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더하기-고요한] 현장체험학습, 이제는 갈 수 없습니다

  • 등록 2025.11.08 11: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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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최근 제주로 수학여행을 간 고등학생이 추락사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사고는 자정이 다 된 시각에 발생하였습니다. 우선 안타까운 사고를 당하여 목숨을 잃은 학생과 가정에 진심으로 애도의 마음을 표합니다.


#1. 교사라는 이유로


사고를 당한 학생에 대한 슬픔과 함께 찾아오는 감정은 ‘학습된 두려움과 걱정’입니다. 사고는 자정이 다 된 시각에 발생했지만 세상은 교사에게만 책임을 묻습니다. 교사에게만 철저히 책임을 묻는 것을 이미 우리는 경험했습니다.

 

‘교사’이기에 모든 책임을 감당해야 하나요?

 

3년 전, 강원 속초시 한 테마파크 주차장에서 체험학습을 간 초등학생이 주차하는 버스에 치이며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인솔 교사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어 금고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해당 교사는 제자를 잃은 슬픔과 학부모에 대한 죄책감만으로도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견뎌야 했지만 인솔교사라는 이유만으로 형사 처벌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학생들과 이동 시 학생들을 몇 미터에 한 번씩 제대로 주시하지 않거나, 인솔 현장에서 벗어나는 학생을 제대로 관리하는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 학생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교사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교사 단 한 명이 20명, 혹은 그 이상의 학생들을 온전히 관리·감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심지어 외부 활동으로 들떠있는 학생들에게서 비롯된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교사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위 사건들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 현장체험학습 및 수학여행은 학생과 교사, 그 누구에게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2. 우리는 여전히 위험하다


학교 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학교안전법)이 개정됐습니다. ‘학교장 및 교직원은 학생에 대한 학교 안전사고 예방 및 안전조치 의무를 다한 경우, 학교 안전사고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는 문구가 추가되었습니다. 이를 근거로 교육부는 면책 요건을 명확하게 하도록 지침을 제정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독박 책임’을 질 여지가 충분합니다. 업무상 과실범이 될 수 있고, 하나라도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장체험학습과 수학여행을 거부해야 합니다.

 

제주에서 고등학생 추락 사건이 발생한 후 서울교육청은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라며 매뉴얼을 첨부해 바로 다음 날 공문을 뿌렸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매뉴얼에 따라 잘하라고 했다, 교사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모든 책임을 교사에게 전가하는 면피용 공문입니다. 교육청도 사고 발생 시 교사를 보호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립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현장체험학습을 가야 합니까? 결코 갈 수 없습니다. 가서는 안 됩니다.

 


#3. 그래서 우리는


최근, 초등교사노동조합에서는 현장체험학습은 학교 구성원의 안전이 보장될 수 없기에 강행을 금지하라는 내용을 학교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학교 현장에서는 교사 의견이나 학년의 협의 없는 일방적 강요나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만을 중시한 일방적 의사결정에 의해 현장체험학습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육적 필요와 무관한 현장체험학습 마저 강행되고 있습니다.

 

교사들은 여전히 위험에 노출되고 있고 법적 책임 앞에서 무력하기만 합니다. 교사의 가르칠 권리를 침해하고, 교육활동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이며 교육의 주체인 교사와 배움의 주체인 학생들을 위험에 내모는 무책임한 처사입니다.

 

선생님!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현장체험학습과 수학여행은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진정한 교육을 위해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멈춰야 합니다. 우리의 권리는 우리가 찾아야 합니다. ‘함께’ 움직여야 변화는 비로소 찾아옵니다.

고요한 초등교사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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