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지성배 기자 | 고교학점제 혼란의 원인은 ‘고등학교가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논란의 중심인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에 대해 의무적 보충수업 부과는 정책 실패를 불러오므로 경계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토론에서도 고등학교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합의 비정립은 고교 현장을 지속해서 혼란하게 할 가능성을 인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성열관 경희대 교수는 11일 제6차 한국교육정책연구원 교육포럼에 발제로 나서 고교학점제가 촉발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고등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로 제시했다.
올해 고1에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는 각종 논란을 몰고 다녔으며, 현재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에 대한 기준 변경을 추진 중이다. 내년에는 고2로 확대돼 학생들이 선택과목의 물결 속으로 본격 진입하게 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성 교수는 고교학점제 논란에 대해 ‘고등학교가 무엇을 하는 곳인가’에 대한 정립 부족을 근본 원인으로 봤다.
그는 “고등학교의 목적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약한 가운데, 노동시장 등 사회 변화와 다양한 기대가 고등학교에 새로운 정체성을 요구했다”며 “제도적 응답이 고교학점제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고 평했다.
‘엘리트 양성’에서 ‘선택 가능’ 교육기관으로...고등학교의 변화
성 교수에 따르면 해방 직후 한국에서의 고등학교는 엘리트 양성 기관이었으나,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보통의 청소년들이 진학할 수 있게 됐다.
특히 1974년 서울과 부산에서 시작된 고교 평준화 정책은 고등학교를 더 이상 특권 계층의 소유물에서 탈피하게 했으며, 1980년대 들어서는 거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교육기회가 됐다.
1995년 5·31교육개혁은 고교체제의 분화를 가져오며, 학교 유형 다양화로 선택이 가능하게 하면서 부분적으로 고교 평준화 체제의 와해를 가져왔다.
성 교수는 이를 신자유주의의 글로벌 유행과 관련이 있으나 동시에 김영삼 대통령 이후 자율과 다양성, 권리 신장 측면에서도 나온 담론으로 봤다.
그러면서 “고등학교에서 선택권 확대는 사실상 소비자주의, 민주적 권리의 확대, 진로 문제의 해결이라는 다양한 목적이 중층적으로 반영됐다”며 “고교학점제라는 정책 현상으로 나타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교 정책 설계 ‘균형, 소외학생 우선, 적절 정도 책임, 전문성, 입시 간소화’로
성 교수는 이번 고교학점제 논란을 지켜보며, ‘균형성, 소외학생 우선, 적절한 정도의 책임, 전문성, 입시 간소화’를 고교 정책 설계의 5대 원리로 제시했다.
균형성이란, 선발과 민주시민 양성, 직업 교육 강화 등의 제로섬 선택이 아니라 충돌 완화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현재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 없는 많은 수의 고교생 등이 이 균형성에서 이탈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소외학생 우선에 대해선 고교학점제의 주요 동기 중 하나를 ‘자는 학생들에 대한 문제’로 들며 “소외 학생들에게도 의미 있는 선택이 가능한가가 고교학점제 판단의 핵심 기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절한 정도의 책임은 교사들에게 해당하며,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와 다과목 지도 등에 대한 업무 과부화에 따른 불만 해소를 위한 방안이다.
성 교수는 “교사들의 불만과 저항의 표출은 너무 많은 사회적 요구를 강요하는 현실 때문”이라며 “교사는 모든 학생에게 깊이 있는 학습을 제공할 수 없고, 학생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졸업만 하는 전략을 취하게 되는 ‘하는 척하기’ 등 형식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전문성에 대해선 “경계선 지능 학생들이 상당한 비율로 존재하지만, 정책 설계 과정에서 개별화 지원 등 전문적 접근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며 “교사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의무적 보충수업 부과는 정책 실패를 불러온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입시 간소화를 두곤 “대학 입시 구조가 지나치게 복잡한 상태에서는 실제 구현되기 어렵다”며 “고교 정책의 성패는 대입의 간결성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승호 교사 “정책의 명확화 필요”
토론에서도 성 교수가 제시한 고등학교의 역할 미정립이 고교학점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제의 시발점이자 해결을 어렵게 한다는 데 동의하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면서 ‘평준화·순환근무·학령인구·입시’라는 구조적 조건을 함께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승호 서원고 교사는 “평준화를 지키려는 것인지, 다양성을 추구하려는 것인지, 입시 부담을 줄이려는 것인지 등 목적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일관된 메시지 없이 상충하는 정책들을 동시에 추진하면 현장은 계속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봤다.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 방향의 명확화”라며 “고교학점제·학교별 교육과정·최소 성취보장 지도·평준화·통폐합 논의는 계속된 땜질로 서로 충돌하는 방향으로 계속 설계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고등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며 “평준화·순환근무·학령인구·입시라는 한국 교육의 구조적 조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