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최근 지구촌 교육계를 뜨겁게 달군 뉴스가 있었다. 미국 아이비리그와 유럽의 유서 깊은 명문대들의 러브콜을 단칼에 거절하고, 대한민국 서울대학교의 ‘전액 장학금’ 카드마저 정중히 거부한 베트남의 천재 소녀, 호앙 흐엉 지앙(Hoang Huong Giang)의 이야기다. 그녀는 베트남 고교 졸업시험에서 수학, 물리, 영어 합산 29.75점이라는 경이적인 점수로 수석을 차지한 AI 꿈나무다. 전 세계 대학들이 모셔 가려고 안달이 났던 그녀가 최종 안착한 곳은 서울의 화려한 유혹이 아닌, 밤낮으로 연구실 불이 꺼지지 않는 대전의 KAIST(한국과학기술원)였다. “KAIST가 한국의 ‘MIT’라 불릴 정도로 과학기술 분야에서 명성이 높아 최종 선택했습니다. 무엇보다 놀거리가 많은 서울보다는, 학문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KAIST가 제 꿈을 펼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확신했죠.”(호앙 흐엉 지앙 인터뷰 중에서). 놀거리가 많아 서울대를 거절했다니, 전국의 수험생들이 들으면 “이게 무슨 배부른 소리냐?”하며 놀랄 일이다. 하지만 과학에 미친 영재들에게 KAIST는 단순한 대학이 아니다. 이곳은 전 세계에서 가장 밀도 높은 천재들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합
더에듀 | 대한민국 청년들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고교생의 3분의 2가 대학이란 좁은 문을 향해 돌진하고, 대학에서는 온갖 스펙을 쌓아 역사상 전대미문의 실력을 갖춰도 고용은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청년 실업은 제어하기 어려운 상태로 치닫고 있다. 이는 우리 산업이 최첨단화하면서 실질적인 고용이 줄면서 오랫동안 고용 절벽이란 정형화된 틀 위에 놓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고정된 공식이 존재한다. ‘초·중·고교에서의 치열한 내신·수능 경쟁 → 대학 진학 → 대기업 또는 공공기관 취업’으로 이어지는 병목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고교 졸업생의 70% 가깝게 대학 문을 두드리는 세계적으로도 경이로운 진학률은 이러한 한국 사회의 학벌 신화와 안정적인 고용에 대한 갈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거시경제의 현실은 이 오래된 공식이 파산했음을 선언하고 있다. 좀 더 부연하자면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 기술 중심으로 국가 산업 구조가 급격히 재편되면서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이 고착화하고 있다. 기업들은 막대한 부를 창출하지만, 기술 집약적 산업의 특성상 과거처럼 수만 명의 신입사원을 공채로 뽑지 않는다. 따라서 청년들이
더에듀 | 요즘 대한민국 학교는 교육의 전당이라기보다 법원 직영 아동 청소년 상담소에 가까워졌다. “선생님, 쟤가 제 지우개 가져갔어요!”라는 귀여운 고자질의 시대는 저물었다. 이제는 “선생님, 그 눈빛과 말투는 제 아이에게 정서적 학대 행위이니 법정에서 뵙겠습니다”라는 무시무시한 ‘사법 고소’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교사가 고소·고발의 홍수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 그런데 매우 경이로운 사실이 있다. 이렇게 난무하는 교육 현장의 아동학대 고소 중 상당수는 조사나 재판 과정을 거쳐 결국 ‘기각’되거나 ‘무죄 판결’로 끝난다는 점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법정에서 “죄가 없다”고 최종 판결을 내려준들, 그동안 교사가 흘린 피눈물과 영혼의 상처는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그뿐이랴. 교사가 법정을 들락날락하는 동안 방치된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은 어디서 환불받아야 하는가? “아님 말고” 는 무분별한 고소로 교육 현장을 초토화한 이들에게 이제는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할 때이다. 이 글에서는 교권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방어벽, 이른바 ‘징벌적 교육방해죄(가칭)’ 제정이 필요한 이유를 짚어보려고 한다. 미국의 저명한 법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필
