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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공교육은 입시와 경쟁, 시험, 서열 등으로 아이들의 생각과 삶을 단단하게 고정해 놓고, 삶 자체를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라는 정해진 트랙 위에서 움직이게끔 한다. 이 트랙을 성실하게 달리는 사람에겐 모범 학생이라는 훈장을 준다. 그런데, 울산 최초의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넘어 저항적이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철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과 삶에 대한 사색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에 <더에듀>는 아이들이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데 도움을 주는 박상욱 철학교사의 수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교육이 경쟁과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
1990년대에 프랑스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는 한국의 보신탕 문화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개고기를 먹는 문화가 야만적이라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이 발언에 대해 다른 나라의 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우리나라 역시 개고기를 먹는다는 것에 대해 상당히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다. 2024년에는 개고기 식용을 금지하는 법안까지 통과되었다. 이 법은 2027년부터 전면 시행될 예정이다.
과거에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애완동물이라고 불렀지만, 최근에는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애완동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동물을 장난감같이 개인의 소유물처럼 생각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은 말 그대로 가족, 친구와 같이 함께 삶을 공유하는 존재라는 의미가 강하다. 단순히 소유물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인격적 책임이 강조되는 것이다.
이렇듯 과거에 비해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되면서, 개와 고양이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위상이 많이 달리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윤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생명을 바라보는 사람의 인식이 많이 성장했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문득 불편한 지점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내 앞에 놓여져 있는 돼지고지, 소고지, 닭고기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수업에서는 아이들과 전국도덕교사모임의 ‘도덕적 시민의 눈으로 세상읽기’(해냄에듀, 2024) 중 한 챕터를 함께 읽었다. 육식 반대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나는 당연히 육식에 관련된 질문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생태 교육을 지향하는 대안교육에서 육식 문제는 항상 논쟁거리였다. “생태 지향적 삶을 이야기하면서 학교 급식에 고기를 요구하는 것은 과연 윤리적으로 정당할까?”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난제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 예상과 다르게 전혀 다른 질문에 관심을 보였다.
예성이가 한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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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성: 반려동물과 가축동물을 구분하는 것은 맞는 거예요? 교사: 어떤 점에서 구분된다고 생각하는 거니? 예성: 아니... 가축동물은 먹으려고 키우고, 반려동물은 절대 먹으면 안 되는 것처럼 이야기 하잖아요. 돼지나 소 입장에서는 억울할 것 같아요. 승우: 작년인가? 개고기 먹으면 처벌한다는 법도 만들어졌잖아요. |
이렇게 아이들은 육식 문제에서 자연스럽게 동물종간의 차별 문제로 눈을 돌렸다. 오랜만에 자신이 만든 질문에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자, 예성이는 더욱 신이 난 것처럼 보였다.
흔히 철학적 토론을 하다 보면, 당연히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 더 돋보일 거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조금만이라도 아이들과 철학적 토론을 해 본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일반적인 토론과 철학적 토론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이다.
철학적 질문을 제안하거나 그것에 대해 토론할 때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든 지식을 정답처럼 암기한 학생들은 오히려 철학적 토론에 들어서는 순간 당황하기 일쑤다. 왜냐하면 어디에서도 접해본 적 없는 질문과 문제를 다루며, 새로운 관점과 생각이 중구난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지적 우월감을 내려놓고, 다른 친구들의 목소리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태도가 더욱 요구된다. 철학적 토론에서 중요한 것은 논리적, 지적 능력 이전에 창의적이고 윤리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평가로 보면 예성이는 반에서 가장 낮은 성적을 받고 있다. 하지만 철학적 탐구공동체 안에서 예성이의 위상과 역할은 전혀 달라진다. 새로운 관점을 제안하고, 토론의 긴장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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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성: 전 구분해야 한다고 봐요. 강아지나 고양이를 소나 돼지처럼 잡아먹을 수는 없잖아요. 유진: 그게 왜 안돼? 따지고 보면 같은 동물이잖아. 아름: 강아지나 고양이는 인간하고 소통을 하잖아. 가족 같은 존재라고... 지성: 그건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 아냐?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아름: 강아지는 인간에게 많은 위로를 줘요. 안내견 같은 것도 있고요. 주윤: 맞아. 소나 돼지보다 훨씬 똑똑해. 수진: 훨씬 귀엽기도 하지. 유진: 그게 차별의 근거는 되지 않아. 멍청하다고 잡아먹히는 것은 억울하잖아. |
유진이는 강아지와 소를 구분하는 것이 차별이라고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민성이와 아름이는 반려동물이 다른 동물보다 더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인간과 특별한 정서적 교류를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민성이와 아름이는 실제로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경험적 맥락에 따라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당연히 반려견을 키우는 아이들은 강아지를 단순히 동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과 같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을 보편적으로 적용해도 문제가 없을까? 이에 대해 지성이는 그건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들만의 이야기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이 장면에서는 약간의 묘한 긴장감이 교실에 맴도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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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우: 그냥 상식인 것 같아요. 교사: 뭐가 상식이라고 거니? 승우: 강아지와 소를 구분하는 거요. 그건 상식이잖아요. 교사: 상식이 뭔데? 주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거요. 지금 사람들은 강아지와 소를 구분하잖아요. 그래서 보신탕도 법으로 금지했잖아요. 교사: 한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거구나. 맞니? 민성: 그러니깐. 반려동물하고 가축동물을 구분하는 것은 정당한 것 같아요. 지성: 그건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걸 수도 있잖아요. 교사: 예를 들어 볼 수 있을까? 지성: 음.... 지금은 잘 생각이 안 나요. 어쨌든 다수가 틀릴 수도 있잖아요. |
