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지성배 기자 | 고교학점제가 올해 고1 대상으로 전면 시행됐습니다. 지난 2018학년도, 일부 학교가 연구학교와 선도학교 등으로 지정되며 첫 모습을 보인 고교학점제는 준비 햇수만 8년이 걸린 정책입니다. 그러나 전면 시행 한 달, 현장 곳곳에서 준비 미흡으로 인한 혼란이 관측됩니다. 결국 교원단체들은 고교학점제를 두고 개선과 폐지 등의 목소리로 갈리고 있습니다.
이에 <더에듀>는 개선 의견을 내고 있는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와 폐지 의견을 내고 있는 교사노동조합연맹 관계자의 개별 인터뷰를 통해 주장의 이유를 알아보며 고교학점제의 운명을 관측해 보고자 합니다. 이번 편은 김희정 교사노동조합연맹 고교학점제TF 팀장의 이야기입니다. |

▲ 우선 고교학점제가 무엇인가.
2017년 문재인 정부 1호 교육공약으로, 입시와 경쟁위주의 교육을 완화하고 학생들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교육을 위해 ‘절대평가, 대입제도 개편’ 도입을 기본으로 설계되었습니다.
기본 운영으로는 고등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일정 학점을 취득하면 졸업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학생 중심 교육과 선택권 강화를 지향하지만, 실제 운영에 있어서는 제도적 기반과 현실 간 괴리가 큽니다. 특히 올해 이수/미이수 제도가 본격 도입되면서 학교 현장에 더 큰 저항을 부딪히고 있다.
▲ 폐지 주장 이유는.
무엇보다 현재 우리나라 학교시스템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고교학점제는 교육개혁이지만 교육현장은 예전 그대로입니다.
한 줄 세우는 입시제도, 담임을 중심으로 하는 학급시스템, 유연하지 못한 교사 정원 및 소요, 국민 대부분이 고등학교 졸업장을 획득하고 대졸인 상황, 도시와 지방의 격차, 다른 학교 규모 등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들어온 고교학점제는 매우 기형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3년 전부터 500여개 고등학교에서 모두 고교학점제를 시행하고 있는 경기도 같은 경우, 지난해 1000명이 넘는 교사에게 ‘고교학점제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냐’고 물었을 때 99%가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또 85%의 교사들은 본래 목적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고교학점제는 현실을 무시한 실험에 가까웠다는 거죠.
특히 교육부는 무능, 무책임 무관심의 끝판왕을 보여줬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수/미이수 제도가 시작하는 올해, 교육부의 이수 미이수 기준인 출결처리 지침이 새학기가 시작된 3월에 내려왔습니다.
학교 현장은 혼란에 빠졌고, 학생들은 제도에 적응하지 못한 채 소외되고 있습니다. 교사들은 제도의 의미를 전혀 찾지 못해 혼란과 자괴감에 빠져있습니다. 학부모의 불안을 틈나 사교육 시장만 확장되고 있을 뿐입니다. 과감히 중단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선생님들은, 고등학교 단계에서 왜 대학에서 길러져야 할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교과를 배워야 하나라는 의문을 갖고 계십니다. 중등교육에서는 고등교육에서 필요한 기초능력과 기본소양을 기르면 되지 않나, 왜 우리 사회가 굳이 중등교육에서 고등교육을 흉내내야 하는 문제제기이며 그로 인해 소모되는 에너지가 너무 많아졌습니다.
▲ 학생의 과목선택권 확대가 핵심인데, 이를 ‘또 다른 경쟁장치’라 주장했다. 왜 그런가.
고교학점제는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많은 학생은 진로와 적성보다 내신 유불리에 따라 과목을 선택합니다.
올해 고1부터 첫 시행인 2022개정교육과정에 따르면 대부분의 보통교과는 모두 상대평가입니다. 5등급제라고는 하나,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 대부분 선택과목이 절대평가였던 것에 비해 상대평가가 더 확대된 것이죠.
학생들은 등급이 잘 나오는 과목으로, 많은 학생이 듣는 과목으로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평가가 되면 한 줄을 세워서 등급을 나눠야 하기 때문에 시험은 더 많아질 수밖에 없고요.