더에듀 | 대한민국 교육열은 세계가 알아주는 민족성으로 부각되어 있다. 예컨대, 시험 날 아침에 전 국의 학부모들은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고, 수험생들은 OMR 카드를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정성스레 채운다. 만약 어떤 학생이 시험 시간에 지각하고, 필기도구도 안 챙겨와 옆 사람에게 빌려달라고 강압적으로 떼를 쓰며, 급기야 “시험지가 모자라요!”라고 아우성이라면 어떻게 될까? 현장에서 즉각적인 해결이 불가하니 교무실로 불려가 시험 규정에 따른 ‘불이익’ 처리를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가 목격한 6.3 지방선거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였다는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정확히 이 ‘빵점짜리’ 수험생의 행태를 보여주었다.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각종 선거관리 부실이라는 황당한 뉴스를 접했을 때 필자는 눈과 귀를 의심했다. 동네 반장 선거에서도 투표용지는 사람 수 맞춰 인쇄한다. 하물며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가 모자라 국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들다니, 이건 무능을 넘어 나태와 게으름의 극치이자, 선거관리의 기본조차 망각한 ‘한심한 행정의 끝판왕’이라 할 것이다. 선관위의 이번 직무 유기는 단순한 행정
더에듀 |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산다는 것은 매일 아침 ‘서바이벌 게임’의 로그인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다. 우리는 흔히 요즘 아이들을 보며 “라떼는 말이야, 보릿고개도 넘겼는데 배가 불렀다”라며 혀를 차곤 한다. 하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무지의 소치다. 왜 그럴까? 이 글에서는 무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챗GPT AI에게 물어 초등학교 4학년, 중학교 2학년,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대한민국 교육의 학교급별 ‘핵심 존재’의 날 것 그대로의 고백을 통해, 지금 우리 학교가 마주한 약간의 희극을 포함한 비극을 살펴보고자 한다. 초등학교 4학년 김민준(가명) : “스케줄러가 검찰청 부장검사급이에요” "인생 11년 차, 제 삶은 이미 대기업 임원 뺨칩니다. 제발 학교에서만이라도 멍때리게 해 주세요.” 한마디로 요약된 그의 삶의 고백을 들어 보자. “안녕하세요, ○○초등학교 4학년 김민준입니다. 어른들은 늘 초등학생이 뭐가 힘드냐고 하죠? ‘공부도 별로 안 하면서 맨날 놀고먹는 축복받은 세대’라고요. 하지만 제 하루를 보시면 그런 말이 쏙 들어갈 겁니다. 제 가방 무게는 대략 5kg입니다. 제 몸무게의 7분의 1이죠. 특전사 군장도 아니고 매일 이
더에듀 김연재 기자 | 최근 6.3 선거를 치르고 그 결과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비유의 말 중에 “골프와 선거는 ‘헤드업(Head-up)’하면 폭망(爆亡)한다”는 말이 가슴에 울려온다. 실제로 골프를 치는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저주는 단연 “오늘따라 헤드업(Head-up)이 아주 잘 되시네요”라는 말일 것이다. 공을 치기도 전에 마음이 급해 고개를 쳐드는 순간, 정타(正打)는 물 건너가고 공은 엉뚱한 수풀이나 해저드로 날아가 버리기 일쑤다. 비단 골프뿐이랴. 선거 역시 유권자의 마음을 읽기도 전에 당선이라는 김칫국부터 마시며 고개를 처들고 오만해지는 ‘헤드업’의 순간, 민심의 매서운 회칙을 맞고 폭망의 길로 접어들기 마련이다. 최근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국민적 신뢰를 잃고 국정조사와 특검론까지 도마 위에 오른 선관위 사태나, 민심을 읽지 못하고 일방 독주를 하다가 정권교체의 빌미를 제공하는 정치권의 모습들이 모두 이 ‘조기 헤드업’이 불러온 참사들이다. 보여주기식 행정·성과주의라는 ‘쇼업(Show-up)’, 공교육 망가뜨리는 주요 원인 그렇다면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불리는 우리 교육은 어떠한가? 교육에도 골프의 헤드업처럼 “이것만 하면 무조
더에듀 | 근래에 이재명 대통령이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교사 정치기본권은 국민이 납득해야 가능하다” 즉, “학부모의 찬성률이 높지 않다”고 밝힌 발언은 오래된 논쟁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교사 정치기본권, 필요한 건 ‘금지’가 아닌 ‘규범의 재설계’ 교사는 시민이면서 동시에 공무원이다. 이 두 가지 지위가 충돌할 때 우리는 늘 ‘정치적 중립’이라는 이름의 금기를 앞세워 논의를 멈추어 왔다. 그러나 세계 다수의 국가에서 교사의 정치기본권은 이미 합리적 규제로 보장되고 있다. 예컨대 OECD 국가 중 한국만이 유일하게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한국이 여전히 ‘권리의 사각지대’를 유지하는 것이며 그 이유를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가장 큰 발목잡기는 정치적 중립에 대한 오해다. 한국에서는 ‘정치적 중립=정치적 침묵’과 동일시되면서, 교사가 SNS에 의견을 쓰거나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것조차 격렬한 논란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는 오해와 착각이 존재한다. 중립은 특정 정당을 옹호하거나 교실에서 학생에게 정치적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의미이지, 교사가 시민으로서 의견을 표현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독일·프랑스·영국 등은 교사의 표현