철학적 토론을 하다 보면 아이들은 종종 상식이라는 말을 꺼낸다. 나는 상식이라는 말이 나올 때 내심 경계한다. 왜냐하면 스스로 이유나 근거를 생각하기 힘들 때, 그것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상식이라는 말을 꺼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상식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주윤이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곧 상식이라는 말했다. 나는 별다른 반론을 제시하지 않았다. 좀 더 기다렸다. 조금 흐르자 지성이는 조심스럽게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 답변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제시하면 좋았겠지만,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다.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지성이는 반려동물과 가축을 구분하는 것이 상식이 되어버린 세상에 나름대로 저항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인류의 지성사를 살펴보면, 상식이라는 말이 굳어질 때 그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되기도 했다. 교실 토론에서도 이 점을 항상 경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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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 사람들은 강아지나 고양이를 사랑하잖아요. 그리고 감정적으로 소통도 하고요. 외국에서 유산까지 물려주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어요. 교사: 사람들과 깊은 정서적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는 거니? 아름: 맞아요. 가족을 어떻게 먹어요. 지성: 저는 생각이 달라요.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강아지나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에요. 저는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잘 보면 강아지보다 돼지가 더 귀엽기도 해요. 교사: 개인의 주관 때문에 동물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 준이: 저는 그보다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 같아요. 유진: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준이: 사람이 좋아하는 동물은 아껴줘야 하고,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 동물은 함부로 대하거나 먹어도 된다는 거잖아요. 이거 잘못된 거 아니에요? 민성: 아니 인간이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게 왜 잘못이야? |
이번 토론은 아이들이 가진 깊은 경험적 맥락 때문에 생각의 수정이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철학은 이성적 토론의 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토론에서 볼 수 있듯이, 개인의 철학적 신념과 사고는 질적인 경험과 정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쉽게 말해, 우리에게 아무것에도 오염되지 않는 순수한 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어린이 철학은 구체적 경험과 추상적 개념이 역동적으로 작동되는 시공간을 제공한다.
아이들은 평소 친구나 가족같이 지내온 강아지나 고양이를 가축동물처럼 생각하는 것에 대해 쉽게 동의하지 못했다. 하지만 반려동물과 가축동물의 존재론적 차이를 드러내는 것에도 그리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에 대해 준이는 토론의 방향을 바꾸는 핵심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는 현대 생태주의 담론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핵심적인 쟁점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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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윤: 사람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아껴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남보다 가족이나 친구를 더 아껴주지. 유진: 맞아. 그건 개인의 자유야. 교사: 그러면 그걸 법이나 도덕으로 금지하는 것은 어떠니? 지성: 그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건 개인의 취향이잖아요. 강아지가 소보다 더 도덕적으로 대우받아야 할 권리가 있어요? 승우: 저는 여전히 그게 지금 사회의 상식이라고 생각해요. 도덕이라는 것은 결국 많은 사람 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예성: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면, 그 기준도 바뀔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교사: 그럼 너희들은 반려동물과 가축을 나누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고 생각하는 거니? 유진: 그냥 사람들의 생각이죠. 옛날에는 고양이나 강아지도 다 먹었잖아요. 주윤: 미래에는 동물을 먹는 것 자체가 불법이 될 수도 있어요. 결국 생명이니까요. 예성: 그러면 반대로 사람을 먹는 것도 인정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아름: 그건 상상도 하기 싫다. 넌 왜 멀리 나가니? |
반려동물과 가축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문제는 도덕의 상대성이라는 쟁점이 나왔다. 우리는 다수의 생각에 동의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쉽게 답변하기 힘들다. 만약 반려동물을 좋아하지 않고, 가축동물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비윤리적일까? 소는 키우고 강아지를 먹는다면?
지성이가 이러한 쟁점을 제안했지만, 이에 대해 깊이 토론하지는 못했다. 승우는 반려동물에 대한 권리를 강조되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에 대해 마지막까지 미심쩍은 시선을 던지는 아이들도 많았다.
철학적 탐구공동체 수업에서는 이러한 긴장의 장이 항상 존재한다. 나는 수업에서 보이는 이러한 불확실성과 긴장을 좋아한다. 이러한 긴장을 통해 수업과 삶은 단절되지 않고, 일상의 고민까지 이어진다.
나는 수업을 통해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기준과 관점을 가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수업에 반대한다.
교육은 사랑을 전제로 한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죽음애’와 ‘생명애’를 구분한다. ‘죽음애’는 물질성에 대한 사랑이다. 불변하고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대상에 대산 애착과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반면 ‘생명애’는 항상 변하고 예측불가능한 존재에 대한 사랑이다.
그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돈, 자동차, 집, 땅, 옷 등과 같은 물질을 더 사랑한다고 본다. 그것은 언제나 이용 가능하고 통제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실은 물질이 아닌 생명들이 함께 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학생들을 물질이 아닌 생명으로서 사랑해야 한다. 그것은 교사의 관점으로 아이들의 사유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고유한 생명으로 대하고 함께 대화하려는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