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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로 간 어린이철학] "모든 행동은 생각에서 나오는 거예요?"

공립 대안중학교, 울산고운중학교의 철학수업 이야기

더에듀 | 공교육은 입시와 경쟁, 시험, 서열 등으로 아이들의 생각과 삶을 단단하게 고정해 놓고, 삶 자체를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라는 정해진 트랙 위에서 움직이게끔 한다. 이 트랙을 성실하게 달리는 사람에겐 모범 학생이라는 훈장을 준다. 그런데, 울산 최초의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넘어 저항적이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철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과 삶에 대한 사색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에 <더에듀>는 아이들이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데 도움을 주는 박상욱 철학교사의 수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교육이 경쟁과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소크라테스는 ‘성찰하는 삶’을 강조했다. 아마도 자신의 신념이나 생각에 대해 반성적으로 ‘생각’해 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언명 이후 철학의 가장 중심적인 주제는 항상 ‘생각’이었다. 아름다움, 선, 정의, 평등, 자유, 존재, 시간 등으로 불리는 개념들은 생각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개념은 다양한 생각들을 담고 있고 우리의 일상적 경험은 이러한 개념들을 통해 표현된다. 경험 그 자체는 질적인 흐름이기에 개념을 통해 포착해야만 한다. 그리고 철학은 개념 그 자체를 문제 삼는다. 이를 통해 삶에 대한 성찰과 탐구를 유도하는 것이다.

 

결국 철학은 잘 생각한다는 것과 관련된 학문이자 실천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우리가 좋은 삶을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이런 말들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생각 좀 하고 행동해!!”

“생각 없이 말하지 마!!”

 

위와 같은 말은 대부분 상대방이 적절하지 않은 언행을 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생각은 우리가 올바르고 적절한 행동이나 말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기본 전제이다. 생각 없이 충동적이고 본능적으로 한 행동은 문제를 일으키기 일쑤다. 내가 사고 싶은 물건을 사기 위해 남의 돈을 훔치거나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남의 답지를 베끼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 대부분의 범죄는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사회적 규범을 생각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욕구와 본능에만 집착해서 생기는 일들이다.

 

그런데 애초에 생각을 하지 않는 게 가능한가? 생각을 하지 않고 행동하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 당장 이 글 읽는 것을 멈추고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시도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머릿속에는 더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 경험을 한다.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행동이나 말들은 생각에서 비롯된다고도 볼 수 있다.

 

범죄도 마찬가지이다. 범죄자들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기준을 바탕으로 생각을 한 것이다. 사회적 규범이나 타인의 권리보다 내 욕구나 욕망이 더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식의 생각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생각 좀 하고 행동해”라는 말은 생각을 올바르게 해야 한다는 의미가 함의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행동은 생각을 전제로 하고, 생각을 잘해야 행동도 올바르게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어른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명제 역시 아이들에게 언제나 문제가 된다. 바로 이 지점이다. 이것이 매튜스가 아이들을 타고난 철학자라고 했던 이유이다.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문제투성이로 보일 수도 있다. 그들에게는 아직까지 이 세상의 당연함이 너무 낯설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교실에서 예성이는 교재의 일부분을 읽고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툭 던졌다.

 

“모든 행동은 생각에서 나오는 거예요?”

 

허공에 숨을 뱉듯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 예성이의 질문은 교실의 여백을 서서히 채우기 시작했다.

 

유진: 생각이 없으면 행동도 없다는 뜻인가?

민성: 그건 아니지. 행동은 그냥 하는 거 아냐?

나: 예성이는 이 질문을 한 이유가 있을까?

예성: 우리는 언제나 생각을 하잖아요. 그러니깐 행동도 다 생각에서 나오는 거 아닐까? 해서요. 생각 없이 하는 행동은 없는 것 같아요.

 

예성이의 설명에 반 아이들이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생각과 행동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까? 아니면 연결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 걸까?

 

예성의 질문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에 나 역시 생각이 깊어졌다. 문득 데카르트가 육체와 생각의 연결점을 찾기 위해 ‘송과선’이라는 희한한 개념을 제안했던 것이 떠올랐다.

 

지성: 생각은 당연히 항상 하는 거 아닌가요? 생각을 해야 행동을 하죠.

아름: 생각 없이 하는 행동도 있지 않나?

유진: 그건 말이 그렇지. 다 생각이야.

나: 왜 그렇게 생각해?

유진: 선생님 생각해 봐요. 행동은 뇌에서 시켜서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뇌에서 하는 게 생각이니까요.

나: 그럼 생각 없이 하는 행동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수진: 그냥 나쁜 생각인 거죠.