수행평가까지 한다면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은 매일 매일이 시험입니다. 어떤 날은 하루 5개의 수행평가가 시행되기도 하죠.
내 옆에 있는 친구가 경쟁자인 학교에서 학생들은 힘들어 합니다. 그래서 갈수록 우울과 불안으로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친구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기존 이수 학점보다 더 많은 활동들을 하려 해요. 학생부를 잘 만들기 위해서죠. 결국 방과 후에 공동교육과정 등 추가 학점을 들어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립니다.
지금의 대입제도 아래에서 더욱 맞지 않습니다. 대입에 불이익으로 남을까 봐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아도 바꾸지를 못합니다. 그것이 힘들어서 자퇴를 생각하는 친구들도 꽤 많습니다. 이것이 정상인가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과 댓가가 혹독하기에, 결국 너도 나도 사교육에 문을 두드리는 학생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 대입에서 유리한 과목을 선택하는 것은 학생 입장에서 당연하지 않나. 고교학점제라는 제도의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바로 그 점이 고교학점제가 현실과 맞지 않는 이유입니다. ‘진로 맞춤형 교육’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학생들이 진로보다는 입시 유불리에 따라 과목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그 제도는 껍데기뿐인 자유입니다. 대입에서 유리한 과목을 선택할 것이면 굳이 진로와 적성에 따른 과목선택을 강조하는 고교학점제를 할 필요가 없지요.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어차피 대입중심의 과목선택이 이루어진다면 수많은 과목 개설은 왜 필요한가요. 과목 하나 개발하려면 국가단위에서 투입하는 비용, 학교 단위에서 교육과정 편성을 위해 소모되는 에너지, 교과교사가 다과목 연구와 지도를 위해 쏟아붓는 에너지가 엄청납니다. 학생의 제대로 된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 모든 투자가 무슨 소용인가요.
또 누구에게나 유리한 과목 선택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또 다른 문제점입니다. 일반고와 특목고, 자사고와의 격차는 말할 것도 없고, 지역 간 교육여건의 차이로 인한 학교 간, 지역 간 불균형, 즉 교육격차도 심각합니다. 서울이나 분당에서는 실력 좋은 스페인어 선생님을 구할 수 있으나, 농산어촌 혹은 소도시에서는 실력 좋은 고사하고 스페인어 선생님은 구경도 할 수 없습니다.
▲ 내신 상대평가 확대와 국어ˑ수학ˑ사회탐구ˑ과학탐구 영역에서 선택과목이 폐지 등의 내용을 담은 2028 대입개편안이 왜 과목 선택의 자유를 무력화하고 경쟁을 심화한다고 보나.
2028 대입 개편안은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반영하지 못해 학생 부담이 가중된 상황입니다. 통합형 수능으로 수능 대비에 방향을 맞춘 파행적 수업 운영이 이루어질 우려가 크며, 촘촘한 9등급 내신제도를 5등급으로 완화하였다고 홍보하나 오히려 올해 고1학년부터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따르면서 이전보다 상대평가 교과목은 오히려 확대되었습니다.
등급이 산출되는 한 학생들은 관심과 적성보다는 등급 따기에 유리한 과목, 더 많은 학생이 선택하는 교과 위주로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고2~3 학생들은 지금 고1보다 절대평가 과목이 많아서 적성과 진로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지금 고1학생들은 아무래도 내신에 유리한 과목 쏠림이 더 심해질 것이라 예측됩니다.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교과목은 많아졌지만, 아이들이 결과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교과는 오히려 한정적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소인수 과목이 다 폐강된다면 결국 고교학점제 취지와는 더 멀어질 것입니다.
▲ 최소성취수준 보장제를 두고 교사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교사노조 역시 하위권 학생들에게 낙인효과를 유발하고 위기학생들의 학교 이탈까지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왜인가.
교사가 본인 과목에서 수업일수가 부족한 학생은 보충지도를 해주고요.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또 다른 내용으로 보충지도를 해줘야 합니다. 교과뿐 아니라 창의적체험활동도 대상입니다. 교육부에서는 3년 동안 창의적체험활동 시수를 기준으로 하라는데, 누가 무슨 내용으로 해야 할까요.
