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실 공백, 학생 안전은?] 대전 학생 사망 2년...보건교사는 여전히 교실서 '수업 중'

  • 등록 2025.10.27 17: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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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수업 내몰아 응급의료 공백 자초…"땜질 처방 아닌 근본 대책 마련 시급"

국감 증언에도 '변화 없는 학교 보건실'..."교육 당국은 직무유기 멈춰야"

더에듀 | 만약 당신의 아이가 학교에서 갑자기 쓰러졌을 때, 생명을 지켜줄 보건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면 어떨까.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의 유일한 의료전문가인 보건교사가 교실수업에 나가며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보건실이 비어가고 있다. 법의 왜곡된 해석과 행정 편의주의가 만든 ‘안전 공백’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다. <더에듀>는 <전국보건교사노동조합>의 이야기를 통해 닫힌 보건실 문 뒤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고, 무너진 학교 안전 시스템의 근본 원인을 살펴본다. 더 이상 2023년 대전에서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지 해답을 찾아간다. 우리 아이는 오늘, 학교에서 정말 안전할까.

 

 

지난 2023년 대전의 한 학교에서 보건교사가 수업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두통을 호소하던 학생이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 문제는 2024년 10월 1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참고인 증언을 통해 공론화되었으나,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교육 당국은 실질적인 대책 없이 책임 회피에만 급급해 사실상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


보건수업 강요가 부른 예고된 인재(人災), 제2의 비극 막아야


필자는 대전 지역 보건교사로서 국정감사 참고인 발언을 통해, 현재 학교 응급의료 시스템의 심각한 공백을 지적했다.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이 보건교육 편성을 안내하고, 각 학교에서는 유일한 보건의료 전문인력인 보건교사에게 교실 수업을 강요하는 현실을 알고도 방관해온 구조적 문제가 비극의 근본 원인임을 공론화한 것이다.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은 보건교육을 1개 학년 17차시 이상 편성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르면 보건교육은 안전·건강교육 내에 포함된 범교과 학습주제로, 관련 교과를 재구성하거나 교육활동 전반에 통합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교육 당국은 이러한 취지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학교 현장에서 보건교사가 정규 교과수업을 맡는 관행을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 이로 인해 많은 학교가 보건교육 17차시를 별도의 교과처럼 편성해 보건교사에게 교실수업을 하도록 하고 있다.

 

게다가 고교학점제 운영학교나 중·고등학교의 선택과목 편성 과정에서 보건과목을 교과목으로 채택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본래 교과교사인 정교사가 담당해야 할 영역임에도, 여전히 보건교사에게 수업을 전담시키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학생 건강관리라는 본연의 업무에 임하지 못하고, 응급상황 발생 시 신속한 대처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학생의 건강권과 생명까지 위협받게 된다.

 

2023년 대전에서 발생한 학생 사망 사건은 바로 이 문제의 심각성이 그대로 드러난 참사이다.

 

당시 학생은 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보건실을 방문했지만, 보건교사는 연속된 교실 수업이 예정되어 있어 장시간 보건실에 머무를 수 없었다.

 

학생의 상태를 잠시 확인한 보건교사는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나, 불가피하게 수업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대체인력에게 학생의 상태를 지켜봐 달라고 인계하고 교실로 향했다.

 

그러나 대체교사는 증상의 변화를 적절히 인지하지 못했고 학생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됐다. 결국 보건교사에 의한 신속한 의료적 판단과 응급처치가 지연되면서 소중한 생명을 잃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학교 내 유일한 의료인을 본래 있어야 할 보건실이 아닌 교실에 배치하고, 그 공백을 비전문 인력으로 메우려 한 잘못된 구조적 운영이 초래한 예고된 비극이었다.

 


땜질식 처방은 이제 그만...“보건교사는 보건실에 있어야”


사고 이후 대전교육청은 ‘학교 응급처치 대처역량 강화 대책’을 발표했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땜질식 처방’에 불과하다.

 

교육청의 대책은 보건교사가 수업에 들어간 사이 ‘보건실을 폐쇄하지 말고 대체인력을 두고 보건실을 관리하라’는 것인데, 이는 응급상황에서 책임의 부재와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의료 지식이 없는 일반 교사나 지원인력은 응급상황인지조차 판단하기 어렵다. 실제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대체인력은 교실에서 수업 중인 보건교사를 호출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귀중한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 수업을 중단하고 달려온 보건교사 역시 초기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적절한 중재를 하기 매우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된다.

 

당시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참석했을 때, “학교에 보건교사를 배치한 이유는 교실에서 수업을 시키기 위함이 아닐 것”이라며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체계적인 보건교육이 수업의 형태로 필요하다면, 보건수업을 전담할 강사를 채용해 배치하면 될 일이다.

 

전문 의료인인 보건교사를 수업에 투입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의료 공백을 비전문인력으로 메우려는 발상은 학생의 안전을 담보로 한 위험한 행정 편의주의에 불과하다.

 

당시 대전교육감 또한 보건교육 강의를 위한 강사 채용에 대해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답변을 했지만, 교육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이루어진 부분은 없었다.

 


교육 당국의 즉각적인 조치 필요


학생의 생명과 건강보다 우선하는 교육은 없다.

 

대통령 또한 ‘어린이 안전에 공백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라’는 지시를 국무회의를 통해 내린 바 있다.

 

교육 당국은 무엇이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바로잡고, 보건교사가 본래의 배치 목적인 ‘학생 건강관리 및 응급대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보건교사를 교실이 아닌 보건실로 돌려보내는 것만이 제2의 비극을 막고 학교 응급의료체계를 바로 세울 유일한 길이다. 지금이 바로 학교 응급의료체계의 공백을 바로잡을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혜윤 전국보건교사노동조합 대전지부장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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