나: 예를 들면?

유진: 수업 시간에 과자 먹는 거요.

승우: 선생님한테 대드는 것도 있어요.

준이: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거요. 우리 학교에도 있어요.

<함께 웃는다>

나: 그게 왜 생각이 없는 거지?

유진: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생각을 잘못한 거죠. 생각이 없을 순 없어요. 생각이 없다는 것은 죽는 것하고 같아요.

민성: 맞아요. 생각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생각은 뇌라는 물질의 작용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우리가 뇌를 의식하지 않듯, 생각 역시 의식하지 않아도 항상 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굉장히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지점에서 뇌와 생각의 관계에서 근본적인 차이에서 관해 토론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데카르트조차 끝내 만족스럽게 결론 내리지 못했던 질문이다.

 

하지만 “생각이 없다는 것은 죽는 것과 같아요”라는 발언이 나오자, 아이들은 생각 그 자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생각이 뭐길래 죽음까지도 연결되는 걸까? 정말 생각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걸까? 언제나 그렇듯 철학적 토론에서 근본적인 개념에 대한 토론은 빠지지 않는다.

 

나: 도대체 생각이 뭘까?

예성: 생각은 머리에서 어떤 장면을 떠올리는 거요.

유진: 머리에서 어떤 것을 떠올리고... 잘 모르겠어요.

승우: 그냥 머리 속에 있는 기억들을 가지고 노는 것 같아요.

나: 논다는 게 무슨 뜻일까?

승우: 상상도 했다가 이유를 생각해 보고, 질문도 하고, 이런 게 다 생각 아닌가요?

지성: 지금 우리가 말을 하는 것은 다 생각을 밖으로 뱉어낸 거예요.

나: 생각과 말이 같다는 거니?

지성: 맞아요. 생각은 머리 속에서 하는 말 같은 거예요.

민성: 오! 그럴 듯한데.

주윤: 근데 그건 일부만 맞는 것 같아요. 말로 할 수 없는 생각 같은 것도 있어요.

지성: 그런 게 있을까요?

주윤: 가끔 머리 속에서 어떤 아이디어 같은 것이 떠오르는데 정확히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경우도 있거든요.

아름: 그건 그 생각을 표현할 말을 떠올리지 못한 것일 수도 있잖아요.

주윤: 아냐. 말은 생각의 일부만을 보여줄 뿐이야. 생각 그 자체는 말도 다 보여줄 수 없어.

준이: 가끔 짜증이 나는데 그걸 말로 표현하지 못할 때도 있어.

아름: 그건 감정이지 생각이 아니야

승우: 생각과 감정이 그렇게 정확하게 구분되는 거야?

 

플라톤은 진리에 대한 관조는 언어를 넘어선다고 보았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진리의 복제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사유와 직관을 통해 도달한 진리를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다. 하지만 플라톤 이후 이어지는 현대 언어철학의 흐름은 매우 다양하다. 비고츠키는 언어와 사고가 상호구성적이라고 보았으며, 전기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구조가 세계의 구조를 반영하기에 사고는 언어의 논리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고 보았다.

 

위 대화에서 지성이는 생각도 일종의 언어로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곧이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생각도 존재한다는 반론에 마주한다.

 

사실 처음 토론을 시작할 때는 아이들이 이런 쟁점까지 토론 속으로 끌고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 역시 준비되지 못한 채로 토론이 이어졌다.

 

주윤이의 말처럼 직관이나 감정, 흐릿한 아이디어도 생각이라면 언어로 정확히 표현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물론 감정이나 직관도 생각으로 봐야 할 것인지는 현대 철학에서도 여전히 논쟁거리이다. 이 지점에서 토론이 잠시 맴돌다가 아이들은 곧 본래의 질문으로 되돌아가기를 원했다.

 

그럼 모든 행동은 생각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을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철학적 토론에서 하나의 쟁점이 완벽하게 해결된 후 다음 쟁점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사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다양한 쟁점을 툭툭 건드려 가면서 서서히 전진한다. 완벽하게 포장된 도로가 아니라도 아이들은 그 길을 가는 데 주저함이 없다. 계곡에서 물의 흐름을 방해하는 바위가 흐르는 물에 서서히 침식되어 가듯, 이러한 철학적 쟁점도 지속해서 탐구되고 토론되어야 한다. 오늘 토론에서 미해결된 쟁점은 언젠가 다시 또 다른 토론에서 그 얼굴을 드러낼 것이다.

 

유진: 본능이나 무의식에서 나오는 행동도 있잖아요.

나: 예를 들면?

유진: 호흡하는 거, 자는 거, 재채기 등이에요.

