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언제나 책봄] 다름을 이해하는 일

  • 등록 2025.04.16 1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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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한정원의 8월을 읽고

더에듀ㅣ18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 소위 말하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되어 교육감을 보좌하는 비서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반절 가량을 글쓰기란 업을 갖고 살아왔는데, 새 옷을 입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한동안 글쓰기를 멈췄습니다. 그러자 내 마음 한구석에 공허함 그 비슷한 마음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읽고 에세이를 써보기로 다짐했습니다. 지난해 2월 호기롭게 시작한 이 다짐은 지금도 꾸역꾸역 이어가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내 안의 나와 만나는 일은 제 삶을 더욱 반짝이게 한다는 걸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매번 곁에 있던 사람이 보이지 않고, 매번 하던 일을 하지 않아서인지 일요일 저녁이 이렇게 허전할 수가 없다. 대통령 탄핵 선고로 당초 예정됐던 행사가 취소돼 생각보다 집에 일찍 집에 들어왔다. 엄마의 부재가 집안 곳곳에 눈에 띈다. 밀린 빨래와 청소기를 돌리고 푸딩이와 동네 밤 산책을 다녀왔는데도 뭔가 텅 빈 느낌이다. 

 

언젠가 엄만 튀르키예 열기구를 타는 게 평생소원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엄마가 여행을 계획했던 2년 전 튀르키예에 지진이 나 여행이 취소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도 엄만 틈만 나면 여행 프로그램을 보았다.

 

"가영아 저기 봐. 너무 아름답지 않니? 난 꼭 갈 거야." 

 

바쁜 일상으로 하루하루가 전쟁같이 정신없던 난 엄마의 그런 말들을 일부러 흘려보내기도 했었다. 좀 이기적이지만 자꾸만 어디론가 떠나려고 하는데 엄마를 이해하려고 조차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지금껏 못 해본 걸 다 해보려는 엄마의 기세는 점점 커져가는 반면 칠순이 넘은 아부지는 대퇴골 골절 수술 이후 장거리 여행을 썩 내켜 하지 않는 눈치였다. 급하고 다혈질이며 직선적인, 좋게 말하면 상남자인 아빠와 달리 엄만 천상 여자다. 섬세하고 감성적이며 내성적인... 외유내강인 면도 있지만, 정반대인 노부부가 사는 모습을 마흔이 넘은 딸이 같은 집에 살며 보다 보니 때론 안쓰러울 때도 있고, 서로 맞춰서 살아가는 모습이 시트콤 같기도 하다. 달라도 너무 다른 부부.

 

성경에 나오는 에베소서의 에베소를 걷고 있다며 감동에 젖은 엄마의 메시지 말미에는 가는 곳마다 성지 순례길이라며 투덜거린다는 믿지 않는 아빠의 불평불만에 대한 얘기다. 평생소원을 이루고도 속이 상하다는 엄마의 상기된 표정에는 헛헛함이 묻어났다.

 

"드디어 나 열기구 혼자 탔어. 혼자서.

맨날 혼자야. 언덕길도 먼 곳은 혼자 가..."

 

6시간의 시차가 나는 먼 타국 땅에서 칠순을 코앞에 두고 있는 엄마가 버킷리스트에 성공한 사진을 보니 코끝이 찡하게 시렸다.

 

내가 옆에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몇 번이고 생각하고 생각했다. 대견하고 장한 우리 엄마.

 

평소 아부지가 고소공포증이 있는 걸 알기에, 수술한 다리여서 먼 길을 걸으면 힘이 부친다는 걸 알기에... 한 공간에 함께 있으면서도 때론 지독하게 외로웠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엄마가 몹시도 보고 싶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부부도 참 많이 다르다. 미용사와 기자, 이젠 헤어숍 원장님과 비서관이 됐지만 우리의 일도, 삶의 가치관이나 태도도, 취미도 성격도 정반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첫눈에 반해 17년 연애하고 15년을 주야장천 살고 있지만 말론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자석 같은 성질이 있어서, 싸우면 오래가지 않고 함께 애정과 애증 사이를 넘나들며 사이좋게 살고 있다는 거다.

 

매주 책을 읽고 뭔가 끄적거리다가 막상 쉬려고 하니 마음이 어정쩡한 게 이상해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한정원의 8월을 다 읽었다.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이라 함은 사계절 중 제일 별로란 얘긴데, 나와는 정반대다. 내가 첫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여름'을 이리도 조금 사랑할 줄이야.

 

틀린 게 아니란 나랑은 다른, 한정원 작가의 8월을 대하는 1일부터 31일까지의 시와 에세이, 사진을 따뜻한 마음으로 읽었다. 한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 계절을 나는 기분과 태도가 어쩜 이리도 나와 다를까?

 

하지만 그의 섬세하고 글루미 한 문체는 내 마음에 쏙 와닿았다.  

 

2024년 여름의 어느 하루에, 당신과 나는 이십 분쯤 함께 있었으려나. 백 년 속의 이십 분이 무수했으리라. 살면서 꼭 한 번은 더 보고 싶으나 분명 그러지 못할 사람과 사람. 그들의 이십 분이 백 년을 쌓아 올리겠지.

8월에 나무 그늘 밑에 앉아 있다가 드물게 맑고 서늘한 바람을 맞아 기쁜 때가 있었다. 내게는 아름다운 당신과 스친 것이 그와 같았다.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한정원의 8월 p142

 

국가적 위기 상황을 겪으며 정신적으로 무척 힘든 지난 시간들을 보내며 반으로 나뉜 우리 국민들도 다름을 다름으로 이해하는 날이 올까? 한정원의 시처럼, 아름답고 서정적일 순 없을까?

 

사진 속 부부의 다정함 뒤에는 다름과 다름에서 오는 그 빈틈들을 메우는 그들만의 시간이 있겠지?

보고 싶다.

 

임가영 충북교육청 비서관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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