1-2과목 가르치던 교사가 이제 5과목까지 가르쳐야 해서 할 일은 정말 많아졌는데, 초중학교에서 시작된 학습결손을 한 학기 가르치는 교사가 책임지는 상황이 가능한가요? 그러다 보니 교사들 역시 서류상으로만 아름답게 꾸미게 됩니다. 아니면 대상 학생을 최대한 덜 만들려고 시험 문제를 쉽게 내거나 수행평가 기본 점수를 높이는 등의 꼼수가 생겨납니다. 그로 인한 손해는 모두 학생들이 보게 되죠.
물리적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결국 수업 결손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선생님은 진로, 진학 지도는 모두 사교육 업체에 맡기고, 공교육은 기초학력과 행정업무에만 힘을 쏟기로 했냐는 물음을 던지시더라고요.
학교의 기능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부에 뜻이 없어도 즐겁게 학교 생활하고, 급식 맛있게 먹고,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지내며 공부 외에 다양한 것들을 배워가는 것도 학교의 기능일 것입니다.
학업 성취가 낮은 학생에게 추가 학습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미이수’라는 표현 자체가 학생에게 낙인처럼 작용합니다. 오히려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내칠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미이수 학생들의 학습 결손은 고등학교 단계에서 보완이 불가능합니다. 초등학교 수준에서부터 결손이 누적되어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학생의 일정 정도의 기초학력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가 아닌 초등학교, 중학교부터 유예제도가 들어와야 합니다. 과목 성취율에 다다르지 못한 학생들은 이전 단계에서부터의 보충지도가 필요합니다.
▲ 가정의 사교육 의존 현상 심화를 우려했다. 어떤 이유인가.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스스로 과목을 선택하고, 그에 맞는 학습을 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정보 제공 체계와 진로 교육, 기초학력 지원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는 결국 사교육에 의존하게 됩니다. 학점 이수 여부가 졸업과 직결되면서 학습 부담이 증가하고, 이는 사교육 시장의 과목별 대응으로 이어집니다. 공교육이 사교육의 보조 역할로 전락하는 현상입니다.
현재의 교육과정도 너무 복잡하고, 입시제도도 복잡해졌습니다. 학부모가 대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정보를 돈으로 사는 거지요. ‘내가 정보가 없어서 우리 애 대학 못 갈까’ 하는 심리가 사교육을 더 부추기게 됩니다. 고교학점제 교육부의 온라인 학부모 설명회에서 어떤 학부모님이 ‘귀족학점제’라고 하시더라고요.
학교 안에서 교사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교사 개개인이 학생들에게 맞춤형으로 지도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됩니다. 교육부가 인력을 더 보충해 주지 않는 이상은 어렵습니다.
▲ 정보 접근성과 교육자원의 불균형 문제도 지적하며 공동교육과정도 보완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공동교육과정은 지역 간 자원 격차를 메우기 위한 장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교통·시간 문제, 과목의 비효율적 배치, 강사 확보 문제로 인해 참여가 제한적입니다.
일부 대도시와 달리 농어촌이나 소규모 학교에서는 선택과목이 실질적으로 제공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 격차를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불평등을 고착화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학생들 오고 가는 안전 문제도 생깁니다.
공동교육과정에 대한 행정업무도 모두 기존 교사들이 다 책임지고 있습니다.
교육 당국은 교육격차 해소와 학생의 학습권 및 선택권 보장을 위한 방법으로 온라인 학교나 여러 학교가 모여서 개설하는 공동교육과정이 그 대안이 될 것이라고 홍보했는데,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 사회는 온라인 수업의 한계를 확인했습니다. 온라인 수업은 절대 대면수업의 질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한 학년에 학생이 400명인 학교와 40명인 학교가 있다면, 상대평가 아래에서 학생들은 좋은 내신을 받기 위해 학생 수가 많은 학교, 더 많은 과목이 개설된 학교로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지방의 작은 학교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고, 고교학점제는 결국 지역소멸까지도 부추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현장 교사들은 다들 우려하십니다.
