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2월 초, 수능 결과가 발표되면서 또다시 익숙한 구호가 등장했다.
“초등학교부터 수능 영어 제대로 공부해야”, “영어유치원 보냈다고 안심하면 실패” 등 동아일보(2025.12.8.)가 내놓은 유명 학원들의 홍보 문구들은 단지 현장을 소개하는 취재 언어라기보다, 불안과 조급함을 자극해 두려움 마케팅을 자행하고 있다.
이는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노골적인 압박을 부모에게 주입하는 것이다, 한국 사교육 시장이 오랫동안 반복해 온 전형적인 패턴이다.
올해는 그 악역을 수능 영어가 도맡았다. 하지만 매년 그렇듯이 특정 시험 한 회분의 난이도가 즉각적으로 ‘초등 때부터 수능 ○○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을 정당화할 근거는 설득력이 약하다.
수능은 본래 절대적 지식의 양을 겨루는 시험이 아니라, 교과 교육과정 속에서 기초 역량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그럼에도 일부 학원들은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불수능 → 불○○ → 조기 사교육 확대’라는 공식을 재빠르게 전파한다.
그러나 교육에서 불안과 두려움은 결코 생산적인 동력이 아니다. 그런 심리에 기반한 선택은 장기적 학습 동기를 약화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삶을 미래의 점수를 위한 현재로 축소할 수 있다.
초등학생에게 수능 기출을 들이밀며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순간, 교육은 바람직한 인간으로의 성장 과정이 아니라 경쟁의 총량을 앞당기는 도구로 전락한다. 이는 교육의 본질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마치 중국 고사에서 벼를 빨리 자라게 하려고 억지로 뽑아 올려 키를 키웠으나 결국 모두를 고사(枯死)시킨 어리석은 농부의 ‘발묘조장(拔錨助長)’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
한국 부모들이 불안과 두려움에 흔들리는 이유는 그들이 몰라서가 아니다. 이미 많은 이가 조기 사교육은 학습격차를 심화하고, 게임의 규칙을 더 불공정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흔들리고 빠져드는 것은, 사교육이 반복적으로 만들어 내는 ‘공포의 프레임’ 때문이다.
“남들은 다 한다”, “지금 안 하면 늦는다”, “부모의 정보가 중요하다” 등의 말은 부모의 합리적 판단을 차단하는 가장 강한 압박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교육비의 급증, 교육 불평등의 심화라는 악순환의 연속을 한껏 부추긴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빨리 빨리’가 아니라 ‘옳고 바르게’이다. 필자는 고교 현장에서 관리직을 제외하고 32년 가까이 영어를 가르쳤다. 영어 역량은 조기 선행보다 꾸준한 읽기 경험, 풍부한 영어 경험, 학습자 스스로의 흥미와 자발성이 결정한다는 것을 이미 수십 년간 직접 경험했다.
시험 난이도가 변해도 이러한 원리는 변하지 않는다. 어느 해의 불영어를 이유로 전국의 가정이 조기 영어 사교육의 소용돌이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교육적으로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근거가 미미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사교육이 수능의 불안이나 두려움을 키우기 위해 학생과 학부모를 공포로 자극하는 것은 제2차 가해의 폭력이다. 주요 언론 기자들은 사교육의 공포심 유발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그들 또한 공범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의 품격은 경쟁을 충동질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과열된 경쟁의 속도를 늦추고, 근거 없는 공포를 거르고,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하는 데서 나온다.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공공성을 지켜주는 양심이자 교육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전국의 학부모에게 전하고 싶다. 아이의 교육은 마라톤이지, 단거리 질주가 아니다. 속도를 앞당기는 것은 쉬울지 모르지만, 그 속도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아이들이다. 초등학생에게 수능의 그림자를 앞서 드리우기보다, 영어에 대한 호기심과 학습력을 다양하게 그리고 서서히 키워주는 것이 훨씬 지속 가능한 길임을 믿어야 한다.
교육의 시계는 빨리 돌린다고 해서 더 나아지지 않는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중국의 어리석은 농부의 사례면 충분하다. 오히려 천천히, 그러나 넓게 가르칠 때 아이들은 비로소 스스로의 성장 과정을 충실하게 겪으며 완숙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사교육이 만드는 공포의 서사는 이제 멈춰야 한다. 교육은 불안을 먹고 자라는 산업이 아니라, 인간의 성장을 다루는 공공 영역이다. 우리는 더 이상 ‘수능이 어려웠다 → 조기 사교육으로 해결하라’는 단순하고 공격적인 논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교육은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앞당겨 부추기는 경쟁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의 시간을 존중하며 지속 가능성을 확장하는 지혜여야 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것으로 불안을 해소하는 대신, 교육의 본질을 되돌아볼 때이다. 아이들의 미래는 결코 공포에서 자라지 않는다. 신뢰와 균형, 그리고 충분한 시간적 과정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