그가 떠나는 순간, 아이들은 책상 위에 올라서서 외친다.

 

“오 캡틴, 나의 캡틴.”

 

과연 키팅 선생님의 혁명은 성공한 것일까? 오늘 수업 시간에는 아이들과 함께 이 영화를 봤다. 아이들은 이 영화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2시간에 걸쳐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아이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주윤: 굳이 자살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승우: 교과서를 찢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이었을까?

수진: 옳은 선택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지성: 성장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유진: 꼭 가르쳐야만 하는 지식도 있지 않을까?

 

 

칠판에 하나씩 적히는 질문들을 보며 모두 토론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찼다. 특히 승우가 제안한 질문에 마음이 끌렸다. 교과서를 찢는 장면은 키팅 선생님의 교육관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기존의 이론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사유하는 사색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지성이의 질문에 더 관심을 보였다.
 

지성: 우리 학교는 끊임없이 성장을 이야기하잖아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키팅 선생님은 아이들의 성장을 바라셨을까요? 키팅 선생님이 생각하는 성장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교장 선생님이 생각한 성장은 무엇이었을까요? 교육의 목적이 성장이라면, 성장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학교의 철학과 절묘하게 맞닿은 질문이었다. 지성이의 말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오늘은 지성이의 질문으로 토론을 시작했다.

 

교사: 성장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예성: 키 크는 거요.

주윤: 그게 뭐야?

교사: 아니, 그것도 충분히 성장이라고 할 수 있어. 육체적 성장이겠지.

수진: 육체적 성장 말고 또 어떤 성장이 있을까요?

주윤: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거 아닐까요?

교사: 그게 어떤 의미일까?

주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민성: 정신적으로 성장한다는 건 사고가 깊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유진: 사고가 깊어진다고?

민성: 초등학생이랑 비교하면 중학생이 훨씬 생각이 깊잖아요. 그러면 성장한 거죠.

주윤: 초등학생보다 네가 더 생각이 깊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데?

 

한 개념은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의미가 있다. 철학적 개념은 더욱 그러하다. 철학은 수천 년에 걸친 개념의 생성과 투쟁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성장이라는 개념을 교육적 맥락에서 정립한 인물은 존 듀이다. 그에게 성장은 곧 교육 그 자체다. 이때의 성장은 단순한 육체적 성장이 아니다. 육체와 정신의 이분법을 넘어선 통합적 성장이다.

 

 

아이들은 먼저 육체적 성장과 정신적 성장으로 나누어 논의를 시작했다. 추상적 개념을 토론할 때 세부적으로 구분해 접근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다만 나는 그 이분법의 경계를 넘어, 성장 그 자체의 의미에 좀 더 집중하고 싶었다.

 

교사: 육체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이 단순히 키가 크는 것만을 의미할까?

승우: 힘도 강해져야 해요.

유진: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지기도 하고요.

교사: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유진: 높은 곳에 있는 물건도 내릴 수 있고, 계단도 더 빨리 올라갈 수 있어요.

교사: 그럼 정신적으로 성장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 것 같아?

주윤: 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 건가요?

예성: 그렇지. 어려운 문제도 풀 수 있고, 어려운 책도 읽을 수 있게 되는 거야.

주윤: 맞네. 그럼 초등학생 때보다 성장한 거네.

민성: 그럼 영화에서 키팅 선생님은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수업을 한 건 아니겠네요?

교사: 왜 그렇게 생각해?

준이: 어려운 문제를 풀거나 교과서를 가르치지 않았잖아요. 오히려 교과서를 찢으라고 하지 않았나요?

수진: 맞아. 찢으라고 했어.

 

듀이는 성장을 가능성의 확장으로 보았다. 인간이 가진 가소성이 성장의 동력인 것이다. 아이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할 수 없던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곧 성장이라고 했다. 이토록 단순하면서도 아름답게 성장의 의미를 포착해 내다니 놀라웠다.