▲ 다교과 지도 등으로 교사의 업무 과중을 주장했다. 고교학점제 도입 전과 후, 교사들의 업무는 어떤 변화가 있나.
교사 충원이 안 되다 보니, 한 사람의 교사가 여러 과목을 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 1년에 1-2과목을 담당했다면 이제는 학기별로 3~4과목, 최대 5과목까지도 맡게 됩니다. 여러 과목의 수업만을 준비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는 입시와 밀접하기에 평가와 학생부 기록까지 연결되어 있어 그 업무강도는 단순하게 수업시수만으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수업뿐 아니라 과목선택과 진로 설계 상담자의 역할까지 덧붙여졌습니다.
지난해 경기교사노조에서 경기도 고등학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수업량 및 업무량을 측정한 적이 있었는데,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이 64.71시간으로 하루 13시간에 가까운 살인적인 노동량이었습니다.
올해 같은 경우 출결과 같은 행정업무가 늘어났고, 미이수 학생들을 위한 최소성취보장지도까지 포함되기에 고등학교 교사의 노동량은 더 크게 증가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교사도 사람이기에 물리적 한계가 있습니다. 교사의 과도한 업무는 곧 수업의 질 하락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시험문제 오류를 지적하는 기사가 많아짐도 그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나.
먼저, 교사 정원의 확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출결, 학생 과목 선택 및 진로 설계 지도, 공동 교육과정 운영 등 고교학점제로 인해 늘어난 다양한 행정 업무를 담당할 별도 인력을 배치하여 교사가 본연의 업무인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많은 교사는 “늘어나는 업무는 산더미인데, 줄어드는 일은 없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교육 당국은 관행적으로 요구하는 업무, 문서상의 완벽을 추구하는 비현실적인 행정 절차 등에 대해 전면적인 점검과 정비에 나서야 합니다.
불필요한 업무는 과감히 덜어내고, 교사의 시간과 에너지가 수업과 교육활동에 온전히 쓰일 수 있도록 행정 구조를 개편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개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 출결 처리에 큰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으로 안다. 어떤 문제가 있나.
지난 3월 출결 대란은 교육부의 무능과 안일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올해 고등학교 1학년부터 고교학점제의 이수/미이수가 적용되면서, 출결이 곧 이수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육부는 단 한 번도 출결에 대한 언급조차 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학교 현장에서는 출결 방침을 바꿀 거라고는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3월 초, 그것도 이미 학기가 시작된 이후에야 바뀐 출결 처리 방침이 학교에 전달됐습니다. 그 지침은 현장의 현실, 특히 담임제 운영과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이었고, 가뜩이나 바쁜 3월에 교사들은 큰 혼란과 고충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 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장의 교사들은 출결 처리 지침의 시기, 내용, 방식 모두가 학교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며 강한 불만을 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교사노조연맹이 고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변화된 출결 처리 방식이 수업 운영에 지장을 주는가’를 조사한 결과, 94%가 ‘그렇다’고 응답했습니다.
교육부가 현장 반발에 일부 시스템 개선을 하긴 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대다수 교사의 목소리입니다.
▲ 보완이 가능한 문제 아닌가. 보완책을 제시한다면.
대학에서는 요즘 출결을 블루투스로 한다고 하던데, 학생별 QR인증, 홍채 인식 등의 획기적인 출결 관리 시스템 구축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가장 현실적인 보완책은 고교학점제의 이수/미이수 제도를 폐지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현실적인 시스템 마련 전까지 관련 제도를 유예하는 것이 현장의 혼란과 교육력 훼손을 막는 유일한 방법일 것입니다. 어떤 보완책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폐지로 입장을 선회한 것이 출결 등의 문제로 교육부를 만나고 난 뒤였습니다. 교육부는 학교 현장의 상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도, 고교학점제에 대한 로드맵도 내놓지 못했습니다. 나이스 출결 기능의 개선 정도만 말씀하셨는데 그조차도 전면적 재설계가 아닌 기존 현상에서 약간씩의 보완 개선 정도였습니다.
