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의 THE교육] 들쑥날쑥 수능의 난도, 공정함과 신뢰의 딜레마

  • 등록 2025.11.14 15: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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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2026학년도 대학입학을 위한 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각종 언론 보도에 나타난 고교생 후배들의 열띤 응원과 학부모의 노심초사 합장한 두 손에서 비장한 각오를 읽을 수 있었다.

 

앞으로 그날의 수능에 대한 온갖 구설이 난무하고 자질구레한 일들이 또한 언론에 등장하겠지만 매년 수능의 난이도는 도마 위에 오르곤 한다. 어렵고 쉽고 하는 문제가 마치 롤러코스트를 타듯 올해도 벌써 사설 입시 기관들의 분석을 통해 설왕설래하고 있다.

 

매년 그렇듯이 수능이 끝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들이 있다.

 

“올해 수능은 작년보다 어려웠다”, “국어가 너무 불친절했다”, “수학은 변별력이 사라졌다.”

 

수험생과 학부모, 교사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정작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늘 “난이도는 예년과 비슷하다”고 답한다. 그런데 왜 체감 난이도는 이렇게 요동치는 것일까? 그리고 정말 ‘매년 안정적인 난이도 유지’라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까?

 

사실 수능의 난이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단순히 문제를 비슷한 수준으로 내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출제위원들은 해마다 교육과정, 학생 학력 분포, 학교 현장의 변화,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2021학년도 수능 국어 영역에서 ‘언어와 매체’ 선택 과목이 추가되었을 때, 평가원은 문항의 길이와 제시문의 난도를 조정해 과목 간 유불리를 최소화하려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독서 지문의 난해함으로 인해 ‘역대급 불수능’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문제 자체의 난이도뿐 아니라, 수험생들이 받아들이는 ‘체감 난이도’가 얼마나 민감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수능의 안정적 난이도 유지의 핵심은 ‘측정의 일관성’이다. 평가원은 이를 위해 통계적 기법을 활용한다. ‘문항 반응 이론(IRT)’이라는 기법이 대표적이다. 이 방법은 문제의 난이도, 변별도, 추측도를 수치화해, 이전 시험의 문항과 비교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예년과 비슷한 비율의 학생들이 일정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조정한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 접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느끼는 난이도는 주관적이고 심리적이다. 같은 문제라도 학습 환경, 사교육 의존도, 정보 접근성에 따라 체감 난이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난도를 맞추려는 노력은 언제나 사회적 합의의 문제로 귀결된다. 수능의 난도가 조금만 흔들려도 “사교육 유발형”, “수시 불리형”, “지방 학생 소외형” 같은 논란이 봇물 터지듯 나온다.

 

이는 단순히 시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여전히 대학 입시를 개인의 삶을 좌우하는 결정적 시험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능 난도의 안정성은 곧 교육 제도 전체의 신뢰도와 직결된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그것은 난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기술적 노력이 아니라, 평가의 목적을 다시 묻는 일이다. ‘누가 더 아는가’를 가리는 선발의 시험에서 ‘어떻게 사고하고 해결하는가’를 평가하는 방향으로 수능의 본질이 이동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선 단순 암기 중심의 문항을 줄이고, 실생활 맥락에서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을 평가하는 문항을 늘려야 한다. 실제로 교육 선진국 핀란드의 대학 입시에서는 정답이 하나인 문제보다, 자신의 논리와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서술형 평가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는 학생의 단편적 지식을 평가하기보다 학습 과정 전체를 신뢰하려는 시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그 ‘신뢰’다. 난도의 일관성은 기술적으로 조정할 수 있지만, 수험생이 시험을 통해 성장했다고 느끼게 만드는 ‘신뢰’는 오직 교육의 철학에서 비롯된다.

 

학생이 “이번 시험은 어려웠지만 공정했다”고 느낀다면, 그 시험은 이미 성공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년 수능의 진짜 과제는 난도의 조정이 아니라 ‘공정함의 설득’에 있다.

 

최근 수능 폐지론이 꾸준히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입시가 변별의 도구가 아니라 배움의 연장선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수능을 없애자는 주장보다는, 수능을 어떻게 새롭게 의미화할 것인가가 더 본질적이고 구체적인 질문이다.

 

단순히 “비슷한 난도”의 시험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신뢰”를 주는 시험, “비슷한 기회”를 제공하는 시험으로 발전해야 한다.

 

결론하자면 수능의 난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비결은 출제 기술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학생을 믿는 사회의 교육 철학, 그리고 공정함을 향한 사회적 합의의 깊이 속에 있다. 매년 시험의 난도는 바뀔 수 있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육의 방향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이제는 수능이 더 이상 불안과 불신의 상징이 아니라, 성장과 성찰의 무대가 되는 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안정된 수능’일 것이다. 수능 다음 날 아침,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한동안 오르내릴지 벌써 강한 우려와 의혹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전재학 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산곡남중 교장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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