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공교육은 입시와 경쟁, 시험, 서열 등으로 아이들의 생각과 삶을 단단하게 고정해 놓고, 삶 자체를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라는 정해진 트랙 위에서 움직이게끔 한다. 이 트랙을 성실하게 달리는 사람에겐 모범 학생이라는 훈장을 준다. 그런데, 울산 최초의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넘어 저항적이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철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과 삶에 대한 사색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에 <더에듀>는 아이들이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데 도움을 주는 박상욱 철학교사의 수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교육이 경쟁과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

2년 전에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로 오게 되었다. 이 학교에 오게 된 계기는 철학 과목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나는 도덕 교사로 17년을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어린이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린이 철학’은 아이들과의 철학적 대화를 통해 ‘민주적 시민성’과 ‘인간다움’을 함양해 주려는 교육적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철학이란 삶과 사회의 중요한 문제, 개념, 의미, 쟁점, 기준 등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하고 사유하려는 태도이자 활동이다. 즉 ‘명사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동사로서의 철학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오랫동안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활동의 근원에는 철학적 대화와 사유가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철학’이라는 교과목으로 아이들은 만나게 된 것은 나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적어도 중학교 교육과정에는 철학이라는 과목이 편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울산고운중학교는 각종 학교로 분류되기에 국어와 사회 과목을 제외하고는 자유롭게 교육과정을 편성할 수 있다. 철학 과목은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매주 2시간이 배정되어 있었다. 전국을 찾아봐도 중학교에서 이렇게 철학을 강조하고 있는 학교는 찾기 드물 것이다.
보통 대안학교라고 하면 아이들의 적성과 흥미에 맞게끔 다양한 활동과 프로젝트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안학교 아이들이 철학과 같이 딱딱한 과목은 그리 선호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학교 아이들은 철학을 좋아한다. 매 학기 교육과정 발표회에서도 철학은 항상 등장한다.
많은 아이가 “철학을 통해 생각하고 말하고 글 쓰는 것이 의미 있고 즐거웠다”고 말한다. 물론 모든 아이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철학이 필요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렵고 힘들지만 배워야 할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대안교육과 철학은 한 몸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대안교육은 기존의 억압적이고 권위적이며 경쟁적인 교육체제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대안교육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교육적 응답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고 저항하는 정신이야말로 대안교육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안교육의 정체성은 고정될 수 없다.
끊임없이 해체되고 생성되는 새로운 흐름이다. 이는 철학의 역사와도 매우 흡사하다.
‘고대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당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기존의 권력과 가치관, 관습에 순응하지 않고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하며 성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위는 그 당시 지배층의 공고한 가치관에 균열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적 대화를 통해 아테네 젊은이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 저항의 흔적을 심어주었다. 그러한 흔적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대변되는 새로운 철학의 실마리가 되었으며, 풍부하고 충만했던 서구 사유의 전통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유의 흐름은 또다시 비판과 저항에 직면한다. 데카르트는 신 중심의 세계관에 저항하며 계몽주의의 문을 열었으며, 니체는 플라톤 중심의 서구 정신을 전복하려고 시도한다.
그가 외쳤던 ‘신은 죽었다’라는 말은 절대적 권위와 기준, 진리에 대해 해체와 함께 새로운 창조를 의미했다.
이렇게 철학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기존의 사상에 문제를 제기하며 발전해 왔다. 저항과 비판, 생성은 철학이 유지될 수 있었던 내적 동력이자 생명력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대안교육은 곧 철학적 정신이 교육 현장에서 가장 순수하게 구현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정신은 항상 위험성을 내포한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안정적인 트랙을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해서 대안학교에 학생들을 보내는 학부모들은 모순적인 고민에 놓여 있다. 새로운 교육을 꿈꾸지만, 자녀의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이 그것이다.
그런데 철학은 이러한 불안을 포용한다. 하이데거는 ‘불안이야말로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불확실한 세상에 던져져 있는 피투성이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죽음은 시시각각 우리의 삶과 존재 전체를 뒤흔든다. 우리에게 ‘불안’은 벗어날 수 없는 근원 감정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항상 불안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불행한 존재인가?’
그건 아니다. 철학은 이러한 불안을 긍정하고 세상의 불확실성에 대처할 수 있는 용기를 강조한다. 그것이 곧 철학적 용기이다. 이는 다른 말로 진리, 옮음, 정의를 위한 열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열망과 용기가 있었기에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의 회유를 뿌리치고 독배를 들었으며, 스피노자는 온갖 모욕을 감수하고 유대 공동체에서 스스로 나오게 된다.
대안학교의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 그대로를 긍정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철학적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를 둘러싼 사회체제와 규범, 자본주의적 가치, 광고, 미디어 등이 끊임없이 아이들의 신체와 정신 깊숙이 침투하려고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도에 저항하면서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정립하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존재론적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주인은 언제나 위험과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듯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가상의 세계 속에서 노예의 삶, 가짜의 삶을 선택할 것인지, 실제의 현실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주인의 삶을 선택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대안학교의 철학 수업은 아이들에게 삶이 던져주는 질문과 위험에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길러주고자 하는 시도이다. 물론 쉽지 않은 도전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단순히 교육 혁신을 넘어 시대사적인 혁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렌트가 말했듯이 아이들은 탄생성의 존재이다. ‘탄생성’은 언제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이다. 아이들은 이 힘을 통해 세상에 새로움을 가져다 주는 존재이다. 나는 자그마한 교실에서 아이들이 가진 탄생성의 힘에 기대어 철학적 대화를 시도하는 일 자체가 이미 새로운 혁명을 준비하는 일임을 믿고 싶다.
앞으로 <더에듀> 지면을 활용해 대안학교 아이들과 함께하는 철학적 대화의 몇 장면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미력하게나마, 아이들의 생생한 철학적 목소리와 새로운 감수성 그리고 그 속에 들어 있는 탄생성과 저항의 힘을 드러내 보고자 노력할 것이다.
박상욱 = 17년간 중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다가 2년 전부터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에서 철학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부산교육대학교, 부산대학교,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를 했으며, 한국철학적탐구공동체연구회 연수국장, 서울교육대학교 어린이철학교육센터 학술이사, 한국어린이철학교육학회 총무이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바이러스 철학을 만나다』가 있고 공저로는 『문해력과 사고력을 길러주는 교실 속 철학 토론』, 『도덕적 시민의 눈으로 세상 읽기』, 『생각하는 교실, 철학하는 아이들』이 있다. 공역으로 『아이들과 철학하는 삶』, 『더 나은 사고를 위한 교육』이 있다. 최근에는 어린이 존재가 가진 철학적 가능성과 그 의미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