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실 공백, 학생 안전은?] 비어 있는 것은 '보건실' 아닌 우리의 '관심'

  • 등록 2025.11.03 00: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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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안전은 교사만의 책임이 아니다

더에듀 | 만약 당신의 아이가 학교에서 갑자기 쓰러졌을 때, 생명을 지켜줄 보건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면 어떨까.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의 유일한 의료전문가인 보건교사가 교실수업에 나가며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보건실이 비어가고 있다. 법의 왜곡된 해석과 행정 편의주의가 만든 ‘안전 공백’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다. <더에듀>는 <전국보건교사노동조합>의 이야기를 통해 닫힌 보건실 문 뒤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고, 무너진 학교 안전 시스템의 근본 원인을 살펴본다. 더 이상 2023년 대전에서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지 해답을 찾아간다. 우리 아이는 오늘, 학교에서 정말 안전할까.

 


학교의 빈 공간, 사회의 빈 시선


“보건교사도 수업해요?”

 

학교 밖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이다. 웃으며 대답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그 짧은 질문 속에는 많은 이들이 모르는 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보건교사가 수업이나 시험 감독을 위해 교실로 나가는 동안, 학교의 응급실과도 같은 보건실은 텅 비어 버린다.

 

몇 해 전, 나는 모의고사 감독을 맡아 평소처럼 보건실 문을 잠그고 교실로 향했다. 월경통이 심했던 한 학생이 문이 잠긴 보건실 앞에서 되돌아가다 혼자 복도에서 쓰러졌다. 나는 시험 감독 중이라 연락을 받지 못했고, 교무실에서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바로 확인하지 못했다. 뒤늦게 달려갔을 때, 학생은 땀범벅이 되어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 일 이후 학교는 ‘모의고사만이라도 보건교사를 감독에서 제외하자’고 결정했다.

 

그제야 모두가 깨달았다. ‘보건실이 비어 있는 시간’이 곧 학생의 안전이 비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법이 정한 역할, 행정이 왜곡한 현실


이 일은 결코 개인의 예외적 경험이 아니다. 전국 곳곳의 학교에서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학교보건법 시행령」 제23조는 보건교사의 업무를 명확히 규정한다. 학교보건계획 수립, 감염병 예방과 관리, 응급처치 등 학생의 건강 보호와 증진이 핵심이다.

 

그러나 현장의 평가 기준은 다르다. 보건교사의 본연의 역할보다 ‘얼마나 많은 수업시수를 맡았는가’가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행정은 수업시수와 인력 운용의 효율만을 따지며, 학생의 건강을 ‘조정 가능한 업무 항목’으로 취급한다. 이처럼 행정 편의가 안전보다 우선되는 구조 속에서 학교의 의료 안전망은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다.


‘업무 갈등’이 아닌 ‘안전권’의 문제


학교의 ‘빈 보건실’ 문제는 업무 분장이나 행정적 조율의 문제가 아닌, 위급 상황에서 학생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권’의 문제이다. 그런데도 행정은 여전히 보건교사를 ‘대체 가능한 인력’으로 취급한다. 보건교사의 공백을 시간제나 비전문 인력으로 메우려는 시도는, 학생 안전을 비용 절감의 논리로 바꾸는 것이다.

 

이는 사회가 ‘안전’보다 ‘행정 효율’을 앞세운 결과이며, 법이 지키려 한 취지를 외면한 결과다.

 

비용 절감과 효율성의 이름으로 학생의 안전을 희생시키는 제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학교의 안전망이 약해지는 것은 곧 사회가 스스로의 책임을 방기하는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보건교사들의 외침을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하지 않는 사회적 성찰이다.

 


사회의 무관심이 만든 ‘형식적 안전’


많은 보호자(학부모)는 ‘학교에 보건실이 있으니 안심’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보건실이 비어 있는 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응급 상황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아이가 쓰러졌을 때, 옆에 의료 지식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지금도 수많은 학교가 ‘괜찮을 거야’라는 막연한 믿음 속에 버티고 있다. 그러나 아이의 안전은 운에 맡길 문제가 아니다. 보건교사들의 외침은 ‘업무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권 수호’를 위한 경고음이다.


필요한 것, 빈 것은 보건실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


‘빈 보건실’은 단순히 교사의 부재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학생의 생명권과 안전권을 얼마나 가볍게 여겨왔는지를 드러내는 거울이다.

 

학교의 안전 체계는 공동체의 신뢰와 직결된다. 교육청과 학교가 편의의 논리로 문제를 미루는 동안 우리는 아이의 안전을 잃고 있다.

 

이제 논의의 초점을 ‘교사의 업무 조정’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의 분담’으로 옮겨야 한다. 보건실의 문을 지키는 일은 교사 한 명의 의지가 아니라, 보호자와 시민이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 일이다. 보호자(학부모)가 묻고, 시민이 감시할 때 학교는 바뀐다.

 

보건실이 비어 있는 동안 아이는 혼자 있다. 그러나 그 시간에 정말로 비어 있는 것은 우리의 관심이다. 이제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 아이의 안전을 지키는 일은 교사만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무이다.

김유민 전국보건교사노조 교권국장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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