 

그때 예성이는 어려운 문제, 어려운 책을 예로 들었다. 그러자 민성이가 반론을 제기했다. 예성이는 성장의 의미를 지식으로 한정 지은 셈이었다. 그 논리에 따르면 키팅 선생님의 수업은 분명 성장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키팅 선생님은 교과서를 찢으라고 했고, 더 어려운 지식을 가르치지도, 더 어려운 문제를 풀게 하지도 않았으니까 말이다.

 

아름: 하지만 분명 키팅 선생님은 아이들의 성장을 바랐어. 그러니까 아이들이 키팅 선생님을 존경하게 된 거지.

교사: 아름이는 키팅 선생님이 바랐던 성장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아름: 아이들이 각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거 아닐까요?

준이: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거요.

주윤: 맞아. 그래서 아이들이 자유로운 사색가가 되기를 원한다고 했잖아. 자유롭게 사색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가는 거지.

민성: 근데 그게 성장이랑 무슨 관계가 있을까?

승우: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이나 직장에 가는 것을 성장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

주윤: 그렇다면 진짜 성장이란 무엇일까요?

 

 

아이들의 토론은 점점 문제의 본질로 파고들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성장은 외모, 재력, 명예 등으로 평가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영화 속 교장 선생님의 입장은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아이들이 현재의 욕망과 충동을 인내하며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성장의 조건이 충족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장 선생님 역시 나름대로 아이들의 성장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키팅 선생님이 생각하는 성장은 달랐을 것이다. 그는 성장을 각자의 개성을 인식하고 확장해 나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성장의 보편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마다 서로 다른 성장의 방향을 가진다.

 

우리 아이들은 성장에 대한 두 갈림길 앞에 섰다. 토론은 점점 막바지를 향해 갔다.

 

준이: 저는 성장이란 각자의 방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키팅 선생님이 옳다고 봐요. 제가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주윤: 그럼 우리가 늘 부딪히는 문제로 또 돌아온 것 같아요. 우리가 바라는 것이 꼭 옳은 방향은 아니잖아요.

승우: 옳은 방향이라는 건 없어요. 그건 누구도 강요할 수 없잖아요.

수진: 아냐. 그래도 최소한의 기준은 있어야 해. 강도나 깡패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 그게 성장은 아니잖아.

교사: 올바른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구나.

승우: 그 방향성은 누가 정하는 거야?

수진: 누가 정하는 게 아냐. 그냥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이 있을 뿐이야.

민성: 그럼 교장 선생님도 마찬가지 아냐? 사회적으로 좋은 학벌과 직장을 원하잖아. 그리고 아들이 연극을 하겠다는 걸 끝까지 막아선 아버지도 잘못이 없는 거지. 하지만 그 아이는 결국 자살했잖아.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는 없어.

수진: 내 말은 강요하자는 게 아냐. 최소한의 기준은 있어야 한다는 거지.

 

토론이 점점 열기를 더해가던 중에 종이 울렸다. 순식간에 교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조금은 쉼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마침 종소리가 나를 도와주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철학적 토론은 다양한 문제를 다루지만, 그 이면에 있는 근본적인 쟁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물질과 정신, 불변과 변화, 절대와 상대, 선과 악, 인간과 자연, 있음과 없음 등과 같은 철학적 난제가 항상 부딪히는 지점들이다.

 

오늘 토론에서도 아이들은 결국 ‘아포리아’에 이르게 하는 질문을 만났다. 우리에게 보편적인 기준이 있을까? 성장에도 보편적인 기준이 필요할까? 아니면 사람마다 상대적이어도 괜찮을까? 참 난해하면서도 매력적인 질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철학적, 개념적 절벽 앞에서 꼭 정답, 진리를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그것은 그냥 우리가 서 있는 장소일 뿐이다. 그 곳에서 아이들은 자유롭게 노닌다. 이 지점에서 철학과 놀이는 구분되지 않는다. 실러가 말한 유희 충동이 작동하는 공간인 것이다.

 

다음은 토론이 끝나고 유진이가 쓴 철학적 글쓰기의 일부이다.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성장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 단어에 대해 이렇게 깊이 생각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성장에는 고유한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내가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삶의 방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찾아 헤매고 있다.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성장했을까? 이런 헤맴도 성장에 필요한 걸까?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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