더에듀 | 요즘 초중고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의 관심 집중과 해법 찾기 요구는 학부모 및 교육부와 갈등의 연장이다. 교육 현장을 바라보면 마치 오래된 수학여행 버스 한 대가 안갯속 도로를 달리는 모습 같다. 운전석에는 교육부가 앉아 있고, 뒤쪽 좌석에는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이 서로 다른 목적지를 외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운전석 옆의 내비게이션은 계속 재탐색 중이다. 최근에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부랴부랴 ‘교사 면책 강화’로 방향지시등이 켜지고, 교육부는 급하게 핸들을 꺾는다. 그때마다 버스 안에서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라는 탄식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최근 체험학습 사고와 관련해 교사의 면책 범위를 둘러싼 논란에서 교육부는 교사들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대책을 내놓았지만, 교원단체들은 “현실성이 부족하다”며 그 미진함에 반발하고 있다. 교사 입장에서 볼 때 억울함이 클 수밖에 없다. 수십 명의 학생을 인솔하며 예측 불가능한 상황까지 모두 책임져야 한다면, 누가 선뜻 체험학습을 가려고 하겠는가? 교실 밖 교육은 점점 사라지고, 결국 아이들은 현장학습 대신 유튜브 영상으로 자연을 배우게 될지도 모른다. “얘들아, 저게 바다란다.” “선생님, 4K로 보니까 더
더에듀 | 한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맨 처음 만나는 사회는 가정이고, 그다음 만나는 사회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출발선을 둘로 나누어 놓았다. 유치원은 교육부,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가 맡아 서로 다른 기준과 재정, 교사 자격, 교육과정을 운영해 왔다. 따라서 같은 다섯 살 아이인데도 어느 기관에 다니느냐에 따라 교육의 질과 지원 수준이 달라지는 상황은 오래된 과제였다. 바로 이러한 구조적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정책이 ‘유보통합(유아교육·보육 통합)’이다. 유보통합의 핵심 목적은 단순한 행정 통합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 중심의 국가 책임 교육체계를 만드는 데 있다. 정부는 2023년 유보통합 추진 방안을 발표했으며, 2025년부터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해 단일 관리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는 교육과 돌봄을 따로 보지 않고, 영유아의 성장 전 과정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유보통합’ 실행은 올해로 두 해째를 맞고 있다. 현재 정부는 교육부 중심으로 관리 체계를 일원화하고, 시범교육청 운영과 법 개정, 통합 기준 마련 등을 추진하고 있다. 2025년 교육부 업무 계획에
더에듀 | 지난 18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철저하게 탐색해 보도하고 사설에서 요약한 한 전북 한 초등학교 사례는 우리 사회에 깊은 충격을 안겼다. 단 한 명의 학부모가 615일 동안 끊임없는 악성 민원을 제기하며 학교 공동체 전체를 붕괴시킨 사건이다. 문제의 발단은 교사가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오예스’를 제공하자 “불량식품을 먹였다”고 항의하고, 수학여행 중 자녀가 “목마르다”는 문자를 보내자 득달같이 “물도 인솔자도 없다더라”고 학교에 따졌다. 사실은 학생 전원에게 사전에 물이 지급된 상황이었음에도 막무가내였다. 그뿐이랴. 평소 정당한 교육활동에도 “학대 의심 행위”, “선생이 할 짓이냐”라며 끈질기게 민원을 제기했다. 결국 이 반의 담임교사는 휴직했고, 그 학급에서는 1년 동안 무려 6명의 교사가 교체됐다. 피해자는 교사만이 아니었다. 아무 잘못 없는 순수한 학생들의 학습권과 정서적 안정까지 무너졌다. 1명의 악성 민원 때문에 다수의 선량한 학생의 수업권이 침해를 받은 것이다. 이 학교는 올해 1박 2일의 수학여행을 당일치기 현장학습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전학생이 늘면서 전교생은 반토막이 나 20여 명이 남았다. 결국 학교는 교육적 기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