교육부는 현재 미이수 학생에 대한 졸업 요건에 대한 세부적 지침도 내놓지 못하고, 학교 현장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도 내놓지 못하고, 하다못해 최성보 보충지도에 대한 메뉴얼조차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다르게 안내하고 있는 등 무엇이라도 해주려는 의지도, 노력도, 여력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 다양한 문제를 제기했다. 현 시점에서 보면 차기 정부에서 해당 문제를 풀어야 할 상황인데, 무조건적인 폐지를 원하는 것인가.
우리는 무조건적인 반대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고교학점제는 구조적으로 실패한 제도입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지녔다 해도 현실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썪어 가고 있는데 이 제도를 계속 끌고가 야 할까요?
전혀 취지와 목적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데도 굳이 이 제도를 끌고 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오히려 묻고 싶습니다.
현 시점에서의 고교학점제 폐지는 단순히 교육제도만의 페지가 아닌, 현재 대한민국 사회(새로운 산업구조 개편, 학령인구 감소 등)변화와 발맞춰 공교육의 역할과 입시제도까지 함께 엮어서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 선택 중심, 진로 중심 교육과정이 옳은가?라는 문제제기와 함께, 인구 감소 시대의 치열한 입시 제도의 변화 등 교육과정 개정과 대입제도 개편이 꼭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현 시점에서 고교학점제는 순차적 폐지가 필요합니다. 당장 교육부가 지금과 같이 손을 놓고 있는 상태라면, 학교의 혼란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 혼란은 선택과목 운영이 본격화되는 내년엔 더 심화될 것이 눈에 뻔합니다.
우선은 현재의 학교 시스템과도 우리 사회문화 정서와도 맞지 않는 이수/미이수제부터 당장 폐지되어야 합니다.
결손이 심한 학생들은 학교가 아닌 교육 당국이 나서서 함께 책임져야 합니다. 국가 수준의 최소 성취수준을 마련해서, 고교학점제 지원센터와 같은 곳에서 학습 결손 및 다양한 위기 학생들에 대한 체계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이후 교육 주체들의 논의와 숙고를 통해 들어온 어떤 형태의 교육과정이나 정책이 시행되던 간에, 교사 충원과 내신 절대평가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무조건 교사를 축소하고, 온라인 수업이나 AI 프로그램으로의 대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효율성이라는 경제적 잣대로만 평가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경험했듯이, 교육은 상호작용하는 행위가 무척 중요합니다.
공교육의 내실화, 양질의 교육을 위해서 교사 충원은 꼭 필요합니다.
▲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학점제로 인한 학급공동체 붕괴, 치열해진 경쟁으로 인한 학생들의 정신건강 위기 등의 문제도 잘 들여다봐야 합니다.
당장은 눈에 보이는 문제들이 더 커 보이지만, 현장 교사들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나 앞으로 생겨날 수 있는 문제들에 더 큰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공교육의 방향성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발 현장에 기반한 교육 정책들이 입안되면 좋겠습니다. 교육과 관련 없는 분들, 정치인들이, 혹은 현장을 모르는 학자들이 현실과 괴리된 정책을 가져오는데, 본인들이 유학했을 때 좋아 보였던 정책들을 무리하게 이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현재 교육정책을 좌우하는 분들은 본인들도 공부를 잘하셨고, 주변에서 보는 학생들도 대부분 상위 10% 학생들이라서, 그 정도를 대한민국 평균이라 여기는 것 같은데,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저희 교사들은 나머지 하위 30~100프로 학생들을 함께 보고 있습니다. 그 학생들에게도 적합한 좋은 교육제도가 입안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에게 공평한 출발선을 제공한다는 고교학점제인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잘하는 학생들은 선택을 통해 자기주도적 맞춤형 교육이 가능할지 모르나, 나머지 학생들에게 많이 요원하고 어렵습니다. 격차를 벌리고, 쉽게 줄 세울 수 있는 교육이 아니라 모두에게 균질적인, 양질의 교육이 제공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합니다.
제발 현장 전문가인 교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정책들이 입안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