준이: 그게 행동이야?

유진: 행동이지. 신체를 움직여서 무언가를 하는 거라면 다 행동이야.

승우: 잠잘 때 잠꼬대하는 것도 있어요.

나: 본능이나 무의식은 생각이 아니라는 건가?

유진: 맞아요. 그건 생각이 아니에요.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거잖아요.

아름: 생각일 수도 있지.

유진: 그게 무슨 말이야?

아름: 본능 같은 것도 살기 위한 거잖아. 그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있는 거 아닐까?

주윤: 자기가 의식하지 않아도 생각은 하고 있을 수 있다는 뜻인가?

아름: 당연하지. 자면서도 뇌는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

나: 뇌가 생각을 한다는 거지?

수진: 꿈을 꾼다는 것은 생각을 한다는 의미 아닐까요?

유진: 나도 모르는데 생각을 한다는 게 이해가 안 돼요. 그게 가능해요?

아름: 본능도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무의식도 생각을 가지고 있고.

유진: 그걸 어떻게 증명해?

아름: 생각이 없다면 아무것도 못하기 때문이야. 생각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승우: 그건 아냐. 호흡도 하고. 심장도 움직이잖아.

수진: 그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거지. 로봇이 살아있는 것은 아니잖아.

나: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것은 로봇이라는 말인가?

수진: 비슷해요.

나: 인간이 하는 행동은 다 생각에서 나온다는 말이니?

아름: 맞아요. 인간의 행동은 로봇과 달라요. 생각이 있어야 해요.

유진: 근데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것도 생각일 수 있어요? 나와 생각이 따로 놀잖아요. 내가 하는 생각인데 내가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요.

준이: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이 있을 수 있지.

유진: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내가 생각을 한다는 말이야? 그게 무슨...

승우: 무의식이라는 것이 그런 거 아닐까?

민성: 어쨌든 확실한 것은 대부분의 행동은 분명히 생각이 들어가 있다는 거에요.

유진: 하지만 일부는 잘 모르겠어요.

아름: 생각이 좀 더 필요해요.

아름: 또 생각이야? 생각을 생각해 보는 것은 또 처음이네.

민성: 생각을 생각하고, 또 그 생각을 생각해 보는 거지 뭐.

 

근대철학에서 나를 규정하는 것은 생각이다. 생각하는 나가 곧 나를 규정하는 기본 전제가 된다.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는 나’는 계몽주의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이에 대해 칸트는 ‘감히 생각하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근대철학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주체성의 철학인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오면서 주체라는 개념 자체가 심각하게 위협받기 시작한다. 아마 그 시작 중 하나가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의 구조일 것이다.

 

그에 의하면 우리의 행동이나 생각은 의식보다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더 깊은 무의식의 지배 하에 놓여 있다. ‘나’를 집으로 비유했을 때 자아나 의식은 집의 주인이 아닌 것이다. ‘나’의 진정한 주인은 무의식이다.

 

위 대화에서 아이들은 행동은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무의식이나 자동적인 반사작용으로 이루어지는 것들도 많다고 주장한다. 특히 무의식의 영향을 주장한 유진이의 의견은 오늘 토론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론 본능과 무의식은 정확히 똑같은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과의 철학적 토론에서 세세한 개념의 경계를 날카롭게 적용할 필요는 없다. 작은 문제에 집중하다가 오히려 더 큰 것(예를 들면 아이들의 흥미와 호기심 같은)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진이는 본능과 무의식은 생각이 아니라는 주장을 했지만, 이에 대해 오히려 그것도 생각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지점에서는 나 역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철학의 역사 속에서 많은 학자는 무의식과 의식, 본능과 생각의 대립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무의식과 본능도 생각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는 주장은 흔치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 쟁점을 오히려 더 흥미로워했다.

 

내가 의식하지 않는 것도 생각일 수 있을까? 의식하는 내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 어딘가에서 나는 생각하고 있을까? 굉장히 참신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한 아이는 생각이 더 필요하다는 말을 던졌다. 오늘 우리가 토론에서 한 생각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두 친구의 말은 참 인상적이었다.

 

아름: 또 생각이야? 생각을 생각해 보는 것은 또 처음이네.

민성: 생각을 생각하고, 또 그 생각을 생각해 보는 거지 뭐.

 

맞다. 생각 속에 또 다른 생각이 있고, 그 생각은 또 다른 지점과 연결될 것이다. 그렇게 리좀의 그물망 속에서 아이들의 생각은 끊임없이 확장되어 갈 것이다. 그게 아이들이 하는 철학으 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다음은 이 토론에서 아름이가 쓴 철학 노트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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